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14)
마존현세강림기-2016화(2013/2125)
마존현세강림기 81권 (25화)
5장 경탄하다 (5)
지옥에 강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까?
검게 소용돌이치는 검은 액체들이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 다.
콰콰콰콰콰콰!
“저……
그 가공할 광경에 방진훈도, 위긴 스도 그저 입을 벌릴 뿐이었다.
위력이 얼마나 강한가는 그리 중 요하지 않다. 사람이 이런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 분히 놀랄 일이잖은가.
‘어쩌자고?’
위긴스가 입술을 깨문다.
저 물길은 환사뿐 아니라 마스터 도 휩쓸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스 터가 제 발로 저 소용돌이 안으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이해는 한다.
환사는 강하다. 마스터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상처 입지 않고 그를 이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설마 상대를 끌어안 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버릴 줄이야.
다른 사람도 아닌 저 마스터가.
검게, 또 검게 휘몰아치던 액체들 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환상처럼 사라진다.
위긴스가 입술을 깨문다.
물길이 사라진 곳에 처참하게 파 인 바닥이 드러난다. 마치 진흙 바 닥을 짐승이 후벼 판 것처럼 거칠게 파인 바닥에 마스터와 환사가 쓰러
져 있었다.
그래, 둘 모두.
마스터의 눈이 흔들린다.
‘ 무승부?’
아니면?
그때 였다.
“끄……으윽.”
시체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던 환 사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턱.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은 환사가 신음을 홀리며 몸을 바닥에 서 밀어낸다.
투두둑.
고여 있던 피가 바닥으로 비처럼 쏟아진다. 그가 입은 백색의 도포는 이미 그가 흘린 피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 끄으♦•••••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으로 겨우 겨우 몸을 일으킨 환사가 휘청이다 가 다시 바닥에 엎어진다.
피에 젖은 얼굴의 환사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이없다는 둣 웃어버렸 다.
그가 이토록 큰 상처를 입은 게
대체 얼마 만이던가.
“쿨럭!”
그 순간, 쓰러져 있던 마스터도 잔기침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 번 기침을 할 때마다 마스터의 몸이 들 썩인다.
“후욱……
그와 동시에 마스터도 몸을 일으 키기 시작했다.
커적!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마스터가 룬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한다. 그 모습을 본 환사도 힘겹게, 힘겹 게 몸을 일으켜 마스터를 마주 보고
섰다.
두 사람이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웅시했다.
그 짧은 침묵을 깬 것은 마스터 의 입에서 홀러나온,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였다.
“……앝았나?”
“아니…… 정확했지. 그저 약했을 뿐이다.”
“닿을 줄 알았는데.”
그의 검은 분명 환사를 갈랐다. 하지만 그의 심장을 갈라내지는 못
했다. 그저 살을 끊고 뼈를 잘라내 느 데 그쳤을 뿐이다.
그걸로는 환사를 죽일 수 없다.
환사의 몰골은 처참했다.
그를 뒤덮은 압력은 그의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뒤틀려 으스러진 팔은 팔꿈치 아래 부터는 뼈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은 지 덜렁댔고, 바닥을 짚은 다리 중 하나는 정강이가 꺾여 허연 뼈가 튀 어나와 있었다.
아마 갈비뼈는 모조리 으스러졌을 것이고, 숨을 헐떡이는 걸 보면 부 러진 뼈가 한쪽 폐를 찔러 숨을 쉬
기도 어렵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사는 살아남았다.
“압력을 가하기 위함이…… 아니 었군. 나를 그곳에 묶어두기 위해서 였어.”
마스터가 고소를 머금었다.
“네가 네 방어를 완전히 믿고 있 었으니까.”
“틈은 그 안에 있다고 생각했지.” 환사의 방어는 절대적이다. 마스 터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도 그 방어 를 뚫지 못했을 것이다.
불을 내뿜고, 눈보라를 내리치고,
뇌전을 날려 대더라도 결과는 다르 지 않다. 결국에는 저 결계가 그의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켰을 게 분명 하다.
하지만 환사의 약점은 바로 거기 에 있었다.
무인은 그 결계를 깨뜨려야 한다. 깨지 않고서는 환사의 육체에 닿을 수 없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럴 필 요가 없다. 그저 저 결계 안으로 들 어가 버리면 되니까.
스스로의 무학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 그리고 자신이 믿어온 법칙에 대한 안일한 의존.
마스터는 그 인식의 틈을 파고든 것이다.
