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07)
마존현세강림기-2009화(2006/2125)
마존현세강림기 81권 (18화)
4장 쏟아붓다 (3)
커다란 TV> 통해 전투를 지켜보 고 있던 마염들이 주먹을 움켜쥔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화면.
바로 앞에서 벌어졌다고 해도 쫓 기 힘든 공방을 TV를 통해 파악한 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눈에 뜯겨 나간 귀편의 얼굴이 똑똑히 들 어왔다.
“저 미친놈이……
신음이 절로 홀러나온다.
이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이다.
귀편은 초인의 영역에 접어든 이. 이명환이 아무리 악을 써도 그의 몸 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 귀편은 상처를 입었 다.
이명환의 독니가 귀편을 물어뜯는 데 성공한 것이다.
꾸우욱.
절로 주먹이 쥐어쥔다. 배 속에서 부터 용암을 끓어오르는 것만 같다.
틀리지 않았다.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것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이명환이 지금 그들의 대표로서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아, 안 돼……
바닥에 처박힌 이명환이 몸을 일 으키려 하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똑
똑히 들어온다.
“엎어져, 이 새끼야!”
“저 미친 새끼가!”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연이어 터 져 나온다.
“왜 일어나, 왜! 일어나지 말라고!”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무인의 싸움에 승패를 가르는 법 은 셋뿐이다.
하나는 생과 사가 갈리는 것.
또 하나는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 는 것.
마지막으로는 의식을 잃은 채 상 대의 선택에 목숨을 맡기는 것.
이미 이명환은 귀편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을 보여주었다. 하지 만 이미 이명환은 한계를 넘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전의를 보이게 된 다면 전투가 지속된다. 그리고 그건 곧 이명환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 병신 같은……
안다.
저건 머리로 생각하고 하는 행동 이 아니다. 이명환의 정신이 멀쩡했 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항복을 선언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명환에게 이성 따 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존재 하는 것은 맹렬한 투쟁심과 적개심, 극성으로 끌어 올린 마기가 주는 혈 기뿐이다.
그렇기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 을 것이다.
설사 그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 가는 행위라 해도.
“멈춰, 이 새끼야! 엎어지라고! 이 씨발!”
마염들이 고함을 내지르는 그 순 간, 이명환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동시에 귀편이 짐승같이 울부짖으며
이명환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 지?’
잘 모르겠다.
의식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머릿 속에 노이즈가 껴 있는 것 같다. 언 제부터인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 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다. 고통이란 육체가 머리에 보내는 위험신호이니까.
그의 육체가 더는 위험신호를 보 내지도 못할 만큼 망가졌다는 의미.
뭔가 아득히 멀어진다. 몸이 한없 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다시 떠오르 기를 반복하는 것만 같다.
‘놓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는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했다. 그가 귀편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 을 거라 생각한 이가 누가 있겠는 가.
의식을 놓아버리고 쓰러진다고 해 도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 다. 그럼 편해질 수 있다. 설사 그 ‘놓음’이 죽음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아쉬울 게 있을까?
우득.
팔목이 비명을 지른다. 흐릿한 그 의 시선에 바닥이 점점 더 붉게 물 들어가는 모습이 얼핏 얼핏 들어온 다.
환각? 착각?
아니다.
아마 그의 몸에서 홀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는 거겠지.
사람의 몸에서 이렇게 많은 피가 흐를 수 있을 줄이야. 두렵다기보다 는 신기한 느낌이었다.
우드득.
뒤틀려 버린 허리를 편다. 휘청이 는 다리로 바닥을 딛는다. 거의 뜯 겨 나가 버린 팔을 어떻게든 부여잡 으며 몸을 일으킨다.
살아생전 몸을 일으키는 단순한 동작이 이토록 힘겹던 적은 없었다.
‘왜 일어나지?’
모르겠다.
아마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그 대답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몸을 일으키는, 그 아무것도 아닌 동작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죽 음으로 이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 음에도 이명환은 비틀대며 쓰러지려
는 몸을 부여잡고, 자꾸만 멀어지는 의식을 움켜잡았다.
오기?
아니면…….
‘……그런 건 이제 됐어.’
과격하던 세상이 흑백으로 암전한 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뒤로 돌린 것처럼 노이즈 낀 세상이 점점 더 느려지기 시작했다.
앞쪽에서 들려온 커다란 고함 소 리와 뒤쪽에서 들려오는 필사적인 비명이 처음에는 말을 이루다가 이 내 웅웅대는 울림으로 번져 간다.
느려진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이명환이 본 것 은 자신에게 날아들고 있는 귀편이 었다.
‘……이거로군.’
알고 있다.
이건 죽음이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지금 그는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귀편의 손 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환은 자신이 지금 무 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했다.
‘언제였지?’
물어본 적이 있다.
강진호에게.
그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였냐고, 더는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죽는다는 것을 이해했을 때 어떤 생 각을 했냐고 말이다.
그때, 강진호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리 말했다.
“웃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하지만…… 지금은 알 것도 같다.
이명환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뒤틀 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의 입이 완전한 미소를 그려내는 순간, 강기를 머금은 귀편 의 주먹이 그의 목을 꿰뚫어왔다.
‘이걸로 됐다.’
이명환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거기까지.”
