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34)
마존현세강림기-2034화(2033/2125)
마존현세강림기 82권 (19화)
4장 격렬하다 (4)
“상처는?”
“치명상입니다. 치명상이긴 한데…… 위긴스가 심각한 얼굴로 홍왕의 상세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 다.”
“……불행 중 다행인가.”
바로트가 낮게 중얼거렸다.
“최악은 면했다고 봐야겠죠.”
장민도 침중한 얼굴이고, 부상으 로 여력이 없는 방진훈조차 영 찝찝 한 얼굴로 홍왕을 내려다보고 있었 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니 다행이지 만…….
“홍왕이 질 줄이야……
방진훈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다 른 이들은 몰라도 홍왕만은 반드시 승리해 줄 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그 홍왕이 패배하는 사태가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건 그동안 총회 쪽에 따르던 행운이 더는 그들을 향해 웃어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 이승삼패라……
장민의 입에서도 낮은 침음이 흘 러나왔다.
나쁜 성적은 아니다. 확실히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쉽지 않군.’
아홉 번의 승부 중 다섯 번이 치 러졌다. 그중 세 번을 졌다. 그 말 인즉, 강진호와 흑왕의 승부까지 끌
고 가기 위해서는 이사들이 세 번의 승부 중 두 번을 이겨야 한다는 의 미다.
‘저 십이비도를 상대로 두 번이 라……
이건 너무도 무거운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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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르가 크게 침음을 흘리며 시 선을 아래로 내렸다.
창백한 안색으로 누워 있는 홍왕 의 가슴에 길고 붉은 선이 그어져 있다.
‘ 모르겠군.’
그의 얼굴에 묘한 기색이 어렸다.
분명 신창의 창은 홍왕의 가슴을 갈랐다. 단 1센티만 더 깊이 베였다 면 절명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처다.
하지만…….
바토르가 의식을 잃은 홍왕의 얼 굴을 바라보았다.
‘주먹 한 번을 떨칠 힘은 있었을 텐데.’
그 순간, 홍왕은 선택했을 것이다.
모든 힘을 소진한 신창에게 일격 을 날려 승리를 따내는 대신 자신의 목숨마저 포기하는 길과 그대로 얌 전히 패배해 목숨을 구하는 길.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그건 말 그대로 선택이니까.
하지만 그가 아는 과거의 홍왕이 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주먹을 뻗었을 것이고, 자신의 목숨과 승리 를 교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흥왕은 다른 길을 택했다.
패배의 굴욕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이어 나가는 길을 선 택한 것이다.
‘겁을 먹었나, 홍왕?’
어찌 보면 비겁해진 것일지도 모 른다. 승부에서 목숨을 아꼈다는 말 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적어도 바토르만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의 홍왕은 자신이 진 짐의 무게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었다.
흥왕에게 중원 최고의 무인으로서 다른 이들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홍왕에게 있어서 이 의무란 강자이 기에 따라오는 것이지, 스스로가 적 극적으로 관철해야 할 목표가 아니 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된 거겠지.
자신마저 죽었을 때, 중원이 맞이
하게 될 운명을 말이다.
나약함?
웃기는 소리다.
패배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무 리 패배를 반복해도 패할 때마다 심 장을 면도날로 난자하는 것 같은 고 통이 뒤따른다. 바토르조차 그러한 데 홍왕처럼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이는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홍왕은 자신을 따르는 이 들을 위해서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 하는 길을 택했다. 그런 그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강진호는 중원에 딱히 관심을 둘
사람이 아니다. 총회라면 몰라도 중 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눈길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그들이 승리한 다 해도 홍왕이 없는 중국은 다시 지옥 같은 내전에 휩싸일 것이다. 아니, 내전 이전에 홍왕이 없는 그 들이 바깥세상의 압력에 대항할 수 있을지부터 미지수다.
삼왕의 존재감은 그토록 대단했으 니까.
그걸 알기에 홍왕은 어쩌면 죽음 보다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는 패 배를 택했다.
“……빌어먹을.”
바토르가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나는 저런 건 못해.’
그에게 몽골의 미래를 위해 패배 를 감수하라 하면 정말 홍왕처럼 받 아들일 수 있을까?
쉽사리 그렇다는 말이 나오지 않 았다. 그 말은 홍왕의 그릇이 바토 르의 그릇에 비해 크다는 의미겠지.
과거의 바토르라면 이런 홍왕의 선택을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든 강함을 증명하는 쪽이 옳 다고 망설임 없이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그
리고 이 승부를 지켜보면서 결국 바 토르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강함이라는 것은 그저 육체에 머 무른 게 아닐지도 모른다.’
패배하지 않는 육체.
그 육체를 움직이는 효율적인 이 성.
그것만이 강함의 척도라 생각했 다. 하지만…… 적어도 그 말은 이 곳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절대자가 모인 이곳에서는 그가 아는 상식이 붕괴한다. 결코 이길 수 없을 나약한 자가 승리하고, 결
코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이가 미래를 위해 패배를 받아들인 다.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적이라 할 수 있는 이를 살리기 위해 제 목숨을 내놓고, 결코 섞일 수 없는 이들이 그 마지막을 인정한다.
그래.
이곳은 그가 알던 것이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바토르가 입술을 실룩였다.
