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38)
마존현세강림기-2038화(2037/2125)
마존현세강림기 82권 (23화)
5장 맹렬하다 (3)
입에서 단내가 난다.
휘두르는 팔이 더없이 무겁다.
언제든 그에게 지치지 않는 활력 을 가져다주던 그의 육체가 물 먹인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그극.
관절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느
낌이다. 마치 윤활유가 말라 버린 채 방치된 오래된 기계처럼 몸을 움 직일 때마다 덜컥대고 마찰하는 느 낌이 난다.
‘피를 너무 홀렸나……
아직 눈은 흐려지지 않았다. 하지 만 눈으로 받아들인 정보가 머릿속 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느낌이 다.
심지어 그 느린 처리마저 몸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가 생각한 것 보다 한 타이밍 늦게 몸이 움직인 다.
아마 이것 역시 피를 너무 많이
홀린 것 때문이겠지. 무학이 아무리 상식을 벗어나는 힘을 가졌다고는 해도 뇌를 돌리는 데는 피가 필요하 니까.
그의 육체.
그의 모든 자신감의 근원이자 그 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육체 가 붕괴하고 있다. 그의 강건함이 점점 더 무너지고 있었다.
카가가각!
또 한 번의 검격이 그의 허벅지 를 가르고 지나간다.
일격에 무너진 것은 아니다. 하지 만 저 검격들은 한 번, 한 번 착실
하게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커다란 제방이 작은 구멍 하나부터 무너지 둣이, 튼튼하게 쌓아 올린 탑이 실 선 같은 균열이 모여 붕괴를 일으키 듯 말이다.
고통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육체에 거미줄처럼 가로그어진 상 처들이 전해 오는 고통도, 몸 안으 로 파고든 기운들이 기혈을 불태우 는 고통들도 모조리 버텨낼 수 없 다.
그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조금씩 무너지는 그의 육체였다. 더는 완전 할 수 없는, 더는 철탑 같을 수 없
는 육체.
아니, 아니겠지.
균열이 가고 있는 것은 육체가 아니다. 흔들리고 있는 것은 그의 정신. 육체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과 굳건한 신앙일 터.
‘ 대단하군.’
온몸의 모세혈관이 모조리 터져 붉다 못해 검게 물든 도귀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그에게 도격을 날려 대 고 있다.
단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 이 없다.
그와 힘으로 맞설 수 있는 이를
정면에서 상대해 본 적은 있지만, 그의 힘으로 맞상대 할 수 없는 이 가 감히 그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 칼을 그어 대는 경험을 해볼 날이 올 줄이야.
저 위험천만한 곡예.
신경을 바늘로 긁어 대는 것 같 은 긴장감 속에서 도를 휘두른다.
자신의 육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설사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는 참상도 받 아들이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시도조 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바토르도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의 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라면 못할 게 없는 사람이다. 하 지만 저 도귀 역시 자신이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 는 사람임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었 다.
“큭 ”
웃음이 난다.
이토록 몸에 남은 수분 한 방울 까지 모조리 짜내는 싸움을 해본 것 이 대체 얼마 만이던가.
‘나는 말뿐이었지.’
노력해 왔다. 언제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바토르는 알고 있었다. 세상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
강진호와 싸우고 패배한 이후.
그는 끊임없이 도전했다. 더 강한 상대와 싸우기 위해.
하지만 반면 그는 조금도 도전하 지 않았다. 지금껏 그가 싸운 상대 는 언제나 패배한다 해도 아쉬울 게 없는 상대들이었으니까.
강진호, 그리고 홍왕.
그들과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생각 하면서도 그가 한 것은 그저 노력뿐 이었다.
맹세할 수 있다.
그는 단 한순간도 스스로를 다그 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항상 그의 모든 것을 짜내어 노력하고 또 노력 했다.
하지만…….
‘패배해도 되는 노력 따위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보상받지 못해도 상관없는 연습 같은 게 가치가 있을 리가 있나.
