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71)
마존현세강림기-1973화(1970/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8화)
2장 정리하다 (3)
“ 어때요?”
“뭐가?”
“그냥 이것저것?”
이현주의 말에 이현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 흐음?”
“왜?”
이현주가 미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뭐가?”
“보통은 그렇거든요. 입으로는 관 심 없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부글부 글 끓고 있다거나, 관심 끊었다고 하면서 머리로는 온갖 생각을 다 하 고.”
그것참 신랄한 평가였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네. 나는 조금은 신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신나?”
“일은 고되고 짜증 나지만, 그래야
재미있다.”
“내심은 그런 거 아니에요?”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게 말이야……
“네.”
이현수가 뭔가를 망설이듯 조금 머뭇거린다. 하지만 이현주는 굳이 그런 이현수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 히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내가 제일 경멸하던 타입이 뭔
줄 알아?”
“허세남?”
“좀 비슷하지. 정확하게는 자기가 지닌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간을 경멸해.”
“……과대평가?”
“그래.”
이현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 다.
“중요한 건 능력이 있는가, 없는 가가 아니라 제 가진 능력에 비해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인간이 싫 다는 거야. 아무리 능력 없는 이라 도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알면
훌륭한 거고,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이라고 해도 과한 자신감이 있 으면 그건 꼴불견이지.”
과거, 김석일이 그런 타입이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김석일은 대단한 사람이다. 총회보다 더 크고 강한 영남회를 만들어 냈고, 그 영남회를 제 한 손에 틀어쥐고 마음대로 휘둘
렀다.
강진호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어 쩌면 대한민국 무인계의 역사에 남
을 위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나는 김석일이 너무 싫었어. 그
인간성이나 끔찍함은 둘째 치더라도 제 가진 능력에 비해 스스로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그런데요?”
“그런데 최근 들어 알게 된 건 데……
“네.”
“내가 그런 인간이더라고.”
이현주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이 현수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우는소리를 자주 하는 이현수이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에
어려 있는 감정은 그런 너스레와는 달랐다.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내가 그런 인간이 라는 거지. 제 능력에 비해서 스스 로를 과대평가하는.”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어. 애 초에 나는 무인이랄 수 없는 인간이 니까. 이 머리 하나로 그걸 극복하 려 애쓰지만, 한계는 있다고 생각했 지.”
이현수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게 오만이라는 걸 몰랐어. 무 의식적으로 나는 내 머리로 그런 건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던 거지. 별것도 아닌 인간이.”
“……왜 그래요, 답지 않게.”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어 른이 된다는 건 자기가 얼마나 하찮 은 인간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 같 아.”
이현수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린애들은 꿈이 크잖아.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걸 할 수 있다고 믿지. 그런데 어른이 되면 꿈은 소
박해지거든.”
“현실적이 되는 거죠.”
“그냥 자기가 그럴 그릇이 안 된 다는 걸 알아 버린 게 아닐까?”
이현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너무 늦게 어른이 된 거지. 세상이 무서운 줄 몰랐거든.”
강진호를 만나기 전, 이현수는 자 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견제와 무시, 그 중간 어딘가를 헤쳐 오던 사람이 었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강진호가 그를 믿 어 주며 날개를 폈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 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어 버렸다.
그는 세상을 뒤흔드는 저 미친 괴물들의 싸움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 다.
“뭐 그런 걸로 기죽고 그래요.”
“이번 일은 현수 씨가 아니라 누
구라도 어쩔 수 없던 일이잖아요.”
“이번 일만이면 말도 안 하지.”
“ 아니••••••
“그리고……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한다.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을 예 측하고 대처하는 게 내 역할이었지. 주먹질도 못 하는 내 역할.”
이현수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측을 못했다? 그래. 뭐, 그건 그럴 수 있지. 네 말대로 이번 일은 누구라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 하지 만…… 지금 나는 이 일을 대체 어
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풀죽은 목소리가 아니다.
그저 담담한 목소리.
그래서 조금 더 서글퍼 보이는 목소리였다.
“한심하지?”
“그런데 이 사람이 진짜!”
“자, 잠깐!”
이현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 이현수가 태클하듯 이현주의 허 리를 잡고 늘어졌다.
“뭐야‘?”
“너, 너 지금 정신 차리라고 한 대 치려고 그러지?”
“안 돼. 그럼 나 죽어.”
“아니, 그냥 싸대기나 한 대……
“죽는다고! 호랑이가 정신 차리라 고 싸대기 치면 강아지는 뒈지는 거 지!”
“어디 자기를 강아지에 비유해? 귀엽지도 않은 게.”
“……무력 수준이 그 정도라고! 어디서 만화 좀 보신 모양인데, 만 화 개그캐는 안 죽더라도 나는 죽 어!”
이현수가 필사적으로 바둥대며 이 현주에게 들러붙었다.
그 꼴같잖은 모습을 보며 이현주 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 었다.
‘진짜 이 인간을 믿고 살아도 되 나?’
뭔가 잘못 생각한 거 아닐까? 할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이 광경 을 봤다면 대체 무슨 말을 했을까?
그 생각을 하니 괜히 안구가 시 큰해져 오는 이현주였다.
“아, 놓으라고!”
“안 때릴 거지?”
“안 때려! 놓으라고!”
그제야 이현수가 슬그머니 손을
놓고 물러난다.
