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48)
마존현세강림기-2048화(2047/2125)
마존현세강림기 83권 (8화)
2장 사냥하다 (3)
털썩.
공령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의 결과를 확 인할 여력이 없다. 기력을 소진했다 는 말로 표현할 상황이 아니다.
몸의 생명력이 모조리 빠져나간 듯한 모습. 새하얗게 새어버린 그의
머리가 이 일격에 얼마나 많은 것을 밀어 넣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쿨럭.”
기침 소리마저 크지 않다. 거의 잦아드는 목소리.
“쿨럭!”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공령의 입 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입에서 홀러나온 피의 양은 그리 많 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 모 습이 더욱 힘겨워 보였다.
‘ 성공했나……?’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에게 남아 있던 모든 것은 장민을 마지막 함정에 몰 아넣는 것에 쏟아부었으니까.
장민 같은 이는 평범한 방법으로 는 잡을 수 없다. 저 폭풍 같은 광 기 속에 노회한 이성을 숨긴 늙은 범은 결코 함정에 빠지지 않으니까.
상대를 몰아넣을 수 없는 사냥꾼 이 맞이할 운명은 단 하나뿐이다. 자신이 사냥하던 사냥감의 송곳니에 목이 물려 죽는 것.
하지만 장민이 평범한 범이 아니 듯, 공령 역시 평범한 사냥꾼은 아 니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그가 노린 것은 단 한순간.
함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짐승 이 그의 목에 송곳니를 박으러 들어 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분명 함정은 없었다.
그저 존재하지 않는 함정을 공령 이 그 순간에 맞추어 만들어냈을 뿐 이다.
천하의 공령조차 목숨을 걸지 않 으면 시도할 수 없는 일 수.
그건 존재하지 않는 와이어를 만 들어 무(無)를 유(有)로 전환해 내
는 경지.
‘심검 (心劍)
은사를 만들어내기에 심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흔히들 심검이라 부르는 경지 였다.
마음이 닿는 곳에 검을 만들어내 고, 그 검으로 적을 베어낸다.
이 일격이 무서운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 어떤 전조조차 존재하 지 않기 때문이다.
허공에 뿌려낸 내력이 담긴 와이 어가 심검보다 그 위력이 약할 이유 는 없다. 하지만 와이어는 발출되는
그 순간부터 상대의 감각에 포착된 다. 제아무리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해도 예측 가능한 공격은 발출 되는 순간, 그 효용을 일정 이상 잃 기 마련인 법.
하지만 심검은 다르다.
어떠한 기척도 없이 공간과 거리 를 격하여 발출되는 게 아니라 그저 나타난다.
그건 말 그대로 ‘현현(顯現)’하는 것.
세상의 모든 법칙을 무(無)로 돌 리며 스스로를 유(有)로 전환하는 일격. 벽을 넘은 초인조차도 더 많
은 것을 뛰어넘지 못하면 단 한순간 도 발현해 낼 수 없는 무학의 정화 (精華).
그리고…….
그만큼이나 가혹한 대가를 요구하 는 일격이었다.
“후욱.”
몸 안의 모든 것이 빠져나간 느 낌에 공령의 고개가 점점 더 아래로 향했다.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다. 타오르 던 불이 점점 잦아들 듯, 그의 생명 역시 잦아들고 있었다. 이 일격의 결과가 그저 소진에서 끝날지, 아니
면 결국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갈 지는 공령조차 알 수 없는 일이었 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남은 힘을 집중했다면, 패할지언정 목숨 은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령은 그 확실한 길을 갈 수 없었 다.
‘애초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곳에 서 있지도 않겠지.
공령이 말라비틀어진 입가를 뒤틀 었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남은
것은 그의 모든 것을 바친 일격이 과연 장민에게 닿았을지를 확인하는 것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볼 힘 따 위는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성공했다면 백연홍이나 흑왕 이 그를 부축하러 올 것이다. 그리 고 실패했다면 그의 뒷목으로 장민 의 날카로운 조강이 파고들겠지.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아.’
