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88)
마존현세강림기-1990화(1987/2125)
마존현세강림기 80권 (25화)
5장 선언하다 (5)
“아첸 [亞 B]!”
침상 아래에 아이를 밀어 넣은 이가 짐 더미를 마구 무너뜨려 앞을 가렸다.
“아, 아버지……
“나는 가야 한다. 소리 내지 말고 이곳에 숨어 있어라. 저들이 갈 때
까지 며칠이든 이곳에서 버텨야 한 다!”
“같이 달아나요, 아버지!”
“안 된다.”
양쉬가 굳은 얼굴로 양첸을 바라 보았다.
“저놈들은 내 시체를 찾기 전까지 는 멈추지 않을 거다. 같이 달아난 다면 너도 위험하다.”
“아, 아버지……
“아첸, 내 말 똑똑히 듣거라. 절 대 복수는 꿈도 꾸지 말아라!”
“……어째서요!”
양첸이 발악하듯 대들었다.
“죽여 버릴 거예요. 저 망할 놈 들! 저 개 같은 놈들을 다 죽여 버 릴 거라고요!”
“안 된다고 하지 않느냐!”
양쉬가 양첸의 멱살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무학은 잊어라.”
“배운 것을 모두 잊고, 성도 이름 도 모두 버리고 그저 양인으로 살아 가라! 이제 이 세상에는 더는 무인 들이 설 자리가 없다.”
“저들의 무기를 봤지? 저 총포와
대포를! 지금 당장이야 어쩔 수 있 을지 모르지만, 결국 세상에서 무인 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무인으로 살아간다면 남는 것은 고통밖에 없 다.”
“그, 그건…… 저 양인들과 왜놈 들이……
“청도 마찬가지다! 무기란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되돌릴 방법이 없 다. 지금은 저 무기를 양인들만 사 용하지만, 언젠가는 청도 저런 무기 로 무장을 하게 될 게다. 그럼 더더 욱 무인들은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아버지……
양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의화단을 이끌고 외세에 맞서 이 나라를 지키 려 했다.
반청복명(反淸復明)이든, 부청멸 양(扶淸滅洋)이든 상관없다. 그가 지키려 한 것은 나라가 아니라 이 땅 위를 살아가는 이들이니까.
하지만 결국은 이곳까지 왔다.
저 외세들은 단숨에 베이징까지 밀고 들어와 이 땅을 지옥도로 만들 고 있다. 무학을 동원해 싸워도, 나 라의 힘을 모조리 끌어내도, 양민들 의 지지를 받고 그들의 지원을 등에
업어도…… 도무지 저들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시대가 바뀐 거야.’
뒤처진 자는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늦었나.’
양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니, 차라리 잘됐다. 어설프게 달아나느니…….
“절대 소리를 내면 안 된다. 뭘 보더라도!”
“기억해라,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를. 너는 나와 같은 끝을 겪지 마 라. 그 손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가 라. 그게…… 그게 옳은 길이다. 명 심해라!”
“아, 아버……
양쉬가 옆에 있던 옷가지를 움켜 잡아 양첸의 입에 쑤셔 박았다.
“소리 내지 마라. 숙여!”
그를 안으로 쭉 밀어 넣고 앞을 가린 양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나라를 잃은 이들은 비참해질 뿐 이다. 중원인들도 이제는 힘이 없는 설움을 겪겠지. 하지만……
양쉬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무인에게는 그런 힘없는 차 없구나.”
나라조
“필요할 때는 손을 내밀어 라던 이들이, 패하고 나니 사람인 것처럼 우리를 버리는구나.”
“우으•…”
“이제 이 세상에 우리가 쉴 없다.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려 않는다. 그저 이용하다 버려질 다. 그러니…… 너는 무인이 말거라. 내가 가르쳐 준 것은
잊어라. 내 죽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절대 다시는 검을 들지 말아라!”
도와달 모르는
곳은 하지 것이 되지 모두
“우읍!”
“조용히!”
양쉬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보았다.
쾅
문이 단번에 부서지며 안으로 무 장한 군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 온다.
그들이 들고 있는 총구들이 순식 간에 양쉬에게 겨누어졌다.
양쉬가 체념한 둣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건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그의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 가고 있었다.
태연해야 한다.
절대 이곳에 그의 아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 다. 그가 무슨 꼴을 당하더라도.
“기껏 달아난 곳이 여긴가? 양쉬 도 다 되었군.”
