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63)
마존현세강림기-1965화(1962/2125)
마존현세강림기 79권 (25화)
5장 고민하다 (5)
“오래는 못 준다.”
“ 알아.”
차이커창과 마주 선 이현수가 고 개를 끄덕였다.
차이커창이 담배를 물고는 깊이 빨아들인다. 답지 않게 담배를 잡은 그의 손끝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
다.
“ 사실♦•••••
차이커창이 슬쩍 이현수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회주님의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어. 각국의 입장도 나오지 않은데다가 중국 내부의 입장도 정리되지 않았 으니까.”
“그렇지.”
그들끼리 계획을 세운다 해서 마 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 다. 아니, 그들이 마음대로 움직이려 한다면, 오히려 국가권력이 군사력
을 동원해 막으려 들지도 모른다.
애초에 정부들은 무인계의 집단들 을 그리 이성적으로 보지 않는다.
가장 좋게 봐준다 한들 무장 군 벌 수준 이상으로 쳐주지 않을 것이 다.
누가 세계의 운명을 무장 군벌에 맡기려고 하겠는가.
“멍청한 새끼들.”
이현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 무인 중 하나에게 목줄을 틀 어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들이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 하고 무인들을 무시하려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지.’
사람이란 머릿속에 박힌 고정관념 을 그리 쉽게 버리지 못한다.
아직 젊다고 자부할 때는 그래도 뇌가 말랑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해오던 것을 반복하는 데 익숙해져 버린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금 세계를 주도하는 각국 정상들의 나이는 결 코 어리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 이 들이 이런 급박한 상황에 기발한 생 각을 해내길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 이었다.
“일단은 저쪽의 입장이 정리되는
대로 최대한 빠르게 전달하지.”
“ 알겠다.”
차이커창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현 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와버렸으면 결국 믿을 건 이들밖에 없다. 홍왕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홍왕계의 힘이 부족하다 느낀 적 은 없다. 지금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흑왕계 따위는 지금도 홍왕 계 단독으로 쓸어버릴 수 있다. 홍 왕계는 충분히 그만한 힘이 있는 곳 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힘의 절대량이 아니라 집중도다.
홍왕계의 수가 아무리 많고, 아무 리 강대한 세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 도 이런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혹왕이 핵미사일을 제 손 안에 넣고 있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변수가 있다면……
차이커창의 시선이 텔레포트 게이 트의 앞에 서 있는 강진호에게로 향 했다.
‘오직 저분뿐이다.’
강진호가 기발한 무언가를 생각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지금의 상황은 기책으로 해결할 만큼 만만치 않으니까. 그가 기대하 고 있는 것은 강진호와 흑왕 간의 기괴한 관계였다.
‘아니. 이건 이성의 영역이 아니 야.’
평생을 머리 하나로 살아온 차이 커창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성을 끌고 올 수 없었다.
이 일은 오로지 저 혹왕과 마존의 관계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의 본능이 그리 말하고 있다.
“이현수, 내 생각에는……
“담배나 하나 줘봐.”
차이커창이 담배를 하나 꺼내 이 현수의 입에 물려준다. 그러고는 라 이터를 켜 불까지 붙여주었다.
“거, 새끼. 중국 놈이면 중국 담 배를 피워야지, 어디서 양담배질이 야?”
“……여하튼 주둥아리는.”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알고 있어.”
“너뿐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다. 이 모든 건 회주님에게서 시작됐고,
회주님이 나서지 않으면 끝나지 않 아.”
무의미하다.
이현수가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말 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이유도, 차이커창이 그런 총회 사람들을 붙 잡지 않은 이유도 그리 다르지 않 다.
상황은 둘째 치더라도 결국 이 일은 강진호가 무슨 결심을 하느냐 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이 깊으신 타입인가?”
“나도 몰라.”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알다가도 모를 분이라.”
“……고생이 많겠군.”
“뭐, 어쩌겠어.”
