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1999)
마존현세강림기-2001화(1998/2125)
마존현세강림기 81권 (10화)
2장 진군하다 (5)
“왔군.”
혹왕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자 리우양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 아무 소식도……
“아니. 왔어.”
혹왕의 목소리에 확신이 어려 있 다.
“느껴지지 않아? 공기부터 달라졌 잖아.”
리우양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십이비도들 역 시 딱히 느껴지는 게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의심은 없다.
혹왕이 그리 말한다면, 그게 곧 진리인 법이니까.
십이비도의 안색이 일변하며 일제 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우양의 안색도 조금 창백해졌다. 그는 흑왕과 십이비도를 상대하며
살아온 이다. 웬만한 일은 그를 긴 장시킬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기 지로 진입한 이들의 면면은 그런 리 우양마저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쉬운 상대는 아닐 겁니다.”
“ 알아.”
“지금이라도……
“ 흐음?”
흑왕이 재미없다는 얼굴로 리우양 을 바라본다.
“흥을 깨지 마라, 리우양.”
“재미있는 축제잖아. 즐기면 그만 이지.”
리우양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마 지막에 이런 모험을 할 필요가 있는 건지……. 아니, 제가 흑왕께서 패하 실 확률이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 다. 하지만 굳이……
“재미없는 말을 하는군.”
흑왕이 턱짓으로 십이비도들을 가 리켰다.
“왜 저놈들에게서는 그런 말이 나 오지 않는 줄 알아?”
혹왕이 피식 웃었다.
“싱겁기 때문이지.”
“•…”예?”
흑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들 말은 하지 않지만, 알고 있 었을 거야. 이대로 목적을 달성하는 건 더없이 싱겁고 재미없는 일이라 는 걸 말이야.”
백연홍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가 한 거라곤 여기에 틀어박 혀 기다린 것밖에 없잖습니까?”
“그렇지.”
혹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이막스에는 적당한…… 아
니, 강력한 적이 필요한 법이지. 모 든 것을 걸고 싸울 적이 말이야. 그 게 무인의 방식이니까.”
리우양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 다는 얼굴로 흑왕을 바라보았다.
“내가 교주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 유가 뭔 것 같나? 내 말에 숨은 모 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말장난에 굴욕을 당하는 걸 참을 수 없어서? 천만에.”
흑왕이 입가를 비틀었다.
“다른 말은 다 무시해도 된다. 하 지만 한 가지는 교주의 말이 맞아.
무인계의 모든 것을 걸고 베팅을 하 기 위해서는 내가 그럴 자격이 있다 는 것을 중명해야 한다. 다른 누구 도 아닌 무인들에게.”
“맞는 말이지.”
“확실히.”
십이비도 역시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무인의 습성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흑왕의 높은 뜻에 찬동한 이들. 그를 위해 목숨을 건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단 하나도 그 말을 한 이가 흑왕이 아
니었다면 결코 그 뜻에 따르지 않았 올 것이다.
흑왕의 뜻은 분명 높다.
하지만 그건 흑왕이 말했기에 가 치가 있는 것이다. 강자가 아닌 자 의 뜻은 아무리 옳다 해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게 바로 무인의 법칙이다.
옳음을 주장하고 싶다면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 어떤 세상에도 통용될 수 없 는 야만의 법칙. 하지만 무인계에서 는 그게 곧 진리이고 법이었다.
“강한 자가 옳다.”
“그렇지.”
인류가 현대까지 발전해 오며 쌓 아 올린 이성의 가치를 모조리 부정 하는 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격하게 드는 리우양이지만, 그 역시 결국에 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 말이 옳은가 그른가는 중요하 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에 없는 다른 무인들 역시 저 말을 은 연중에 옳다 여길 것이란 사실이었 다.
강하지 않은 자가 자신을 대변하 는 것을 참아내지 못한다.
