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70)
마존현세강림기-1972화(1969/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7화)
2장 정리하다 (2)
“마스터.”
그 목소리에는 진중한 울림이 있 었다.
하지만 그 울림이 마스터에게 닿 지는 못한 모양이다. 마스터가 미묘 한 미소를 담은 얼굴로 위긴스를 응 시했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던가, 지혜 란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고 말이야.”
“이유는 간단하지. 모든 지식은 결국 사람의 주관으로 해석되어야 그 의미를 가지는 법이지. 하지만 사람의 주관이란 흔들리기 마련이지 않은가.”
“마스터……
“자네는 훌륭한 학생이었지, 위긴 스. 때때로는 나조차도 놀랄 만큼 냉철함을 보일 때가 많았지. 하지만 결국 자네도 나이를 먹었군. 그 주 관을 밀어내지 못하는 걸 보니.”
위긴스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 었다. 그저 목에 밧줄이 걸린 채 사 형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묵묵히 마 스터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결과는 나와 있잖은가. 자네도 이미 알고 있을 걸세. 둑이 무너지 면 보수할 방법 같은 건 없네. 보수 란 무너지기 전에 하는 걸세. 그렇 지 않나?”
마스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세상을 막고 있던 둑이 무너졌 네. 이제는 홀러 들어오겠지. 인간이 란 태생적으로 정복자네. 자신의 발
이 닿지 않은 곳을 내버려 두지 못 하는 존재란 의미지. 그렇기에 인간 은 산소도 희박한 고산의 위를 밟아 대고, 빛 한 점 들지 않는 심해로 탐사정을 보내네. 심지어 저 우주까 지 나아가지.”
“그런 이들이 무인들의 세계를 그 대로 내버려 둘 것 같은가? 잠시잠 깐의 공존은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 지만 결국 인간의 탐욕은 미지의 세 상을 용납하지 못해. 어떤 이유에서 든, 어떤 계기로든 결국 무인들의 세상은 무너질 걸세.”
정론이다.
너무 완벽해서 반박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 정론.
그 정론이 지금 위긴스를 거대한 산처럼 짓누르고 있었다.
“어떤 방법도 없다는 말입니까?”
“이보게, 위긴스.”
마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의 눈에는 내가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건 큰 오해일세. 나 역시 이 세상의 질서를 수호하는 데 평생 을 바쳐 온 이일세. 물론 돌이켜 보 면 잘못된 일도 많고, 치명적인 실
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말일세.”
“마스터의 의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진정성은 제가 가장 잘 압니다.”
설사 그 방법과 방향이 잘못되었 다고 해도 말이다.
“고맙네.”
마스터가 낮게 한숨을 쉬고 말했 다.
“나 역시 안타깝네. 이 일은 내가 해온 모든 것들마저 무의미한 것으 로 돌려 버렸으니까. 하지만 어쩌겠 는가, 쏟아진 물을 담을 길이 없는 것을.”
“흑왕을 처리한다면……
“그런다고 해서 사람들이 무인들
의 존재를 잊겠는가?”
“강대한 적의 직접적인 위협에 시 달리는 자네는 흑왕에게 주목할 수 밖에 없겠지만, 혹왕이 저지른 일에 비하면 흑왕의 존재 같은 건 티끌만 도 못하네.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 들이 모두 무인이라는 존재를 알았 다는 것. 그리고……
마스터가 목이 탄다는 듯 물로 입을 축이고 말을 이어갔다.
“그 사실을 무인들도 알아버렸다
는 걸세.”
불친절한 설명이지만, 위긴스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세상 사람들이 무인의 존재를 알 아버렸다. 그리고 무인들도 이제 다 른 이들이 무인의 존재를 인식했다 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그동안 무인들을 제약하고 있던 리미트가 하나 풀려 버렸다는 의미 다.
어쩌면 그 무엇보다 가장 강력했 던 제약이.
“법이 생겨난 이유는…… 인간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닐세. 인간을 강제하기 위해서지. 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굴지 생각해 보게.”
“지금의 무인계는 가장 강력한 법 이 사라졌네. 무인은 평범한 인간에 게 그 존재를 알려서는 안 된다. 평 범한 이들과 어울려서는 안 된다.”
“이어지겠군요.”
“그렇지.”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의식적으로 피해왔든, 아
니면 보복과 처벌이 무서워 참아왔 든, 평범한 이들에게 무력을 쓰거나 그들에게 이득을 취하는 걸 참아오 던 이들이 이제 더는 참지 않으려 들 걸세.”
“하지만 총회는……
“언제부터 자네가 총회 사람이었 는가. 이 작은 나라 밖에도 무인은 살고 있다는 걸 잊었는가?”
위긴스가 대답을 망설이자, 마스 터가 혀를 찼다.
“의미 없는 이야기로군. 답을 정 해놓고 하는 대화는 어떤 가치도 없 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자네는 최
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틀어버릴 걸세. 그걸 주관이라 하 지.”
“하지만 마스터.”
위긴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찾아오는 종말을 손 놓고 기다리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발버 둥을 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고 하 실 셈입니까?”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네.”
마스터의 두 눈이 위긴스를 응시 한다.
“하지만 거짓된 결과를 믿는 것과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다르지. 자네
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라 도 현실은 똑바로 봐야 하지 않겠는 가?”
위긴스가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 다.
그 처진 어깨와 떨리는 턱 끝을 보고 있으려니, 절로 애잔함이 드는 마스터 였다.
‘힘겹겠지.’
평범한 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일이다.
아니, 위긴스쯤 되는 이라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해결책을 내는 건 고사하고, 밀려오는 세파의
압력을 버텨내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건 위긴스가 택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군.’
