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80)
마존현세강림기-1982화(1979/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17화)
4장 결심하다 (2)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음에 한 점 의혹도 없었다.
이제는 나아갈 길을 찾았고, 결심 한 대로 행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 순간, 강진호는 새삼 깨달아야 했다.
몰아치는 태풍과 함께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 오는 해안에 서면, 인 간의 의지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 다는 것을 말이다.
“안녕하세……
“안녕하세요오?”
강진호가 입을 꾹 다물고 어색한 웃음을 홀렸다.
사람이 눈치가 늘어난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만, 때로는 가혹한 일이 기도 하다. 저 목소리에 묻은 감정
만으로도 지금부터 그가 무슨 꼴을 당할지 너무 빤하게 예상이 가버리 니까.
“한국에……
“기어 처들어왔으면
“빨딱빨딱 튀어와서 어딜 어떻게 다쳤는지! 몸은 멀쩡한지! 머리는 맛 이 가지는 않았는지! 즉각즉각 보고 는 못할망정! 이제야 슬그머니 얼굴 들이밀고는 뭐? 안녕하세요? 안녕 하세요오오오? 안녕하겠냐, 이 새끼 야!”
“죄, 죄송합니다. 사과드립……
“필요 없어!”
최연하가 사자후를 내질렀다.
소림의 방장이 내지르는 사자후를 면전에서 들으면서도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은 강진호이지만, 지금은 반 사적으로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지 금쯤 축 늘어진 채 말려 있을 것이 다.
“아니, 그게……
“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뭐? 그런다고 내가 봐줄 것 같 아? 사과한다고 다 끝나는 거면 감 옥은 왜 있어!”
정론이 십니다.
“하여간……
최연하의 두 눈이 불을 뿜는다.
“보아하니 상황 개판 난 것 같아 서, 웬만하면 안 보채고 다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했는데, 이건 뭐! 그냥 냅 뒀으면 내년에 봤겠네, 내년에! 아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예약할걸! 웨이팅이 이렇게 길
줄 누가 알았나? 혹시 주방장 바꾸 셨어요?”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아니, 벌써 나고 있는지도 모르겠 다.
하나하나 다 맞는 말만 하는 데…… 아니, 맞는 말만 해서 더 무 섭다. 반박은 당연하고 변명조차 불 가능하니까.
“그래서 할 말씀 있으실?”
“저기……
“뭐?”
“……죄송합니다.”
최연하가 턱짓으로 카페 안쪽을 가리킨다.
“그럼 커피.”
“지금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늘 드시던 그걸로?”
“아니요. 마끼아또 시럽 달달하게 넣어서. 스트레스를 워낙 받아서 단 거 먹어야겠어요.”
“스트레스는 또 왜……
“몰라서 물어요?”
“지, 지금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강진호가 카페 안으로 부리나케 튀어간다. 그 모습을 본 최연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팔자야. 아이고, 내 팔자야.” 어쩌다 저런 걸 만나 가지고.
얼굴 반반한 거랑 돈 많은 거, 주 먹질 잘하는 거 빼면 어디다 써먹을 데도 없는 인간을…….
웅? 그거면 된 거 아니냐고?
모르는 소리!
“속이 터지잖아, 속이!”
사람이 같이 있으면 마음의 안정 을 찾아야 하는 법인데, 저 인간은 존재 자체가 혼돈이요, 마음의 안정 을 파괴하는 파괴신이다.
피부과에 돈 한 푼 던져 주지 않 아도 팽팽하고 윤기 돌던 그녀의 피
부가 저 인간을 만난 이후로 갈수록 푸석푸석해지는 것만 같다.
뭐? 방금 나이 들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한 놈 어떤 새끼야?
최연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해안도로에 위치한 한적한 카페 앞 테이블이라고는 하지만, 연예인이 사람이 오가는 밖에서 할 만한 행동 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연하의 머리에는 지금 그런 게 들어오지 않았다.
“ 어휴.”
최연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에 올 때까지도 고민을 많이 했다. 만나자마자 달려들어 얼굴을 물어뜯어 버릴 건지, 아니면 고생했 다고 어깨를 토닥여 줄 건지.
이성적으로는 후자가 맞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웬만큼 물어뜯어서는 성질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는 토닥여 주기로 결정 했는데…….
“……나도 아직 애지, 애야.”
왜 얼굴 보자마자 성질부터 나는 지…….
아무리 사람이라는 게 생각한 것
처럼 다 할 수는 없다지만…….
“진호 씨도 힘들 텐데.”
강진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 모를 최연하가 아니다. 그래서 화가 났다.
힘들고 지칠 때 그녀를 조금도 찾지 않았다는 게 첫째로 화가 났 고, 빤히 강진호가 힘겨워했을 것을 알면서도 얼굴 마주하자마자 화부터 내는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죽어야지, 죽어야지.”
이 나이 먹고 제 성질 하나 못 죽여서는…….
최연하가 심호흡을 했다.
일단 첫 단추는 잘못 꿰다 못해 떨어져 나갔지만, 어쨌거나 강진호 가 다시 오면 그때는 웃으면서…….
“여,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
최연하의 얼굴이 경련했다.
‘아, 이제 저건 내 남자 친구가 아 니구나.’
최연하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뭔지 이해했다.
남자 친구는 같이 있어도 보고 싶고, 떨어져 있으면 더 보고 싶은 사람이지만, 남편은 보고 있으면 속 시끄럽고, 안 보이면 속 터지는 존
재라더니…….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오장육 부에서부터 열기가 부글부글 끓어오 른다.
“후우, 후우, 후우!”
최연하가 격하게 심호흡을 했다.