마스터가 아니면 찌를 수 없는, 그 실낱같은 틈. 중력으로 발을 묶 고 결계를 뒤덮은 것은 그저 환사의 위치와 결계의 위치를 고정하기 위 한 방편에 불과했다.
환사에게 있어서 자신의 결계로 보호받는 영역 안에서 칼이 날아든 것은 배 속에서 칼이 배를 뚫고 나 온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당할 수밖에.
환사의 몸이 잘게 떨렸다.
알고 보면 너무도 빤한 수작이다. 저자가 저 괴이한 이동을 보여주었 을 때부터 이 가능성을 고려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생사가 오가는 전장이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목이 달아나는 전투다. 그 긴장되는 전투의 와중에 상대의 허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허점 을 노리기 위해 상대를 자신이 원하 는 곳으로 몰고 간다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그가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대단하군, 정말.”
마스터가 빙긋 웃는다.
상대는 그가 닿지 못한 경지를 이룩한 무인. 그런 이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게 기분 나쁠 리 없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의 마지막 칼날이 원하는 곳에 닿지 못했다는 것.
“……정말 아쉽군.”
그건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였 다. 그의 삶이 조금만 더 충실했더 라면, 어쩌면 그의 검이 환사를 베 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쉬워해서는 안 될 일이지.’
스스로를 무인이 아니라 원탁의 수장으로 규정한 것은 바로 마스터 자신이다. 자신이 선택한 일을 후회 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그가 바란 것은 중요한 것은 가장 위대한 무인 이 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환사가 경의감이 담긴 눈으로 마 스터를 바라보았다.
우스운 일이다.
강호에서 술사는 좌도방문(左道傍 門)이라 폄하되며 천대받는 이일 뿐 이다. 환사는 지금까지 이 지독한 무인들의 세계에서 육체의 강함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왔
다.
강해지는 데는 다른 길이 있음을, 그리고 모두가 걷는 길을 걷지 않아 도 끝까지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또 증명하는 것, 그게 환 사가 걸어온 길이다.
하지만 저자는 무학의 강함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 했다.
수준으로 따지자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이. 그런 이가 지금 환사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부족한 실력을 완벽한 전략과 과감하기 짝 이 없는 도박으로 메우며 그와 대등
한 위치에 섰다.
어찌 경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어찌 그곳에 서 있소?”
“이미 승부는 났을 텐데.”
마스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승부는 났다. 그는 패배했다. 그는 더 이상 환사를 어찌할 여 력이 남아 있지 않다. 육체의 손상 은 환사가 더 커 보인다. 하지만 그 건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 다.
그의 내부는 이미 박살이 날 대 로 박살이 난 상태.
그리고 그의 마나는 예전에 고갈 되었다. 과도하게 끌어 쓴 마나가 역류하며 그의 심장을 파괴하고 있 었다. 어차피 그는 곧 죽는다. 지금 은 그저 다가오는 죽음을 밀어내고 있을 뿐이다.
‘아니. 그건 변명이지.’
설사 부상이 깊지 않다고 해도 마나를 모두 소모한 순간, 그에게 남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쉽다.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깔끔하지 않은 것은 그리 좋아하 지 않아서 말이오.”
“승부는 확실한 것이 좋지 않겠 소?”
환사가 눈을 감는다.
‘무인이구나.’
파란 눈, 그리고 하얀 피부.
저 이국의 사내에게 무인의 혼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술사를 무시하던 이들이 그를 바라보던 시 선을 그가 저 사내에게 똑같이 가졌 던 것이다.
촤락.
결심을 굳힌 환사의 손 위로 피 에 젖은 부적 한 장이 잡혔다.
“한 가지는 말해두겠소.”
“그대는 지금껏 내가 만난 이들 중 가장 위대한 무인이오.”
마스터가 빙그레 웃는다.
“어쩌면 그게 내가 가장 듣고 싶 었던 말일지도 모르겠군. 고맙소.”
눈을 감아버린 환사가 손을 떨쳐 낸다. 그의 손에 들린 부적이 맹렬 히 날아가 마스터의 심장에 틀어박 힌다.
털썩.
마스터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진다. 차마 그 모습을 눈에 담고 싶지 않았던 환사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돌린다.
결착.
승부가 난 순간, 위긴스가 바닥을 박차며 쓰러진 마스터를 향해 날아 들었다.
“으.. 으아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른 위긴스가 쓰러진 마스터를 움켜잡는다.
