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04)
마존현세강림기-2006화(2003/2125)
마존현세강림기 81권 (15화)
3장 협의하다 (5)
“ 흐음?”
혹왕이 걸어 나오는 이를 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히 사람이 없는 모양 이로군.”
“이상한 일도 아니지. 여덟은 적 은 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너무도 많은 수다.”
흑왕 쪽에 남은 십이비도의 수는 모두 여덟.
어떤 상황에서든 여덟이란 결코 많은 수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여덟이라는 숫자 앞에 초인이라는 말이 붙는다면, 그 수에 대한 평가 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놓기에 충 분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과할 정도의 전 력.
그들을 상대할 만한 전력을 모아 오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전 세계 연합군?’
물론 그 이점은 있겠지.
하지만 이쪽은 무려 백 년에 걸 쳐 모인 전력이다. 단기간에 모은 전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특히나 동수로는 말이다.
“버리는 카드로군.”
십이비도들이 영 찝찝하다는 표정 을 지었다.
승리란 좋은 것이다. 하지만 허무 한 승리는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 는 치열함 끝에 오는 패배보다 더 무가치했다.
“버리는 카드라……
그 말을 들은 흑왕이 묘한 미소
를 지으며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글쎄, 모르겠군.”
걸어 나오는 이에게서 익숙한 기 운이 느껴진다.
‘악취미군.’
흑왕에게 있어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만약 강진호가 이 세상으로 돌아 오지 않았다면, 강진호조차 그에게 는 추억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했 을 게 분명하다. 과거란 그저 지금 의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 그 이상 도, 이하도 아니니까.
그렇기에 흑왕은 굳이 마교를 다
시 재건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마교란 그의 이상 을 이루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니까. 그때는 마교였고, 지금은 흑왕계와 십이비도일 뿐이다.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하게 쓸 수 있는 도구.
철저하게 몰락한 마교를 보고도 딱히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그가 인연을 맺은 이들은 이미 과거에 모 두 죽었으니까.
하지만…….
흑왕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향한 다.
‘의외였지.’
마교라는 곳에 그보다 더 미련을 두지 않은 이가 강진호다. 흑왕에게 있어서 마교가 도구였다면, 강진호 에게 있어서 마교란 그저 환경에 불 과했다.
그런데도 강진호는 굳이 중국에 남은 마교의 잔당들을 한국으로 데 리고 와 마교를 재건했다.
누구보다 이해하기 쉬운 사람이면 서도 때로는 누구보다 이해하기 힘 든 사람이다. 인간에게 관심조차 주 지 않은 이들이 끊어져 버린 인연을 굳이 다시 이어 대다니.
그 마교가 강진호에게 도움이 되
었다면 모를까. 장민이면 몰라도 마 교 자체는 강진호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을 텐데.
흑왕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이명환 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기운.
과거, 강진호의 친위대들이 홀리 던 기운을 이명환이 흘리고 있다.
철저하게 강진호만 따르던 이들. 심지어 그의 명령조차 무시하고 강 진호만을 맹목적으로 쫓던 이들의.
“ 흐음.”
혹왕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악취미군.”
이미 끝난 것에 미련을 가지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다. 인간은 과거를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만들 어가야 하는 법이니까.
저자의 존재가 지금 강진호와 흑 왕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귀편 (鬼酸).”
“ 예.”
“네가 상대해 줘라.”
단천귀편(斷天鬼戰) 악중산(括中 山)의 눈썹이 꿈틀댄다.
하지만 이내 그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분부대로.”
“미안하군.”
“아닙니다, 흑왕이시여.”
검은 흑의를 입은 사내가 몸을 돌려 중앙으로 향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외모의 사내다. 그런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다름 아 닌, 그의 왼팔을 뱀처럼 친친 감은 검은 채찍의 존재였다.
저벅저벅.
중앙으로 걸어 나간 귀편이 이명 환과 마주 선다.
그의 눈이 가만히 이명환을 응시
했다.
솔직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다. 저자가 버리는 카드라는 건 명확한 일이었으니까. 혼신의 힘을 다한 승 부를 기대하던 와중에 적수가 되지 않는 이를 처리하고 돌아오란 명을 받았으니 힘이 빠질 만도 하다.
하지만 귀편은 이내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얼간이인가? 아니면……
저자도 자신의 힘이 이곳에 설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이곳의 수준이 과도하게 높을 뿐,
저자 역시 나이를 감안한다면 굉장 한 수준의 무력을 보유했으니까.
‘어쩌면……
그들의 세상이 끝나고 나면 다음 대를 지배할 이는 이 젊은 무인일지 도 모른다. 저 마왕이 굳이 이곳까 지 데려온 젊은 무인이라면 분명 특 별한 것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일.
지금 이곳에서 이자는 목숨을 걸 고 싸우는 짐승들의 발밑에서 앞발 을 세운 사마귀에 불과하다.
그래. 본인도 분명 그 사실을 알 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저리도 담담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가.
“악중산. 과거에는 단천귀편이라 불렸다. 흔히 귀편이라 부르지.”
“네 소속과 이름을 밝혀라. 그게 마주 선 자에 대한 예의다.”
“……총회의 이명환.”
케케묵은 예의.
그 예의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낡은 게 자신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 니까.
“하나 묻지.”
“ 얼마든지.”
“죽어도 상관없나?”
귀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바로 이 점이었다.
분수에 맞지 않다.
