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81)
마존현세강림기-1983화(1980/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18화)
4장 결심하다 (3)
“잠깐만요.”
최연하가 손을 들어 강진호의 말 을 막았다.
영문을 몰라 하는 강진호를 보며 최연하가 슬쩍 턱짓했다.
“자리 옮겨요. 사람들 와요.”
“……네.”
어느새 최연하를 알아본 이들이 하나둘 힐끔대며 카페 쪽으로 모여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곳은 이런 이 야기를 하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었 다.
“그럼 차로……
“ 타요.”
“네‘?”
“ 타라고.”
“……네.”
강진호가 카페 앞쪽에 대어져 있 던 최연하의 차 조수석에 올랐다.
최연하가 태연하게 운전석에 앉아 액셀을 밟았다.
멀뚱히 그를 바라보는 붕붕이를 내버려 두고 두 사람을 실은 차가 과격하게 해안 도로를 타고 달렸다.
쏴아아아아.
바람이 차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흐트러지는 포말 을 말없이 응시하던 최연하가 고개 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린다.
참 예쁘다.
이럴 때면 새삼스레 최연하가 얼 마나 미인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하 지만 이제는…….
아니, 처음부터 그런 건 딱히 중 요하지 않았다. 강진호에게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그는 그저…….
‘왜였을까?’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그가 최연하와 이런 사이가 되었을 까?
그와 최연하가 딱히 성격이 맞는 것도 아니다.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
고, 좋을 때보다 티격태격댈 때가 더 많다.
그런데도…….
‘의문도 들지 않았지.’
어느 순간, 이 사람을 두 눈에 담 고 있는 게 너무 당연하게 되어버렸 다.
그래서…….
그래. 그래서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가 그녀에게 하는 마지 막 말이 거짓말로 남는 것만은 참을 수 없으니까.
“진호 씨.”
“네.”
“좋지 않아요?”
불어오는 바람이 강진호의 얼굴을 간질인다.
“나는 진호 씨랑 이렇게 서서 바 다 보는 게 좋아요.”
“네.”
강진호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다.
딱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게 즐겁다. 이건 최연하를 만나기 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감 정이다.
“그럼 된 거잖아요.”
“세상은 항상 바뀌어요. 때로는 과격해지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뒤틀리기도 하죠. 불합리 하고, 한숨 나오고……. 그런데 막상 살아보면 생각만큼 바뀌지도 않아 요.”
최연하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어린 작은 서글픔이 강진호의 눈에 틀어박혔다.
“그럼 된 거잖아요.”
“진호 씨가 무리하지 않아도. 꼭
그렇게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고, 이 일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자기에 게 있는 것처럼 굴지 않아도. 그냥 내버려 두면 되잖아요.”
“세상이 바뀐다고 해서 진호 씨와 내가 여기 와서 바다 바라볼 여유도 없겠어요? 그것만 있으면 되는 거잖 아요.”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그 말을 어찌 거절해야 할까 난 감해서가 아니다.
저 말이 너무도 옳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되죠. 내가 아 니어도 누군가는 할 테니까. 평소에 는 해야 할 일도 못해서 허덕대는 사람이,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강진호가 말없이 최연하를 바라보 았다.
“그냥 그러면 안 돼요? 네, 진호 씨?”
“연하 씨……
“그냥 조금만 내려놔요. 그럼 되 잖아요. 그럼 다들 그냥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요.”
최연하는 이해하지 못했다.
강진호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하지만 거꾸로 이해하고 있었다.
강진호의 태도가 지금까지와는 달 랐기 때문이다.
이제껏 강진호가 목숨을 걸고 싸 우러 간다고 느낀 적은 여러 번 있 었다. 처음에는 몰라서 말리지 못했고, 뒤에는 알고도 말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분명 다르다.
강진호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 그리고 표정 하나에서도 알 수 있 다.
이번 일은 명백히 그 격이 다르다. 마주할 때만 해도 적당히 투정을 부리고, 결국은 강진호가 원하는 대 로 보내줄 생각이 있던 최연하이지 만, 지금의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그러면 안 돼요?”
강진호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나 온다.
이래서. 그래, 이래서.
이래서 그는 최연하를 만나지 않 았다. 아니, 만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눈앞에 서 이런 말을 들어버리면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고 싶어요.”
“한때 내 꿈은 평범하게 사는 거 였어요.”
그 말에 최연하가 입술을 살짝 깨 물었다.
“지금은…… 조금 황당한 말이 되 어버렸지만, 정말 한때는…… 누구 의 눈에도 띄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소소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게 꿈이었어요. 싸 우지 않고, 다투지 않고, 누가 더 강한지를 이 악물고 증명할 필요 없 이.”
강진호가 시선을 돌려 바다를 바 라보았다.
파도가 그를 향해 끊임없이 몰아 쳐 온다.
강진호에게 세상은 바다 같았다.
드넓고 광활해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지만, 사실은 쉴 새 없이 밀려 와 한시도 고요하지 않은…… 그런 바다.
휩쓸리고 휩쓸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가 원하던 삶과는 한참 동 떨어진 이곳으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진호 씨……
“내가 찾은 답이 뭔지 아세요?”
“이게 정말 내가 원한 삶이었다는 거예요.”
