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66)
마존현세강림기-1968화(1965/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3화)
1장 걸어가다 (3)
“룰룰루루.”
경쾌한 콧노래 소리가 콘크리트 벽을 타고 작게 울린다.
“랄라, 랄랄라.”
한 사내가 발열 비닐 안에 든 레 토르트를 꺼내 찢고는 접시에 담았 다. 죽 같기도 하고, 볶음밥 같기도
한 쌀밥이 종이 접시에 덜어진다.
그 위에 소스를 뿌린 이가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숟가락을 들고 정 체불명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게 넘어가십니까?”
“왜? 나름 맛있는데.”
“……그게요?”
흑왕이 피식 웃는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예전 에는 이런 음식도 없어서 못 먹었 어. 무려 쌀이라고.”
“……무당은 돈이 많아서 그런 걸 먹어본 적 없습니다.”
“썩을 부르주아 같으니라고.”
백연홍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 다.
세상의 어떤 음식이라도 말하는 즉시 날라져 올 권력을 가진 이가 바로 흑왕이다. 그런 이가 맛대가리 없는 전투식량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광경은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아니, 한두 끼면 경험 삼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 망할 기지에 들어온 이후로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 고는 저 망할 전투식량뿐이었다.
“같은 걸 몇 끼째 먹고 있는데,
질리지도 않습니까?”
“별수 없잖아. 식재료가 전투식량 뿐일 거라고는 나도 예상 못했다고. 적어도 냉장고 정도는 있을 줄 알았 지.”
흑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혈왕이 살아 있었으면 음식 배달 이라도 시켰을 텐데 말이야.”
“……죽은 게 다행이군요.”
자존심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혈왕이 양손에 음식 봉투를 줄 줄이 달고 벙커 안으로 들어올 걸 생각하니, 절로 눈이 질끈 감아진다.
문제는 그렇다 해도 시키면 하기
는 또 했을 거란 사실이다.
흑왕의 명령은 절대적이니까.
“다른 놈들이 가면 되잖습니까. 흑왕께서 명하시면 다들 다녀오려 할 텐데.”
“안 돼. 밖에 뭐가 깔려 있을 줄 알고? 혈왕 정도나 되어야 눈을 피 해 다녀올 수 있지.”
백연홍이 한마디를 하려 하자 흑 왕이 고개를 내저었다.
“너희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 야. 하지만 문제가 생길 소지는 조 금도 만들고 싶지 않아.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백연흥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흑왕 을 바라보았다.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무인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논할 때는 세상 다시없는 광기에 찬 몽상 가처럼 보인다. 그들을 짓누를 때는 역사상 다시없을 독재자처럼 보인 다.
하지만 또 이럴 때는 겁 많은 노 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 그런 면이 흑왕을 특별하게 만드는 거겠지.
몽상에 가까운 일을 모든 것을
걸고 추진하는 과감성과 사소한 실 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신 중함을 동시에 갖추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
“좀 먹지그래?”
“……사양하겠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식사란 딱 히 의미가 없다. 영양소보다는 기운 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한 달 정도 의 금식 따위는 큰 영향을 주지 못 하니까.
“안 먹어도 되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흑왕이 빙긋 웃었다.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살면 정말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 같거든.”
“사람으로서 사는 즐거움을 잊어 버리면, 나는 정말 괴물이 되어버리 겠지.”
“……즐거움? 그걸 먹는 게?”
“먹다 보면 괜찮다니까.”
백연홍이 고개를 내저었다.
입에 볶음밥을 넣고 우물우물 씹 던 흑왕이 백연홍의 빈 어깨를 보며 살짝 눈을 찡그렸다.
“미안하게 됐다.”
“새삼스럽게.”
백연홍이 피식 웃었다.
“됐습니다. 지은 죄가 있으니 달 게 받아야죠.”
“좀 과했나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 오. 거사를 앞두고 단독 행동 하는 놈들 생길까 봐 본보기 보인 것 아 닙니까.”
“그건 사실이지.”
백연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빤히 알면서도 멍청하게 움직인 저를 탓해야죠, 뭘 어쩌겠습니까.”