뭔가 배 속에서 돌덩어리가 굴러 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이 승부는 개인의 감정이 엮여서는 안 되는 곳
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바토르.”
바토르의 고개가 뒤쪽으로 돌아간 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호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겁이라도 먹었나?”
바토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말조심해라, 주인. 나는 바토르다.”
“아니까 묻는 거다.”
“흥.”
평소라면 좀 더 으르렁대며 달려 들었을 바토르가 지금은 쉽사리 말 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도 알고 있 는 것이다. 그의 안에 지금 풀 수 없는 의혹이 스며들었다는 것을.
이 전장은 육체의 강함만으로 이 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마음속에 손톱만 한 의혹이라도 있다면 결코 숭리를 바랄 수 없다.
그럼에도 마음이 다잡아지지 않는 다.
“주인, 나는……
뭔가 말을 하려던 바토르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강진호가 슬쩍 쓰러져 있 는 홍왕에게 시선을 주고는 바토르 를 다시 바라보았다.
“너는 홍왕이 아니다.”
바토르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알고 있다.
그는 홍왕을 뛰어넘기 위해서 평 생을 노력해 왔지만, 단 한 번도 홍 왕을 넘지 못했으니까.
바토르의 내면을 뒤흔든 건, 패배 한 홍왕을 보고도 이전보다 더한 격 차를 느껴 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와 •홍왕 사이에는 영원히 따라잡
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게 아닐 까 하는 의문을 떨쳐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바토르를 빤히 보며 입 을 열었다.
“굳이 홍왕이 될 필요도 없지.”
“뭐?”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답은 없다.”
“그저 방식이 다른 것뿐이야. 홍 왕의 강함과 너의 강함이 같을 이유 는 없지.”
바토르가 뚫어져라 강진호를 바라 보았다.
“과정이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니야.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는 거지. 네 방식을 관철해서 네가 이기면……
강진호가 씹어뱉듯 말한다.
“네가 옳은 거다.”
말없이 강진호를 빤히 바라보던 바토르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 다.
“……어지간히 못 미더워 보였던 모양이군.”
찰칵.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 을 붙인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 아서.”
“멍청한 생각이 아니라!”
“그것부터 문제야.”
“••••••뭐?”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입을 열었다.
“생각이 많을 필요는 없어. 네가 해온 건 네 몸에 이미 쌓여 있으니 까.”
“여긴 고민하는 자리가 아니라 중 명하는 자리야. 가서 증명해. 그거면 충분하니까.”
바토르의 눈가가 실룩였다.
“빌어먹을, 말은 잘하는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내저은 바토르가 몸을 빙글 돌린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 어갔다.
그 커다란 뒷모습을 보며 강진호 가 낮게 웃을 때, 이현수가 슬그머 니 다가와 속삭였다.
“회주님.”
“왜?”
“ 괜찮을까요?”
“뭐가?”
“바토르 님 말입니다. 이길 수 있 을까요?”
“모르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강진호가 대 답하자, 이현수가 얼굴을 와락 일그 러뜨렸다.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에 있습 니까?”
“……저쪽에서 누가 나을지도 안 정해졌는데, 무슨 수로 승패를 논하 라는 거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현수가 살짝 머뭇거렸다. 강진 호의 말이 틀린 게 없다는 사실을 그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자 강진호가 슬쩍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못 미더운 모양이로군.”
“아니, 그••••••
무언가 변명을 하려던 이현수가 결국 포기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왜?”
“ 이유라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건 논리의 영역이 아니니까. 그가 바토르에게 가진 감정은 불신과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바토르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뭐 랄까, 저는 바토르 님이 현실을 논 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현실이라……
“이사님들 중에서 회주님이 이기 겠다고 하는 사람은 바토르 님밖에 없으니까요. 아니, 꼭 그게 회주님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이 들이 냉정하게 계산을 할 때 바토르
님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바토르 님이 이길 거라는 생각 이 잘 안 듭니다. 무학을 잘 모르는 제가 주제넘게 할 말은 아니지만.”
초인들의 대결이다. 그 승패를 이 현수가 논한다는 건 참 우스운 일이 었다. 적어도 이현수의 생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현수와는 생각 이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주제넘지는 않아.”
“예‘?”
이현수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 으로 바라보자, 강진호가 피식 웃어 버렸다.
“본인도 그리 생각하고 있으니까.”
“……본인요?”
“바토르가 이긴다는 걸 가장 못 믿는 이는 오히려 바토르란 거지.”
“심지어 자신만을 위해 떼를 쓴 신창이 홍왕을 상대로 이기고 돌아 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홍왕에 게 벽을 느낄 만큼.”
“어……
“멍청하지.”
이현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토 르의 등을 바라보았다.
저 거대한 등.
말도 안 되는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저 사람이 자신의 승리를 믿지 못한다고?
“하지만 바토르 님은……
이현수가 뭔가 말하려다 다시 입 을 닫았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도 느끼는 게 있던 것이다.
“후우.”
강진호가 느릿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이길 수 있느냐고 물었나?”
“……예.”
“다시 대답하지. 나도 몰라.”
강진호가 굳이 같은 대답을 하고 는 다시 입을 열었다.
“ 다만••••••
그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그저 믿을 뿐이야, 이길 거라고.”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토 르를 바라보았다.
태산처럼 굳건하게 선 그의 건너 편으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오 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