최연하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걸 원했다고요?”
“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은 온화했지만, 눈빛에는 힘이 있었다.
“나는 내가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용히, 어디에
도 휘둘리지 않고 그저 평안하게.” 강진호의 고개가 천천히 내저어진 다.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그럼요?”
“평범하게 살고 싶던 게 아니 라……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거예 요.”
강진호가 담담히 말하며 작은 미 소를 지었다.
“그때는 평범하지 않으면 행복하 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거죠. 그래 서 평범하고자 했어요. 하지만…… 그냥 평범하게만 살았다면 지금 같
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어떤데요?” “박유민을 만났죠.”
강진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황 회장님을 만났고, 조 실장님 을 만났고, 영기를 만났고, 이현수를 만났고…… 장민도, 바토르도…… 위 긴스도,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도.”
작은 세상에서 평범하게만 살았다 면, 그들을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삶을 살 수도 있 었겠지.
평범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남들
처럼 회사에 취직을 하고.
조금 괴짜라는 말은 듣겠지만, 쉬 는 시간에 피우는 담배 한 대와 퇴 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산 치 킨 한 마리에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평범한 삶도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저 평범하게 살았다면…… 제 가 당신을 만날 일도 없었겠죠.”
최연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 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모두를 다시 한번 만나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
고, 술도 마시고, 웃고 떠들기도 하 면서 확실하게 알았어요.”
“..뭘요?”
“전 지금 행복해요.”
강진호가 빙그레 웃었다.
최연하는 차마 강진호의 그 얼굴 을 마주 보지 못했다. 지금 저 얼굴 을 보고 있으면 울어버릴 것 같다.
“그래서 알게 됐죠. 행복이라는 건 숨죽이고 있는다고 찾아오지 않 는다는 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내 발로 찾아내야 하고, 내가 내 손으로 움켜쥐어야 한다는 걸.”
다음 말이 뭔지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래서 가는 거예요.”
“……진호 씨.”
“연하 씨 말대로예요. 이대로 살 수도 있겠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다른 이들이 해결해 주기를 바랄 수 도 있겠죠. 아니, 해결이 되지 않는 다고 해도 나 하나 어떻게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저, 그놈이 랑 나름 친하거든요.”
“그런데……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행복을 잃어야 해요.”
“최연하 씨 말대로예요. 세상이 바뀐다고 삶이 크게 뒤틀리지는 않 겠죠. 하지만 그 작은 불편함은 쌓 일 거예요. 그리고 그 작은 불편함 이 언젠가는 더 큰 파도가 되어 돌 아오겠죠. 언제나 그랬으니까. 막아 야 할 때 막지 못하면 언젠가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돌이키지 못할 지경으로 흘러가 버릴 수도 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해서 세상이 무너진다면, 강진호가 사랑 하는 사람들이 그 여파에 고통받을 것이다.
강진호는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 다.
“그러니까 가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지키려고?”
“ 아뇨.”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 에요. 그렇게 대단한 대의를 내걸고 싶지도 않아요. 실제로도 아니니까. 그저……
강진호가 환희 웃는다.
“내가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사실 이기적인 거예요. 내가 행 복해지고 싶으면, 내가 함께하는 사 람들이 행복해야죠. 그들이 힘들어 하는 걸 지켜보며 행복할 수는 없어 요. 나는 그렇게 속 편한 사람이 아 니니까.”
지키고 싶다.
지금 이 행복을.
지금 이 삶을.
강진호도 안다. 이건 너무 이기적 인 생각이다.
적어도 무인계의 존속과 미래를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건곤일척의 도박을 벌이는 청마의 대의에 비한 다면, 이건 너무나도 이기적인 한 인간의 욕심에 불과하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렇기에 싸울 수 있었 다.
작으니까.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작은 욕심이니까.
그마저도 손에서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연하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강
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간다고요?”
“나쁜 새끼야.”
최연하가 주먹을 움켜쥔다. 꽉 쥔 그 주먹이 최연하의 속내를 말해주 는 것 같다.
“그러다 죽으면? 진호 씨가 죽으 면 남은 사람들은 하하호호 행복하 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강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당신 주변 사람들이 있어야 당신 이 행복한 것처럼, 당신이 있어야지
당신 주변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 는 생각은 왜 못해요! 다 아는 척 굴지만, 하나도 모르잖아!”
“진호 씨, 나는요……
최연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린다.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 려다보았다.
저 얼굴을 더는 마주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살아만 있으면…… 살아만 있으 면 행복은 찾을 수 있잖아요. 지금
은 조금 불행해지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찾을 수 있잖아.”
“ 저는••••••
최연하가 강진호에게 걸어와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척이라 도! 이 나쁜 새끼야! 사람이……
그 순간, 강진호가 최연하를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사람이••••••
최연하가 강진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뒷머리를 쓸어내린 강진호 가 가만히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살아 돌아올 거예요.”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야.”
최연하의 흐느낌 소리가 아프게 귀를 파고든다. 손끝에서 그녀의 떨 림이 느껴진다.
다시 이 손에…….
이 행복을 움켜잡기 위해.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다.
두 사람이 선 해안에, 그 해안에 닿은 짙은 바다 위로…….
새하얀 눈■이 내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느리게만 가는 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