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60)
마존현세강림기-1962화(1959/2125)
마존현세강림기 79권 (22화)
5장 고민하다 (2)
통화가 연결이 되자마자 유쾌한 목소리가 홀러나온다.
[방송 보셨습니까?]마치 우연찮게 TV에 나온 사람이 친한 지인에게 건네는 말 같다. 헛 웃음을 흘려 버린 강진호가 낮은 목 소리로 대답했다.
“화면발 잘 받더군.”
[보신 모양이군요. 나름 고민 많 이 했습니다. 좀 센 컵셉으로 나가 볼까. 악당처럼 복면도 쓰고 말이죠. 그래야 사람들이 겁을 좀 먹을 것도 같고.]“멍청한 생각이군.”
[네. 그래서 평소대로 했습니다. 교주님이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차마 반말은 못하겠더군요. 이 런 제 마음을 알아주시리라 믿습니 다.]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어 버렸다.
예전에도 알던 일이지만, 이놈은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이놈 하나 때문에 지금 세상이 뒤집혔다. 자신들이 모여 있는 이곳 은 나름 조용한 편이지만, 바깥은 지금 난리도 아니다.
각국의 수뇌부들은 이 사태를 대 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 때문 에 연신 밤샘 회의 중이고, 진실을 요구하는 기자들은 물론, 일반인들 까지 국회와 국가 수뇌가 머무는 곳 으로 쳐들어가 시위 중이다.
몇몇 국가에서는 폭동의 기미까지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모든 사태를 만든 놈
은 여유롭기 짝이 없다. 그 담대함 에는 강진호조차 할 말을 잃을 정도 였다.
“아주 화려하게 해주셨더군.”
[오래 준비한 일이니까요. 제 인생 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이리 긴 시간 동안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 본 적 은 없습니다. 물론…….]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하필이면 시행에 거의 도달해서 교주님이 나타나서 식은땀을 좀 흘 리기는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를 가 장 잘 아는 사람이 같은 세상에 존 재한다는 건 부담이니까요.]“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제가 가만히 있었다면 알아챘을 지도 모르죠.]“저 빌어먹을 놈이……
이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그 말인즉, 청마가 강진호의 앞에 나타나서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하고, 십이비도 등을 통해 세상을 흔든 일련의 행위에 강진호의 이목 을 속이는 목적도 있었다는 의미였 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
태연한 얼굴로 자신들을 농락한 흑왕의 존재도, 그리고 그 계획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자신도 말이 다.
[그래서 감상은 어떠십니까?]
“엿 같더군.”
[그리 말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강진호가 청마를 잘 아는 것처럼, 청마 역시 강진호를 잘 알고 있다.
[반면에 통쾌하기도 하셨겠죠. 그 렇지 않습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제가 아는 교주님은 억압을 좋아 하지 않습니다. 그 엄정하던 마교에 서도 피를 흘려가며 자신이 하고 싶 은 대로 살던 사람이 교주님이죠.
그러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런 분이 이 세계가 자신을 짓 누르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습니 다. 제가 하지 않았더라면 언젠가는 교주님이 했을 일이죠. 오히려 저는 교주님이 이런 일을 전혀 시도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그 시대에도 수라경을 세상 에 뿌려서 뒤틀린 걸 바로잡으려 한 이가 바로 교주님 아닙니까.]
강진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심 청마의 말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과거의 강
진호였다면 무인계를 일통하는 순 간, 바깥세상과 전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인들을 양지로 이끌려 했을지도 모른다.
이 뒤틀려 있는 세상을 견디는 것 역시 그에게는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랐다.
“뭘 위해서?”
“대체 뭘 위해서? 그래서 뭐가 더 나아진다는 거냐? 그렇기 피를 흘리 고, 싸워서 얻은 그 지위에 무슨 가 치가 있다는 거냐? 그냥 무인이라는 것만 포기하면 지금도 양지를 걸을
수 있는데.”
[…….]“내 손에 쥔 것은 어느 하나 놓지 못하고, 얻을 것만 얻어내겠다는 건 그냥 투정이지.”
잠시 침묵이 감돈다.
다시 들려오는 흑왕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이거,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교주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제가 아는 교 주님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무인이 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였 으니까요.]“너……
[아니요, 아니요. 뭐, 그런 건 별 상관 없습니다. 어쨌거나 강은 건넜 고, 화살은 쏘아졌으니까요. 이제 와 뭐가 옳은가에 대한 논쟁 같은 건 쓸데없는 짓이죠.]강진호가 입을 닫았다.
이 말도 맞다.
이런 말은 청마가 일을 벌이기 전에 했어야 하는 말이다. 이제 더 는 돌이킬 수 없다. 청마가 벌인 일 이 옳든 틀리든, 제 스스로 멈출 방 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아는 청마라면 멈추
지 않을 것이다. 멈출 생각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재미있지 않습니까?]“뭐가?”
[과거에는 교주님이 세상을 바꾸려 했고, 제가 그걸 막았습니다. 그 대 가로 저는 목숨을 잃었지만, 어쨌거 나 저는 무인계라는 곳을 존속시켰 습니다. 교주님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결국 모든 것은 파탄이 나고도 남았을 테니까요.]강진호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과거에 그는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의 흐름
같은 것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었다.
이제는 이해한다, 그가 하려 한 것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세상을 바 꾸려 하고, 교주님이 저를 막으려 합니다.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네요. 그럼 그 결과는 또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하나는 알지.”
[물어도 됩니까?]“네가 죽는다는 건 바뀌지 않아.”
