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87)
마존현세강림기-1989화(1986/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24화)
5장 선언하다 (4)
[이걸 대체……』
강진호가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아 있다.
하지만 그 소파 앞에 보이는 것 은 평소처럼 총회의 이사진들이 아 니었다.
상석과 짝을 맞추던 긴 소파들이
치워진 곳에 커다란 모니터들이 설 치되어 있다. 연락을 하자마자 파견 나온 이들이 화상 회의를 할 수 있 는 설비를 단 30분 만에 설치해 버 린 것이다.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딱히 어렵지는 않지.”
화면 속에서 멍한 얼굴로 강진호 를 바라보던 이가 고개를 돌린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 고한봉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총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는……비전을 설치한 이들과 함께 총회
에 당도한 고한봉이 뭐라 형용하기 힘든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은 주머니 안에 있는 휴대폰을 움켜잡고 있었 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의의 내용은 청와대에도 그대로 전송되고 있다.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우선 그에게 판단을 일임한다는 뜻. 처음 논의했던 그대로 말이다.
고한봉이 어깨를 짓누르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다시 한번 강진호 를 바라보았다.
그는 저 화면 건너편에 있는 이
들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애써야 했다. 아 무리 화면 너머라지만 그 이름들은 결코 가볍지 않으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태연하기 짝이 없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담배 를 물고 있는 강진호를 보고 있자 면, 저들의 직함이나 이름이 뭐 그 리 대단한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회주님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정말 괜찮겠소?]
“타국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희의 생각은 처음부터 같았습니다.
이건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 가 아무리 애를 쓰고 고민하다고 해 도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 다. 나무 위에 사는 포유류는 아무 리 머리를 짜내도 심해에 사는 어류 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이들이 일제 히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내리는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무책임하기 짝이 없군.]
[이 모든 사태에는 대한민국의 책
임도 있다는 걸 잊지 않아줬으면 좋 겠소.] [그게 중국이 할 말이오?] [크흠.]
공식적이지 않은 외교 채널.
누구의 입으로도 밖으로 새어 나 갈 일이 없는 자리라 그런지. 나누 는 대화들은 꽤 거칠고 노골적이었 다.
[시행이야 어렵지 않지! 하지만 그 리스크는 누가 감당하겠냐는 거요?] [애초에 세계의 운명을 저들에게 맡길 수 있소?] [저쪽의 대표라면 중국의 홍왕이나와야 하는 것 아니오? 한국의 무 인이 저쪽 세상을 대표할 자격이 있 는가부터 논의를 해야 하지 않소?] [이걸 공표하면 돌아올 반응을 고 려하지 않을 수 없소.]
누군가는 한 국가의 수장.
누군가는 한 국가의 병권을 총괄 하는 이.
그리고 누군가는 국가를 넘어서 여러 국가의 연합, 그 연합에게 모 든 권한을 일임받은 이.
각양각색의 입장에서 정리되지 않 은 의견이 쏟아졌다.
고한봉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다.
난잡하게 흘러나오는 말들이 고한 봉의 귀를 어지럽힌다.
‘동시 통역사들이 고생이로군.’
그들도 지금 통역해야 할 말과 걸러야 할 말을 구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앙에 있는 화면에서 한 사람이 입을 열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진한 푸른빛을 띤 정복과 왼쪽 가슴에 장식된 빽빽한 약장들이 이 자의 신분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귀하의 의견대로라면 전 세계가
자신의 책임을 그쪽으로 돌려 버렸 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오.]
강진호가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았 다.
[이 리스크는 절대 작지 않소. 국 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정 권이고, 군이오. 남이 아니라.]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이상하다?]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은 강진 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지켜야 하는 건 국민 의 생명이지.”
“정권의 체면이 아니라.”
화면 너머에서 강진호를 바라보던 이가 입을 꾹 닫는다.
“군인인가?”
[본분은 군인이지.]“그럼 잘나신 정치인분들의 체면 이나 안위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위해 가장 최선의 선택이 뭔지를 고 민해야겠지. 그렇지 않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바로 긍정인 법.
“뒤처리를 하라고 있는 게 정치인 이지. 지금처럼 정치인이 한 짓을
국민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게 아니 라.”
강진호의 시선이 화면 전체를 담 았다.
“대안이 있으면 그 대안을 따르지.”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이 회의에 얼굴을 들이민 것도 그들에게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니, 대안이 있다고 한들 그 대안을 실행할 용기가 없 다.
그들이 겁쟁이여서가 아니라, 이 일의 책임은 누구도 질 수 없기 때 문이다.
“대안이 없다면 내 방식대로 하게 해주면 돼. 그럼 결과를 가져다줄 테니까. 떠들어 대는 이들이 있겠지 만, 결과를 들이밀면 면피는 어렵지 않겠지.”
[으음.]꽤 여러 얼굴들이 있는 자리였지 만, 이 자리에서 발언권을 가진 곳 은 딱 세 곳뿐이다.
[그렇다 한들…….]“불문에 붙이지.”
[음?]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건 내가 정리
해 주겠다. 나는 그런 데는 관심 없 어. 그리고 그것 역시 국가를 위한 방편 중 하나라는 걸 인정하는 쪽이 야.”
몇몇 사람의 얼굴의 눈에 띄게 변했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닐 것이 다. 능숙하게 안색을 유지하는 이들 도 뒤로는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니 까.