멈춰 버린 세상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죽음을 받아들이던 이명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힘겹게 눈을 다시 뜬 그의 눈에 들 어온 것은 제 턱 아래에서 멈춰 있 는 귀편의 손과 참혹하게 일그러진 귀편의 얼굴, 그리고…….
“네가 졌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심드 렁하게 말하는 흑왕의 모습이었다.
귀편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 간다. 여전히 이명환의 목 바로 앞 에서 칼날 같은 강기를 세운 채로.
“……어째서입니까?”
그 목소리에는 명백한 의혹과 실 낱같은 적의가 담겨 있었다.
“감투상이라도 주려는 생각은 아
니실 텐데!”
“아아, 물론 근성은 대단했지. 하 지만…… 근성이 대단하다고 승리하 는 건 아니지.”
“그렇다면 어째서?”
“잊었나, 귀편?”
흑왕의 두 눈에 조롱의 빛이 어 렸다.
“무인이 애병을 뻬앗긴다는 건 곧 패배를 의미하지.”
귀편이 제 입술을 깨물었다.
“아, 물론 절대적인 룰은 아니야.
하지만……
흑왕이 빙글빙글 웃어 댔다. 지금 이 상황이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말 이다.
“패하지 않았다고 추잡한 변명을 늘어놓을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원래대로라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이를 상대로 방심 끝에 상처를 입고, 애병까지 뻬앗긴 주제에 승리 를 논하겠다고?”
“네가 졌다. 물러나라.”
으드드득
귀편의 입안에서 이 부러지는 소
리가 흘러나왔다. 핏발이 선 눈으로 흑왕을 바라보던 귀편의 어깨가 살 짝 들썩였다.
“후욱.”
깊게 숨을 뱉어낸 귀편이 어쩔 수 없다는 둣 살짝 숙인 고개를 제 자리로 되돌리는 순간이었다.
파아아앗!
이명환을 겨누고 뻗어져 있던, 손 끝에 어린 강기가 일순 이명환의 목 을 향해 폭발적으로 뻗어 나갔다.
콰드드득!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 께 무언가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다.
그와 동시에 붉은 피가 분수처럼 천 정을 향해 뿜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한 사람이 바닥을 구르며 짐승 같은 비명을 토해낸다.
귀편이 붉은 피를 뿜어내는 어깨 를 부여잡고 처절한 비명을 질러 대 고 있었다. 그의 몸이 끊임없이 경 련하며, 입으로 피가 섞인 침이 질 질 흘러나왔다.
제 손으로 어깨를 파내듯 움켜잡
아 대는 모습은 그가 결코 어깨가 잘려 나간 것 때문에 저리 고통스러 워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증명하고 있었다.
“쯧.”
흑왕이 혀를 차며 바닥을 구르는 귀편을 바라보았다.
“이해를 못한 모양이군. 이 승부 를 왜 하는 건지 말이야.”
귀편의 비명은 어느새 작은 신음 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결 코 고통이 잦아들어 편안해진 것이 아니다. 더는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
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없는 승리는 의미가 없어. 이기고도 졌다는, 개 같은 소리만은 들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야. 알겠어, 이 머저리 같은 새 끼야?”
흑왕이 고개를 내저었다.
“알 리가 없지.”
따악.
퍼석!
그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 다.
혹왕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귀편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진
다. 머리를 잃은 몸이 잠시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축 늘어져 싸늘하 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치워라.”
“ 예.”
최소 수십 년을 함께해 온 동료 다. 그런 이가 눈앞에서 상관의 손 에 처참한 최후를 맞았건만, 남은 십이비도의 눈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았다.
중앙으로 걸어간 백연홍이 귀편의 다리를 잡아 구석으로 집어 던진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시신이 벽 에 처박혀 바닥에 떨어졌다.
동료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지만, 누구도 그런 백연홍에게 비난의 시선을 보 내지 않는다. 십이비도들은 백연홍 이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바라보았 고, 백연흥은 더러운 것이라도 만졌 다는 듯 손을 털어 댄다.
그러고는 아직 서 있는 것이 용 할 정도로 휘청이고 있는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흥.”
백연홍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흑 왕이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이해를 해야 할 거야, 이건 놀이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십이비도들의 등에 식은땀이 홀러 내린다.
이건 경고다, 흑왕이 그들에게 보 내는.
“패하는 건 추한 게 아니지. 추한 건 방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승 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흑왕이 턱을 괸 채 필사적으로 버티고 선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겼다, 총회의 젊은 무인.”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명환에게 닿지 못했다.
의식을 잃은 이가 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니까. 이명환의 몸이 썩은 짚단처럼 허물어진다.
턱.
하지만 그의 몸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어느새 이명환의 옆에 나타 난 강진호가 이명환을 움켜잡아 세 웠다.
“좋은 제자를 뒀군. 이건 좀 부러 운데.”
“네가 버린 거지.”
“넌 이해 못하겠지만.”
이명환을 옆구리에 낀 강진호가
몸을 돌려 제 진영을 향해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혹 왕의 눈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추한 꼴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는 용납하지 않는다.”
“예.”
십이비도들의 얼굴에 확연한 살기 가 어렸다.
하지만 흑왕의 얼굴을 귀편의 머 리를 날려 버릴 때와는 달리 미묘하 게 굳어 있었다.
‘버렸다라……
이상하게도 그 말이 거슬린다.
이상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