“그러게 왜 그랬어?”
“말이야 바른말이지.”
백연홍이 낄낄대며 웃었다.
“이전 생에서 백 년을 넘게 살고, 이 생도 백 년을 넘게 살았는데 뇌 가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 닙니까?”
“여기 있는 놈들 중에 제정신인 놈은 단 하나도 없을 겁니다. 정신 적으로는 식물의 영역에 접어들었거 나 광인의 영역에 이미 들어가 있겠 죠.”
“그도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머리로는 아는데, 가끔씩 충동을
참아내기가 힘듭니다. 저는 그런 쪽 으로 병이 온 거고, 다른 놈들도 나 름 각자의 병이 있는 거죠.”
흑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죽어야 한다.
한 번의 삶밖에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듣는다면 욕을 할 소리인지 도 모르지만, 사람은 한 번의 삶을 살기에 가치 있다.
또 한 번 삶을 누린다는 건 생각 처럼 즐겁지 않은 일이다.
“뭐, 좀 열이 받기는 했지만…… 이젠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깔끔한 타입이군.”
“아니요. 보아하니 댁도 곱게 죽 을 팔자는 아닌 것 같은데, 굳이 내 가 복수할 필요 있겠습니까?”
“……고맙네.”
백연홍이 낄낄대며 웃었다.
이 평범해 보이는 사내가 전 세 상을 움켜잡아 뒤흔들고 있다는 사 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꿈같은 일이었지.’
세상을 바꾼다.
그건 그들이 감히 생각조차 해보 지 못한 일이었다.
절대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힘을 갖추고 한때는 중원을 지배하
던 그들이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법 칙과 맞설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자가 그들의 앞에 나타나기 전 까지는.
모두가 그 의견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저항하는 자도 있었고, 대 놓고 적으로 돌아서는 이도 있었다.
혹왕은 그런 이들 하나하나를 설 득하고, 필요하면 제거하면서 여기 까지 왔다.
마침내 여기까지.
혹왕은 강하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강하기만 한
자였다면 절대 모두가 그를 따르지 는 않았을 것이다. 무인으로서 강함 을 논하기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크 기가 달랐다.
“하나 물어도 됩니까?”
“ 얼마든지.”
“처음에 우릴 찾아내 설득할 생각 은 어떻게 한 겁니까? 그 미친 말 에 동조할 이가 이렇게 많을 거라고 미리 생각하신 겁니까?”
“당연하지.”
“……어떻게요?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백연홍의 말에 흑왕이 피식 웃었
다.
“무인이란 족속은 강함에 모든 것 을 거는 이들이지.”
“하지만 이건 강함과는 관계가 없 는 일이잖습니까. 세상이 바뀐다고 내가 더 강해지는 게 아닌데.”
“하지만 끝까지 올라간 이들은 강 함에 집착하는 걸로는 안 돼.”
“••••••예?”
흑왕의 두 눈이 가라앉는다.
“저항하는 이들.”
“지금의 상황에 순응하는 것을 받 아들이지 못하는 이들, 머리 위에서
무언가 나를 누르고 있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이들, 거대한 무언가와 싸 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반골 들.”
“ 하하••••••
“그런 이들이 정점에 서지. 정도 든 사도든, 그게 아니면 마도든.”
“이미 한 번 무력으로 가장 높은 곳에 올라본 이들이 똑같은 목표로 만족할 수 있을 리 없지. 나는 그냥 너희가 싸울 더 큰 적을 만들어준 것뿐이야.”
어이없는 대답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저 말대로 흘 러간 것 역시 사실이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하나는 틀렸잖습니까.”
“뭐가?”
“마존 말입니다. 그는 당신에게 동조할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끄웅.”
혹왕이 턱을 괴었다.
“그 양반만은 도무지 모르겠어. 예전에도 그랬지만.”
“제일 잘 아는 것 아니었습니까?”
“제일 잘 알지. 그래서 더 모르겠 어. 그 사람은 저항하는 자인 동시
에 그리워하는 자이고, 끝없이 싸우 는 자인 동시에 한없이 안정을 갈구 하는 이지.”
