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79)
마존현세강림기-1981화(1978/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16화)
4장 결심하다 (1)
홀로서기란 중요한 것이다.
강진호도 결국 조미혜의 말을 인 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나치게 보육원에 관여하는 건 원생들에게 해가 된다.
그러니 이제는 평범한…… 아니, 평범보다는 조금만 과한 이사장 정
도로 남아야 한다.
분명…….
그래, 분명 그래야 했는데…….
“뭐? 대학 가면 보육원에서 지원 이 안 나온다고?”
“아니! 그럼 난 뭐 먹고 살아?”
강진호가 흐린 눈으로 한진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변에는 참 이상하거나 괴 이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이 생명체는 그런
이들과는 다른 의미로 좀 괴이하다.
‘때때로는……
그래. 뭔가 어른스럽고 듬직하다. 강진호가 보육원에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조미혜라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한진성이다.
그런데…….
‘왜 때때로만 듬직한 거지?’
평소에는 왜 이리 등신 같냐고! 왜!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조미 혜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조미혜도 마치 징 그러운 벌레를 대하는 듯한 눈으로
한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조미혜가 말문이 막힌다는 듯 가 슴 어림을 부여잡았다.
“이게 언제부터 나온 이야긴데 이 제 와……
“아니, 형이 졸업자 기숙사 만들 어서 살게 해주는 거잖아.”
“그렇지.”
“근데 사람이 잠만 자고 사나? 밥만 먹고 살아? 내 용돈은? 나도 대학생 되면 이거저거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형! 아니지? 용돈 줄 거지! 진 호…… 아아악!”
조미혜의 발이 한진성의 이마에 틀어박혔다.
“죽어! 제발 좀 죽어줘! 내가 이 렇게 부탁할게! 굳이 왜 살아서 산 소 낭비하냐고! 안 그래도 산소 부 족한데!”
“사, 산소가 왜 부족……
“니가 마실 건 없어!”
조미혜에게 걷어차인 한진성이 머 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좋은 방어다.’
무학에 재능이 있을지도?
아니, 너무 맞아서 그런가?
강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 다.
하지만 한진성의 말이 그리 틀린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만 18세가 되어 보육 원을 졸업한 이들은 국가로부터 500만 원의 지원금을 받고 보육원 에서 나가야 한다.
500만 원.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 지만, 한 사람이 새로운 삶을 시작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렇기에 보육원을 졸업한 이들이
쉽사리 범죄의 유혹에 시달리는 것 이다.
그나마 바로 취직을 한 이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 삶을 유지할 수 있지만, 취직을 못하거나 한진성처 럼 대학에 진학하는 이들은 당장 먹 고살 길이 막막해지기 마련이다.
그나마 이곳이 성심 보육원이라 강진호의 지원하에 재수를 해볼 수 있던 거지, 다른 보육원 출신 같았 으면 현실적으로 재수라는 선택지를 고려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 아니, 돈이 없잖아!”
“돈이 없으면 벌어!”
“내, 내가 돈을 무슨 수로 벌어!”
“과외하면 되지!”
그 말을 들은 한진성이 벌떡 상 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빙긋 웃었다.
“미혜야.”
“……또 무슨 말 하려고?”
“네가 나를 과대평가하는 모양인 데, 내가 부모라도 나한테 제 자식 과외는 안 시켜. 서울에 넘쳐 나는 게 대학생인데, 왜 나 같은 놈한테 시키겠어? 안 그래?”
뭐라 반박할 수 없는 정론에 조 미혜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그냥 용돈이나 받아 쓰 는 게 현실적이라 이거지. 내가 용 돈 받아봐야 진호 형 통장에 쌓이는 돈 이자의 이자의 이자도 안 될 텐 데 뭐가 문제……
뻑!
강진호가 움찔했다.
‘무학의 재능은 저쪽에 있었나?’