이들 중 절반쯤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이미 저들과 밀약을 나눴 을 것이다. 지금 강진호는 혹시 저 안에 있을지 모를 그 증거를 없애주
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리는 어찌할 셈인가?]“그건 알아서 하지. 나는 아무 데 도 손대지 않고 빠져나갈 거야. 최 초로 진입하는 이들을 합동으로 구 성한다면 말이 나올 일이 없겠지. 그리고 그건……
강진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누군가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기 도 하고.”
[…….]강진호의 시선을 받은 중국 정부 측이 눈을 찌푸렸다.
[이건 중국 내부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오. 내부 자료의 권리를 요구할 생각은 없소. 다만, 방식은 전량 폐기 이외에는 없 소.]
“그렇다는군.”
중국 역시 쉽사리 움직일 수 없 을 것이다.
저들이 테러리스트와 밀약을 나누 었다는 증거를 확보한다면 커다란 이득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여 밀약을 나눈 이들의 수가 그들 의 예상보다 많다면 거꾸로 중국이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이다.
다수의 선택은 옳은 것이 되어버
리고 그들의 치부를 드러낸 중국을 향해 모두가 일제히 칼끝을 돌릴 테 니까.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는 없다.
“그러니 결정해.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어. 실행할 용기가 없다면 책임지는 자세라도 보여.”
낮은 한숨소리들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승인하지.]그 정적을 깬 것은 중앙의 비전 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낸 이가 가지는 비
중은 이곳에 있는 이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높을지도 모른다.
[유럽도 승인한다. 다른 방법이 없군. 그쪽 세계의 문제를 해결 할 방법은 그 쪽 세계에서 찾아야 한다 는 것에 동의한다.]저쪽은 이미 위긴스가 손을 최대 한 써두었다.
원탁과 긴밀히 공조해 오던 유럽 연합이니만큼, 지금의 사태를 해결 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이미 결정이 끝나 있었을 것이다.
그럼 남은 곳은 한 곳.
[중국은…….]화면 너머로 보이는 동양인이 심 각한 얼굴로 앞쪽을 바라본다. 하지 만 그의 시선은 카메라나 비전이 아 니라 그 뒤쪽에 있는 프롬프터에 가 있을 것이다.
전면에 나선 이들은 수장이 아니 지만, 각국의 수장들 역시 지금 이 곳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고한봉 을 보낸 한국의 대통령처럼 말이다.
[승인한다. 다만! 중국이 이 모든 것에 가장 큰 리스크를 짊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줬으면 좋겠군.]“그건 그쪽들이 알아서 협의할 일 이야.”
강진호가 타들어 간 담배의 재를 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이들 중에 반대 있나?” 대답이 없다.
“반대 없으면 바로 진행하지.”
[준비는 얼마나 걸리나?]“준비할 건 없어. 그쪽이 준비가 끝나면 바로 움직인다.”
[그럼 두 시간 이내에는 준비가 끝날 거다.] [이쪽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그럼 두 시간 뒤에 움직이지.” 결정이 났다.
그 일의 중대성에 비한다면 너무
나도 간단하게.
하지만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이곳의 모두는 누구라도 나서서 이 사태를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 스스로 감당하지 못 할 일을 만난 사람이 누구나 그러하 듯이.
“이쪽에서 벌인 일은 이쪽에서 해 결한다. 단……
강진호가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 었다.
“한 가지는 약속해 줘야겠어.”
[뭔가?]“놈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무인들에게 묻지 않아줬으면 좋겠 군. 우리가 미친 몇 놈들에게 피해 를 입는다고 일반인들을 적으로 돌 리지 않는 것처럼.”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죽어야 끝 나는 전쟁이 아니라면, 결국은 공존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역시 노력하 겠다. 그러니 적어도 생존이 아닌 공존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건너편에 보이는 화면들 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합니다.”
[…….]정복을 입은 이가 낮게 헛기침을 했다.
[이 모든 사태가 귀하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소. 대부 분의 무인들은 그저 무고할 뿐이라 는 것도.] [전쟁을 바라는 이는 누구도 없 지. 특히나 그 전쟁이 내전이라면. 귀하의 요청은 최대한 수용하도록 하겠소.] [마찬가지요.] [이쪽 역시 트러블은 원하지 않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모든 무인들을 대신 해.”
[다만, 그건 귀하가 성공했을 때 의 이야기요.]“당연히.”
강진호의 눈이 차게 빛났다.
“실패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 다.”
[믿음직스럽군. 준비가 끝나는 대 로 연락하지.]비전이 하나둘 꺼진다.
소파에 다시 앉은 강진호가 새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인다. 몇 모금 담배를 빨아댄 강진호가 고 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회주님.”
고한봉이 불러오자 강진호가 고개 를 끄덕였다.
“압니다. 이제 시작이죠.”
“두 시간이라고는 했지만, 준비를 마치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이건 신속할수록 좋은 일이 니까요.”
“예.”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포유류는 어류를 이해할 수 없다
라……
그저 설득을 위해 한 말이겠지만, 그 말이 일반인인 고한봉이 무인들 을 바라보는 시각을 극명하게 나타 내 준다.
설사 이 벽을 넘는다고 해도 무 인들에게는 앞으로 넘어야 할 것이 산더미 같을 것이다. 우선은 저 거 대한 인식의 장벽부터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내 역할이 아니야.’
그의 역할은 그들이 그 장벽 앞 에 설 기회를 주는 것.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라도.
‘ 청마.’
강진호가 눈을 떴다.
‘이제 끝내자. 길고 길었던 너와 나의 싸움을.’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제 그와 청마 사이에 방해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