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68)
마존현세강림기-1970화(1967/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5화)
1장 걸어가다 (5)
“ 으음.”
고한봉이 대답하기가 곤란하다는 듯 낮은 신음을 흘렸다.
“회주님.”
“예.”
“대관한 곳이니 괜찮습니다. 한 대 피우시죠.”
“……예.”
괜찮다고 말하려던 강진호가 생각 을 바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금 고한봉의 말이 그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배려라 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고한봉 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이다.
찰칵.
불을 붙인 강진호가 말없이 담배 를 태운다.
고한봉이 그런 강진호가 아니라, 강진호의 뒤쪽에 있는 창을 응시하 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살짝 말끝을 흐린 고한봉이 한숨 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정부는 입장이라고 할 게 딱히 없습니다.”
“……그건 무슨 의미인지?”
“돌려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딱히 입장이라는 게 없습니다, 회주 님.”
강진호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만한 일이 있는데 기조가 서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부끄러운 말이지만, 아직 대한민
국의 국력은 세상의 흐름을 좌지우 지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국가의 이 익을 위해서는 강대국들이 정한 기 조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U 으 W
그제야 이해된다는 둣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나라의 총리가 입에 담기에는 너무도 나약한 말이다. 하지만 강진 호는 알고 있었다. 저건 나약한 사 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강한 사람 이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순순히 인정하 고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것은 심
지가 굳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이다. 평범한 정치인이었다면 내부 사정이야 어쨌든, 무언가를 하고 있 다고 말을 지어냈을 것이다.
“일단은 미국이나 이런 국가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를 지켜보겠다는 말이로군요.”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고한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국민들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닙 니다만, 이런 일의 경우는 필연적으 로 타국의 대처와 비교되게 됩니다. 확실하게 타국보다 나을 수 있다면 망설일 게 없겠지만, 이 경우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주님.”
한국은 지금 굉장히 특이한 상황 에 처해 있다.
중국을 제외하면 저들이 점령한 핵미사일 발사 기지에 가장 가까이 에 있으면서도 중국에 직접적인 압 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그런 반면 무인계의 힘은 다른 나라들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
드러난 세계의 대한민국도 강대국 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무
인계에서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첫 째, 둘째를 다투는 곳이다.
이 불균형만큼이나 이들의 선택을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적이야 그렇다 치고.”
“예, 회주님.”
“내부적으로도 말이 돌긴 하겠죠.”
“ O.”
■司 •
고한봉이 대답하기 어렵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어차피 숨겨봐야 회주님이 마음 만 먹으면 알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 겠지요.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오픈하고 국민들에게 사죄하자. 그럼 전 정권들에게 책임 을 돌릴 수 있다.”
“그런 건 괜찮습니다.”
“제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그게 아닙니다.”
고한봉이 슬쩍 고개를 들어 강진 호를 바라보았다. 그 가라앉은 눈빛 을 본 고한봉이 눈을 감아버렸다.
“……진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 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회주님. 그건 극히 일부의 강경파일 뿐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건 총리님 같군요.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해서 딱히 적대감을 품지는 않습니다. 죽 여 없앨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고 요.”
“아, 아니,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한봉이 무심코 손을 들어 소매 로 이마를 훔쳤다.
담담하게 오가는 이 말에 무게가
그를 짓눌러 온다. 그가 아닌 평범 한 이였다면 강진호의 앞에서 감히 이런 말을 할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담담할 수 있는 이유는, 아 니, 그나마 태연을 가장할 수 있는 이유는 강진호에게는 숨기는 것보다 오픈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해합니다. 제가 평범한 사람이 라면 제가 먼저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무인들이 딱히 사람들 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없지만……
강진호가 말끝을 흐렸다.
사실 피해를 입힌 적이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가 총회를 장악 하기 전, 이중걸이 총회를 운영할 때는 온갖 불법적인 일은 다 저질러 댔으니까.
청부살인에, 돈세탁에, 인신매매?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하튼 ‘이제는 그렇지 않다’라는 말로 면 피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국토가 좁고 치안이 좋아 저지를 수 있는 범죄에 한계가 있는 한국이 이럴진대, 다른 나라에서 무 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야 눈으로 보지 않아도 빤한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꿈도 못 꿀 범죄 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는 이들이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
더 끔찍한 것은 그런 이들이 지 금까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 이다.
다시 말하자면, 앞으로 이들이 어 떤 범죄를 저질러도 현대의 수사법 으로는 적발의 한계가 있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안심하고 함께 살 아갈 수 있겠는가.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미해결 범죄들이 모두 이들의 손에서 벌어
진 것일지도 모르는데.
“……정말 일부일 뿐입니다. 제가 면피하려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런 극단적인 발언을 입에 담는 것은 의 원들에게나 행정관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강진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 다.
“겉으로 드러나는 목소리보다 내 심 그 방향을 지지하는 이들의 수가 많다는 소리군요.”
