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25)
마존현세강림기-2027화(2024/2125)
마존현세강림기 82권 (12화)
3장 계승하다 (2)
장왕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홀로 남은 방진훈이 어안이 벙벙 한 얼굴로 돌아서는 장왕을 바라보 았다.
“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떻게 싸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금 이곳에 서 있는지.
드문드문 기억이 떠오르기는 하지 만, 뭔가 안개가 낀 것처럼 모호하 기만 하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기억보다 더 확실한 것은 하나뿐.
‘왜?’
부상의 정도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지금 다시 맞붙는다?
그럼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방 진훈의 패배로 끝날 것이다.
그런데 왜 스스로 패배를 자인하 고 물러서는가.
“ 아니••••••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승리를 내주기 싫어 서가 아니다. 전신에서 밀려오는 격 통이 그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기 때 문이다.
“끄윽♦•••••
이 이상 부상을 입으면 이겨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다. 조금만 더 부상이 심했 다면, 무인으로서 재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육체의 상처 이상으로 내상 이 심했으니까.
뭔가 이상한 기분이다.
이겼지만 이긴 것 같지 않은, 그 런 찝찝한 기분.
하지만 패배를 인정하고 돌아가는 이를 붙잡고 다시 싸우자고 사정할 수도 없는 노릇.
“끄웅.”
방진훈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몸 을 돌렸다.
욱신욱신.
부러진 다리가 땅에 닿을 때마다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다. 부러진 다리가 아픈 게 아니라, 그 다리가 땅에 닿아 몸이 살짝 흔들릴 때마다 거대한 손이 몸을 빨랫감처럼 쥐어
짜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그 고통을 참아내며 제자리로 돌 아온 방진훈에게 이사들의 말이 쏟 아졌다.
“잘도 해냈군.”
장민의 말이다.
“여하튼 무시 못 하겠다니까.”
이건 바토르의 말이었다.
“상처가 깊군. 어서 치료를 해야 겠어.”
이건 위긴스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말을 들은 방진 훈은 대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슬쩍 들어 모두를 바 라보았다.
“왜 그러나?”
“아니, 이게……
장민이 피식 웃는다.
“승리를 구걸한 것 같은 기분인 모양이로군.”
방진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투정이라는 건 알고 있다. 저만한 이를 상대로 승 리를 따냈다는 건 어마어마한 업적 이니까.
그럼에도 기분이 이상하다.
“아니, 이게 뭐…… 이겨서 찝찝 하다 그런 개소리는 아닌데요.” 장민이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무슨 기분인지 아네.”
“아니, 그게……
“실력이 모자란데도 승리를 한다 는 건 괴이한 일이지.”
“예. 그게……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네.”
“예?”
“자네 제자 이름이 천태훈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자네가 장왕의 입 장이 되어 그와 지금처럼 싸웠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그를 반드시 쓰러 뜨려서 이기겠다는 생각을 했겠는가?” 방진훈이 멍한 얼굴로 장민을 바 라보았다.
그야…….
아니. 그럴 수 없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절대.
반드시 승부를 가르고 둘 중 하 나가 죽어야 한다면, 방진훈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을 것이다. 천태훈은 자신의 제자이니까.
천태훈이 다리가 부러지고 전신이
으스러지면서까지 자신을 몰아붙였 다면, 죽는다 해도 웃으며 죽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지. 장왕이 자네의 스승은 아 니지.”
“하지만 스승일지도 모르네.”
“예?”
“자네 무학의 근본 역시 장왕과 다르지 않으니까. 오랜 옛날에 장왕 이 정립한 무학이 지금 자네의 무학 에 스며들지 않았다고 보장할 수 있 는가?”
“그, 그건••••••
“크게 보자면 자네 역시 장왕의 제자인 법이지.”
방진훈이 어안이 벙벙하다는 얼굴 로 장민을 바라보았다.
“그게 말이 됩니까?”
“자네의 입장에서는 말이 되지 않 을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말 이 되지. 크게 보면 교의 모든 교도 들은 나의 제자나 마찬가지니까.”
그리 들으니 또 말이 되는 것 같 았다.
“언젠가는 자네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날이 올 걸세. 저 장왕도 자네의 입장이었을 때는 이 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방진훈이 이해가 갈 듯 말 듯하 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위긴스가 방진훈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야야! 왜 건드립니까! 아파 죽 겠는데.”