기어코 바토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패배한들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말 은, 끊임없이 패배한다 해도 상관없
다는 말임을. 그건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건 저열하기 짝이 없 는 자기만족. 스스로를 속이는 짓거 리에 불과하다.
그의 눈앞에 있다.
완전한 승리,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완벽한 숭리를 거두기 위해서 스스로를 위험에 몰아넣은 전사가.
사람의 표정에 맹렬하다는 말을 붙이는 게 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 지만, 지금 도귀의 얼굴은 그 말이 아니고서야 표현할 도리가 없었다.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넣은 이가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도를 휘둘러
댄다.
‘즐거워 보이는군.’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그보고 미 쳤다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르겠다.
종이 한 장의 싸움. 말 그대로 백 척간두에 목숨을 걸고 서서 칼춤을 추고 있는 이가 즐거워 보인다니.
하지만…….
다른 이는 몰라도 적어도 도귀만 큼은 그런 그의 말에 동의할지도 모 른다.
‘당연히 즐겁겠지.’
평생 동안 한 가지 목표만을 위 해 달려왔다. 그들이 얻은 힘이라면
언제든 재력과 권력을 손에 넣고 세 상에 존재하는 모든 쾌락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음에도, 고행이라고 부 를 수밖에 없는 수련에 온몸을 던지 고 오직 한 가지만을 바라왔다.
그렇게 손에 넣은 힘.
그렇게 손에 넣은 능력.
그 모든 것을 모조리 사용해 싸 울 수 있는 상대를 만났는데, 어떻 게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애초에 우린 그런 족속이니까.’
이 순간이 아니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다. 전투가 아 니면, 그 전투를 통해 스스로의 강
함과 스스로의 신념을 확인하지 못 한다면, 그의 세상은 무채색의 모노 톤으로 빛이 바랠 뿐이다.
카가가가각!
그리고…….
바토르의 대흉근에 힘이 들어간 다. 그의 가슴을 가르고 지나간 도 격에 살이 쩍 벌어지고 뼈가 끊어지 는 순간, 뭐라 표현할 수도 없을 만 큼 끔찍한 고통이 전신에 휘몰아친 다.
하지만 그 고통이야말로 그가 살 아 있다는 명명백백한 증거이자, 그 의 육체가 여전히 그를 지켜내고 있
다는 확인이었다.
“오오오오오오!”
바토르가 진각을 내밟으며 팔을 휘두른다. 그 팔이 만들어내는 가공 할 압력이 도귀의 피부를 짓눌러 터 뜨린다.
스치지도 않았는데 도귀의 어깨 어림 살이 터지며 피가 솟구친다.
이미 한계다.
그도, 도귀도.
그러니!
바토르의 두 눈이 시뻘건 광망을 토해낸다.
‘이제 결판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도를 끌어당겨 회수한 도귀의 몸 이 빙글 회전한다. 조금의 군더더기 도 없이 너무도 완벽하게. 그리고 그 모습을 두 눈에 담는 순간 바토 르의 세상에 일순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건•…”
그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광경 이었다.
물처럼 유연하게, 하지만 폭풍처 럼 강렬하게.
느릿하게 회전한 도귀의 발끝이 바닥을 움켜쥐듯 파고드는 모습이 똑똑히 들어온다. 그 발끝에서 시작
된 힘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 무릎에 서 튕겨지고, 이내 가공할 탄력으로 허리를 스프링처럼 휘감는다.
한 올, 또 한 올.
전신의 모든 힘이, 전신의 모든 내력이 가슴을 타고 팔로 전해지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마 치 바토르가 저 도귀의 육체를 관조 하듯 말이다.
그 순간, 바토르는 이해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 아마 도귀는 제 일생을 통 틀어 다시없을 일격을 날리고 있다. 아마 그 스스로는 무아지경에 빠져
들어 알지 못하겠지만, 도귀를 상대 하는 바토르는 분명히 알 수 있었 다.
그리고 그건 단 하나를 의미한다.
모든 힘을 끌어모은 도귀의 칼이 환상 같은 호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점점 더 느려지는 세상은 그 칼 을 마치 멈춘 듯 보이게 만들고,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그 칼의 끝이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있게 했다.