제대로 날린 정권이 한진성의 이 마에 틀어박혔다. 한진성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모로 쓰러졌다.
털썩.
‘죽었나?’
아니, 들썩대는 것을 보면 살아
있는 것도 같고…….
“과외를 못하면 편의점에서 일하 면 되지! 아니면 배달이나 뛰든가!”
“그,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어디 계속 말해봐, 어디.”
“……아닙니다.”
순식간에 제압된 한진성의 난을 감상한 강진호가 근본적인 의문을 입 밖으로 냈다.
“그런데 진성아.”
“응?”
“합격은 했냐?”
한진성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 다.
“뭐, 그 정도야 기본 아니겠어? 실력이지, 실력.”
“으…… 꼴보기 싫어.”
조미혜가 꼴사나워하면서도 딱히 반박하지 않는 걸 보니, 성적은 잘 받은 모양이다.
“인 서울! 어? 무려 인 서울!”
“서우우우울!”
“그, 그만해.”
알았다고…….
한진성의 어깨가 과도하게 올라간 다. 어깨를 얼마나 올렸는지, 목이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좋을까……
“당연히 좋지!”
“남들은 한 번에 가는 대학.”
한진성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호가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홀로서기라……
미 혜야.
그거 조금 일렀던 것 아닐까?
“그런데 너, 어디 다녀온 거야? 수능 끝났는데.”
“어디 가긴. 알바 다녀왔지.”
“응? 알바?”
조금 전에는 용돈 달라고 하더 니?
강진호의 표정을 본 한진성이 피 식 웃었다.
“우리 형은 이상한 데서 순진하단 말이야. 당연히 농담이지. 내 나이가 몇인데 용돈을 받아 써.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보 육원에 재워주는 것만 해도 고맙지. 집세는 아끼잖아.”
그 말이 참 기특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안타깝기 도 했다.
한진성의 말대로 이 나이 대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부모의 지원을 받기 마련이 다.
한진성이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해결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는 점이 강진호를 조금 안타깝게 했 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 아니••••••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애들이 우르르 뛰쳐 들어왔다.
“형! 과자 사 왔어?”
“오는 길에 사 오라고 톡했잖아!”
“아니! 이놈들아! 내가 알바비 얼 마 번다고 나한테 과자를 사 달라고 해?! 앞에 진호 형 있잖아! 이사장 님!”
“에이, 진호 형은 만날 사 주잖아.”
“형이 사 줘야 의미가 있지.”
“맞아. 피와 땀과 눈물이 어린 과 자.”
“……마귀 같은 것들.”
아이들이 한진성을 둘러싸고 매달 린다.
“과자 내놓으라고!”
“아! 꺼져!”
“뒤져 봐! 가방 뒤져 봐! 분명 있 을 텐데!”
“으아아! 이 새끼들아!”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지는구나.’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이건 강진 호가 많이 봤던 광경이다.
예전에 성심에서는 혼한 광경이었 다. 아이들의 밥을 준비하는 박유민 과 그런 박유민의 뒤를 졸졸 따라다 니는 아이들.
그 모습이 강진호가 기억하는 성 심 보육원의 원형이었다.
이제는 박유민도 제 삶을 찾아 떠나 성심을 잘 찾지 못하지만, 건 물이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고, 세 월이 변해도 이 모습은 달라지지 않 는다.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과거, 박유민이 맡은 역할을 한진 성이 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 지 않아 한진성도 자신의 삶을 찾아 보육원을 떠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지금 한진성에게 매 달려 있는 아이들이 다시 한진성이 하는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그거면 됐지.’
원장 수녀님이 이 모습을 보셨다 면 뭐라고 하셨을까?
오늘따라…….
그 얼굴이 그립다.
옅은 미소를 띠고 인자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던 그분의 모습이 말이다.
‘그저 바라보셨겠지.’
