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49)
마존현세강림기-2049화(2048/2125)
마존현세강림기 83권 (9화)
2장 사냥하다 (4)
강진호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장민의 손을 바라보았다.
양 손가락이 모두 잘려 나간 장 민의 손을 보고 있자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는 것만 같았 다.
그럼에도 그 감정이 표출되지 않
는 이유는 장민을 더욱 마음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느릿하게 걸어오는 장민의 얼굴이 너무 편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사이 십 년은 더 늙어버린 듯 한 얼굴.
힘이라고는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완전히 지쳐 버린 이의 얼굴이 이토 록이나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말이 다.
“죄송합니다, 마존이시여.”
장민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감히 마존을 적대한 이의 목을
잘라 지옥에 처박아야 마땅하거늘, 미욱한 속하가 마지막에 인정을 베 풀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런 명령 같은 것 한 적 없어.”
강진호가 장민을 빤히 보다가 피 식 웃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민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지.”
장민이 말없이 강진호를 바라보다 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보이는군.”
“모르겠습니다, 마존이시여.” 장민이 제 손을 들어 올렸다.
잘려 나간 손가락을 바라보는 그 의 눈에는 슬픔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더는 과거와 같은 무위를 보일 수는 없겠지요.”
손가락이 없다고 해서 조강을 사 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능은 하다. 그저 과거와 같이 영활하고 섬세하게 전개할 수 없는 것뿐.
하지만 초인의 영역에서는 그 작 은 차이로 모든 것이 갈리는 법이 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쉬움이 들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강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초에 장민은 강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 지킬 힘이 필요했던 거니까.”
극단적으로 말해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운동선수가 된 이는 은퇴를 아쉬워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운동 선수가 된 이는 충분한 돈을 벌면 선수 생활에 미련을 두지 않는 법이 다.
장민은 애초에 마교를 지키기 위 해서 강해질 수밖에 없던 이. 그에 게 있어서 무학을 내려놓는다는 것 은 자신을 얽매고 있던 굴레를 벗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옅은 미소를 지은 장민이 새삼스 러운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 았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는 하군요. 그래도 손가락은 있어야 마존을 보 좌하기가 편할 텐데.”
“보좌?”
장민이 빙긋 웃었다.
“이제 교에 대한 것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 마음 편히 마존을 보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곧 마후와 후손도 보실 터인데, 제가……
“아, 아니, 잠깐만.”
저기요?
농담이시죠?
“농담이 나오십니까?”
방진훈 역시 같은 생각인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 하필이면 손가락을…… 차라 리 팔 하나 날아가는 게 낫지.”
엄지 하나가 겨우 남아 있는 장 민의 손을 보며 방진훈이 한숨을 푹 푹 내쉬었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불편하 실 텐데.”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위긴스가 걸어와 장민의 손과 바 닥에 떨어져 있는 손가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잘렸다고는 하지만, 파고든 내기가 내부를 모두 헤집어놓아 외과적으로 봉합하는 건 무리일 터.
다만…….
“마나가 아니라 기로 움직이게 하 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무공을 쓰는 용도가 아니라 그저 손가락으 로 작용하게 할 거라면 몇 가지 장 치로 가능할 듯싶군요. 의수는 제가 달아드리죠.”
“……자네가 그리 말하니 믿음이
가는구만.”
위긴스의 팔에 달린 의수를 본 장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런 부분에 있어서는 위긴스가 가장 믿을 만하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내려놓는다는 게 이리 마음을 편 히 만들어줄 줄은 몰랐다. 몸은 여 전히 고통에 가득 차 있고, 몸에는 기력이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 건만, 그 마음만은 그저 평온했다.
“마존이시여.”
“그래.”
“교에 대한 마음을 거두라는 그
말씀을 지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 습니다.”
장민이 한결 더 편안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도 마존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자식이라도 결국은 품 안에서 내보내고 그저 지켜봐야 할 때가 있 는 법이지요. 그게 아무리 가슴 아 픈 일이라도 말입니다.”
“그만 교를 제 품 안에서 내보내 겠습니다. 그리고 지켜보려 합니다. 그 아이들이 스스로 걷고,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하나는 틀렸어.”
“예?”
“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장민을 위
해서야.”
“내게는 교보다 장민이 더 중요하 거든.”
장민의 고개가 살짝 숙여진다. 차 마 강진호를 마주 보기 힘들다는 듯 이 말이다. 강진호도, 위긴스도 그런 장민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의 심정 을 이해한다는 듯.
“그저•…”
장민이 말을 더 잇지 못하자, 강 진호가 장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 렸다.
“한계까지 혹사했을 텐데, 우선은 좀 쉬어두지.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예, 마존이시여.”
“크흐.”
그 순간, 쓰러져 있던 바토르가 눈을 떴는지 솜을 몰아쉬었다.
“……이겼나, 영감?”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멍청한 놈 이.”
“그럴 줄 알았지.”
바토르가 큭큭대며 웃는다.
고개를 끄덕인 장민이 위긴스를 돌아보았다. 이제 다음은 위긴스의 차례다.
“할 수 있겠지?”
“글쎄요.”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한쪽 을 돌아본다. 그의 두 눈에 공령을 부축해 돌아가는 백연홍의 뒷모습이 보였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장담은 못하 겠습니다.”
불과 몇 달 전, 그들은 네 명이 모두 달려들었음에도 백연홍에게 패
배했다. 그 격차를 이 짧은 시간 만 에 좁히라는 건 어려운 요구다.
아무리 벽을 넘었다고 해도, 그가 몇 달이 아닌, 몇 년의 시간을 보냈 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저도 오직 이 시간만 을 기다려 왔습니다. 저도 제 안에 이런 감정이 있었는지 놀랄 만큼 말 입니다.”
