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84)
마존현세강림기-1986화(1983/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21화)
5장 선언하다 (1)
툭.
숟가락이 테이블 위로 떨어진다.
“이것도 이젠 슬슬 질리는군.”
“……이제야?”
“흐음, 나도 변했어. 예전에는 다 썩은 밥도 일주일 내내 감사하게 먹 었는데.”
백연흥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보통 좋은 말로 쓰이기 마련이지만, 이건 좀 경우가 다르다. 이건 변하지 않 는 쪽이 정신병자다.
“쓰레기를 잘 먹던 시절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 봐야 하는 것 아닙니 까?”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지.” 혹왕이 테이블 위에 놓인 전투식 량을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는다.
“리우양.”
“예, 흑왕이시여.”
“상황은?”
리우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는 입을 열었다.
“우선…… 20여 개국 정도는 저 희의 입장을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대신 제 쪽으로는 핵을 쏘지 말 아달라고 했을 테고?”
“그렇습니다.”
“ 인간이란.”
혹왕이 낮게 웃는다.
사람은 이득에 민감하다고 하지 만, 그건 모르는 이들이나 하는 말 이다. 사람은 이득보다 손해에 배는
더 민감하다.
이득을 나눠 먹을 때는 그래도 양보라도 할 수 있고, 제 몫이 좀 적다고 해도 참고 넘어갈 수 있지 만, 제게 손해가 돌아온다 싶으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대신 외부로 발설하지는 말아달 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체면은 차리시겠다, 이거겠지.”
흑왕이 딱히 흥미롭지는 않은지 권태로운 눈으로 리우양을 바라보았 다.
“자잘한 나라들이겠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러시아와
일본 쪽에서도 우리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그래?”
흑왕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이 소식은 꽤 즐겁다는 듯 말이다.
“아무리 ICBM이라 한들 거리가 가깝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위협이 되는 모양이로군. 일본이야 그럴 만 하지만, 러시아는 의외야. 그 넓은 땅에 핵 몇 발 떨어지는 것 정도는 코웃음도 안 칠 줄 알았는데.”
“러시아는 핵을 두려워한다기보다 는 중국 내부에 무인 자치령이 생기 는 것을 꽤 반기는 것 같은 기색이
었습니다.”
“주변국의 내부에 암 덩어리가 생 기는 건 환영이라 이 말이로군. 확 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리우양이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과 미국은 아직 입장을 밝히 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풀어놓 은 개들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서 인민해방군이 이쪽으로 집결하고 있 는 정황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그건 당연한 수순이다.
설사 공격할 생각이 없다 하더라 도 무언가 하는 시늉은 해야 하니
까. 이렇게 광장 한중간에 폭탄이 떨어진 상황에서 손 놓고 구경하고 있다가는 민심을 어찌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혹여 자치구를 허가한다고 해도 국경은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야. 전 차와 철조망으로 그어지는 국경이라 니, 꽤 로맨틱하지 않아?”
“……끔찍합니다.”
“낭만이 뭔지 모르는군.”
혹왕이 낮게 웃었다.
“제 생각에는 중국이 구경만 하지 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군.”
“……어찌 생각하십니까?”
“움직일 거라면 진즉에 움직였겠 지.”
흑왕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사람이라는 건 손해 보는 걸 싫 어한다니까. 봐봐, 지금 우리가 보유 하고 있는 핵이 중국만 겨누고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이 핵이 어디로 날아갈지는 아무 도 모른다.
전세계 어디든 이 핵의 공격 목 표가 될 수 있다.
“전 세계가 그 리스크를 공유하는
거지. 그런데 그 리스크에 대한 해 결을 중국이 단독으로 한다?”
그럴 리가 없다.
괜히 나섰다가 중국 땅에 모든 핵이 떨어지는 날에는 중국은 멸망 이다. 대부분의 핵이 다 격추된다고 해도, 도심 한가운데 단 한 발의 핵 만 떨어져도 최소한 정권이 날아간 다.
문제는 이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바로 이 정권의 수장들이라는 점이 었다.
“왜 그들이 자신의 입지를 걸고 그런 모험을 해야 하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리스크만 가득한 일 을?”