원래라면 각국의 무인계들이 이 압력을 나눠 받아야 했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마스터가 이 일을 해결 하기 위해 온갖 머리를 짜냈어야 할 것이고, 일본에서는 각 구미들이 고 함을 내지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중국에서는 창왕계와 홍왕계의 전 쟁이 멈췄을 것이고, 미국 역시 자 신들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 조련하던 특수부대들을 움직였 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 압력을 나 눠 받을 이들이 없다.
역설적으로 총회가 그 모든 이들 을 무너뜨리고 정리해 버리면서 무 인계의 입장 자체를 총회가 대변하 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이트들의 손발이 잘리고 위긴스 가 마스터의 자리에 올라 버린 원탁 은 더 이상 거수기 이상의 입지를 가지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총회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창왕계를 무너뜨리는 대가로 총회
에 주도권을 넘겨준 홍왕계 역시 마 찬가지다. •홍왕에게는 더 이상 강진 호 없이 이만한 일을 단독으로 해결 할 만한 패기가 없다.
일본은 무인이 씨가 말라 버렸고, 미국은 무인계 내에서의 자신들의 한계를 절감해 숨죽인다.
‘결국 총회밖에 없군.’
총회의 이사.
그 말이 가지는 의미가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얼마나 거대해졌는가.
원탁의 마스터라는 자리보다 총회 의 이사라는 단어가 더 큰 힘을 가 지게 된 세상이다. 그러니 위긴스가
받는 압력도 상상을 초월할 게 분명 하다.
마스터가 그런 위긴스를 가만히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한때는 총애했고, 한때는 신뢰했 다. 한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 노했다.
하지만 지금 위긴스의 이런 모습 을 보니,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어진다. 남은 것은 그저…….
“위긴스.”
“……예, 마스터.”
“조언 하나 하지.”
마스터의 말에 위긴스가 진중한
눈으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해결하려 들지 말게.”
“무책임한 소리 같겠지만, 자네가 발버둥 쳐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 도 없네. 이건 우리 같은 범인들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자네 도 알지 않는가.”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세상이 뒤바뀌는 순간에 이전의 지식을 지 혜라 믿고 살아오던 우리 같은 이들 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세상 을 이끄는 건 왕이지, 책사가 아닐
세.”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다.
그는 왕이 될 수 없는 이다. 한때 는 그런 꿈을 꾼 적도 있지만, 강진 호나 흑왕 같은 이를 보며 알게 되 었다.
그건 노력하고 연구한다고 이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살아온 삶이 달 라야 한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회주님의 부담을 덜어주는 걸세.”
“……그저 맡기라는 말입니까?”
“그건 적당한 표현이 아니군. 믿
는 거지.”
“ 믿는다라……
마스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네. 그런 건 꿈속에서나 얻을 수 있는 거지. 하 지만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이들은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의 빛을 찾아 내는 법이지.”
마스터가 빙긋 웃는다.
“자네 역시 그 빛에 이끌려 회주 님을 선택한 게 아니던가?”
“그게 거짓된 빛일 수도 있지. 오
히려 더 깊은 절망으로 떨어지는 함 정일 수도 있을 걸세. 하지만 어쩌 겠는가. 그것까지 각오했던 것 아닌 가? 아니면? 이제 와 그때의 선택 이 잘못되었다고 후회할 텐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위긴스가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로드께서 이 세상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다면 저는 그 불지옥 속에 서 웃을 겁니다.”
“많이 바뀌었군, 많이……
과거의 위긴스의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위긴스의 눈에는 그
때 없던 열의가 존재했다.
그가 바꾸지 못한 위긴스를 강진 호는 바꿔놓은 것이다.
“그럼 흔들리지 말게나.”
“그분이 내놓을 답이 뭔지는 모르 겠지만, 자네들만은 믿고 따라줘야 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위긴스가 피식 웃어버렸다.
“제일 쉬워 보이면서도 제일 어려 운 걸 시키시는군요.”
“세상일이란 결국 다 그런 것 아 니겠는가.”
“알겠습니다.”
위긴스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 드렸다.
“재밌군요.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 는데, 뭔가 머리가 맑아진 느낌입니 다.”
마스터가 낮게 웃었다.
“그래서 때때로 수다가 필요한 법 이지. 수다 떨 상대가 필요하면 언 제든 찾아오게.”
“……마스터.”
“또 빤한 이야기를 할 셈인가?”
위긴스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마스 터가 그의 말을 끊었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건 원칙이
지. 필요에 의해 깨지는 것은 원칙 이 아닐세.”
“나는 여기가 좋아. 내가 밖에 있 었으면 지금 자네보다 더 속을 끓였 을 것 아닌가. 위장에 구멍이 뚫렸 을지도 모르겠군.”
위긴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발 떨어져 있어서 보이는 것 도 있는 법일세.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위긴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커피 머신이라도 하나 놔드 리죠.”
“……그렇게까지?”
“괜찮을 겁니다. 세상 마지막 호 사일지도 모르니까요.”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군. 감사 히 받지.”
자문료치고는 너무도 쌌지만, 마 스터는 만족한 듯 웃었다.
“그런데 마스터.”
“ 뭔가?”
“마스터께서는 지금 로드께서 대 책을 생각하기 위해서 고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넨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군.”
“예?”
마스터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위긴스는 보좌해 본 적은 있지만, 이끌어본 적은 없다. 그렇기에 알 수 없으리라.
“결론은 이미 나와 있을 걸세.”
“지금은 그저 정리를 하는 거겠지.”
“뭘……
위긴스가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면서 이해해 버렸다. 그 정리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 이다.
“그분의 힘이 되어드리게나.”
“……알겠습니다.”
마스터의 시선이 위긴스 너머의 허공으로 향했다.
‘외롭겠지.’
그건…….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한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