“마스터! 마스터어어!”
위긴스의 품에 안긴 마스터가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눈으로 바라본다.
“나이트 위긴스……
“마스터.”
위긴스의 손이 마스터의 어깨를 꽉 잡았다.
“대……답해 보게.”
“나는…… 나는 교……훈이 되었 는가? 내 의지가…… 지켜보는 이들 에게 전해졌을……까?”
위긴스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 를 격하게 끄덕였다.
“알 겁니다! 알 겁니다, 마스터! 다들 보고 느꼈을 겁니다. 그들도……
똑똑히 봤을 겁니다!”
“흐..”
마스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그럼 다행……이군.”
“예…… 마스터. 훌륭하셨습니다.” 위긴스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 물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그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마스터의 마지막을 지킬 자격이 없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논리와는 관계없는 일. 이 애통함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럼•••••
마스터의 눈이 위긴스를 똑바로 웅시한다.
“……자네는?”
복잡미묘하게 변한 위긴스의 얼굴 을 본 마스터가 옅게 웃었다.
“그거면 됐네. 자네는…… 자네는 항상 훌륭한 학생이었……지.”
“마스터……
“느낀 대로…… 그저 느낀 대로 행하게. 그저……
마스터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자신도 모르게 마스터의 몸에 치료 마법을 쏟아부으려던 위긴스가 입술을 물어뜯는다.
아니. 그건 마스터를 모욕하는 짓 이다.
그때, 그들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스터의 초점 없는 두 눈이 그들 앞에선 이에게로 향했다.
“••••••주님.”
“그래.”
“갚•••••• 갚았••••••
“그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빚은 다 갚았다. 홀륭했다.”
“원••••••탁을•…” 부탁•…” 그들을……
강진호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 여 준다.
그제야 마스터의 얼굴이 편안해진다.
그의 눈이 허공의 무언가를 쫓는다 싶더니…… 이내 두 눈에서 빛이 사라진다.
“으읍••••••
위긴스가 마스터를 움켜잡았다.
“ 일어나.”
“••••••로드.”
“그건 전사를 보내는 방법이 아니야. 원하는 걸 이루고간 이의 마지 막은 축하받아야 하는 법이지.”
“……예.”
위긴스가 마스터를 안아든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 진영까지 걸어간 위긴스가 한 구석에 마스터를 조심스레 눕혔다.
“여기 잠깐 계십시오. 당신이 잠들 땅은 이곳이 아니니까. 곧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원탁의 마스터가 잠들어야 할 곳으로.”
위긴스가 가만히 마스터를 내려다본다.
굳어진 그의 얼굴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차마 따라지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 근사한 미소를.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많은 것을 전해주기도 하는 법.
그의 삶은, 그가 보여준 의지는 분명 누군가의 가슴에 닿았을 것이다.
분명히.
커다란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몸을 떤다.
나이트.
원탁의 기사들이 이제 더는 마스터라 불리지 못할 이의 최후를 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에 위긴스에게 안겨 옮겨지는 마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먼 거리에서 찍는 조악한 카메라는 그 표정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마스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웃고 있겠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갔으니까.
“마스터……
한때는 원망도 했다.
마스터는 저 총회를 끌어들여 원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이다. 그가 격렬하게 총회의 개입을 막아냈다면 원탁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전투를 본 이들은 모두 이해해야 했다.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임을 말이다.
세상에는 저런 무인들이 있다.
마스터의 경지조차 그들은 감히 쫓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마스터의 전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 괴물들이 존재했다.
그런 이들이 횡행하는 세상이 분 명 존재하는데, 눈을 돌리고 외면한다고 대체 뭐가 달라지겠는가.
외면하고 밀어낸다고 해도 그건 그저 고립을 자처하는 일일 뿐이다.
그들이 이 유럽의 땅에서 자신들 만의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안 세상은 급변했다. 지금 마스터가 자신의 죽음으로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곳을 지켜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곳을 지킨답시고 바깥세상을 외면하는 것은 그들을 우물 안으로 밀어 넣는 짓일 뿐이다.
“……상처투성이가 되고 굴욕을 겪더라도 싸워야 한다는 거로군.”
설사 그 끝이 죽음일지라도.
기사라면 그래야 한다.
그들은 수도 없이 그리 배워오지 않았던가.
남자는 어떻게 죽는가로 자신을 증명하는 법. 지금 마스터는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했다.
