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03)
마존현세강림기-2005화(2002/2125)
마존현세강림기 81권 (14화)
3장 협의하다 (4)
[주말 날씨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주말인 내일 전국에 봄비가 한가득 내리겠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서해 안을 시작으로 내린 비는 오후에 전 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며, 주말 내내 큰비가 내릴 예정…….]지직, 지지지직.
TV를 보고 있던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거 왜 이러지?”
뭔가 문제가 생겼나 싶어 일어나 TV 쪽으로 향하려는 순간, 화면이 전환되더니 처음 보는 광경을 비추 기 시작했다.
“응?”
TV를 보던 이가 눈을 찌푸렸다.
일반적인 프로그램을 보다가 뉴스 로 전환되는 경우는 있지만, 아무리 날씨라고는 해도 뉴스가 다른 화면 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방송 사고인가……
의아한 느낌에 채널을 돌려보던 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야, 이거?”
한 채널이 아니었다.
모든 채널은 아니지만, 여러 화면 에서 같은 화면이 나오고 있다. 채 널을 다섯 번 바꾸면 두 번은 조금 전 본 화면이 보인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한 이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턱 을 괴기 시작했다.
“또 뭔가 하는 건가?”
“ 방송은?”
“송출하고 있습니다. 케이블 쪽은 바로 송출을 시작했고, 정규방송은 안내 화면이 나간 뒤에 연결될 겁니 다. 현재 20여 개의 채널을 확보했 고, 추가적으로 더 늘리고 있습니다.”
“……반웅은 어떤가?”
“SNS부터 쏟아지고 있습니다. 아 직은 딱히 대단한 장면이 나온 게 아니라 반응이 격하지는 않습니다 만……
말끝이 흐려진다.
하지만 고한봉은 굳이 듣지 않아 도 그 뒷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 들이 진심으로 싸우기 시작하면 난 리가 날 것이다.
이제는 특수 효과니 어쩌니 하는 말도 더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무인.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자들.
‘차라리 위화감의 측면이라면 외 계인이 나을 판이지.’
그들은 애초에 원리가 다른 존재 들이니까. 서울 하늘 한복판에 갑자 기 UFO가 출현하고, 촉수가 달린
외계인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사람들의 놀람은 외계인이 ‘날아 다닌다’가 아니라 외계인이 ‘존재한 다’에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무인은 아니다.
평범한 이들의 무인에 대한 반응 은 태생적으로 그 존재 자체보다 그 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더 큰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같은 사람이니까.
무인의 존재를 인식한 이들은 이 미 그들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 이 방송은 그런 궁금증을 가진 이들
을 하나도 남김없이 끌어당길 게 분 명하다.
“정부에 대한 성토는 없나?”
“세계적으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웬만큼은 인식한 모양입 니다. 사실 이게 처음 있는 일도 아 니기 때문에……
고한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이런 말을 해 야 하는 자신이 싫지만, 정치에 몸 을 담아버린 이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알겠네. 혹여 문제가 생기거든 즉각 보고 부탁하네.”
“예, 총리님.”
보고자가 고개를 깊이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고한봉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화면 을 응시했다.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핵미사일 기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방송으로 송출하라는 요구가 날아온 것은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고한봉에게는 그 제안을 거부할 권 한이 없었다.
가부를 결정하는 건 그가 아니니 까.
모니터에서 나오는 영상이 고한봉 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커다란 공 간. 지하임이 분명하지만 오히려 웬 만한 광장보다 더 넓어 보일 만큼의 커다란 공간에 일련의 무리들이 마 주 서 있다.
너무 멀리서 잡아 그 얼굴을 명 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고한봉 은 한쪽에 선 이들이 누구인지 너무 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회주님……
적어도 강진호만은 못 알아볼 도 리가 없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강진호의 의견은 최대한 들어주고 싶다.
애초에 좋은 감정으로 처음 만난 이는 아니다. 그가 존경하던 김명국 을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뜨린 이가 바로 강진호니까.
하지만 고한봉은 강진호를 만나며 그가 겪는 고충을 나름 이해하게 되 었다. 무인계와 협의를 함에 있어서 그 이상의 상대를 찾기 어렵다는 말 도 한 점 숨김없는 그의 본심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진심으로 강진호 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회주님의 삶은 돌이킬 수 없게 될
겁니다.’
이미 그는 전 세계의 자신의 모 습을 공개했다. 저 난공불락의 성에 틀어박혀 있는 이를 밖으로 끌어내 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처사였겠 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과한 리스크 를 짊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이건 비교조차 할 수 없 습니다, 회주님.’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 자신을 무 인이라 소개하는 것과 모두의 앞에 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여파가 다를 수밖에 없다.
고한봉 역시 녹화된 조악한 화면 으로 강진호가 싸우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먹었던 가.
어쩌면…….
이 선택으로 무인인 강진호만 남 고, 인간 강진호의 삶은 파괴되어버 릴지도 모른다.
고한봉은 알고 있다.
강진호는 무인으로서의 삶과 인간 으로서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 다면 미련 없이 후자를 선택할 이였 다. 가진 무공을 모두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왜 저 사람이 저곳에 서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서?
“후우.”
고한봉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 어 나왔다.
어차피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 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지켜보는 것이 전부다.
그렇기에…….
고한봉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저 응원할 뿐이다.
강진호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 루기를.
그리고 반드시 승리하기를. 그저.
두 집단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마주 선 이들 중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 이는 없 다.
그리고 이 승부에 얼마나 많은 것이 걸려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 는 이도 없다.
작게는 자신들의 삶.
크게는 무인계의 미래.
