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02)
마존현세강림기-2004화(2001/2125)
마존현세강림기 81권 (13화)
3장 협의하다 (3)
“준비는 거의 끝났습니다.”
“그래?”
리우양의 보고에 흑왕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는 모양이 네.”
“……저희 측에서는 거의 한 게
없었습니다. 저쪽에서 다 알아서 한 거지.”
“역시 수완이 좋다니까.”
“꽉 막힌 벽창호 같은 사람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그 꽉 막힌 성격 으로 아랫사람은 기가 막히게 부려 먹거든.”
흑왕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른 세수를 했다.
“아, 빌어먹을. PTSD 도지네.”
모르겠다.
리우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
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의 그릇으로 이해하지 못할 사람 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런 거랑 별 상관 없는 게 아닌가?’
그냥 동네 바보 같은데…….
리우양이 고개를 돌려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강진호의 주변에 있는 이들도 다 들 그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 다.
‘서로 고생이네.’
모르겠다.
하필이면 이런 인간들이 흑왕과
마존이라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아니면 정상에 서는 인간들은 하나 같이 이 모양 이 꼴이라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리우양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 어 나왔다.
‘난리가 나겠지.’
그의 눈에 외부에서 데리고 온 방송 관련자들이 식은땀을 뻘뻘 흘 리며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는 모습 이 들어온다.
세팅은 이미 거의 끝났다. 남은 것은 외부에서 송출에 대한 협의를
끝내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저들이 카메라에 달라붙어 있는 이유는 오 직 하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손을 놓은 채 그들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 모르겠군.’
저 모습을 보니 과연 이 모든 일 이 효과가 있을지 의심이 된다.
흑왕과 강진호가 합의를 한 이유 는 대충 이해한다. 그 역시 뼈저리 게 느끼던 것.
사람은 미지를 두려워한다.
귀신, 우주, 심해.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볼 수 없 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게 사람이 다. 다시 말하자면, 이해하면 이해할 수록 공포심을 줄어들게 된다는 뜻 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물론 말은 틀리지 않다. 호랑이를 말로만 들은 이는 호랑이를 무서워 하지만,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본 이 들은 호랑이를 귀엽게 여기기도 하 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우리 안에 들어가 호랑이를
마주해도 정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그 격차 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호랑이 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습성 때문 도, 생김새 때문도 아니다. 언제든 그의 목에 이빨을 틀어박고 단번에 목줄을 뜯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얼마나 쉽게 사람을 사 냥할 수 있는지,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된다고 그 공 포심이 사라질까?
어렵다.
이건 너무도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리우양이 흑왕이 하고 있는 일에 반대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결국 뭐라도 해보지 않으면 이 끝은 정해져 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발악하기 위 해 모인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되 는 안 되든 무엇이라도 해보겠다고 하는데, 그걸 말릴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때, 건너편에서 두 사람이 이쪽 으로 걸어온다.
상대를 살핀 리우양이 그들을 맞 아 앞으로 나갔다.
“이 현수입니다.”
“차이커창이다.”
“……리우양입니다.”
세 사람, 특히나 이현수와 리우양 의 눈빛에 서로에 대한 미묘한 동질 감이 어렸다.
“……안면이 있죠?”
“예. 그때, 제가 총회를 한 번 방 문했죠.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뭐 그런 걸 가지고. 저희는 일상 인데.”
이현수가 주먹을 입에 대고 낮게 헛기침을 했다.
자신이 처한 입장을 잊은 것은 아니다. 지금 마주한 이는 분명 적. 그것도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해 온 그 어떤 이들보다 더 강력한 적이 다.
하지만…….
“외부 조율은 거의 끝나간다고 합 니다.”
“……굉장히 빠르네요? 이제 말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에 그쪽이랑 통화하는 걸 송출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이미 한
번 한 일이라 딱히 별 어려움은 없 었습니다. 시스템은 이미 만들어져 있고, 재활용하는 건데요, 뭘.”