그를 인정하는 이든, 그를 인정하 지 않는 이든, 그의 마지막이 지극 히 그다웠다는 것만은 부정하지 않 을 수 없을 것이다.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의 삶은 저것으로 완성되었을지
도 모른다. 그의 죽음이 그들에게 많은 것을 전해준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죽음이 아무것도 바꾸 지 못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굳이 목숨마저 걸어야 할 이 유가 있을까? 흑왕이 승리하든, 강진호가 승리하든 원탁이 겪을 일에는 큰 차이가 없었을 텐데.
차라리 어떻게든 저 싸움에 끼지 않고 살아남아 그들을 이끌어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마스터에게는 원탁이 전부였으니까.”
그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마스터에게 어느 쪽이 이기는가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자신의 목숨조차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을지 모르지. 그저……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상의 운명이 걸린 승부에 원탁의 이름을 걸고 참여할 이가 없다는 걸 견딜 수 없던 게 아닐까?”
그 말이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다들 알고 있다.
지금의 마스터가 위긴스일지라도, 그가 원탁의 나이트 출신이라고 해도 그를 원탁을 대표하는 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원탁을 저버리고 총회를 택 한 이다.
천년이 넘게 세상을 지켜왔다 자 부하는 원탁이 모든 것을 건 마지막 승부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마스터에게 있어서 참을 수 없는 고통 이었을 것이다.
“잘 봐둬.”
그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저분은 우리가 어깨를 펼 수 있 게 하기 위해 제 목숨을 던진 거야.”
입술을 깨문 나이트들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두 눈이 마스터의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꼴이 말이 아니로군.”
환사가 비틀대며 걸어 들어오자 흑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평소의 환사라면 저 말에 부끄러 움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실수였 다고 항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환사는 그렇지 않았다.
고개를 든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운이 좋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운이라……
흑왕이 재미있다는 듯 환사를 바라보았다.
“가치가 있는 상대였나?”
“충분히.”
“ 흐음.”
어쩌면 홀가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환사의 얼굴을 본 흑왕이 만족스럽 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이런 승부를 종종 봐왔다.
승과 패가, 삶과 죽음이 나뉘는 승부.
죽어가는 이도, 살아남은 이도 모두가 서로를 인정하고 그 결과를 받 아들이는 승부 말이다.
솔직히 말해 흑왕은 그런 승부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의 삶은 자기만족을 위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만족스러운 패 배를 택하느니 치욕스러운 승리를 택하는게 그다.
다만…….
“강한 게 전부는 아니다.”
“그 말이 하고 싶은 모양이로군.”
“아닙니다. 강한 건 전부죠.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그저 알았을 뿐입니다. 일신의 얼마만 한 무위를 지니고 있느냐가 강함을 정하는 척도는 아니라는 것.”
“좋군.”
혹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좋다.
지금 이 승부는 세상을 뒤흔들었 을 것이다. 이명환과 귀편의 승부가 저들에게 무인들이 얼마나 필사적으 로 살아왔고, 얼마나 필사적으로 싸
우는가를 알려주었다면, 이들의 승 부는 무인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를 알려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터.
이 순간에도 세상은 요동치고 있 다.
한 번의 승부가 오갈 때마다 무 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무인에 대한 감정이 달라진다.
‘얼마나 전할 수 있을까?’
이건 처절하기까지 한 웅변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도는 다르 다. 승부에 임하는 이들은 모두 다 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겠지. 하지만 그 결과는 결국 흑왕과 강진
호가 의도한 대로 흘러갈 것이다.
‘마지막에 뭐가 남을지는 모르겠 지만 말이야.’
그저 바랄 수밖에.
“다음은? 누가 나가지?”
“ 흐음.”
한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제가 나가보죠.”
“지금?”
“지금이 아니면 나갈 틈이 없어 보이는군요. 사실 처음으로 나갔어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편할 대로.”
“예, 그럼.”
사내가 흑왕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강진호들이 걸어 나오는 이를 보 고 침음을 홀렸다.
한 사람을 잃었다.
물론 이 중에서 마스터에게 남다 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는 위긴스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함께 싸우던 이를 잃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 감정을 채 다스리기도 전에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가혹한 일이다. 그저 가혹한.
찰칵.
강진호가 담배를 빼 물고는 한숨 을 내쉬었다.
“다음은……
강진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제가 가야겠죠?”
“다른 멍청이들은 영 싸울 마음이 들지 않는 모양이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붉은 인영이 고개를 좌우로 까딱였
다.