그리고 더 크게 나아가서는 어쩌 면 세상의 운명까지.
이 깊은 지하.
세상과 단절된 이 지하 깊은 곳 에서 그 수많은 것들이 걸린 승부가 이제 시작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마주 선 이들의 표정은 그런 것 과는 하등 상관이 없어 보인다.
승부에 대한 중압감?
세상의 운명이 이곳에 걸려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어쩌면 목숨조차 남기지 못할지
모른다는 공포감?
아니.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마주 선 이들의 표정은 그 런 것에 얽매이는 이는 결코 이 자 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 서기까지 각자의 생각은 모두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마주하는 순간, 그들은 그저 무인, 가장 원초적인 무인으로 돌아간다.
그들의 눈에 담긴 것은 그저 호 승심.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전력을
담아 마음껏 주먹을 뻗을 수 있는 이.
그리고 그 거침없이 뻗어낸 주먹 을 받아내 줄 수 있는 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흔하고 빤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간절한 것이 되기도 하는 법. 더 오를 곳이 없는 곳에 올라 버린 이들에게는 자 신의 전력을 다해 부딪칠 수 있는 상대가 너무도 간절한 법이다.
전력을 다해 죽고 죽일 수 있는 상대.
그 상대를 앞에다 둔 무인들의 머릿속에서 다른 이유 따위는 하찮
은 것에 불과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살기.
마주 이를 드러낸 두 집단이 서 로를 향해 웃어 젖혔다.
백연홍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건 꽤나 오랜만이군.”
“아아, 고풍스럽지.”
“……정말 고풍스러워.”
십이비도들은 꽤나 감회가 새로운 얼굴들이었다. 과거, 중원에서 수많 은 비무를 겪어본 그들은 이런 체계 에 꽤 익숙하다.
이 세계로 돌아온 이후로 다시는 겪어볼 일이 없다고 생각한 일. 그
과거의 편린을 마주한 이들이 이를 드러냈다.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군.”
바토르가 그 광경을 보며 이죽였 다.
“과연 그 아가리가 뭉개지고 나서 도 웃을 수 있는지 궁금한걸?”
“하하핫!”
백연홍이 두 눈에서 살기를 뿜어 낸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서로를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평범 한 이가 이 근처에 있었다면 그 살 기만으로도 심장이 멎기에 충분할
만큼의 지독한 살기.
“뭐, 그렇게 흥분할 것 없잖아?”
그 고조되어 가던 분위기를 깬 것은 흑왕의 느긋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이제 달아 날 방법은 없으니까. 그리고……
흑왕이 턱짓으로 그들을 찍고 있 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기뻐하라고. 역사를 통틀어봐도 너희보다 많은 관객 앞에서 싸울 수 있던 이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아무래도 관객이 많아야 흥이 나는 법 아니겠어?”
흑왕의 시선이 강진호에게 가닿았
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그……
“예?”
“주둥아리나 조금 처닫았으면 좋
겠군.”
“다 지껄였으면 시작해. 변죽 울 리는 데는 질렸으니까.”
“못 당하겠다니까.”
혹왕이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며 이를 드러냈다.
“그 목, 잘 간수하고 계십시오. 곧 가져갈 테니까.”
“해봐, 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웃는다.
그러고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몸을 돌려 서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은 강진 호가 담배를 빼 물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천천 히 연기를 내뿜는다.
하고 싶은 말은 꽤 있다.
해주고 싶은 말도 꽤 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한 대로 이 제는 더는 말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 지지 못한다. 남은 것은 그저 누가
더 강한가일 뿐.
“ 로드.”
위긴스가 나직하게 묻는다.
“선봉으로는 누구를 내보낼 생각 이십니까?”
“쯔 ”
*x.
강진호가 영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강진호와 시선이 마주친 이현수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 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까지 농담이 나오십니까?”
“농담한 적 없어.”
“그게 더 나빠!”
“……쯧.”
여전히 아쉽다는 둣 입맛을 다신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의 대 타를 바라보았다.
“망할 놈이.”
위긴스가 혼치 않은 욕지기를 내 뱉었다.
저 망할 놈이 죽어도 못 나간다 고 바닥을 굴러댄 덕에 그가 한국까 지 다녀오는 수고를 해야 했다.
바로 저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서.
“할 수 있겠어?”
“……이길 수 있는지를 물으시는
겁니까?”
“아니.”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맞설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건 이상한 질문이시네요.” 사내.
강진호와 시선을 마주한 이가 강 진호와 닮은 표정으로 웃는다.
“그게 되는 이들만 남겨둬 놓고는 이제 와 그리 물으시다니요.”
“이기고 돌아온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 라 해도 맞서 싸우는 건 별것도 아
닌 일이죠.”
그 대답이 마음이 든다는 듯 강 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 가봐.”
“예.”
사내.
이명환이 중앙을 향해 걸어간다.
그 모습을 보며 방진훈이 눈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 이기는 건 불가 능할 텐데, 굳이 저놈까지 데려올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이현수를 내 보내는 게……
“여기서까지 원한 푸시깁니까, 진
짜?”
이현수가 학을 뗐지만, 강진호는 그런 이현수를 무시하고 입을 열었 다.
“의미는 있지.”
강진호의 시선이 이명환의 등을 쫓는다.
“이어가야 할 이가 이곳에서 함께 한다는 건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 지. 우리는 이어가기 위해 여기에 모인 이들이니까.”
그렇기에 질 수 없다.
그렇기에 지지 않는다.
이명환의 건너편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 강진호 의 두 눈에 똑똑히 들어온다.
‘시작이군.’
강진호가 가만히 주먹을 움켜쥐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