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62)
마존현세강림기-1964화(1961/2125)
마존현세강림기 79권 (24화)
5장 고민하다 (4)
“교섭은 어찌 되셨습니까?”
리우양의 물음에 흑왕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실패했지.”
리우양이 묘한 표정으로 흑왕을 바 라보았다.
“왜?”
“흑왕께서 실패를 논하시는 건 처 음 보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나는 신이 아니야, 리우양.”
흑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라고 해서 모든 걸 성공할 수 는 없지. 그리고 이건 결이 다른 이 야기야.”
“무슨 의미이신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일이 있지. 가능성을 가지고 계획을 짜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과, 가능성은 없지만 그저 바라게 되는 일.”
“이건 후자다.”
그 말을 들은 리우양이 낮게 한 숨을 내쉬었다.
“흑왕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주제넘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해보도록. 나도 대화가 그리운 사람이니까.”
“……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리우양이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 었습니다. 아무리 흑왕께서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고, 강력한 아군은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이 나으 니까요.”
어설픈 어중이떠중이는 도움이 되 지 않는다.
하지만 십이비도를 잡아 죽일 만 한 강한 이를 동료로 끌어들이는 것 은 어마어마한 전력의 상승을 꾀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집단이었다면 함께 일하던 이를 죽인 인물을 동료로 받아들이 는 것에 거부감이 있겠지만, 흑왕계 는 예외다. 이들은 동료의식이 아니 라 혹왕에 대한 충성으로 유지되는 집단이니까.
동료를 죽인 자가 아니라, 당장 어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이가 오늘
합류한다고 해도 다들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리우양도 흑왕의 결정에 딱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 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 은가.
이미 그들이 이루려고 한 것은 모두 이뤄졌다. 상대의 공격이 쏟아 지기 어려운 이곳에서라면 흑왕과 십이비도만으로 전 세계를 상대할 수 있다.
끝까지 버티는 건 불가능하겠지 만, 미사일이 발사될 시간이야 얼마
든지 벌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굳이 강 진호를 끌어들이려고 한단 말인가. 정말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진즉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나았을 텐 데.
물론 흑왕이 그가 생각하는 걸 놓쳤을 리는 없지만, 그도 사람이다 보니 의문이 드는 걸 어찌할 수 없 었다.
“그런데 왜 굳이 그분을……
“흐으음.”
혹왕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전화로는 설명했지만, 나는 무언
가를 만드는 데는 재주가 없는 사람 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지. 나 는 부수고, 무너뜨리고, 기존의 체제 를 뒤엎는 건 자신 있지만,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무너진 걸 복구하는 데는 소질이 없어.”
“마음만 먹으면 못하실 이유가 없 습니다.”
“아니. 무리야.”
흑왕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 야. 나는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지. 하지만 만들어간 다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완벽한 구 상을 하지 못해도 일단은 할 수 있 는 것부터 하고, 그때그때 생기는 문제를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사람이 필요하지.”
리우양이 입을 닫았다.
저 말을 들으니 그도 느껴지는 게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그 렇지 않나?”
혹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적임자
가 없어. 지금 세상을 통틀어도 무 인계에 저만한 영향력을 떨칠 수 있 는 이가 없다는 말이지. 남은 머리 들은 다 쭉정이뿐이야. 그게 아니면 이미 교주님의 부하가 되어버렸거나.”
“그러니 별수 있나, 내 대의를 증 명하기 위해서라면 저 양반을 모시 는 수밖에.”
“그게 흑왕께서 원하시는 겁니까?”
“오해하지 마라, 리우양.”
흑왕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게 생기는 순간,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그저 내 욕심 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꼴 이 되어버리잖나.”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작은 일은 욕심으로 충분해. 하 지만 큰일은 대의를 잃으면 결국은 실패하기 마련이지.”
흑왕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혹왕의 뒷모습을 향해 리우양이 작게 읊조렸다.
“정말…… 그저 대의를 위한 겁니 까, 흑왕이시여?”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이현수의 말에 다들 쓴웃음을 지 었다.
한 번씩 보면 이현수는 당당한 무력을 갖춘 그들보다 배는 더 담대 하다. 이곳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지금 흑왕의 광기와 스케일에 질려 있다.
하지만 이현수만은 딱히 흑왕이라 는 존재에 짓눌•리지 않은 모양이었 다.
차이커창이 그런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상황이 뭔 지 아나?”
“너랑 내가 마주 앉아 있는 거겠 지.”
“틀렸어. 미친놈이 장전된 총을 들고 있는 거야. 그걸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으으..«
Ho”.•
“그런데 저놈은 상식 이상으로 미 쳤고, 들고 있는 무기도 권총 따위 와는 비교도 안 돼. 이 이상 최악일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기에는 내
상상력이 부족하군.”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먼저 확인부터 하지.”
차이커창의 두 눈이 이채를 띠었 다.
“핵미사일을 외부에서 무력화할 방 법은 없나?”
“ 없다.”
차이커창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대답했다.
“지휘소가 따로 있을 거 아냐?”
“지휘소가 따로 있지. 하지만 지 휘소에서 미사일 발사소를 원격 통 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하
면 한 곳만 해킹으로 털려도 모조리 다 털린다는 이야기가 되잖아.”
“……그러네.”