아니면 입에서 좋은 말이 안 나 올 것 같…….
“어디 아파요?”
빠득.
머릿속 어딘가에서 무언가 끊어지 는 소리가 난다.
“끄으으……
부들부들 떠는 최연하를 보며 강 진호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의 안에 살아 숨 쉬는 생존 본능이 지 금 입을 떼면 정말 뒈진다는 경고 신호를 격렬하게 보내고 있다.
최연하가 고개를 홱 들어 강진호 를 흘겨보았다.
움찔한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 리자, 결국 최연하의 입에서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 앉아요.”
“넵.”
강진호가 재빨리 자리에 앉자, 최 연하가 강진호의 손에 들린 마끼아
또를 낚아채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앗 뜨거!”
“뭐가 이렇게 뜨거워! 짜증 나게!” 탁!
컵이 터질 듯 테이블에 내려놓은 최연하가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강 진호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이해하고 용서해 주신다면……
만약…….
지금 이 앞에 청마가 있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정파의 최정예들이 그를 둘러싸 합공을 하고, 결국 그 손에 목숨을 잃을 때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커 녕 오히려 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강진호다.
철혈의 마인.
세상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대마두.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강함은 존 재하지 않고, 영원한 강자도 존재하 지 않았다.
“아니•…”
“네, 제가……
“아, 입 다물어봐요! 그거 아니니
까!”
입을 꾹 닫은 강진호를 보며 최 연하가 눈을 흘겼다.
“나 안 보고 싶었어요?”
“안 보고 싶었냐고!”
“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래?”
“ 죄송……
최연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혼들었 다.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강진호의 얼굴을 보자 더는 화가 나지 않았
다. 이 사람도 오죽했으면 그랬겠는 가.
“말해봐요.”
“왜 안 왔어요? 이렇게 오래 끌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최연하의 목소리가 진지해지자 강 진호도 표정을 바꾸었다. 조금 무표 정해진 강진호의 얼굴을 보며 최연 하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그저 조금……
“네.”
“아니.”
강진호가 고개를 내젓는다.
“정리가 끝난 다음에 만나고 싶었
습니다.”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지 않고서 는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나를 만나면 이상한 결정을 하게 될까 봐? 아니면 내가 당신한테 하 는 말이 당신을 흔들까 봐?”
강진호가 눈을 잠깐 감았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이전에 제가 최연하 씨를
만나면……
“네.”
“무슨 결정을 했을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요.”
최연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도 안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란 온전히 혼자의 몫일 수밖에 없 다.
최연하가 강진호에게 영향을 끼치 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최연하가 너무 큰 영향을 끼치기에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게 진짜 싫다니까.’
화를 내고 싶어도 머리로는 그 의도를 이해해 버린다. 더 싫은 것 은 그 머리로 이해한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어렵다는 점이었다.
“저는요, 진호 씨.”
“네.”
“진호 씨가 왜 그랬는지는 알 것 같아요. 근데요.”
“나는 그래도 진호 씨가 나하고 조금은 상의해 주기를 바랐어요.”
“……미안합니다.”
최연하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이건 내 투정인 건 나도 알아요. 진호 씨가 사과할 일은 아 니에요.”
최연하도 그럴 테니까.
그녀의 삶과 관계된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강진호가 뭐라 하든 그녀 가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그걸 강 진호가 말린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네.”
“어쩔 거예요?”
본론이 나왔다.
강진호가 말없이 최연하를 바라보 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이 긴 시간은 이 사람의 앞에서 이 말을 내뱉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 저는♦•••••
“네.”
“싸울 겁니다.”
최연하의 표정이 알 수 없게 변 한다.
당연히 들어야 할 말을 들은 것 같은 얼굴이기도 하고, 끝끝내 듣고 싶지 않던 말을 강제로 들어야 하는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다.
“어떻게요?”
“진호 씨.”
“네.”
“저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 르는 건 아니죠?”
“압니다.”
“거기가 핵무기 발사 시설이라는 것도 알고 있죠?”
강진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싸운다고요? 무슨 수로?”
최연하가 입술을 깨문다.
“나 사실 알고는 있었어요. 결국 내가 들을 대답은 이거겠지. 말려봐
야 소용없겠지. 울고불고 매달리고, 가지 말라고 화내고 뒤집어져도 결 국은 가겠지.”
그 목소리에 어린 감정이 강진호 를 찌른다.
강진호가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래서 하나는 묻고 싶어요.”
“……네.”
“왜 진호 씨가 가야 하는데요?”
최연하의 눈이 점점 붉어진다.
“지금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아무 말도 못했어
요. 그건 당신 세상의 이야기니까. 그건 내가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 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살아 돌아오라는 말밖에는 못 했어요. 알아요?”
“……네, 압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잖아요. 이 건 당신 일이 아니에요. 이제 이건 내 일이기도 해요. 이제 이 세상은 당신이 사는 곳과 내가 사는 곳이 나뉘어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은 이미 뒤섞이고 있다. 최연 하의 말처럼.
“당신이 아니더라도 해결할 사람 은 수도 없어요. 미국도 있고, 중국 도 있고! 뭣하면 한국이나 일본, 유 럽이라도 나서서 뭐라도 하겠죠. 그 런데 왜 이번에도 당신이어야 하는 건데오/? 말해봐요. 말해서 나를 납득 시켜 봐요. 왜? 왜 당신인데 또! 왜!”
격하게 말을 내뱉은 최연하가 손 을 들어 눈가를 꾹 누른다. 그러지 않으면 보이기 싫은 모습을 보이게 될 것 같다는 듯이.
“저는•…”
그때, 강진호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