수녀님은 알고 계셨을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제 발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조금 더 지켜주고 싶고, 조금 더 안아주고 싶어도 한 발 물러서서 지 켜봐 주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는
걸.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가 한 게 아니구나.’
그가 없다고 해서 성심이 달라지 지는 않을 것이다. 저 아이들은 강 진호가 없었어도 지금처럼 화내고, 웃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보듬으며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조금 더 불편했을지는 모르겠지 만, 그런 게 이 아이들에게 큰 문제 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굳이 내가 있어야 한다는 건 오 만이었군.’
조금은 섭섭하다.
하지만 그게 꼭 싫지는 않다.
“형.”
“웅?”
“오늘 자고 가?”
한진성이 심드렁하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퉁명스러운 목소리 속 에 강진호가 자고 갔으면 좋겠다는 뜻이 너무 노골적으로 박혀 있었다.
“……그럴까?”
“자고 간 지는 좀 됐지.”
“오빠가 뭔 상관이야? 오빠는 자 기 방에서 자야 되잖아.”
“거, 놀다 보면 남의 집 거실에서 잘 수도 있는 거지! 어때, 형? 오랜
만에 맥주 한잔?”
“……나 너랑 맥주 마신 적이 없 는 것 같은데?”
“에이, 뭐야. 김빠지게.”
“그럼 맥주 한잔할까?”
“아, 나 술 못 먹어.”
대체 뭘까, 이놈은?
어쩌다가 아름다운 성심 보육원에 서 이런 괴상한 놈이 생성(?) 되었 단 말인가.
“……그럼 콜라나 한잔하자.”
“콜라 좋지!”
“과자다!”
“여기다가 숨겨놨네. 하여튼 저 형 수작 참 빤해.”
“내, 내 안주야, 이것들아!”
“콜라에 뭔 안주! 그냥 마셔! 이 건 우리가 접수할게.”
“피도 눈물도 없는 것들!”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가 있든 없든…….
여긴 성심보육원이다.
그래.
그걸로 됐다.
취이익.
콜라 캔을 따는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퍼져 나간다.
찰칵.
입에 담배를 문 강진호가 라이터 를 켜 불을 붙였다. 그가 앉은 그네 가 천천히 흔들린다.
‘콜라라……
중원에 있을 당시, 그가 가장 그 리워했던 현대의 문물이 바로 콜라 와 담배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도 가장 먼저 콜라부터 찾지 않았던 가.
어느 순간부터 너무 쉽게 사 먹 을 수 있게 되다 보니 한동안 콜라 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
‘한때는 그토록 간절했는데……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한때는 변하는 게 두려웠고, 달라 지는 것이 겁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변한다는 건 나아가는 거니까.
총회의 회원들도 그렇고, 보육원 의 아이들도 그렇고.
저마다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을 지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 다.
그러니…….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 라보았다.
“나도…… 이제는 내 할 일을 해 야지.”
새하얀 담배 연기가 차가운 밤공 기를 타고 천천히 옅어져 간다.
두려웠다.
정리할 시간이라는 건 거짓말이 다. 이제 그가 극복해야 할 상황은 지금까지 그가 겪어온 그 어떤 전투 와도 다르다.
그 결말이 어찌 될지는 강진호조 차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배를 염 두에 둔 적이 없던 강진호이지만, 이번만은 그의 모든 것을 걸고도 결 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겁이 났다.
그가 이 세상에서 얻은 모든 것 을 놓게 될까 봐.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두가 제 나름의 두려움을 짊어 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회원들에게 세상과 맞서라고 말하면서 그가 두려워 나 아가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후우.”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은 강진 호가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지켜야지.”
그가 그리워했던 세상을.
그리고 저들이 살아갈 세상을.
그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가 숨 쉬는 이 세상을.
담배를 비벼 끈 강진호가 그네에 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손에 든 콜라를 단숨에 마셔 버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
다.
놀이터 밖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 에는…….
단 한 점의 망설임조차 묻어 있 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