“하지만 기다린다고 해도 리스크 는 있지 않습니까? 자치구가 생기니 까요.”
“나는 뭐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 고 생각하지만…… 설사 그들이 자 치구를 증오한다고 해도 그 증오가 그만한 리스크를 무릅쓸 만큼 대단 할까?”
“사람은 목숨을 걸고는 도박을 하 지 않는 법이지. 기껏해야 팔이나 다리 정도를 걸 뿐이야. 목숨을 걸
고 도박을 할 정도의 미친놈은 애초 에 한 국가의 수장이 될 수가 없어. 지독하게 이성적이기에 오히려 움직 이지 못할 거야.”
흑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심지어 단호하게 결심을 한다고 해도, 이제는 미국이 중국을 내버려 두지 않을걸? 괜히 건드렸다가 미국 에 ICBM이 쾅! 하고 떨어지는 날 에는?”
“……그것만은 절대 피하고 싶겠 군요.”
“그렇지. 사람은 언제나 차악을 선택하는 법이지. 그건 차악이 현명
한 길이기 때문이 아니라 최악만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야. 최악은 이 기지에서 핵이 발사되는 거다. 그게 어딜 향하든.”
“그럼••••••
“아마 시간이 적당히 때우다가 결 국 인정하는 수순으로 가겠지. 그전 에 한 번 엉덩이를 걷어차 주기는 해야겠지만.”
리우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전의 핵심은 단 하나다.
중국 외부를 위협의 범위 안에 넣는 것.
만약 그들이 중국을 인질로 잡고
중국 정부와 협상하려 했다면 결과 는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중국은 웬만한 피해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 할 수 있는 나라니까.
하지만 생각해야 할 머리가 여럿 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각자 생각하는 이득과 손해가 달 라지니까. 거기에 한정된 시간이 더 해진다면 결국은 결론을 내리지 못 하게 된다.
그리고 확고부동한 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이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위 험부터 피하기 마련이다.
“후우.”
리우양이 몸을 조이는 것 같은 압력에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가 반대편에서 이 상황을 해결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 른다.
이 계획은 그리 대단한 것도 아 니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분명 그 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허점이 군데 군데 존재할 것이다. 일을 실행하는 방식 역시 치밀하다기보다는 과격했 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 다.
이 스케일이 그 모든 단점을 묻
어버리니까.
“무인들의 반웅은 어떻지?”
“고무적일 정도입니다.”
“흐음, 커뮤니티? SNS?”
“그 정도가 아닙니다. 중국 각지,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몰려든 무인 들이 이 주변으로 집결하고 있습니 다.”
“••••••오?”
“주변을 지키는 공안과 군인들이 접근을 차단해 보려 하고 있지만우••…
“무리겠지. 화기로 무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발포 자체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니까.”
“예, 그렇습니다. 덕분에 지금 지 상에는 무인들이 잔뜩 몰려 있습니 다. 인의장막이 쳐진 이상, 저들을 소리 없이 뚫고 들어오는 것은 불가 능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진입을 시 도하는 순간, 우리가 먼저 알게 될 겁니다.”
“미사일이 발사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은 충분히 해줄 수 있 다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호응이 좋군?”
“이곳으로 오라고 하신 분은 혹왕 아니십니까?”
“……말이 그런 거지.”
“웹상으로 전 세계가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무인들이 라고 해서 상황을 모를 리가 없지 요. 저들의 운명을 바꾸는 일인데, 동참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 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한 모양이야. 도무지 세상의 흐름을 따 라갈 수가 없군. 늙었어.”
리우양이 미소를 지었다.
무인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는 게 가장 고무적이다. 그건 혹왕의 사상 과 목적에 다른 무인들이 공감했다
는 의미이니까.
그렇게 된다면 자치구를 얻은 이 후, 무인들이 그 공간을 채우기 시 작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자치구 를 열지 못하는 게 아니라, 기껏 얻 어낸 자치구가 외면받는 것 아니겠 는가.
“얼마 남지 않았군요.”
리우양의 두 눈이 들끓기 시작했 다.
꿈이다.