“아니, 그게 어려운 거죠. 그리고 그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엄청 골치 아픈 일이었을 텐데.”
“하하, 제가 하는 일이 그런 거죠.”
리우양이 한없이 안타깝다는 눈으 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일을 벌이는 사람이 따로 있고, 수습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일 것이다.
“여하튼 그…… 고생이 많으십니
다.”
“괜찮습니다. 고생은 그쪽이 많아 보이시는데.”
“별말씀을요. 카메라 세팅도 이미 끝났으니, 천천히 준비해 주십시오.”
“근데 저 카메라는 언제 준비한 겁니까?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셨던 겁니까?”
“아뇨. 어제요.”
“정확하게 말하면, 반나절쯤 전에?”
이현수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리우양을 바라보았다.
“……흔한 일인가요?”
“ 일상이죠.”
“힘드실 텐데.”
“이제는 만성이 돼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에 두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꼴을 지켜보던 차이커창이 차 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다가 커피라도 마시러 갈 기 세로군. 헛짓거리하지 말고, 빨리 끝 내라.”
리우양과 이현수가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려 차이커창을 노려보았다.
“••••••뭐?”
“부럽다.”
“좋으시겠습니다.”
“뭐, 뭐가?”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홍왕 정도면 상식인이지.” “손도 많이 안 가고.”
차이커창이 발끈해 뭐라 말하려 하자, 이현수가 깔끔하게 선수를 쳤 다.
“여하튼 30분 내로 준비가 끝날 겁니다.”
“30분이라……
리우양의 시선이 격납고의 중앙으
로 향한다.
‘30분 뒤면 전 세계에 이곳의 광 경이 보여진다는 거로군.’
이미 한 번 해본 일이기는 하지 만, 느낌이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준비가 되는 대로 시작하시죠.”
“룰은?”
“라스트 맨 스탠딩.”
“……연승으로?”
이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재미가 없지. 일대일로 승 부를 가리고, 더 싸울 수 있는 이는 뒤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방식으 로.”
“흐음…… 뭐, 아무래도 상관없습 니다. 어차피 이기는 건 우리일 테 니까.”
리우양의 말에 이현수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나는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겁니 다.”
“ 무슨?”
“지금껏 총회를 상대한 이들치고 그 말을 하지 않은 이들은 없었습니 다.”
“시작은 언제나 그랬죠. 우리는 언제나 열세인 상황에서 싸웠습니
다. 하지만 마지막에 서 있는 건 언 제나 우리였죠.”
리우양이 말없이 이현수를 바라보 았다.
“보고 있으면 알게 되더군요. 저 사람들은 아마 태생부터 강자였을 겁니다. 강자였던 이가 과거로 돌아 가 강자로 살다가 다시 강자가 된 이들이죠.”
리우양이 눈을 찌푸렸다. 이현수 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 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들은 한 번도 자 신보다 강한 이와 싸워본 적이 없을
겁니다. 아니, 대등한 이와도 싸워본 적이 없겠죠. 언제나 자신들이 가장 강하다는 생각을 안고 살았겠지.”
“우린 그걸 모두 깨부수고 여기에 선 겁니다. 네. 그래서 라스트 맨 스탠딩.”
이현수가 가볍게 윙크를 한다.
“마지막에 서 있는 건 우리입니 다.”
“그럼.”
이현수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몸 을 돌렸다.
제 진영으로 돌아가는 이현수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리우양이 말 없이 몸을 돌려 흑왕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 어때?”
뜬금없는 물음.
하지만 리우양은 흑왕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일전에 봤을 때는 딱히 인상적이 지 않았는데……
“그런데?”
“……강진호가 얼마나 대단한 사 람인지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저런 이를 아래에 두고 부릴 수 있는 사
람은 흔치 않겠죠.”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는 사람 이니까.”
흑왕이 마치 제가 칭찬을 들은 것처럼 웃어 젖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리우 양이 작게 입을 열었다.