차이커창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 다.
“군부든 당이든 핵을 그렇게 관리 할 리가 없지.”
“그렇게 잘 관리할 거면 애초에 잘 지키든가.”
차이커창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 다. 하지만 이내 별수 없다는 듯 한 숨을 쉬며 말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니, 내게 따 져 봤자야.”
“ 썩을.”
이현수가 되는 일이 없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외부 통로는 전무하고, 원격으로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정확하다.”
“그럼••••••
이번에는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선제공격은 어떤가?”
차이커창의 시선이 바토르에게로 향했다.
“선제공격이라고 하셨습니까?”
“적이 핵으로 위협하는 상황이지. 내가 알기로 핵무기라는 건 화약과
는 달라서 공격받는다고 그 자리에 서 터지는 게 아닌 걸로 아는데, 이 쪽이 먼저 핵 공격을 해버리면?”
“지구 멸망이죠.”
차이커창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일단 타국에서 핵을 발사하는 순 간, 중국의 방어 체계가 발동해서 다른 핵미사일 발사 기지에서도 일 제히 핵이 쏘아질 겁니다.”
“해제하면 그만이지.”
“당이 잘도 그걸 해제하겠습니다. 적국에 무차별 공격을 할 수 있는 틈을 주는 건데.”
“그렇게까지?”
“사람의 악의를 얕보지 마십시오. 핵미사일 방어 체계가 해지된 틈을 타서 저쪽을 공격하는 척하며 일부 러 오폭을 낼 나라가 없을 것 같습 니까?”
순간, 바토르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일견 듣기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 는 말 같지만, 꼭 그런 일이 벌어지 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 었다. 세상에 미친놈은 넘쳐 나니까.
“그리고 여기는 핵미사일 발사 시 설입니다. 선제공격도 선제공격이지
만, 대웅사격도 고려된 곳이라는 의 미이지요. 애초에 핵이라는 건 노출 된 곳을 타격하는 목적이지, 지하를 공격하는 게 아닙니다. 핵마사일이 있는 곳까지 폭발력이 닿지 않습니 다.”
기본적으로 핵이 떨어졌을 때, 대 피하는 요령이 지하로 내려가는 것 임을 감안한다면, 지하에는 핵의 여 파가 미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벙커버스터는?”
다시금 위긴스가 끼어들었다.
“핵이야 방공호를 뚫을 수 없겠지 만, 벙커버스터는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가. 일전에 수상이 있던 벙커야 특수 제작한 곳이라 벙커버스터를 막을 수 있다지만, 그 큰 미사일 발 사 시설을 모조리 특수한 금속으로 방어할 수는 없었을 텐데?”
“그것도 이미 확인해 봤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무리입니다.”
“ 이유는?”
“미사일 발사 시설이 워낙 깊이 있기도 하고……
“최신 벙커버스터는 핵을 탑재해 서 한 방에 지하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들었는데? 미국에 협조를 요 청하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어렵습니다.”
차이커창이 고개를 내저었다.
“위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 인 문제는 벙커버스터 자체가 발사 체라는 겁니다.”
“기지로 발사체가 날아갈 시, 어 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레이더 를 교란한다고 해도 그 버튼을 누르 는 이가 상식을 뛰어넘는 실력을 가 진 무인이라는 측면을 고려해야 합 니다.”
차이커창이 힐끔거리며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초음속으로 날아드는 발사체를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가의 문제 가……
“ 가능해.”
강진호가 딱히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일전에 몇 번 겪어봤지만, 도착 하기 이전에 느껴지더군. 거리를 감 안한다면 훨씬 일찍 알아차릴 수도 있을 거야.”
“아니,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나 되는……
이현수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 지만, 머리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 영역에 있는 이들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벙커버스터가 확실하게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는지도 미지수입니 다. 그리고 그쪽에서 공격을 미리 알아차렸을 때, 발사되는 핵을 벙커 버스터가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죠.”
“이건 도박을 걸기에는 판이 너무 큽니다. 실패한다면 단순히 목이 날 아가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크
다. 그들이 아무리 담대하다고 해도 세상의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물리적으로는 대책이 없다는 거 로군.”
그 말이 무겁게 모두를 짓누른다.
지금까지 그들은 어떻게든 싸워왔 다. 창왕이 그들을 쥐고 흔들 때도 결과적으로 상황을 뒤집는 건 실패 했지만, 최대한 머리를 짜내 항거할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번만은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 대체……
모두의 시선이 천천히 강진호에게 로 모였다.
결국 결정하는 이가 누구인지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강진호가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 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의자 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젖혔다. 타 들어가는 담배 끝에서 새하얀 연기 가 천천히 흘러나와 허공으로 흩어 져 간다.
“돌아가자.”
“예?”
이현수가 의아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한국으로.”
강진호의 고개가 다시 천천히 내 려온다. 그가 가라앉은 눈으로 모두 를 돌아보았다.
“지금 이야기해 봐야 아무것도 안 되겠군. 머리를 식히고 오는 게 우 선이야.”
“회주님, 지금 그럴 상황이……
“그럴 상황이야.”
강진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 고 그 말을 들은 이들은 아무도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인생 최후의 시간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 무겁다.
지독하게 무거운 그 말의 무게에 모두가 눈을 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