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86)
마존현세강림기-1988화(1985/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23화)
5장 선언하다 (3)
“빌어먹을.”
차이커창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저 미친놈들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전차의 벽.
인민해방군이 동원한 전차들이 마 치 기차라도 되는 양 끝없이 줄을 지어 서 있다. 한 방향으로 일제히 포구를 겨눈 전차들의 앞에 보이는 것은 넓은 들판, 그리고 그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들이 모두……
무인이다.
혹왕의 방송을 보고 그 의견에 동조한 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인민해방군이 저들을 들여 보내줄 리는 없지만, 저들은 무인. 아차 하 는 순간, 이미 수백이 넘는 이들이 안으로 들어가 진을 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불어날 뿐.
‘천 단위는 가뿐히 넘어가는군.’
전 세계에 존재하는 무인의 수를 감안한다면, 천이라는 숫자가 그리 대단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차이커 창이 이를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곳이 불과 천에 불과한 수로도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기에 차고 남는 지형이라는 점이다. 단 하나의 입구를 가로막기에 천 명은 과할 정도로 많다.
게다가 저 망할 놈들은 하나같이 무인이다. 일반 병력으로 따진다면
만 명 이상이 운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저 망할 무인 놈들의 태반이 홍 왕계라는 점이었다.
차이커창이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저들이 창왕계의 패잔병이었으면 이리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댈 곳이 없는 그들에게 흑왕은 어 쩌면 새로운 탈출구가 되어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다.
기댈 곳이 없는 창왕계의 무인들
이 아니라, 홍왕의 은혜를 받은 홍 왕계의 무인들이 자신의 자리를 탈 주하여 저곳에 합류하고 있다.
“이 벌레 같은 놈들이!”
우드드득!
차이커창의 주먹이 거친 뼛소리를 만들어냈다.
저곳에 합류했다는 것은 지금부터 중국을 이끌어갈 홍왕에게 불신을 보인다는 말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 하자면, 홍왕에게 반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 사실이 차이커창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차이커창 님.”
“ 안다.”
차이커창이 낮게 심호홉을 했다.
노기가 가시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은 쓸데없이 화를 내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그가 해야할 것은 이 곳의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
하지만…….
‘틈이 없어.’
대단히 전술적인 배치라든가, 뭐 이런 게 아니다.
그저 뚫을 수 없는 곳에 뚫을 수 없을 만큼의 인원이 몰려들었을 뿐 이다.
하지만 차이커창은 알고 있다. 기 기괴괴한 전략과 배치로 뚫려야 할 곳을 막아내는 것보다 누구도 뚫을 수 없는 곳을 선점하고 그곳을 지키 도록 만드는 게 몇 배는 더 어렵다 는 것을.
‘무서운 적이다.’
딱히 무리하지 않으면서 최선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간다.
이런 이가 상대하기 가장 어렵다.
“얼마나 더 몰려들고 있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 다.”
“……빌어먹을.”
차이커창이 초초한 듯 얼굴을 주 물렀다.
함락?
어렵지 않다. 그들에게는 이곳에 있는 이들의 몇 배는 되는 질 좋은 병력이 있으니까. 아니, 이런 어중이 떠중이들 따위, 굳이 대규모를 이끌 고 올 것도 없이 홍왕계의 정예를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박살 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시도하는 순간 무인 들의 세상은 끝난다.
“손도 발도 못 쓴다는 게 이런 말 이로군.”
차이커창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패배까지 외통으로 이어진 길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이미 승부는 났다. 그의 말은 이 제 적의 움직임을 따라 한 방향으로 만 이동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 도 항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항복해 버리면 모든 게 끝나기 때문이다.
‘이런 결말을 맞이할 거라면 우린 대체 왜 그리 오랜 시간을 피 흘려 싸워왔는가.’
허무하기 짝이 없다.
개미는 알 수 없다.
개미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다른
개미와 싸워 자신의 왕국을 지킬 뿐 이다. 수도 없이 많은 동료의 목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돌 진해 싸운다.
그 치열한 싸움을 통해 지키려는 왕국이 다음 날 굴삭기의 무참한 침 입으로 모두 부서지고 콘크리트로 뒤덮일 예정이라 한들, 개미는 싸우 는 수밖에 없다.
차이커창은 그런 개미가 된 심정 이었다.
저 흑왕이 그들과 창왕계의 싸움 을 대체 어떤 눈으로 지켜보았을까 를 생각하면 달군 숯을 삼킨 것처럼
뱃속이 불타오른다.
상황이 여기까지 가버린 것도.
그리고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차이커창 의 속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정부 쪽도 반응이 없나?”
“그쪽도 딱히 수가 없는 모양입니 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는다고?”
“방법은 여러 가지가 거론된 모양 입니다. 일단 벙커버스터로 지형 자 체를 날려 버리는 방법과, 내부로 신경 가스를 주입해 무력화시키는 방법, 그리고 공개 되지 않은 신무
기를 활용하는 방법까지 나온 모양 입니다만……
부관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 어떤 방법이라고 해도 리스크 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던 모양입니 다. 주전론자들과 회의론자들이 치 열하게 언쟁을 벌이고 있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가 있는 놈은 없다는 거로군.”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차이커창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저들을 탓할 수 없는 일이 다. 그가 저 입장이라고 해도 감히 ‘내가 책임진다’라는 말을 입에 올
릴 수 없을 테니까.
책임?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사태가 벌 어졌을 경우, 대체 누가 그 상황을 책임질 수 있나. 이건 한 개인이나 국가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 선다.
심지어 전쟁이라면 눈이 돌아가는 저 미국조차 움직이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를 어마어마하게 압박해 대는 군수기업들조차도 이번 일에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 다.