양쉬가 눈을 뜨고 걸어 들어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상서 (尙書)……
우전부 상서 첸차오[寄超]를 본 양쉬가 힘줄이 돋아나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국의 군인들과 함께 들어온 상
서. 보통은 매국을 논해야 할 순간 이다. 하지만 양쉬가 이토록 분노하 는 이유는 이자가 매국노이기 때문 이 아니라, 결코 매국노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약속대로 양쉬를 넘겼으니, 황상 의 안전은 보장해 주시오.”
“ 흐음.”
일본군의 복장을 한 사내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료를 모두 팔아넘긴 것 도 모자라서…… 이제는 나까지 팔 아넘기는 거냐, 첸차오! 아무리 황 상이 지고하다고는 하나! 백성을 팔
아넘기는 아비가 어디 있느냐!”
“백성?”
첸차오가 입가에 비웃음을 담았 다.
“너희 같은 무뢰배가 어디 감히 황상의 백성을 참칭하느냐! 너희는 통제되지 않는 군벌일 뿐이다.”
“이••••••
“언젠가는 너희도 쓸어버려야 할 적에 불과했다. 황상의 안전을 위해 죽는 일이니, 영광으로 알아라.”
“……개처럼 이용해 먹고, 필요가 없어지니 삶아 드시겠다?”
“닥쳐라, 무뢰배놈아! 황상께서는
애초에 너희 같은 놈들을 믿지 않았 다! 이런 상황이 아니면 너희의 입 에서 백성이라는 말이 나왔겠느냐? 칼 든 강도나 다름없는 것들이!”
“그래도 죽음만은 가치 있겠군.” 양쉬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홀러 내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갔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외세와 싸웠는가.
하지만 그들은 모조리 저 총칼 앞에 쓰러졌고, 그들이 지키려 했던 나라는 그들을 버리고 있다.
“덧없는 게 강호로구나.”
“쏴라!”
탕탕탕탕탕탕!
양쉬를 겨누고 있던 총이 일제히 발포된다. 양쉬의 새하얀 의복 곳곳 에 구멍이 뚫리며 붉은 피가 사방으 로 튀어 올랐다.
탕! 탕탕탕! 탕탕!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쏟아지 는 총탄이라기에는 과도하다. 하지 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무인이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 아는 이들. 그 몸 을 모두 탄환으로 채워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총은 연이어 발사됐다.
털썩.
전신을 피로 물들인 양쉬가 그 자리에 천천히 허물어졌다.
“개 같••••••
“퉤!”
첸차오가 양쉬에게 침을 뱉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본군 지휘 관이 혀를 찼다.
“그래도 그대들의 입장에서는 애 국자일 텐데?”
“저놈들이 어디 백성과 황상을 위 해서 싸웠겠습니까? 제 털어먹을 이 들이 사라질까 봐 싸운 이들입니다. 애초에 무인이란 그런 존재지요.”
“그건 동감하오. 나도 저 무사 놈 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니까. 불한당 놈들.”
“언젠가는 모조리 쓸어버려야 합 니다.”
“곧 그런 날이 오겠지.”
“그러니 폐하의 안전만은……
“그건 걱정 마시오. 다른 나라들 도 지금 당장 황권이 무너지는 걸 원하지는 않으니까.”
총을 갈무리한 이들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다.
“시신은 어찌할까요?”
“사지를 찢어 내다 걸어라.”
“아니. 잠시만.”
첸차오가 만류하자 지휘관이 눈을 찌푸렸다.
“그래도 그건 과한 것 같소?”
“그런 게 아닙니다. 놈의 몸을 찢 어 내다 걸면 필연적으로 저놈은 애 국자로 남게 될 겁니다.”
“ 호오?”
“그냥 두십시오.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도록.”
“……그거, 정말 잔인한 처사로군. 죽음마저 가치가 없는데, 삶마저 부 정하겠다? 하하하하!”
“저런 무뢰배 놈이 황상을 위해
싸웠다는 평을 듣는다 생각하면 속 이 뒤틀릴 일 아닙니까.”
“마음대로 하시오.”
지휘관이 몸을 돌렸다.
부스럭.
하지만 뒤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밖으로 향하던 이들이 칼날 같은 눈 빛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누구냐?”
첸차오와 지휘관이 뚫어져라 뒤쪽 을 바라볼 때였다.
그들의 눈에 바닥에 쓰러진 양쉬 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 떨리는 손이 필사적으로 들어 올려져 허공을 휘젓는다.
“질긴 놈 같으니.”
탕! 탕탕탕!
권총을 빼 든 지휘관이 양쉬의 가슴에 몇 발의 총알을 더 먹이고는 양쉬 뒤쪽에 있는 침상 아래로도 몇 발을 더 갈겼다.
턱.
허공을 휘젓던 양쉬의 손이 바닥 에 떨어지고, 그의 고개가 모로 꺾 였다.