밖을 채운 무인들을 끌어모은 것 은 흑왕의 의지가 아니다. 흑왕의 뚯도, 그의 비전도 아니다.
그의 명성과 그의 강함이었다.
무인이란 결국 강함에 끌릴 수밖 에 없는 존재들, 강해지기 위해서라 면 무엇이든 하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강자를 존중하고 존경한다.
그 강함이라 가볍고 빤하게 지칭 되는 단어를 얻기 위해서 그들이 어 떤 고난을 이겨냈는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무인의 강함은 육체의 강 건함이나 재능의 영역만으로는 이룩
할 수 없다.
특히나 초인의 영역에 드는 이들 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 하다.
그런 이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누 구를 존중하겠는가.
이건 단순히 누가 더 싸움을 잘 하는가를 논하는 게 아니다. 누가 더 인간으로서 강하고 위대한가를 가르는 전쟁이다.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라고 말하 는 것처럼 허무한 게 없지.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말이야.”
흑왕이 입꼬리를 뒤틀었다.
“그러니 중명하러 가자고, 최강의 적에게. 우리가 옳다는 것을, 우리가 더 강하다는 것을.”
그 말이면 충분했다.
십이비도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 다. 강한 적을 만날수록 의욕이 살 아나는 것이 이들의 습성. 지금 이 곳으로 오고 있는 이들은 분명 이 시대에서 만날 수 있는 최강의 적이 다.
“하나 묻고 싶습니다.”
“말해.”
“새치기도 됩니까?”
흑왕이 낄낄대며 웃었다.
“전이었다면 어림도 없다고 말했 겠지. 하지만……
흑왕의 날카로운 시선이 문 쪽으 로 향한다.
“아마 저쪽도 이번엔 생각이 다른 모양이로군. 할 수 있다면 해봐.”
“좋습니다.”
문이 열린다.
혹왕, 그리고 십이비도.
어쩌면 고금을 통틀어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최강의 소수 무 력대.
그들이 움직였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긴 복도에 메아리치듯 울렸다.
‘기괴하군.’
지하로 이어지는 긴 복도.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기지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 이곳은 꽤 많 은 이들이 음직이는 소리로 북적였 을 것이다. 핵미사일은 운용하고 관 리하는 데는 수많은 인력이 필요하 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곳은 마치 죽어버
린 세상처럼 정적으로 가득 차 있 다. 벽면에 검게 말라붙은 피만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증 명해 줄 뿐이다.
“안에 사람이 없나?”
바토르의 말에 위긴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미사일을 관리할 최소 인원은 남 겨뒀을 겁니다. 흑왕의 스타일이라 면 그들도 이미 포섭되어 있던 이들 일 확률이 높겠죠.”
“ 흐음.”
“그 외의 인원은 방해만 될 뿐이 니까요.”
마스터가 재미있다는 듯 턱을 긁 어 댔다.
“그러고 보니 핵미사일 기지에 들 어와 보는 건 처음이군. 하지만…… 나름 익숙한 느낌인데? 그렇지 않 나, 위긴스?”
“예. 마치 원탁 같습니다.”
지하에 존재하는 거대한 시설이라 는 점, 그리고 긴 복도와 복도로 내 부가 이어져 있다는 점이 익숙한 향 수를 자극한다.
“어둡고, 조용하고, 눅눅하다라••…
“빌어먹을, 귀신 나오게 생겼네.” 방진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 무너지는 거 아냐?”
“웬만해서는 그럴 일은 없을 걸 세.”
“……확실합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건가? 핵미사일 기지일세. 다시 말하자면, 핵방공호이기도 하다는 거지. 그리 고 아마 일반적인 핵무기 시설도 아 닐 걸세.”
“예? 그건 무슨 말입니까?”
“저 혹왕이 고른 곳이니까. 저도 폭탄 몇 방에 무너질 곳을 고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여길 무덤 삼아 뒈지고 싶다면 모를까.”