이율배반적이다.
확실한 것 하나는 강진호의 안에 는 혼돈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는 전장에 있을 때는 안정을 갈구하고, 안정을 추구할 수 있을 때는 전장을 그리워한다.
“변덕스러운 양반이라니까.”
혹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쨌든 그 사람도 내 예상에 서 완전히 빗나간 건 아냐. 말했잖 아, 변수라고. 그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변수지.”
“하지만 끝까지 통제할 수 없다 면, 일을 그르치는 것도 각오해야 할 겁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묻고 싶 은데?”
흑왕의 눈빛이 조금 날카로워지 자, 백연홍이 마른침을 삼켰다.
“흑왕께서 그자만은 다른 이와 다 르게 대한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습 니다.”
“그래서 다들 내심은 걱정하고 있 습니다. 혹여 그가……
“아아, 그 이야기로군.”
흑왕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어. 그건 너희가 오해한 거야.”
“오해?”
“그가 적으로 내 앞에 나타났을 때, 혹여나 내가 인정을 발휘할까 싶은 걱정을 하는 거겠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불가능해.”
혹왕이 웃어버렸다.
“인정이라는 건 내게 여유가 있을 때, 혹은 상대 역시 나의 사정을 봐 줄 때나 존재 가능한 개념이지. 하
지만 그 마존을 상대하면서 여유를 부린다는 건 불가능하고……
흑왕이 말을 한 번 끊었다.
그러고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 다. 마치 강진호를 생각하는 듯.
“그 사람은 적의 사정을 봐주는 이가 아냐. 한 번 적이라고 생각한 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요하게 목숨을 끊어버리는 양반이지. 아니 면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거 나.”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건 마주서 기 전까지야. 마주 서는 순간, 우리
는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더 격렬 하게 서로의 목에 이를 박아 넣기 위해 악을 써 대겠지.”
흑왕이 비틀린 미소를 입에 담았 다.
“우린 그런 관계야.”
“……감상을 말해도 됩니까?”
“그러시든지.”
“솔직히 미친놈들 같습니다.”
“하하하핫! 맞는 말이야! 으하하 하하하핫!”
백연홍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 왔다.
이들의 관계는 비틀려 있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부분은 하 나도 없고, 대체 무슨 감정을 기반 으로 돌아가는 건지 짐작도 불가능 하다.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이건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아마 저 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저 둘의 관계를 이해하는 건 평생이 가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 마존이 어떻게 나 올 것이라 보십니까?”
“글쎄, 정말 모르겠군.”
혹왕이 의자에 기대 천장을 바라 보았다.
“내가 아는 적천마존이라면 어찌 할지 알겠는데, 내가 상대해야 하는 건 적천마존이 아니라 강진호라는 말이지.”
“다릅니까?”
“다르지.”
흑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달라 다를 수밖에 없지.”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 도 됩니까?”
“……왠지 대답하기 힘들 질문일 것 같은데?”
“그럼 흑왕께서는 그가 어찌 나오
길 바라십니까?”
빙글빙글 웃던 흑왕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 나는••••••
흑왕이 턱을 가볍게 주무른다.
“흥미로운 질문이야. 나는 어쩌길 바라느냐라……. 글쎄, 내가 원하는
깊은 생각에 잠겨 든 흑왕을 보 며 백연홍이 고개를 내저었다.
참 우스운 일이다.
그들은 지금 절벽 끝에 서 있다.
그리고 온 세상이 이곳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이 모든 일을 한 손 에 움켜쥐고 있는 이가 관심을 가지 는 건 세상을 움직이는 강대국들의 동향도 아니고, 독이 바짝 올라 있 는 중국 정부의 대응도 아니다.
그가 제시한 기간이 하루하루 지 나고 있다는 사실도 아니고…….
어쩌면 이 일의 결과조차 저자의 관심사는 아닐지도 몰랐다.
‘지극히 거대한 일은 지극히 개인 적인 것에서 결정된다.’
어쩌면 그 말이 진리일지도 모른 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군.’
변혁이든 파멸이든.
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 지을 시 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