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27)
마존현세강림기-2029화(2026/2125)
마존현세강림기 82권 (14화)
3장 계승하다 (4)
방진훈의 선전으로 승부는 원점으 로 돌아왔다.
이명환은 그 패기로 있을 수 없 는 승리를 따냈고, 마스터는 당당한 패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모두 에게 분명히 보여주었다.
혈마는 비록 패했지만 상대의 목
숨을 빼앗았고, 방진훈은 난적을 상 대로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결과는 이 대 이.
돌고 돌아 원점이다.
총회의 입장에서는 사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승리를 따낸 이든, 패배한 이 든 모두가 더 자신보다 강한 이와 맞서 싸워 만들어낸 결과니까.
처음으로 돌아가 서로 방심하지 않고 승부를 낸다면, 네 번 중에 두 번의 승리를 따낼 확률은 냉정하게 말해 백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
다.
최상의 결과.
하지만 이 결과를 과연 최상이라 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을 바라보는 십이비도의 눈빛 이 조금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으니 까.
총회의 입장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어냈다는 말은 거꾸로 말하자면, 십이비도와 혹왕계의 입장에서는 상 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승부가 처음 시작될 무렵만 해도 네 번의 승부에서 동률을 기록 하리라 생각한 십이비도는 단 한 명 도 없었을 것이다.
“이거, 꼴이 생각보다 우스워진 것 같은데.”
흑왕의 말에 십이비도들이 침음을 터뜨렸다.
승리?
그건 지금 이 순간에도 전혀 의 심하지 않는다. 불의의 사고란 계속 되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사실이 혹왕과 십이비 도에게 위안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승부는 단순히 승리를 따내는 게 목적인 승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은 중명하는 자리.
이 승부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무인들에게 누가 진정으로 무인계를 이끌어갈 자격이 있는지를 선언하는 자리다.
그와 동시에 무인계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강 하고 위험한 존재인지를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으 ”
흑왕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기껏 이기고도 어떻 게든 한 번 찔러보려고 하는 놈들이 넘쳐 날지도 모르겠군. 치즈 챔피언 은 영 취향이 아닌데.”
치즈 챔피언.
구멍이 숭숭 뚫린 에멘탈 치즈처 럼 허점이 많이 보이는 챔피언을 지 칭하는 말이다.
물론 이건 흑왕의 엄살이었다. 이 곳의 승부가 압도적으로 끝나지 않 는다 해도 그 수준만큼은 의심의 여 지가 없다. 결과가 어찌 나오든 이 승부를 지켜본 어떤 무인도 감히 이 들의 강함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
하지만…….
그렇다 한들 정도의 차이는 있는 법. 이 수준 높은 무대에서 압도적 인 승리를 거두는 것과 겨우겨우 승 리하는 것을 비교한다면, 어느 쪽이 더 높은 존중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는 굳이 계산이 필요하지 않 은 일이다.
흑왕의 목표는 이 승부를 이기는 게 아니다.
이 승부를 이기고 무인계를 그가 원하는 세상으로 이끄는 것. 그 동 력을 위해서는 조금 더 압도적인 승
리가 필요했다.
지금까지의 참상을 만회할 수 있 는, 좀 더 압도적인 승리가 말이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한 건가?” 그 말을 들은 백연홍이 피식 웃 었다.
“얼빠진 놈들이 먼저 나간 덕이겠 죠.”
“그것참 위로가 되는 말이로군. 내가 애써 얼빠진 놈들만 긁어모았 다는 말이 되니 말이야.”
“이런, 제가 말실수를 했나 보군 요.”
흑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흑왕에 게 있어서 이런 모습은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이런 상황을 몇 번이 나 봐왔으니까.
“절대의 영역을 넘어선 이들의 실 력은 꽤 유동적인 법이지.”
무학을 익혀 도를 깨우치고, 불법 을 완성한다는 말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완전한 거짓은 아니 다.
끊임없는 극기로 자신을 시험하 고,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관철해 나가는 과정은 인간의 한계를 넘은
무언가를 추구해 나가는 종교의 영 역과 분명 맞닿아 있으니까.
다시 말하자면, 일정 수준을 넘은 무인의 실력은 단순히 육체적 능력 의 고하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 다.
오히려 누가 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가 더 많은 부분을 좌 우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흑왕 역시 이견이 없 다.
이건 옳고 그름을 넘어선 세상의 법칙과도 같으니까.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단
하나였다.
“우리의 의지가 저들의 의지보다 명백히 나약해 보인다는 사실을 내 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곳에 모인 이들은 무인계의 미 래를 위해 자신들의 삶을 포기한 이 들이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일신의 가진 힘만으로도 권 력이든 재력이든 질린 정도로 즐길 수 있는 이들이 흑왕과 십이비도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참아냈다.
그리고 오직 이 한순간을 위해서 칼을 갈아왔다. 그런데 그런 십이비 도들이 보여주는 의지가 저 급조한 이들의 의지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 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받아들이실 필요 없습니다.”
흑왕의 그 말을 받은 이는 다름 아닌 신창이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바로 지금 제가 증명할 테니 말입니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흑왕의 시선이 신창에게 가닿았다.
리우양이 그의 비서라면 신창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칼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는 누구보다 앞서서 흑왕의 의지를 이행하는 자 였으니까.
그래.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 가능할까?”
“운이 좋아 패하고도 목숨을 구한 네 창끝이 무뎌지지 않았다고 자신 할 수 있나?”
신창이 말없이 흑왕을 바라보았 다. 한참 동안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으로 혹왕에게 시선을 주던 신창 이 담담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입
을 열었다.