이 사내에게 무인계의 미래에 대 한 의무감이 있을 리 없다.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설 이유도 없을 것이 다. 그저 마존이 명하니까 제 목숨 을 걸고 이곳에 걸어 나왔을 터.
그런데도 이자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다.
십이비도 중 하나인 자신을 앞에 다 두고도 말이다.
이명환이 알 듯 모를 듯한 표정 을 지으며 귀편을 바라보았다.
“그쪽이야 워낙 오래 살았을 테니 사는 데 별 미련이 없을지도 모르겠 지만…… 평범하게 생각하면 죽어도 상관없는 인간 같은 게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패배를 인정하고 돌아가라. 나는 적을 살려두는 사람 이 아니다. 손을 섞기 전이라면 보 내주겠다.”
“여기까지 걸어 나온 것만으로도
너는 네 용기를 증명했다. 아무도 너를 비겁하다 비난하지 않을 것이 다.”
귀편이 싸늘한 눈으로 일갈했다.
“그러니 살고 싶다면 돌아가라.” 그 말을 들은 이명환이 낮게 웃 었다.
이명환이 짓는 웃음을 본 귀편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뭐가 우습지?”
“아니요……. 비웃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걸 실감해서 말입니다.”
“ 다르다?”
“ 예.”
이명환이 진득한 미소를 입가에 담 았다.
“약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렇구 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군.”
“그럴 겁니다, 분명히.”
이명환이 귀편을 빤히 바라보았다.
굳이 이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알 필요도 없다. 저 몸짓 하 나, 표정 하나에서 느껴지니까. 이 사람은 태생적인 강자다. 강해지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 사람.
“한 번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뒤처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 었을 겁니다.”
“지금 당장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그저 시간이 해 결해 줄 문제일 뿐, 스스로의 재능 이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 었겠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이명환이 낮게 웃었다.
“그러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겁 니다. 당신에게는 이 자리에 서는 것조차 당연하디당연한 일이니까요. 지금 이곳에서 돌아 들어가도 언젠
가는 이곳에 다시 설 수 있는 이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귀편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눈 을 찌푸렸다. 이명환의 사고방식은 그와는 완전히 다르다.
“당신들에게 강해진다는 건 숨 쉬 듯 당연한 거겠죠. 그러니 강함 그 자체를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겁니 다. 하지만……
이명환의 웃음이 더욱 진득해졌다.
“내게 강함이라는 건 그렇게 당연 한 게 아닙니다. 당신이 단번에 익 혀내는 것도 나는 천 번을 반복하
고, 만 번을 고심해야 합니다. 누군 가가 하늘을 날 때, 바닥을 기어 따 라가는 이도 있는 법이죠.”
“그렇게 아득바득 기어서 여기까 지 온 겁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 자리에 설 기회를 손에 넣은 겁니 다. 분에 넘치는…… 너무 과분해서 몸이 떨릴 기회를.”
강해지고 싶었다.
최고가 되고 싶지 않은 이가 누 가 있겠는가. 모두가 시작할 때는 최고를 꿈꾼다. 하지만 재능과 현실 이라는 벽 앞에 막히는 순간, 사람
은 자신을 속이게 된다.
애초부터 최고의 자리는 노린 적 도 없다고, 자신은 현실주의자라고 말이다.
이명환은, 그리고 마염들은…….
자신을 속이기를 포기한 이들이다.
기어서라도, 물어뜯어서라도, 어떤 굴욕을 겪더라도 더 강해지고 싶다 는 일념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온 이 들.
“죽는 게 두렵냐고 했습니까?” 이명환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미치도록 두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는 게 그보다 백 배는
더 두려운 일이지요. 그러니…… 배 려는 그쯤 해주시죠. 제게 해줄 수 있는 진짜 배려는 나를 무시하지 않 고 싸우는 겁니다.”
“……마존이 네게 그런 존재라는 건가?”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제가 지금 이곳에서 항복하고 내려가도 회주님 은 조금도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되레 어깨를 두드려 주시겠죠.”
“내가 여기 서 있는 이유는 무인 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요?”
귀편의 입에서 낮은 숨이 흘러나 온다.
모르겠다.
이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하나는 알겠군.’
왜 저 강진호가 다른 이들을 두 고 굳이 이자를 불러왔는지는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기억해라, 악중산이라는 이 름을.”
“저승에 가 염왕에게 내 이름을
댄다면, 적어도 억울하지 않았다는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거…… 꽤 영광이군요.”
촤르르륵.
귀편의 팔을 감고 있던 채찍이 단숨에 풀려 나온다.
검은 윤기가 흐르는 장편(長廢).
길이가 5미터는 될 듯한 긴 채찍 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머리를 들고 요동친다.
그 광경을 본 이명환이 마기를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그의 두 눈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고, 전신에서 검은 마기가 뭉게
뭉게 흘러나왔다.
스스로를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실낱같은 이성을 남기는 이유는 정교함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 승부 의 순간을 반드시 기억하기 위함이 다.
‘지켜봐라.’
중계가 되고 있다는 게 다행이었 다.
지금쯤 총회의 다른 동기들도 그 를 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우 려할 것이고, 누군가는 걱정하겠지.
안다.
그는 마염 중 가장 강한 이는 아 니다. 그러니 그도 자신이 이곳에 설 자격이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적어도 그가 다른 이들을 대표해 이 곳에 섰다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 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미련 한 점 남기지 않는다.’
두 눈에서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 낸 이명환이 한 줄기 검은 유성이 되어 귀편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짐승 같 은 울부짖음이 커다란 격납고를 쩌 렁쩌렁 울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