“싸우다 죽는 것 정도야 일상이나 마찬가지인 일인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새삼스레 침울해지는지.”
“야, 인마! 말조심해!”
혈마가 짙은 비웃음을 홀렸다.
“분부대로, 분부대로.”
혈마가 낄낄대며 앞으로 걸어간다.
방진훈이 눈을 찌푸렸다.
‘하여간 기분 나쁜 새끼라니까.’
그는 총회의 모두를 나름 좋아한 다. 강진호는 말할 것도 없고, 바토 르와 장민은 그 무인다운 면을 동경
한다. 위긴스와는 좀 껄끄럽긴 하지 만 자신에게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이라 존경하는 마음이 크다.
심지어 한때 목을 졸라 죽이고 싶어할 만큼 증오하던 이현수와도 최근에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지 않 은가.
그만큼 친화력이 좋은 그이지만, 저 혈마만큼은 도무지 좋게 볼 수가 없다. 지금만 해도 마찬가지다.
분명 눈앞에 서 있는데 그 기척 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기분 나 쁘고, 다른 이들의 감정을 빤히 알 면서도 굳이 그 부분은 헤집는 심성
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빌어먹을 놈이.”
“거기까지 해두게.”
“……장로님?”
장민이 씁쓸한 눈으로 혈마를 바 라보았다.
“저 나름의 배려인 게지. 그러니 저리 나서주는 게 아니겠나.”
“……배려요?”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려던 방진 훈이 입을 다물었다. 그 말도 분명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려도 저딴 식으로 하면 욕을 처먹는 게 맞잖습니까?”
“그도 그렇지. 다만……
장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슴도치는 그런 법이거든. 끌어 안을 줄 모르지. 다가가면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다는 걸 자신도 아니 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예?”
“그러니 거리를 두고 가까이 오지 않는 걸세. 말을 섞으러 다가오면 가시에 찔리게 만들거든.”
“아니, 안 그러면 되지……
“자네는 모르네.”
장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혈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감
히 마도를 자칭하면서도 마존의 이 름에 복종하지 않는 이들을 어찌 은 애하겠는가.
혈마가 혈교를 마존께 바치고 그를 호위하지 않았다면, 그가 직접 혈마 를 찢어 죽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심정만큼은 절절히 이해하지.’
같은 처지였으니까.
세상 모든 것에 박해받는 기분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장민은 언젠가 마존께서 돌아올 것 이라는, 그 꿈같은 예언을 믿고 참 아왔지만, 혈마에게는 그런 희망조
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가 선택한 것은 개가 되는 것.
무인이 군인의 개가 된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치욕적인 일이다. 하 지만 그는 혈교를 존속시키고 자신 을 따르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그 치욕을 스스로 감내했다.
저들이 그를 도구로밖에 보지 않 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마교의 제자들은 강진호가 없을 때도 그에게 의지했다. 하지만 혈마 에게는 의지할 곳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곳에 박해받으면
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지켜야 하 는 젊은 무인의 심정을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다.
“……저거, 그냥 항복하는 것 아닙 니까? 충성심 따위는 없는 새낀데.”
“충성심이라……
장민이 낮게 웃었다.
“내 생각에는 필사적으로 싸울 것 같군.”
“예?”
“사람이 따르는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생각보다 어 려운 일이지. 제 목숨보다 더 중한
것은 흔치 않으니까.”
“그야 그렇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도 제 집에 강도가 들어오면 무기부터 들고 보 는 법이지. 자신의 쉴 곳을 빼앗긴 다는 건 그런 것일세.”
“……그게 뭔 소립니까?”
장민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어쩌면…….
이 세상 천지에 혈마가 쉴 수 있 는 곳은 오로지 강진호의 그림자 속 뿐일지도 모른다. 장민을 제외한다 면 이곳에서 가장 필사적으로 강진 호를 지키려 하는 이는 어쩌면 혈마
일 것이다.
타는 듯한 햇빛 속을 끝없이 방 황해 본 사람만이 해를 가려줄 그늘 의 소중함을 아는 법이니까.
“말은 의미가 없지. 알지 않은가. 이곳은 승부하는 자리인 동시에 중 명하는 자리이지.”
“이제 저놈이 자신을 중명할 걸 세. 그가 누구인지 말이야.”
장민의 눈이 혈마의 등을 바라보 았다.
그 등에 아직 젊은 시절 장민의 모습이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