“패배에 변명의 여지 따위는 없습 니다.”
«으 n
“어쩌면 흑왕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 창끝은 무뎌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니요. 무뎌졌겠죠. 그렇지 않았다 면 제가 저자에게 패할 일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나서겠다는 건가?”
“예.”
신창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담담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패했는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
했습니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제 가 무인의 혼을 잃은 건지도 모릅니 다. 하지만…… 제가 내린 답은 그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 답이 뭐지?”
신창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그걸 확인해 보려 합니다. 제게 패배를 안겨준 이를 다시 상대 하며 말입니다.”
흑왕이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 네 개인적인 궁금증을 풀 기 위해서 한 번 패한 이에게 다시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라는 거로군.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이 자리에서.”
“ 그건••••••
신창이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이건 무리한 말일지도 모 른다.
실수였든 실력이었든, 그는 분명 홍왕에게 한 번 패했다.
그라고 해도 상대에게 한 번 패 한 이를 이런 승부에서 다시 붙이지 는 않을 것이다. 이곳은 개인적인 것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 저는••••••
“좋지.”
흑왕이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봐. 대신 확실하게 엉덩이를 걷어차 주라고. 나는 같은 이에게 두 번이나 질 정도로 못난 놈을 거 둔 적은 없으니까.”
꾸욱.
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신창이 입술을 꽉 깨물고는 고개 를 끄덕였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 다.”
그 말을 남긴 신창이 몸을 돌리 자, 백연홍이 짧게 이죽거렸다.
“싸움에 진 개가 아직 지지 않았
다고 우기며 다시 달려드는 건 꼴불 견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노골적인 조롱.
하지만 그 조롱을 받은 신창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싸움에 진 개라……
백연홍의 말을 짧게 되뇐 신창의 시선이 백연홍에게로 향했다.
“그건 모두 마찬가지 아닌가.”
“뭐?”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 말을 입 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린 모두 삶에 패배했던 이니까.”
“그럼에도 주어진 기회를 부여잡 았지. 그러니…… 이번이라고 다를 것도 없어.”
백연홍이 재미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지고 돌아오면 내 손으로 목을 잘라주지.”
“질 수도 있고, 돌아올 수도 있지 만, 지고 돌아오는 일은 없다.”
백연홍을 일별한 신창이 앞으로 걸어 나간다.
저벅저벅.
한 손에 애병을 들고 중앙으로 걸어 나온 신창이 깊게 숨을 내쉬었
다.
그러고는 자신의 심장 어림에 한 손을 가져갔다.
느껴진다.
그의 심장이 평소보다 명백하게 빠르게 뛰고 있는 게 말이다.
신창이 쓴웃음을 지었다.
긴장이라는 감정이 낯선 것은 아 니다. 하지만 이건 평소 그가 느끼 던 긴장감과는 분명 조금은 이질적 인 감정이었다.
‘얼마 만이지?’
누군가에게 도전하는 게.
어쩌면 이건 무인으로서는 더없이
흥분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전력을 다해 승부를 겨뤄 패배한 이에게 다 시 도전해 설욕할 수 있는 기회 같 은 건, 생각처럼 쉽사리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창은 자신을 감싼 감정을 완벽하게 즐길 수 없었 다.
아니, 스스로 그 감정에 취하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
이 자리는 그의 개인적인 설욕을 위해 준비된 자리가 아니니까 말이 다.
짧게 심호흡을 한 신창의 시선이
건너편에 있는 한 남자에게 가닿았 다.
홍왕.
중국을 지배하는 세 왕 중 하나.
아니.
창왕이 죽고 흑왕이 이탈해 버린 지금, 홍왕은 명실상부 중원의 현재 를 대변하는 무인이다.
그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 진 이름이 신창의 입에서 흘러나왔 다.
“홍왕.”
다른 이들의 승부는 어떨지 모른 다.
하지만 그가 싸울 상대는 처음부 터 정해져 있었다.
“그대에게 도전하겠다.”
그 말을 들은 홍왕의 미간이 살 짝 좁아진다.
그가 저 도전을 받아야 할 이유 는 없다. 그들이 정한 것을 서로 싸 워 승부를 겨룬다는 것뿐. 상대를 고를 권한은 홍왕에게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홍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승자에게 패자
의 목숨을 취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패자에게는 당연히 승자에게 다시 도전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 이다.
또한 그 승부를 받아들이는 것이 승자가 감수해야 할 단 하나의 의무 다.
그가 패한 뒤에도 강진호에게 도 전하고, 강진호가 그 도전을 마다하 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슬쩍 고개를 돌린 홍왕이 강진호 의 얼굴을 일별했다.
그러고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발 을 내딛기 시작했다.
일 보, 일 보.
그 한 걸음, 한 걸음에 어마어마 한 패기가 실린다. 무학에 대한 이 해가 조금도 없는 화면 너머로 본다 해도 이 걸음에 실린 기세만큼은 확 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쿵.
마침내 중앙에서 신창과 마주 선 홍왕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잃은 것은 되찾았는가?”
“글쎄, 모르겠군.”
“그렇다면……
홍왕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세가 홀러 나왔다.
“이번 승부의 결과 역시 정해져 있겠지. 너는 결코 나를 이길 수 없 다.”
신창의 창이 홍왕의 목을 겨누었 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신창의 두 눈이 호수처럼 가라앉 는다.
“그렇다 해도 물러설 수 없는 승 부가 있는 법이지.”
두 사람이 내뿜은 기세가 맞물려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의지와 서로 다른 목 적을 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