어색한 표정을 짓는 이현수를 보 며 이현주가 혀를 찼다.
“구질구질한 인간.”
“나, 나도 살아야 될 거 아냐!”
이현수는 이현수 나름 할 말이 있다.
이현주가 살짝만 후려쳐도 그는 목뼈가 돌아간다.
호랑이?
비유할 게 없어서 호랑이에 비유 한 거지, 저 여자는 호랑이 모가지 도 돌려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총회의 최하급 무인한테도 일방적
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그가 이 중걸에게 엘리트 교육을 받고 큰 이 현주를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내가 왜 얘랑 사귀어서.’
평범한 여자 친구를 만났으면 힘 도 세고 멋진 남자 취급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무인을 만나 서 약골에 한심한 남자 취급을 받는 가.
“거, 꿈도 없다는 양반이 명줄은 지키려고?”
“꾸, 꿈 없어도 살긴 살아야지. 꿈 없다고 뒈지나?”
“거, 잠깐 입 좀 닫아 봐요. 너무
한심해서 서글프니까.”
“……죄송합니다.”
이현수가 몇 번 헛기침을 해 댔 다.
“그러니까……
“지금 와서 무게를 잡는다고? 이 분위기에?”
“……그냥 하던 말이나 계속하려 고.”
“……해 봐요.”
이현주가 거의 바퀴벌레를 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한심한 건 알겠는데, 좀 위로해 주고 그러면 안 될까?”
“ 뭘?”
“그…… 나의 인간적인 실망? 현 실을 자각한 남자의 서글픔?”
“뭐래?”
이현주가 뚱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남들은 어릴 적에 이미 다 겪는 걸 지금 와서 겪었는데, 그걸 왜 위 로해야 하는데요? 거꾸로 말하면 편 하게 살아왔다는 소리 아냐?”
“•…”어?”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어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싸움박질 포기할 때에 비하면 그런 건 고민도 아니 야, 이 인간아.”
할 말을 잃은 이현수가 입을 다 물었다.
생각해 보면 그도 맞는 말이다.
이현주는 이중걸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 수련하던 사람이다. 물론 다 른 제자들도 있었지만, 이중걸도 될 수 있으면 자신의 손녀에게 총회를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현주는 자신의 재 능이 그만큼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인
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를 수 없는 산을 바라보고 있 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 꿈대로 됐으면 지금 방 이사 님 자리에 제가 있었겠죠.”
“……회주님 자리가 아니라?”
“그것까진 꿈 안 꿔요. 아니, 못 꾸지. 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인데.”
현실적이네.
꿈이니까 좀 비현실적이어도 될 텐데.
“그런데 지금 저는 서류랑 싸움박 질을 하고 있고, 매일 자료나 보고
있죠. 그래서 어떨 것 같은데요?”
“……잘 모르겠어.”
“나름 행복해요.”
이현주가 진지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어떻게든 자기 꿈을 이 루는 사람도 있을 거고, 결국에는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꿈을 이룬 사 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루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건 아니죠. 그건 별개의 문제니까.”
이현수가 멍한 얼굴로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물론 한번씩은 답답할 때도 있 고, 짜증이 날 때도 있죠. 말도 안 되는 일들 해결하다 보면 성질대로 다 때려 부수고 싶을 때도 있고.”
이현주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요. 사람 은 다 그렇게 사는 거잖아요. 나는 적어도 지금 내가 자기 꿈을 다 이 뤄 온 회주님보다 불행한 것 같지는 않아요. 행복도로만 따지면 내가 더 나을걸요?”
“……맞는 말이지.”
그 사람은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니까.
이현수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꿈을 이룬다고 해서 꿈을 이루지 못한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니 다. 그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빤한 말이 지금 그에게 너무 크게 다가온 다.
“그러니까 그만 징징대고 일해요. 지금 총회에 현수 씨가 해야 할 일 이 너무 많으니까.”
“……결국은 일하라는 거네.”
“그럼 놀려고?”
“아니, 뭐……
이현주가 심드렁한 얼굴로 일어났
다.
문 쪽을 향해 몸을 돌린 이현주 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응‘?”
“나는 믿어요.”
“..뭘?”
“당신 꿈이 아직 끝난 건 아니라 는 걸. 마지막이 이기는 쪽이 다 이 기는 거 아니에요?”
이현주가 빙긋 웃는다.
“어차피 이번이 끝이라면, 끝에 먹고 튀면 되죠. 그럼 영원히 승자
로 남는 거니까.”
“파이팅!”
이현주가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간다.
멍하니 이현주가 나간 문을 바라 보던 이현수의 얼굴에 괴이한 미소 가 피어난다.
“……먹고 튀라고?”
황당한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영원한 승 리자라……
그 말은 구미에 당긴다.
몇 번을 이겼든, 몇 번을 졌
승부는 끝에 이긴 자가 가져가는 것 아니던가.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일을 찾는 어른이 될 것인가, 지고도 인 정 못 하고 울고 불며 떼를 쓰는 아이가 될 것인가.
“아무래도……
이현수가 묘한 얼굴로 고개를 젖 혔다.
“아직 나는 덜 컸나 보네. 그 말 이 구미에 당기는 걸 보니 말이야.”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아이.
누가 더 강한가, 누가 뛰어난가 같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로 평 생을 싸우는 이들.
세상은 그런 이들을 무인이라 부 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