“ 그건••••••
고한봉이 말실수를 했다는 듯 입
을 닫았다.
“총리님.”
“예, 회주님.”
“적당히 포장된 이야기가 오가봐 야 남는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정확한 상황을 원합니다.”
고한봉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진 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지금껏 확실하게 결론이 정해진 일에는 가혹할 정도로 단호 한 모습을 보여왔지만,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때는 조금 두루뭉술한 편 이었다.
그가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한다는 점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를 말해주는 것 같다.
“대부분은 의견을 내지 않고 있습 니다. 윗분도 아직 이 일에 대한 생 각을 입으로 내신 적이 없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계속 그렇게 뭉개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 말도 맞습니다.” 기다림이라는 건 한계가 있다.
“여론이 좋지 않게 흘러가는 이
상,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는 반드 시 올 겁니다. 저도 그 사실은 확실 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회주님. 하지 만……
총리가 강진호를 바라본다.
“그 시기라는 건 결국……
“흑왕이군요.”
“맞습니다.”
무의미하다.
흑왕이 핵미사일 발사 시설을 점 거하고 있는 이상은 여론이든 무엇 이든 다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어떻게 해결이 되느냐에 따라 서 모든 것이 달라질 테니까.
“우선은 저 일을 해결하는 데 집 중하자는 게 기본적인 기조입니다. 내부의 생각은 다들 다르겠지만.”
“총리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고한봉이 난처하다는 듯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립니까?”
“물론이죠.”
“저는 회주님과 전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고한봉이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주전론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닙
니다. 우리도 정치인이라 당의 방향 에 따라 입장을 달리할 뿐이지 주전 론도, 친화론도 다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이란 그때그때 가장 이득이 되는 길 을 정하는 직업이겠지요. 그래서 저 희가 국세를 받아먹는 겁니다.”
“하지만 의원이라고 다들 똑똑한 이는 아니라서 전후 사정은 고려하 지 않고 닥치고 전쟁을 외쳐 대는 얼간이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말 도 안 되는 목소리가 나름 힘을 받 는다는 겁니다.”
강진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 왔다.
“무서운 거지요.”
“무서운 겁니다, 회주님. 하지만 저는 무인들보다 겁에 질린 정치인 이 더 무섭습니다. 정치인이 이성을 잃으면 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 히 떠안게 됩니다.”
어려운 문제다.
무척 어려운 문제.
“저는 어떤 식으로든 전쟁은 피하 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서 무인계와 전쟁을 하게 된다면,
다른 나라는 몰라도 대한민국은 돌 이킬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됩니 다. 저는 그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그 상황만은 피할 겁니다.”
“하지만……
강진호가 새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그건 결국 정부가 정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안타깝지만.”
모든 나라가 무인계와 전쟁을 벌 이는데 한국만 친화론을 펼 수는 없 다. 그랬다가는 같이 싸잡혀 멸망하
게 될지도 모르니까.
“제가 이 자리를 만든 건 이것 때 문입니다.”
“예?”
“회주님.”
고한봉이 단호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더없이 심각한 목소리였다.
“명분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먼저 나서서 국제사회에 공존을 논할 수 있는 명분이. 하지만 지금 혹왕이 벌인 일 때문에 무인에 대한 인식
도, 그들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렇겠죠.”
고한봉이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이대로 흑왕이 미사일을 발사해 도, 무인들의 개입 없이 군대가 이 사태를 해결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흑왕이 문제를 일으키 면 무인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이자는 주전론이 힘을 받을 것이 고, 군대가 이 일을 해결한다면 무 인들은 군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실 용론이 힘을 받을 겁니다.”
“유화론을 펼치기 위해서는 무인 이 적이 아니라는 것을 중명해야 합 니다. 될 수 있으면 군대가 나서기 전에 무인들이 직접 이 사태를 해결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회주님, 회 주님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불가능 을 뛰어넘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 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강진호가 깊이 빨아들인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방법이라……
입맛이 쓰다.
최근 들어 이 담배조차 그의 마음
을 안정시켜 주지 못하는 것 같다.
한참 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우던 강진호가 그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 로 입을 열었다.
“그 대답은 조금 뒤에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대답하기 전에……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의 눈에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가득 들어온다. 너무나도 푸 르러 마치 그림을 그린 듯한 하늘 이.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요.”
“그 뒤에는……
강진호가 고한봉을 보며 작게 미 소 지었다.
고한봉은 그 미소가 오늘따라 조 금은 처연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대답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 다.”
고한봉이 눈을 감았다.
강진호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을 것 이다.
하지만 아무런 말 없이 그의 말 을 받아주었다. 그 사실이 너무 부 끄러워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 회주님……
“그럼.”
강진호가 가볍게 웃어주고는 밖으 로 나간다.
그가 떠난 곳에.
아직 식지 않은 커피만이 새하얀 김을 흘려 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