“거, 말투가 평소랑 다르게 좀 과 격하신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피가 좀 끓는 느낌인 모양이지.”
“……진정하십쇼.”
입꼬리를 뒤트는 위긴스를 보며 방진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일부가 무너지는 경우는 있어도 내려앉지는 않을 걸세. 다시 말하 면…… 여기서는 걱정 없이 싸울 수 있다는 거지. 마지막 싸움을 하기 위한 전장으로는 더없이 적절한 곳 이야.”
“그거, 그리 좋은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강진호가 담배를 빼 물고는 앞으 로 걸어갔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반개 한 눈으로 복도를 바라보았다.
이 복도의 끝에 아마 흑왕이 있 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 그를 맞 이하러 오고 있을 수도 있다.
“바토르.”
자신을 부르는 말에 바토르가 슬 쩍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어떤 기분이지?”
“……나 말인가?”
“그래.”
바토르가 입가를 뒤틀었다.
“최고다, 주인.”
“불가니 도가니, 그런 말을 지껄 이는 놈들에게는 무학을 익히는 것 이 자체로 의미가 있겠지. 그들에게 무학이란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니까.”
“그렇지.”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내게는 오 직 강자와의 싸움만이 의미가 있다. 싸울 상대가 없는 무학 따위 무의미
할 뿐이지.”
바토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그 적이 넘쳐 나지. 이 이상 기쁜 일이 있겠나?”
그 말에 마스터가 낮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군.”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로드. 원탁의 수장으로서 오래 살다 보니 전사로서의 심장은 이미 죽어버렸다 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들어오니 젊 은 날의 제가 되살아나는 기분입니 다.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싸우다 죽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이
는군요.”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니, 뭐, 다들 못 싸워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으셨나? 나는 떨려서 죽겠구만!”
“쯧쯧, 이런 놈도 무인이라고.”
“아니, 장로님! 사람이 각자 다 다른 거지요!”
장민이 한심한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고는 강진호에게로 시선을 주 었다.
“마존이시여, 길은 제가 열겠습니 다.”
장민의 목소리 역시 평소와는 달
랐다.
그의 목소리에서 이전까지 찾아보 기 힘든 흥분이 느껴진다.
‘결국은 이런 법이지.’
무인이란 승리를 좇는 이들. 자신 이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 모든 것을 거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평생 동안 호적 수를 찾아 헤멘다.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할 수 있는 적수,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적수.
스스로의 증명, 그리고 그 이상의 무게.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모든 것 을 건 승부를 하러 가는 지금이 즐 겁지 않을 리 없었다.
세상의 운명을 짊어졌다는 무게감 에 눌리지 않고, 적을 만나 싸울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결국은 다들 쓰레기지.’
그래서 무인이란 써먹을 수 없는 족속이 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쓰레기라 는 점이지.’
이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심장 이 뛰기 시작했다.
여기에 있다.
그의 긴 여정을 끝내줄 이가.
모든 것을 시작한 이이자 모든 것을 끝낼 이가.
“하나 당부하지.”
“이기든 지든……
강진호가 입꼬리를 뒤틀었다.
“후회는 남기지 마라.”
그 말을 들은 모두의 얼굴에 결 의가 가득 찼다.
그와 동시에…….
저벅, 저벅, 저벅.
강진호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
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모두의 속도도 점점 올라간다.
느껴진다.
이 복도의 반대편에서 그들을 향 해 점점 다가오는 기운들이.
강진호가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 청마!’
전장에 들어왔다는 것을 육체가 인식하는 순간, 그의 몸이 먼저 반 응했다.
피가 달아오르고, 전신의 세포가 하나하나 일어난다.
입에 문 담배를 뱉어낸 강진호가
빠른 속도로 복도를 달려간다.
“저기!”
건너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종적을 발견한 순간, 강진호 의 송곳니가 드러났다.
적의 목을 꿰뚫고 그 피를 마실 송곳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