그래, 말 그대로 꿈이다.
꿈은 이룰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 기 때문에 꿈이라 불린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 흑왕의 꿈에 동조한 이들이다. 실현 가능성이라고는 단 1%도 없을 것 같은, 그 무모한 꿈에 목숨을 던졌 다.
아직 살아남은 이들도…….
그 과정에 죽어간 이들도…….
오로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제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리유양은 그 모든 게 이들에게 대단한 대의가 있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를 볼 때마다 항상 그런 생 각을 했다.
광대한 목적을 위해서 제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이들. 그들 에게 있어서 정말 그 목적이 목숨보 다 중요했을까?
‘그럴 리가 없지.’
세상이 바뀐다고 하지만, 사람에 게 있어서 제 목숨보다 중요한 게 없다는 건 바뀌지 않는 진리다.
과거라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일. 하 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리우양의 시선이 흑왕에게로 향했 다.
‘목적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광대한 목적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 목적을 말하 는 이가 누구냐다.
그 말을 한 이가 흑왕이기에.
이 가능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무모한 일에 모두가 목숨을 바쳤다. 오직 흑왕이기에.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그 황당한 계획을 현실로 실현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흑왕의 말씀 대로 되겠군요.”
“ 흐음.”
흑왕이 턱을 괴고 눈을 찌푸렸다.
그 표정의 변화를 본 리우양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지금은 눈을 찌푸릴 상황이 아니라 웃어야 할 상 황 아니던가.
“……걸리는 게 있으십니까?”
“변수가 없는 건 아닌데 말이 야……
혹왕의 손가락이 제 볼을 가볍게 두드렸다.
“너무 잠잠하지. 그 양반이 너무 잠잠해.”
“그렇게까지 말을 했으면 잠자코
지켜볼 사람이 아닌데. 말을 안 해 도 칼 들고 쫓아올 사람이, 내 제안 을 뭉개놓고도 침묵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대체 뭘 생각하는 거 지?”
리우양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흑왕께서 그분을 왜 높이 평가하 시는지 이제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잖 습니까?”
“그렇지.”
“각국의 정상들도 어쩌지 못하고 관망하고 있는데, 그분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힘으로 여길 뚫고 들어 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분은 이 세상을 지키겠다고 하셨습니다. 하 지만 힘을 사용하는 순간, 제 손으 로 이 세상을 부수게 될 겁니다.” 딜레마다.
강진호가 이곳을 뚫어낸다면 흑왕 은 미련 없이 미사일을 발사해 버릴 것이다. 혹왕의 생각하에 최악은 무 인들이 세상의 적이 되는 게 아니 다. 이 발악을 하고도 어떠한 성과 도 내지 못하고 제압당하는 것이다.
이탈과 발톱이 뽑힌 늑대는 개만 도 못한 법. 그때부터 무인들을 썩
은 고기라도 얻어먹기 위해 평범한 이들에게 재롱을 떠는 처지가 될 것 이다.
‘그럴 바에는 모조리 부숴 버리는 게 낫다.’
과학과 문명이 무너지면 무너질수 록 무인들의 입지는 올라가는 법이 니까.
“그런 걸 생각 못할 양반은 아니 지.”
“그럼 어째서……
“문제는 단 하나야.”
“ 예?”
흑왕이 입가를 뒤틀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내가 생각도
못한, 이상한 짓을 벌이거든.”
“침묵이 길수록 더욱 그렇지. 분 명 뭔가를 준비하고 있을 거야. 나 는 그게 걱정이군.”
리우양이 흑왕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 모르겠군.’
저게 정말 걱정하는 이의 얼굴인 가.
혹왕은 마치 생일 파티에 초대한 친구를 기다리는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왕도 생각하지 못하는 이상한 짓이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번만은 흑왕께서 틀리셨습니다.’ 하지만 그건 실수나 잘못이 아니 다. 사람이 겸손한 것을 잘못이라 할 수는 없으니까.
과거의 혹왕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흑왕은 절대 강진호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적어 도 리우양은, 그리고 십이비도 모두 가 그렇게 굳건하게 믿고 있었다.
오직 흑왕만을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