무학을 익힌 뒤 처음으로…… 아 니, 걸음마를 시작한 뒤, 기억이 존 재하는 한 처음으로 손가락 하나 움
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게 된 기분 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건 정말 그가 모든 것을 건 일격을 날 렸다는 증거니까.
그저…….
조금 더 선명하고, 조금 더 확실 한 일격을 날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아름다웠지.’
허공에 피어나듯 나타난 그 선명 한 선은 순간적으로 공령의 마음마 저 빼앗았다. 어쩌면 다시는 그려내 지 못할 완벽한 선. 그건 은사라는 병기에 마음을 빼앗긴 이로서는 눈
을 떼지 못할 광경이었다.
언제나 마음속에서만 그려오던 완 벽함을 그의 손으로 구현한 순간이 었으니까.
그러니…….
“후••••••회는••••••
사막처럼 말라 버린 입술과 목은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아니, 설사 그 입이 말라붙지 않았 다 해도 그에게는 소리를 낼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바람이 새는 듯한 음성을 어떻게 든 입술 밖으로 힘겹게 밀어내는 것 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
까.
‘닿았……을까?’
이제는 그 결과를 확인할 때다.
그리고 공령은 그 순간 깨달았다. 누군가…….
조금 전부터 누군가가 그의 앞에 서 있음을.
멀어버린 귀와 겨우 빛만을 구분 할 정도로 흐릿해진 시선, 몽둥이로 후려친다 해도 과연 알아챌 수 있을 지 의문일 정도로 망가져 버린 감각 이 그의 존재를 오랫동안 놓치고 있 었을 뿐이다.
‘ 누구••••••
누구일까.
이 앞에 서 있는 이는.
장민? 백연홍? 아니면 흑왕?
딱히 누구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 니다. 그가 누구라 해도 공령은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다. 최선을 다한 이는 패배에도 의 연할 자격이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공령에게 눈앞에 있는 이의 정체 를 알려준 것은 그저 붉음이었다.
흐릿한 시선.
그글 덮쳐오는 어둠과 뒤섞여 짓 뭉개진 회백색의 한가운데에 붉은
빛깔이 미약하게 피어난다.
흐릿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그 빛 깔을 확인한 순간, 공령은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
‘조금…… 아깝군.’
익숙하다, 저 붉음은.
저건 피의 빛깔이다.
백연홍이나 흑왕이 피를 흘리며 그를 맞이하러 오지는 않을 테니,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이는 장민 이라는 의미겠지.
머리가 잘 돌지 않는다.
이 당연한 것을 떠올리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잘 돌아가지 않는 뻑뻑한 머리는 이 내 한 가지 사실을 더 알아채는 데 성공했다.
피를 흘린다는 것.
이미 말라붙을 대로 말라붙은 피 가 다시금 흐를 리는 없을 테니, 이 건 장민이 새로이 홀린 피라는 의미 였다.
눈앞에 보이는 붉음이 점점 더 번져 가는 것을 보면, 저 괴물 같은 이가 넘치도록 피를 흘리고 있다는 뜻. 그건 그의 공격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의미다.
‘그걸로 됐어.’
공령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입 꼬리를 끌어 올릴 힘마저 남아 있지 않은 그에게 이 떨림은 그 어떤 감 정보다 더 환한 미소였다.
시야를 검은 어둠이 완전히 뒤덮 어 버린다. 더는 무언가를 보고 인 식할 힘마저도 남아 있지 않다는 뜻.
이제는 그저 죽음을 기다리면 된 다.
안타깝게도 그는 저 조강이 그의 몸을 파고드는 감각조차 제대로 느 끼지 못할 것이다. 아마 죽음을 인 식하지도 못하고 죽겠지.
이미 두 번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이건 또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무섭군.’
알고 있으니까.
그에게 또 한 번의 삶은 주어지 지 않는다는 것을. 그건 귀환자로서 가지는 확신 같은 것이었다.
‘나는 살아 있나?’