이현수가 싱긋 웃음 지었다.
“그게 좋은 건데.”
“ 간다.”
“••••••그래.”
이현수가 미련없이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게 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로 합류했다.
뭔가 왁자지껄 떠들어 대던 이들 이 밝은 빛에 휩싸인다 싶더니, 이
내 사라졌다.
“갔군.”
차이커창이 입에 문 담배를 깊게 빨았다.
조금의 허탈함, 그리고 약간의 무 력감.
하지만 차이커창은 이내 자신을 뒤덮은 감정의 편린을 떨쳐 냈다.
지금은 이런 복잡한 기분에 휘둘 릴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 그는 세 상 누구보다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 다.
‘무인들의 세상이라……
차이커창이 낮게 웃었다.
“그런 게 그리 쉽게 올 수 있는 거라면, 아무도 이 고생은 안 하지.”
이상론.
그래. 흑왕이 말하는 건 명백한 이상론이다. 현실성 따위는 조금도 없는.
하지만…….
차이커창은 알고 있다.
세상을 안정시키는 것은 현실론자 들이지만, 세상을 개혁하고 뒤바꾸 는 이들은 이상론자들이다.
그들이 현실을 논하며 물러서기만 할 때, 어쩌면 혹왕 홀로 이 세상과 맞서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악당이로군.”
세상을 개혁하는 이를 막아서는, 구체제에 젖어버린 악당.
“쿡쿡쿡쿡.”
담배를 조금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진 차이커창이 몸을 홱 돌렸다.
어쩐지 조금…….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우우우우웅.
게이트에서 환한 빛이 쏟아진다. 눈이 부실 정도로 쏟아지던 빛이
사라진 곳에 일련의 무리들이 그 모 습을 드러냈다.
“아우, 멀미 진짜.”
이현수가 입을 틀어박고는 구역질 을 해 댄다. 그 모습을 본 이사들이 하나같이 눈을 찌푸렸다.
“약해 빠져서는.”
“평소에 단련을 좀 해라, 단련을!”
“너만 그러……
“우웩! 아오, 멀미! 씨발!”
흐린 눈으로 고개를 돌린 이들이 벽을 잡고 헛구역질을 해 대는 방진 훈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
다.
여하튼 저 인간은 눈치도 없지. 좀 참지 않고.
“끄웅, 이건 영 익숙해지지가 않 네.”
이현수가 입가를 닦으며 몸을 세 운다.
그러고는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여하튼 지금 상황은……
“늦었어, 이 새끼야.”
“지금 와서 침착한 척한다고 그게 되냐?”
“거, 멀미 좀 할 수도 있죠.”
이현수가 궁시렁대자, 강진호가 피
식 웃었다.
“방 이사.”
“예, 회주님.”
“이 실장이랑 같이 일단 총회 내 부 안정화부터 하지. 아마 다들 소 식 듣고 심란할 테니까.”
“예. 바로 정리하겠습니다. 말 안 듣는 놈은 적당히 다리를 부러뜨려 놓죠, 뭐.”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말고.”
말은 저렇게 하지만, 방진훈이면 잘 알아서 할 것이다.
“장민도 마교 단속하고.”
“마존이시여, 교는 흔들리지 않습
니다.”
장민이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흑왕이 무슨 일을 벌이든, 세상이 어찌 바뀌든, 저희에게는 마존의 말 씀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이딴 일에 흔들리는 불경한 교도가 있다면 제 손으로 그 뼈와 살을 발라 개먹이 로……
“그런 거로 사람 살을 바르지 말 라고……
강진호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진짜 이놈이고, 저놈이고…….
“단속이랄 게 딱히 필요할지 모르
겠군.”
바토르가 슬쩍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그의 의사를 묻는 둣이.
“주인.”
“왜 7”
“어쩔 셈인가?”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말은 못했지만, 지금 모두 가 강진호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있 다.
“생각해 봐야지.”