“최고였어.”
“정말 최고였네, 정말. 방 이사.” 방진훈의 입가가 실룩인다.
그의 시선이 위긴스를 넘어 강진
호에게로 향했다. 그가 지금 어떤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꼭 확인하고 싶다.
강진호와 시선이 마주친 방진훈이 움찔했다.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자신을 바라 보는 강진호를 보니 괜히 쑥스러워 진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 한 것 도 아닌데 뭘 그렇게 띄워주십니까?”
“아니. 대단하지. 대단하고말고.”
“흐음, 제가……
“십이비도와 붙어서 살아 돌아왔 는데 얼마나 대단한가. 아까 본 게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거, 악운 하 나는 알아줘야 해.”
“……이 양반이?”
위긴스가 크게 웃으며 방진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방 이사야. 내가 인정한 남 자다워.”
“인정은 갑자기 뭔 인정입니까? 끄응, 아프니까 치료나 해주십시오.”
“아, 아쉽지만 그건 어렵네. 자네 한테 낭비할 마나는 없거든.”
“예? 그 전지인가 뭔가 들고 다 니면서 마나 넘쳐 나는 것 아니었습 니까?”
“필요하면 그거라도 써야겠지만, 보아하니…… 더 싸우지만 않으면 회복이 안 될 상처는 아닌 것 같 군.”
“사람 몸이 걸레짝이 되었는데?”
“무인은 다 그런 법이지. 자자, 저기 가서 쉬게나. 편히 쉬게.”
“아니, 아파 죽겠다니까요?”
“고생했어, 고생.”
“당신, 일부러 그러는 거지?”
“하하하핫!”
“아니! 웃지 말고!”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방진훈이 고함을 내지르자, 이사들이 하나같
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현수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여간 이해를 못 하겠다니까.’ 무인들의 세계는 그에게 있어서 아직 너무 멀기만 했다.
흑왕은 아무 말 없이 장왕을 바 라보았다.
장왕 역시 딱히 변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담담한 얼굴로 흑왕을 마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
그리 무겁지는 않지만, 누구도 선 뜻 입을 열 수 없는 침묵의 끝에 흑왕이 입을 열었다.
“패배는 죽음으로 대가를 치른다 고 말했을 텐데?”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한입으로 두말을 하지 않는 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고.”
“물론입니다, 흑왕이시여.”
“그렇다면……
흑왕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장왕 을 내려다보았다. 말없이 한참 동안 장왕을 바라보던 흑왕이 낮은 목소
리로 말했다.
“네 목숨보다 저자의 목숨이 더 가치 있다 여겼다는 의미겠지?”
장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부정이 아니다. 빤한 사실을 굳이 입에 담을 필요가 없을 뿐.
“ 이유는?”
흑왕을 마주 본 장왕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글쎄요. 이걸 어찌 설명해 드려 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설명한다 해 도 흑왕께서 이해하실 것인가도 의
문입니다.”
그 말을 들은 십이비도들의 눈에 일제히 분노가 깃들었다. 패배 역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흑왕에게 저런 말을 하는 것은 더욱 용납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들어보긴 해야겠지.”
흑왕의 말에 장왕이 순순히 고개 를 끄덕였다.
“그저 보았을 뿐입니다.”
“ 뭘?”
“미래를.”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흑왕이 장
왕을 바라보았다.
“그 미래를 만들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예. 저 역시 그리 생각했습니다. 저들에게 미래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그런데?”
“흑왕이시여.”
장왕이 고소를 머금었다.
“우리는 이미 미래를 포기했던 이 들입니다.”
“미래란 살아가는 이들의 것이지 요. 저희는 살아가는 이들이 아닙니 다. 포기한 삶을 운 좋게 주워 담
고, 이제는 그 찌꺼기를 부여잡고 숨 쉬는 이들이지요.”
장왕이 흑왕과 십이비도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런 저희에게 미래를 논할 자격 이 있습니까?”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예. 멍청한 소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 젊은 무인을 보니 알겠더 군요.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건 우 리처럼 낡은 이들이 아닙니다. 그 미래를 살아갈 이들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지도 않을 미래를 우리 손으로 결정하고, 후손들에게 그 삶을 영위하라 소리치는 것 역시 폭력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저 바깥 세상의 압제보다 더한 폭력일지 모 르지요.”