위긴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 모든 시간.
그가 보낸 모든 시간은 그저 백 연홍을 넘어서기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탁의 지하에 서 보낸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위 긴스를 지탱해 준 것은 지식에 대한 탐구욕과 반드시 이기고 싶은 자에 대한 승부욕.
둘 중 하나만 부족했더라도 그 시간을 온전히 버텨내지 못했으리 라.
“그거면 됐지.”
장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긴스만 이겨준다면 이 승부는 그들의 승리로 끝난다.
만약 위긴스가 패한다고 해도 마 존과 흑왕의 마지막 승부가 남아 있
으니 패한 것은 아니지만.
‘피하고 싶다.’
그게 장민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마존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장민의 머릿속에 마존의 패배란 존 재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상대가 흑왕이라면 이 야기가 다르다.
혹왕이 마존에 비견될 만큼 강하 기 때문이 아니었다. 설사 무위라는 측면에서 강진호보다 더 강한 이를 상대한다 하더라도 강진호는 승리라 는 결과를 움켜잡을 사람이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건 무서운 거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장민은 때때 로 세상에는 상식이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호와 흑왕의 인연은 그런 이변이 벌어지기에 너무도 적 합했다. 이런 이들의 싸움은 단순히 무력의 고하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특히나…….
‘시대를 바꾸는 일은.’
그렇기에 그 승부까지 가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물론 이리 승 부가 나버린다고 해서 저 흑왕이나
강진호가 그대로 납득하고 돌아설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당위에 집착하는 흑왕의 의지를 꺾어버릴 수는 있을 테니까.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 다.”
위긴스가 그런 장민의 마음을 짐 작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부에서 이 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되는 승부에서 이기 는 건 더 어려운 일이지요. 저 역시 그걸 모르는 이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적어도……
위긴스의 눈이 차게 빛났다.
“안일해서 패배했다는 말은 절대 듣지 않도록 할 테니까요.”
그 말이면 충분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위긴스에게는 그 이상의 말이 필요하지 않다. 위 긴스가 이 곳에서 가장 강한 이는 아닐지언정,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 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테 니까.
공령을 구석에 내려다 두고 걸어 온 백연홍이 흑왕을 마주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하는 생 각.”
“잘못된 건 없습니다, 흑왕. 모든 건 올바르게 이뤄진 것이지요.”
“올바르게?”
“예.”
백연홍이 빙긋 웃었다.
“저희가 생각을 잘못한 겁니다. 이들을 꺾음으로 무인계를 다스릴 자격을 얻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들 을 꺾어내야 그 자격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거지요.”
비슷한 말이지만, 그 뉘앙스는 완
전히 다르다.
그리고 그 말은 백연홍이 저 총 회를 자신들의 가장 큰 장애물로 인 정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정말 큰 것을 이뤄낸 이들 중 쉽 게 쉽게 결과를 만들어낸 이는 없습 니다. 오히려 지독할 정도의 고난을 겪어낸 이들만이 역사를 바꾸는 힘 을 얻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
혹왕이 피식 웃어버렸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다름 아 닌 백연홍이라는 사실이 그를 웃게 만들었다. 그의 곁을 지켜오던 십이
비도 중 마지막 남은 이가 반골 중 의 반골이던 백연홍이라는 사실 역 시.
“고난이라……
흑왕이 이를 갈 둣 말했다.
“충분히 겪을 만큼 겪었다 생각했 는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다는 건 가?”
“그만큼 위대한 걸 이뤄야 하는 분이시니까.”
백연홍이 낄낄대며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결국 자신의 손 으로 결정을 지어야 하는 법 아니겠 습니까?”
흑왕이 가만히 백연홍을 바라보았 다.
“그럴 수 있을까?”
“저는 백연홍입니다.”
“그 마지막 무대, 제가 만들어 드 리지요. 사실 이게 올바른 방향입니 다. 수하들이 더 강하니 내가 무인 계를 지배하겠다고 말하는 것 역시 모양이 빠지는 일 아닙니까?”
백연홍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완벽한 승리가 꼭 강력한 권위를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때 로는 힘보다 스토리에 더 마음을 주
기도 하니까. 특히나 무인들이라면 강대한 세력보다는 강대한 개인에 더 마음을 빼앗기는 법.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인계에 단 둘뿐인 절대의 강자들이 모두의 앞 에서 자신을 증명할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우습긴 하군.’
단 한 번도 타인에게 신경을 쓰 지 않고 살아온 그가 설마 이런 자 리에서 남을 위한 사명감을 느낄 줄 이야.
“이기십시오, 혹왕.”
“……자꾸 빤한 소리를 하는군.”
“마음을 뺐길 것 같아서 그럽니 다. 흑왕이 패해 버리면 저도 저 강 진호라는 자를 따를 것 같아서요.”
흑왕에게는 분명 기분이 나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혹왕은 딱히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심드렁한 얼굴 로 툴툴댈 뿐이다.
“내가 그래서 저 양반이 위험하다 고 했잖아.”
“겪어보니 알겠더군요. 저 사람을 따르는 이들만 봐도 꽤 괜찮은 사람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져주지는 않겠
지?”
“설마.”
백연홍이 하나 남은 손으로 제 검을 툭, 치고는 미소를 지었다.
“기대 같은 건 하지 마십시오. 당 연한 것에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으 니까.”
“믿지.”
백연홍이 빙글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 다만••••••
“음?”
백연홍이 혹왕을 돌아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이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살아남는다면 남은 생은 조금 다르 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드는군 요.”
“그냥 하는 말입니다.”
백연홍이 그 말을 남기고 앞으로 걸어 나간다.
걸어 나가는 백연홍의 등을 바라 보는 흑왕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