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55)
마존현세강림기-1957화(1954/2125)
마존현세강림기 79권 (17화)
4장 혼탁하다 (2)
“어떻게든 방송을 막으라고 지시 를 해뒀습니다. 이쪽으로……
“ 조용.”
비서장의 다급한 목소리를 주석의 묵직한 목소리가 가로막았다.
“우선은 들어보지.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대처라도 똑바로 할 수 있도록 말이야.”
“……예.”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주석 의 얼굴을 확인했다.
딱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새삼스레 고 개가 끄덕여졌다.
‘그래도 한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 라는 거로군.’
그 대외적인 평가가 어찌 되었든 이 사람은 무수한 칼날 위를 걸어온 이다. 중국이라는 막대한 인구 중에 서도 검증된 엘리트들만이 모이는
당. 그 당 안에서 벌어지는 견제와 시기, 그리고 암수를 모조리 돌파해 내고 마침내는 이 자리에 선 이다.
그저 혈통만으로 자리를 얻어낸 황제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게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 드 ,
어느 쪽으로든 괴물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다. 무인계로 치자 면 최소 홍왕 이상의 존재이니까.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상대해야 하는 이는
괴물 이상의 존재다.
청마.
지금 이 망할 놈은 전 세계를 제 손안에 넣고 뒤흔들어 대고 있다. 아무리 미디어의 존재로 세상이 달 라졌다고는 하지만, 이건 과거의 강 진호조차 감히 도달하지 못한 영역 이다.
‘정말 악마 같군.’
화면 안의 청마가 느긋하게 의자 에 등을 기댄다. 다른 이들에게는 방송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인인 청 마가 할 말을 고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겠지만, 강진호는 안다.
지금 청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 다.
주석이 어떤 마음으로 이 방송을 보고 있을지, 이 방송을 보는 일반 인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중국이 아닌 이국의 땅에서 이 방송을 지켜 보는 이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 을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 방송의 직접적인 관계자들인 무인들이 어떤 마음일지도.’
그 무인 중에서는 강진호도 포함 된다.
강진호가 시선을 돌려 방송을 보 고 있는 이사들의 복잡미묘한 표정
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 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는 얼 굴이다.
그렇겠지.
강진호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으니 까.
청마의 모든 행동을 일단은 저지 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주석의 암살이라는 행위는 확실하게 막아냈 지만, 지금 방송을 보면 청마의 목 표는 애초에 이쪽이 아니었다는 게 명백하다.
주석을 노리는 건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인, 그저 강진호를 끌어 들이는 미끼로 쓰면 충분할 일에 불 과했을 터. 진짜 목적은 바로 저 방 송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곳의 모두가 청마를 저지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금 강진호의 가슴속에 는 분노보다는 알 수 없는 통쾌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학을 익힌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왜 이리 묶여 살아야 하는가.
왜 이 좁은 세상에서 우리끼리 아웅다웅대며 살아야 하는가.
세상을 뒤흔들 만한 힘을 가지고 도 어째서 남의 눔을 피해 범죄자처 럼 숨을 죽여야 하는가.
힘이 있으면 사용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그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본능과도 같다. 하지만 무 인들은 힘을 가지고도 그 힘을 숨기 며 살아와야 했다.
심지어 그들이 바깥세상을 활개하 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이 아니라 같은 무인들이었다. 강진호 역시 총회의 이름 아래 총회를 떠나 는 이들의 무공을 폐하고,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지 않았던가.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게 정말 옳은 일인가는 강진호조차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청마가 세상의 모든 무인을 향해 외치고 있다.
더는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 부터의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고.
이 일이 가져올 파급을 생각하기 이전에, 저 발언만으로도 그의 속에 서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청마를 잘 아는 그도 이럴진대, 다른 무인들은 지금 어떤 기분이겠 는가.
확실한 것은 하나.
이 순간부터 세상은 절대 이전으 로는 돌아갈 수 없다.
설사 청마가 여기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제압당해 목숨을 잃고, 이 방송이 그저 우스갯소리로 전락 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 순간 을 기억하는 무인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우리가 숨어 살아 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이 들도 반드시 생겨날 것이다.
불이 붙어버렸다.
이 불꽃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게 될지, 그게 아니면 이 세상 을 모조리 불태워 버릴지는 지금 이 순간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이제 더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결코 다시는.
화면 안의 흑왕이 느긋하게 와인 잔에 와인을 따른다.
그 여유롭기 짝이 없는 모습이 오히려 시선을 잡아끌었다.
[건배.]흑왕이 화면을 향해 가볍게 잔을 내밀고는 와인을 살짝 머금는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기본적으로 테러라는 것은 공권력 에 저항하는 것.
저 행위의 의도가 무엇이든 중국 을 지배하고 있는 이들이 이런 일탈 을 좌시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한 일 이다.
하지만 흑왕에게서는 어떠한 조급 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여유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화면에 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술을 마시기에 적당한 날이지.]잔을 내려놓은 청마가 시선을 앞 으로 돌린다. 마치 화면 너머의 누 군가를 바라보는 듯이.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 들이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이 방 송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에게는 그냥 정신병자의 발악쯤으로 보이겠죠.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 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말하고 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이들.]흑왕의 두 눈이 화면 너머를 바 라본다.
[그래. 바로 당신 같은 이들.]혹왕이 천천히 다리를 꼬고 양손 을 깍지 껴 무릎 위에 올린다. 느긋 하게 등을 뒤로 기댄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결국 우리는 도태된
다.]