“……흑왕이시여.”
“웅?”
“불경스럽지만 하나만 여쭈겠습니 다. 이 질문으로 제 목이 달아난다 해도 이것만은 묻고 싶습니다.”
“심각하게 나오는군. 뭔데? 해봐.” 보통 이럴 때는 목이 달아날 일
은 없을 거라고 말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흑왕은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완벽하게 열려 있지만, 또한 완벽 하게 닫혀 있다. 아무리 친한 관계 라 해도 선을 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가 흑왕이다.
그렇기에…….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왕께서는 정말 이기고 싶은 마 음이 있으십니까?”
혹왕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무슨 의미지?”
“……이 무대를 보고 이해했습니 다. 혹왕께서는 이미 이루고자 하는 것을 대부분 이뤘다는 것을 말입니 다. 이 승부에서 이기든 지든 흑왕 께서 원하는 새로운 세계는 열릴 겁 니다.”
“그래서?”
“혹여 흑왕께서는 이곳에서 패배 해 자신의 계획을 완성할 생각이 아 니십니까? 흑왕께서는 훗날의 통치 자로 마존을……
“하.. 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
하하핫!”
흑왕이 배를 잡고 웃어 댔다.
그 격한 반응을 본 리우양의 얼 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너무 황 당해서 죽일 마음도 들지 않는군.”
“……그 말씀은?”
“내가 지금 강진호를 상찬하는 이 유는 단 하나야. 적이 강해야 이기 는 쪽도 빛나는 법이지. 완벽한 주 연을 만드는 것은 최고의 빌런이거 드 ”
“리우양.”
“예, 혹왕.”
“나는 저 사람을 너무도 좋아한
다.”
“하지만 신뢰하지는 않아.”
흑왕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미 오래 전에 완성되었어야 할 계획을 모두 무너뜨린 건 저 사람의 단순한 변덕 이었다고 말이야.”
“……예.”
“나는 저 사람을 너무도 좋아하지. 내 생애를 통틀어 최고의 친구다. 하 지만 나는 저 인간을 너무도 증오한 다. 내 생애를 통틀어 최악의 악당 이지.”
리우양이 입을 닫았다.
“나는 내 계획을 남에게 대충 넘 기고 입을 닦아버리는, 그런 인간은 아니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내 손 을 떠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강 진호가 내 편을 들었다면 최고의 장 기말이 되었겠지. 하지만…… 얻을 수 없다면 부숴 버리는 게 나아. 차 하나 떼 준다고 해서 장기를 두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혹왕이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친구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예 의는 하나뿐이다. 그 숨통을 내 손 으로 끊어주되, 남은 이들의 안전
정도는 보장해 주는 것.”
흑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라도 있으면 세상의 왕으로 만들어줬을 텐데…… 아쉽지. 그런 쪽으로는 영 쑥맥이라니까. 얼굴이 아깝지.”
“……그건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나는 비혼주의자라고. 저 인간은 여자 친구도 있잖아.”
흑왕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아니라 저 양반도 용납하지 않을 거야. 우리의 관계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해.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 말
고는 남은 게 없다. 그러니……
흑왕의 눈이 차갑게 리우양을 쏘 아보았다.
“더는 나를 모욕하지 마라. 나는 이 세상의 완성을 위해 세 번의 삶 을 바친 이다. 내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 따위는 없어. 나는 승리로 내 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리우양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흑왕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어린 집념이 그를 떨게 만든다.
흑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건너편을 쏘아본다. 그런 혹 왕의 기분을 아는지 강진호 역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치 는 순간, 두 사람의 입가에 서로 닮 은 미소가 피어난다.
살심이 가득 담긴 미소가 말이다.
그리고 그때.
이현수가 손을 들어 을려 신호를 보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 다.
“자, 시작하자고. 누가 옳은지 칼 로 증명하는 무인의 전쟁을.”
흑왕과 강진호를 필두로…….
두 진영이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