‘목.’
저 검에 실린 예기는 전에 없이 날카롭다.
바토르라는 거대한 숫돌에 끊임없
이 갈아대 날을 세운 칼은 이제 드 디어 바토르를 베어낼 수 있는 날카 로움을 손에 넣었다.
어쩌면…… 저 칼이야말로 바토르 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칼’이라 불 릴 수 있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칼이라는 말이 무언가를 자르기 위해 존재하는 날붙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바토르에게는 오직 저 도 귀에 손에 들려 있을 때의 저 칼만 이 칼이라 불릴 수 있다.
저 칼, 지금 이 순간, 도귀의 손 에 들린 저 칼은 그의 목을 베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 바토르는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에 직면했다.
두려움.
그래. 그건 두려움이었다.
거대한 칼이 목을 향해 전력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았을 때, 평범한 사람이 당연하게 느끼는 두려움. 하 지만 그건 바토르에게는 너무도 생 소한 감정이었다.
두려워해본 적이 없으니까.
일격에 자신의 목을 날릴 수 있 는 무언가라는 건 바토르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으니까.
하지만 저 칼이 자신의 목을 베 어낼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 간, 단 한 번도 없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두렵다.
저 날이 그의 목으로 날아드는 것이 무섭다. 저 칼이 그의 목을 단 숨에 쳐 날려 버리고, 그의 육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버릴까 봐 너무도 무섭다.
죽음도 분명 두렵다. 하지만 죽음 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가 믿는 모 든 것의 부정이었다.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던 바토르의
발이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저 도는 그의 목을 가르고 잘라 낼 것이다. 그의 육체를 산산이 파 괴하고 말 것이다.
‘ 나는••••••
이 느려진 세상에서 저 도가 그 의 목에 닿기까지, 그 짧은 시간동 안 그에게 가능한 움직임은 겨우 한 뼘 정도뿐.
하지만 바토르는 알고 있다.
물러선다면?
단 한 걸음만 물러선다면?
그렇다며 저 도는 그의 목을 스 치고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남은
모든 힘을 짜내 도격을 날린 도귀에 게는 더 이상의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손쉬운 승리 가 그에게 주어진다.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래. 회피란 결코 비겁이 아니 다. 상대의 공격을 정면을 맞받는 것이 어리석음일 뿐이다.
그는 이미 내면의 자신, 과거의 자신과 직면하지 않았던가. 그가 원 한 것은 승리이고, 또 무학의 경지 를 이룩하는 것이지, 이 빌어먹을 몸뚱아리가 세상 가장 단단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단 한 발.
한 발만 뒤로 물러나면 된다. 단 한 발만! 그것만으로 그는 모든 것 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승리의 영광, 그에게 주어진 의 무, 스스로에 대한 증명, 그리고 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까지.
홍왕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던가. 지금 그 에게 완전한 승리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자신이 결코 물러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남은 힘을 모조리 짜내 마지막 일격에 밀
어 넣은 저 머저리 덕분에!
전투란 결국 서로를 속이고 속이 는 것.
이 한 걸음의 물러남은 그야말로 정당하다. 아니, 무인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자세다. 스스로 무인이라 자 인하는 자는 적의 공격을 피해내 숭 리를 거머쥘 수 있는 이 기회를 결 코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 그저 한 걸음.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단 한 걸음이다. 한 걸 음, 그저 한 걸음.
그저 물러나기만 하면…….
바토르의 입이 그 순간 살짝 벌 어진다. 피에 젖은 그의 이가 드러 나며 바토르가 비틀린 웃음을 그 얼 굴에 담았다.
‘ 나는••••••
그래. 나는 바토르.
‘얼간이다, 이 개자식들아!’
바토르가 자신의 목을 베어오는 도를 향해 앞으로 한 발을 내디딘다.
그리고 그 순간.
한줄기 빛살로 화한 도귀의 최후 의 일격이 자신을 향해 다가선 바토 르의 목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