흑왕의 눈이 가라앉는다.
“그들만으로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기에 우리가 나선 것인데도?”
“저들의 선택이 멸망이라면, 그것 도 나쁘지 않은 미래겠지요. 그리고 저들이 멸망을 선택하지 않는다 면……
장왕의 눈에 힘이 실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겁니다.”
“멍청한……
흑왕의 반응을 보며 낮은 웃음을 지은 장왕이 담담히 묻는다.
“흑왕이시여, 하나만 묻겠습니다.”
“••••••뭐냐?”
“제자를 키워본 적이 없으시지요?”
흑왕의 얼굴이 순간 멍해진다.
“뭐?”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으실 테 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러니 흑왕께서는 이해하기 힘 드실 겁니다. 제자를 키운다는 건,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격랑이 휘 몰아치는 강가에 걸음마를 겨우 뗀 핏덩어리를 내보내는 것과 같은 일 이지요.”
“평생을 가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 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는 부 모보다 나약하니까요. 심지어 어느 순간, 아이가 부모보다 더 뛰어나진 다 해도 부모는 걱정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 작고 나약했던 아이를 바라보던 기억을 평생 지울 수 없으
니까요.”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렇다 해서……
장왕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 아이의 모든 길을 내가 정하 고, 그 길만 따라오면 행복할 수 있 다 강요하고, 보살피고 보듬기만 한 다면 아이는 절대 자라날 수 없습니 다.”
흑왕의 눈이 살짝 혼들렸다.
“부족한 것을 알아도 강가에 내보 낼 수 있는 것이 믿음이지요. 흑왕 께 없는 것은 그 믿음입니다. 가장 뛰어나신 분은 세상 모든 것이 못
미덥기 마련이고, 스스로 세상의 방 향을 정하는 게 옳다 여기시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만들어준 세상을 살아가는 무인들은 그저 나약해지기 만 할 겁니다.”
장왕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정해진 파멸을 뒤로 늦추는 대신 좀 더 확실한 파멸을 맞이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차라리 저들의 가 능성에 걸겠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 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겠습니다.”
장왕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게 어른이 해야 할 일 아니겠 습니까?”
흑왕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장왕이 그런 흑왕을 바라보며 빙 그레 웃었다.
“이해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흑왕과 저의 생각이 달랐을 뿐이겠 지요. 손을 쓰십시오. 어찌 되었든 제 말을 제가 어겼으니 대가를 받겠 습니다.”
그 말을 한 장왕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흑왕이 내릴 죽음이라는 대가를 피하지 않겠다는 듯.
그러자 흑왕의 얼굴이 살짝 일그
러 졌다.
“나는 내가 한 말을 번복하지 않 는 사람이다.”
“예. 그게 옳습니다.”
흑왕이 짧게 주먹을 쥐었다 편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담담히 웃고 있는 장왕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흑왕의 손이 가볍게 휘둘러졌다.
파아아아앗!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기운이 장왕의 몸을 꿰뚫고 지나간다.
장왕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에는 작은 의문이 떠올라 있었 다.
“왜..?”
“원하는 것을 내려주는 게 벌이 될 수 있을 리 없지. 그건 오히려 상이다.”
혹왕이 싸늘하게 일갈했다.
“여기서 내가 널 죽이면, 너는 마 음 편히 죽을 수 있겠지. 그건 벌이 아니다. 살아서 내가 만드는 세상을 그 두 눈으로 확인해라. 삶의 마지 막 선택이 철저하게 틀렸다는 걸 확 인하는 게 네게는 진짜 형벌이 될 테니까.”
“물러나.”
장왕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게 흑왕이 그에게 내리는 형벌 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한다.
장왕이 조용히 뒤쪽으로 가 시립 하자 흑왕이 의자 깊이 몸을 묻었 다.
‘믿지 못한다라……
웃기는 소리다.
너무 당연한 말이니까.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대체 누 굴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순진해 빠진 소리를 잘도 지껄이 는군.’
틀리지 않았음에도 패했다.
틀리지 않았음에도 잃었다.
그런 흑왕에게 옳고 그름을 논하 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 가.
옳음이란 그저 힘을 가진 자의 선택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옳다.
그야말로 진정한 강자이니까.
지금 이곳에서…….
그가 그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