강진호가 조금 씁쓸한 얼굴로 말 했다.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향이 무엇
인지 말이야.”
부우우웅.
스포츠카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끼이이익!
앞차의 바로 뒤로 따라붙은 차가 급격하게 브레이킹을 하며 차선을 바꾸더니, 순식간에 앞차를 추월하 고 속도를 높여 저 멀리 멀어졌다.
“저 미친놈이.”
운전을 하던 이가 속도계를 확인 한다.
120km/h가 찍혀 있건만, 조금 전 지나간 차에 비하면 마치 멈춰 있는 것 같다.
“저러다 뒈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뒤쪽에서 누가 욕을 하고 있는지 도 모른 채 스포츠카가 유성 같은 헤드라이트 궤적을 남기며 밤길을 내달렸다.
촤아아아아아아!
창문을 열자 공기가 미친 둣이 차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후……
강진호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창을 열고 찬 공기를 들이마시자
머리가 좀 깨는 것 같다.
끼이이이이익!
차가 급격하게 브레이킹을 한다.
타이어를 다 갈아버릴 기세로 속 도를 줄인 차가 졸음 쉼터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끼이익!
완전히 멈춰 선 차의 문이 열리 고, 강진호가 걸어 나와 차에 기대 섰다.
멍한 얼굴로 도로를 바라보던 강 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 에 문다.
손가락을 비벼 담배 끝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천천히 빨아들였다. 폐 속을 완전히 연기로 채워 버리겠 다는 둣.
“후우.”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뱉은 강진 호가 차에 기대 눈을 감고는 고개를 젖혔다.
‘ 청마.’
가슴이 답답하다.
그라고 해서 딱히 대단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아니, 그 이전에 그가 청마와 머리싸움을 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계획은 청마가 세우고, 실행은 강
진호가 한다.
그게 그들의 관계이고, 너무도 당 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를 바라보는 모두의 눈에 는 강진호도 명백히 알 수 있을 만 큼의 확연한 기대가 어려 있다.
그라면 뭔가 해줄 수 있을 거라 는.
다른 이면 몰라도 그라면 이 일 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말이다.
‘곤란하네.’
자신은 그리 대단한 이가 아닌데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다들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여기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가 부족해서 곁을 채워주던 이들 인데, 언제인가부터는 다들 너무 당 연하다는 듯이 그에게 기대온다.
하지만…….
그게 부담스럽고 힘들다고 소리 내 말할 수 없는 게 강진호의 처지 였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한 척해야 한다.
그게 그가 짊어진 짐이니까.
‘세상의 운명이라……
강진호가 낮게 웃었다.
그런 거창한 걸 떠맡게 될 거라 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 었다.
우스운 일이다.
그는 그저 조금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과거보다 더한 일에 휘말리게 된 걸까?
‘ 청마.’
강진호가 천천히 눈을 뜬다.
그의 눈에 검디검은 하늘이 들어 왔다.
기억이 난다.
언젠가 청마와 그가 둘이서 술잔
을 나누던 날이.
그날의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고, 그의 술잔에는 밝은 달이 담겨 있었 다.
‘ 알아?’
강진호가 낮게 중얼거린다.
“이곳의 하늘에서는 별이 보이지 않아.”
새삼스럽다.
지금과 그때의 하늘이 다르듯이, 지금의 그와 그때의 그는 다르다. 그리고 청마 역시 과거의 그와는 같 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란 변하지 않는 존재인 동
시에 항상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레 가슴 에 박혀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강진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감돈다.
“그때, 술 한잔 정도는 같이 마실 걸 그랬군.”
어쩌면…….
이제 다시는 둘이서 술잔을 기울 일 일은 없을지도 모르니까.
입가에 감도는 담배 맛이 더없이 쓰다.
검은 하늘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눈을 떠도, 눈을 다시 감아도…• 보이는 것은 온통 시커먼 어둠. 그저 어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