[하하하하하하핫!]지체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비웃음이 아니라, 정말 유쾌하다 는 듯 터져 나오는 웃음.
[제가 이래서 교주님을 좋아합니 다.]
“헛소리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해.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전화한 건 아 닐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용건은 간단합니 다. 교주님,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아니, 이제 바뀔 겁니다. 제가 그렇 게 만들 생각입니다.]
[방송을 보았다면 이해하시겠지만, 저는 이 일로 인해 무인계를 지배하
겠다든가, 혹은 제 권리를 늘릴 생 각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이대로 는 언젠가 무인들의 세상이 무너지 고, 모두가 도태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뿐입니다.]
강진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결론을 내린 것은 강진호 역 시 같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서로 달랐던 모양이다.
강진호는 좀 더 강한 통제와 좀 더 완벽한 결집을 노렸다. 날이 갈 수록 무인들이 설 곳이 없어진다 해 도 총회가 존재하고 총회가 무인들 을 지원하는 한, 그리고 세상에 녹
아들겠다고 하는 이들을 성공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면, 무인의 세상도 좀 더 지속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청마는 근본을 뒤틀었다.
굳이 우리가 변할 이유가 없다. 변해야 하는 것은 이 잘못된 세상이 다. 그러니 우리가 바뀌는 게 아니 라 세상을 바꾼다.
‘뭐가 옳았던 걸까?’
그건 지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 과격한 결론 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게 오십시오.] [제가 먼저 제안드렸습니다, 교주 님. 그저 뒤에서 지켜보시라고, 그러 면 제가 세상을 바꿔 교주님의 삶 역시 지켜 드리겠노라고. 저는 약속 을 지켰습니다.]“이게?”
강진호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 고 불을 붙였다. 한 대 피우지 않고
는 참을 수 없는 심정이다.
[안타깝지만, 제게는 사람을 이끌 어 나가는 힘이 부족합니다. 제가 사람을 이끄는 방식은 공포로 억압 하고, 비전으로 유혹하는 것뿐이죠.]“충분해 보이는데?”
[천만에요. 십이비도들조차도 저를 완전히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방대한 조직을 만드는 걸 깔끔 하게 포기한 겁니다. 저는 세상을 바꿀 수는 있지만, 그 바뀐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법 따위는 모릅니다.]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청마가 할 말이 뭔지 알 것 같다.
[제게 오십시오. 아니, 이런 말은 건방지군요. 제가 하려는 일을 함께 해 주십시오, 교주님. 교주님이 전면 에서 모두를 이끌고, 제가 보좌한다 면, 누구도 저희를 막을 수 없을 겁 니다.]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 데……
[천만에요. 그건 교주님 혼자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교주님은 과거에 도 마교를 수족처럼 부렸습니다. 모 든 일을 도맡아하던 제가 다른 마교 도들의 눈을 피하고 정파를 끌어들 여 반란을 획책해야 했을 정도로 공
고하게 마교를 장악하셨죠.] [그리고 지금은 불과 몇 년 만에 총회라는 조직을 장악하셨습니다. 다 른 이들은 그게 교주님이 강하기 때 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 르지만, 그건 멋모르는 멍청한 놈들 의 말일 뿐입니다. 그건 무위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후우우우.”
강진호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 었다.
갑갑하다.
가슴이 갑갑해져 온다.
[아실 겁니다. 이 모든 일이 제 사리사욕을 위한 일이 아님을. 그리 고 이게 옳은 방향임을. 다른 이들 은 몰라도 교주님이라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하시 면 됩니다. 무인 자치지구를 이끌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주님이 필요합니 다.]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그의 귀에 청마의 목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이 미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만한 설 명을 했음에도 자꾸 말을 한다는 것 은 청마 역시 강진호의 합류를 간절 히 바라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교주님과 제가 함께한다면, 바꾼 세상을 공고히 하고 무인들의 권리 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 리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무인들의 세계를 존속시킬 수 있습니다.]그 말을 듣던 위긴스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마스터가 그에게 한 말이 귓가를 맴돈다.
이쪽이 정의라는 발상이 그의 사 고를 막고 있다고. 어쩌면 그들이 상대하는 이들이 정의일지도 모른다 고 말이다.
정말 흑왕이 본인의 이득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무인들 의 세상을 존속시키고,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거라면, 무인들 중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 일을 후세가 평가한다면?
후세의 무인이 지금 지금을 돌아 본다면 뭐라 평할 것인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설사 방법의 과격함은 논할 수 있을지언 정 흑왕을 모든 무인들을 위해 싸운 혁명가라 지칭하는 데는 무리가 없 을 것이다.
그럼 자신들은?
그런 흑왕을 막아서는 자신들은
대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끔찍하군.’
이 상황이 너무 버겁다.
[어쩌면 이미 과거의 그때 이뤄졌 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교주님 께서 무림을 일통하고 안정화가 될 때까지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다면, 그 시대에 벌어졌어야 할 일이겠죠.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 리에게는 아직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청마•…”
[함께합시다, 교주님. 예전처럼, 당 신이 이끌고 제가 보좌하는 그때로
돌아갑시다. 그때 하지 못한 걸 지 금 다시 이룰 수 있습니다.]
그건…….
회유라기보다는 구애에 가까웠다.
어쩌면 흑왕이 강진호를 회유할지 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들조차, 설마 저 흑왕이 저토록 저자세로 나올 거 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나는••••••
강진호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모두의 시선이 강진호의 입으로 집 중되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