그 말이 강진호의 정곡을 찔렀다. 딱히 대단한 수식어도 없는 그 말이.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강진 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인의 세상은 갈수록 좁아진다. 서로 난립할 때는 그래도 나았겠지. 하나로 통합된 세상은 좀 더 당신을 억누를 테고, 결국 당신이 평생을 노력해서 쌓은 무학은 게임 속의 레
벨만도 못한, 의미 없는 지표로 사 라지겠지. 그리고 불과 백 년도 지 나기 전에 무인의 세상은 붕괴할 테 고, 우리는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역 사에 남기지 못하고 묻힐 것이다. 그럼!]
흑왕의 두 눈이 차가운 빛을 흘 린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건가.]“로드, 저건……
“ 알아.”
강진호가 위긴스의 말을 끊었다. 지금 이곳에서 안달복달해 봐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위긴스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긴스가 굳이 의미도 없이 입을 여 는 이유는 빤하다.
‘저 말에 위긴스조차 흔들리고 있 다는 거겠지.’
저 말은 무인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선동하자는 게 아닙니다.]
흑왕이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 을 이어갔다.
[제가 선동하든 선동하지 않든, 이미 우리는 정해져 있는 결과로 달 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야 눈
을 가리고, 입을 틀어막고 산다면 그럭저럭 지금과 같은 삶을 유지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게 얼마나 더 지속될 것 같습니까?]
흑왕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잡아끄 는 힘이 있었다.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왜곡이 유 지될 수 있는 이유는 아직 우리에게 활용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 만 그 활용가치가 끝나게 되면 결과 는 빤하죠. 불과 몇 십 년 전에 비 해 저들이 가진 힘은 수백 배로 늘 어났습니다. 앞으로는 더 늘어나겠 죠. 그때도 저들이 우리의 존재를인정하고 공존하려 할 것 같습니 까?]
흑왕이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댄다.
[빵.]총 쏘는 시늉을 한 흑왕의 얼굴 에 뒤틀린 미소가 자리했다.
[사냥이 끝나면 개는 삶아지는 법 이죠. 당신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 저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지껄이는 것 자체가 대안 없이 불만만 늘어놓는 것이 지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대안을 준비했습니다.]
‘ 대안?’
강진호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 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시작은 협상입니다. 이 협상은 무모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당신들이 함께해 준다면, 무모한 협상도 무모하지 않 게 될 겁니다. 그러고는 더 나아가 이 뒤틀린 세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 제안합 니다.]
흑왕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합류하십시오. 내게 오십시오. 나 는 지배하지도, 군림하지도 않습니 다. 오직 여러분이 떳떳하게 양지로 드러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 입니다. 숨지 않아도 무인과 평범한 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어낼 겁니다. 어떻게?]혹왕이 웃음을 참아내는 듯한 얼 굴로 화면을 바라본다.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대단하신 분들, 세상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있다고 믿고 계신 잘나신 분들에게 하나 알려 드리죠. 궁금하지 않습니 까, 대체 제가 어디서 이 방송을 내 보내고 있는지? 그걸 알면 제 목을 단번에 따버릴 텐데?]
강진호의 의자의 손잡이를 움켜잡 는다.
흑왕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저 건 흑왕이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었 다가 드러낼 때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주석님!”
활짝 열린 문 뒤로 일련의 무리 들이 전력으로 달려온다. 그 새파랗
게 질린 얼굴만 봐도 일이 잘못되어 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채 도착하기도 전 에 화면이 바뀌었다.
뒤로, 좀 더 뒤로.
그동안 흑왕의 전신을 잡고 있던 화면이 점점 뒤로 가 그가 있는 공 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콘크리트.
거대한 콘크리트의 벽. 그 두텁고 도 웅장한 콘크리트의 벽이 말로 할 수 없는 압박감을 화면 너머로 전하 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시선을 잡아끄는 것 은 따로 있었다.
시체.
화면이 점점 더 많을 것을 잡자 흑왕의 의자 좌우로 피를 홀리며 쓰 러져 있는 이들의 모습이 확연히 들 어온다.
하나같이 군복을 입은 이들. 그들 이 쓰러진 곳의 주변에 총기가 널브 러져 있는 것을 보아 저곳을 지키던 군인들인 모양이었다.
‘잠깐. 군인?’
강진호의 눈이 살짝 커진다.
“아, 안 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주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침착함을 잃지 않던 주석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화면 속의 흑왕이 천천히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빙그레 미소 짓는다.
[알고 싶다면 알려 드리죠. 여기 는…… 음, 그냥 눈으로 보여주는 게 나으려나?]그 순간, 화면이 옆으로 이동한 다.
뒤어이 화면으로 보이는 광경은 천하의 강진호조차 신음하게 만들었 다.
회색과 횐색이 뒤섞인 콘크리트 벽.
그 벽 앞쪽으로 거대하고 길쭉한 쇳덩어리 십여 개가 그 모습을 드러 낸다. 얼룩무늬 위장 도색을 한 십 여 개의 쇳덩어리.
“……미사일.”
그 순간, 혹왕이 다시 화면 앞으 로 걸어 나왔다.
[핵미사일 발사 기지입니다. 이곳 은 지금 제게 완벽하게 장악당했다
는 것을 미리 알려 드리죠. 공격하 고 싶으면 공격해 보십시오. 그 대 가는 다름 아닌 당신들이 치러야 할 테니까. 하하하하하핫!]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주석을 돌아보았다.
핏기가 가신 주석의 얼굴을 본 순간, 이 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밖에 없 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강진호가 화 면 안의 흑왕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찰칵, 찰칵.
답지 않게 몇 번이고 라이터를 켜는 데 실패한 강진호가 겨우 담배 에 불을 붙이고는 의자에 늘어진다.
“이건 내 예상보다 더한데……
흑왕의 광기가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아니.
세상 모두를 집어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