보면 볼수록 자신의 무력함을 실
감하게 되는 광경이었다.
“……이건 답이 없어.”
적어도 저 망할 인의장벽만 없었 어도 어떻게든 진입을 시도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의 가장 충실한 동료여야 했던 이들이 말 몇 마디에 적으로 돌아선 것이 가장 큰 패착이 었다.
차이커창이 바닥을 걷어차려는 바 로 그 순간이었다.
RRRR.
그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차이커창이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지체 없 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현수!”
수화기 너머에서 이현수의 목소리 가 들려왔다.
[어때?]
“최악이다. 여긴 못 뚫는다.”
[대충 봐도 그럴 것 같더군. 현장 에서 봐도 마찬가지란 말이지?]
“홍왕이나 마왕께서 직접 나서면 진입 자체는 가능할 거다. 하지만우••…
[그 두 사람이라고 해도 내부에 있는 십이비도와 혹왕의 이목을 속 이는 건 불가능하겠지. 입구부터 제
어실까지 진입하는 길은 외길이고.]
“그렇다.”
[됐어. 쓸데없는 짓 말고 철수해.]“……무슨 생각이라도 있나?”
[생각은 내게 있는 게 아니라 회 주님께서 하신 모양이다.]“뭐?”
[어차피 너희도 곧 알게 될 테니 까 대충 설명해 주지. 어떻게 할 거 냐면…….]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을 듣는 차이커창의 얼굴이 기묘하게 뒤틀렸다. 한참 동안 말없이 이현수 의 설명을 듣던 차이커창이 전화기
를 부러져라 움켜잡았다.
“그,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지 껄이고 있는 거냐?”
[그럼? 다른 방법은 있고?]차이커창이 입을 닫았다.
말도 안 된다.
저런 얕은 수에 흑왕이 당할 리 가 없다.
하지만…….
‘다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야.’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전무한 것 보다는 낫다. 되든 안 되든 밀어붙 여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게 정말 마왕께서 하신 생각이 냐?”
[그래. 나로서는 상상도 불가능한 일이잖아?]“그렇겠지.”
차이커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 다.
확실히 이건 강진호가 아니면 떠 올릴 수 없는 발상이다. 그리고 같 은 생각이라 하더라도 강진호의 머 리에서 나왔다면 성공률 자체는 배 로 뛴다.
그럴 수밖에.
저 흑왕이 어떤 논리로 움직이고,
그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 지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 람은 이 세상에 강진호 하나밖에는 없으니까.
‘통할 리가 없어.’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하지만…….
‘아니. 통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 어.’
이건 논리의 영역이 아니니까.
‘게다가 실패한다고 해도 잃는 게 없다. 성공하면 기회를 얻고 실패한 다고 해도 원점이야.’
그럼 시도하지 않는 게 더 이상 한 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 마음에 걸 렸다.
“이봐, 이현수.”
[말해.]
“마왕께서 정말 이 방법을 시도하실 생각이냐? 내가 아는 마왕께서는••…
[뭔 말 하는지 안다. 나도 똑같은 걸 물어봤다.]
[회주님께서 그러시더군. 세상이 뒤틀리고, 모두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싸우고 있는데, 자기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이 야. 저만한 적을 상대하려면 팔 정 도는 내줘야 한다고.]
‘팔이라……
틀린 말은 아니다.
“언제 시행할 생각이냐?”
[오늘 바로.]“……합의가 끝났나? 벌써?”
[아니. 지금 조율 중이시다. 각국 의 입장을 모아야 하니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지.]차이커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홀로 결정하고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건 다른 의미로 어마어마한 스 케일이군.’
이건 각국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시도해 보지 않고 저들 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여주 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핵을 맞는 것이 최악이라면, 이건 정치적 사망 선고다.
“ 알겠다.”
차이커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잡히는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그 빛이 너무도 미약하기는 하지만,
이 짙은 어둠 속에서는 광명이나 다 름없다.
“그럼 우린 뭘 하면 되지?”
[인원을 맞춰 줘야지.]“음!”
차이커창이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왕께서 직접 나서실 거다. 더 필요한 인원이 있다면 최대한 지원 하지.”
[선발은 회주님이 하실 거야. 요 청이 오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 둬.]“ 알겠다.”
[그럼 지켜보라고.]전화가 끊긴다.
차이커창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전화를 바라보았다.
‘그 강진호가……
휴대폰을 잡은 차이커창의 손둥에 힘줄이 돋아난다.
‘그래. 적은 너무도 강하다.’
그렇다면 이쪽도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싸울 수밖에 없다. 뒷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겨만 낸다면 뒷일이야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이쪽도 그만한 각오를 해야겠지.’ 이를 갈아붙인 차이커창이 고개를
돌려 미사일 발사 기지의 전경을 두 눈에 담았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진은 최대한 확보해 둬.”
“예!”
“작업이 끝나는 대로 복귀해라. 나는 먼저 홍왕을 뵈러 가겠다.”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차이커창이 몸을 돌렸다.
몇 발작을 걸은 그가 허탈하게 웃어버린다.
‘이건 정말 두 사람의 싸움이로군.’ 수를 던지는 것도, 수를 받는 것도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 전 세계가 뒤틀리고, 뒤흔들린다.
“홍왕께서 아시면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군.”
홍왕이 그 거인들의 싸움에 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차이커창에게도 꽤 언짢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저건 지독하게 큰 싸움인 동시에, 지독하게 작은 싸움이니 말이다.
세상의 운명을 건 싸움이자, 고작 두 사람의 결착일 뿐이다.
그래, 고작 두 사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