“이래서 무사 놈들은.”
“질기기가 쥐새끼나 다름없지요.”
“갑시다.”
군인을 대동한 이들이 밖으로 나 간다.
“황궁으로 갈 것이오?”
“예. 부디 백성들을 가여이 여겨 주십시오.”
“흥분한 군인들을 말릴 도리는 없 소. 다만, 신경 써보리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사람이 떠나간 곳이 금세 고요에 물들었다.
“꼬윽••••••
양쉬의 몸에서 튄 피로 붉게 물
든 짐 더미들 사이를 작은 손이 비 집고 나온다. 덜덜 떨리는 그 순이 축 늘어진 양쉬의 손을 움켜잡았다.
“……버지, 아버지…… 아버…… 초점 없는 양쉬의 눈이 무언가를 찾는 둣 짧게 경련한다.
“..체… 아..첸…
“아버지! 끄윽! 끄으윽!”
양첸이 짐 더미를 비집고 나와 양쉬를 끌어안는다. 그의 몸도 양쉬 가 흘린 피로 금세 붉게 물들었다.
아니.
그의 몸의 태반을 적신 것은 자 신이 흘린 피다. 하지만 양첸은 총
알이 몸에 박힌 고통조차 느끼지 못 했다. 이 찢어지는 마음에 비하면 육신의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 니까.
“……없……었어……
“아아•••••• 아••••••
“우리••••••가•••••• 있을•…”
“마, 말하지 마세요! 말하지 마세 요, 아버지! 말……
“검……을 버리……
양쉬의 두 눈에서 빛이 사라진다.
“끄으으……
양첸이 양쉬의 몸을 부여잡고 경 련했다.
울어서는 안 된다.
큰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그에게는 마음껏 울 자유조차 없 으니까.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 인가.
같은 사람인데, 자신들 역시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인데.
“검을…… 버리라고요, 아버지?”
양쉬가 야차 같은 얼굴로 이를 갈아댔다. 그의 두 눈에서 홀러내린 피가 온 얼굴을 적셔 댄다.
“……나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나는……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겁니다. 나는 누구도 이런 일을 겪 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살아갈 곳이 없다면…….
내가 만들겠다.
필요하다면 빼앗아서라도, 필요하 다면 일구어서라도.
이 세상이 그들에게 있을 땅을 내주지 않는다면, 세상을 무너뜨려 서라도! 그들이 거할 곳을 찾아낼 것이다.
“끄으으으으……
아비의 육신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양첸이 입을 틀어막고
오열했다.
짐승처럼.
갈 곳 없는 짐승처럼.
흑왕이 천천히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회색의 천장.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이 지하 를 밝히는 백색의 등뿐이다.
고개를 돌린 흑왕의 눈에 벽을 기대고 잠들어 있는 이들이 보인다.
전사들.
제 한목숨을 돌보지 않고 여기까 지 그를 따라와 준 전사들이다.
‘눅눅하기 짝이 없는 지하의 땅덩 어리뿐인가.’
지금껏 그들이 얻은 것은 이게 전부다.
아무리 많은 부를 손에 넣어도, 아무리 많은 권력을 손에 넣어도 땅 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땅을 가지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국 가이니까. 그 땅을 얻는다 하여 살 아갈 곳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교주님, 나는 당신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부럽습니다.’
그는 늦지 않게 돌아올 수 있었 으니까.
삶이 뒤틀리기 전으로 돌아와 모 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행운이 모두에게 주 어지진 않았다.
궁금하다.
만약 강진호가 그의 목숨이 끊어 지기 직전으로 돌아왔다면?
모든 것을 잃고 살아갈 의지조차 잃을 수밖에 없던 그 직전으로 돌아 왔다면, 과연 지금처럼 저들을 믿고 함께 살아가자는 말을 지껄일 수 있 을지 말이다.
‘모르지.’
그도 아비가 죽기 전 시점으로 돌아왔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강진호처 럼…….
하지만…….
‘후회 같은 건 하지 않아.’
눈을 돌릴 생각 따위는 없다. 그 건 그저 그가 겪은 일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일일 뿐이다.
‘나를 불태워라.’
모조리 불태워도 상관없다. 이 몸 이 타고 남은 재로 한 줌의 땅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다만…….
“……한 가지는 공감해, 강진호.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어. 그건 너무 외롭거든.”
그러니까…….
그만 기다리게 하고…….
어서 와라.
수백 년을 넘어 진정한 해후를 하는 순간을…….
피 말리게 기다리고 있으니까.
“큭큭큭큭.”
낮은 흑왕의 웃음소리가 깊은 지 하를 타고 천천히 퍼져 나갔다.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