아니면 죽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어둡던 세상이 그 빛을 되찾았다. 마치 불이 꺼진 기나긴 터널 끝에서 순식간에 빛이 찾아오
듯.
그 인상적인 광경에 놀란 공령이 눈을 크게 떴다.
‘뭐……
“쿨럭! 쿨럭!”
그와 동시에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오고, 전신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살아는 있군.”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 려 옆을 바라보니, 백연홍이 그를 부축한 채 단전에 손을 대 기운을 밀어 넣고 있었다.
“너……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라. 그대로 내버려 뒀으면 죽었을 테지만.”
“••••••내가?”
의문에 담긴 공령의 눈을 본 백 연홍이 옅은 비웃음을 입에 담았다.
“꿈같은 소리 하지 마라. 내 평생 에 그렇게 처참한 패배는 처음 봤으 니까.”
역시나.
공령의 고개가 천천히 반대쪽으로 돌아간다.
그의 두 눈에 바닥을 적시고 있
는 붉은 피와 그 피 위에 떨어져 있는 몇 개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 다.
그 손가락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굳이 짐작해 볼 필요도 없다.
아마 얼굴 앞에 와이어가 나타난 순간, 장민은 찰나의 고민도 없이 손을 들어 제 얼굴을 파고드는 와이 어를 움켜잡았을 것이다.
‘단 한순간이라도 망설였다면 머 리가 그대로 잘려 나갔을 텐데……
장민에게 있어서 손가락이란 조공 을 펼치는 도구나 다름없다. 손가락 을 잃는다면 대부분을 잃는 것일
터. 만약 자신이라면 망설임 없이 그의 손으로 와이어를 잡을 수 있었 을까?
아니.
그럴 수 없었겠지.
‘변명의 여지도 없군.’
남은 의문은 하나뿐이었다.
“왜 나를……
“방금 내가 들은 말은 내 평생 들 은 말 중에 제일 어이없는 말이었 지.”
으..
공령이 의문을 담고 바라보자, 백 연홍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 영감이 그러더군. ‘손가락이 다 잘려 나갔으니, 뭘 어떻게 벨 수 도 없겠군’이라고 말이야.”
“멋지지 않나?”
그 말에 공령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느릿하게 걸어 제 진 영으로 돌아가는 장민의 등이 보였 다.
피투성이의 작은 어깨.
저 사람의 체구가 저리도 작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노인의 등 이었다.
하지만…….
“……보기 좋군.”
그 등에 위압은 느껴지지 않을지 언정, 이 전쟁을 치르는 와중 그가 본 누구의 등보다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아무 분명 그가 무언가를 얻은 것처럼 장민 역시 이 싸움에서 무언가를 얻어간 것이 분명했다.
“못 당하겠군.”
공령이 고개를 저었다.
억울한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완벽한 패배였다.
“백 연홍.”
“뭐냐?”
“저 총회인지 뭔지 하는…… 것들
도
“나쁘지는…… 않네.”
공령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진다.
죽은 것은 아니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기절한 것에 불과하다. 선천 지기를 모조리 끌어 쓴 탓에 의식을 차리는 데만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 지만, 어쨌거나 살아는 있다.
“……멍청한 놈이.”
세상 편안한 얼굴로 기절한 공령 을 바라본 백연홍이 고개를 내저었 다.
‘……나쁘지는 않다고?’
백연홍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웃기지도 않네.’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다. 이미 이 전투에서 수십 년간 마주하던 동 료를 몇이나 잃었다.
그럼에도…….
‘증오심은 생기지 않아.’
아니, 오히려 상대를 이해하게 되 었다.
이건 백연홍이 십이비도에 큰 애 정이 없기에 느끼고 있는 감정은 아 닐 것이다. 공령 역시 같은 말을 하 는 것을 보면.
백연홍의 눈이 장민을 넘어 강진 호에게로 향했다.
‘어쩌면……
흑왕이 아닌 저들이 그리려 하는 세상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하는 백연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