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54)
마존현세강림기-2054화(2053/2125)
마존현세강림기 83권 (14화)
3장 분석하다 (4)
소용돌이 친다.
분명 그 강도로는 금속조차 능가 할 강화 콘크리트가 물처럼 요동친 다. 아니, 물이라는 표현조차 적절하 지 않다.
그건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같았다.
회색의 파도가 휘몰아친다. 이질적인, 너무도 이질적인 광경. 그렇기에 인간 내면에 깊이 잠들 어 있는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기 에 충분한 장면이었다.
콰르릉! 콰룽!
마치 벼락이 내리치는 듯 과격한 소음과 함께 점도 높은 파도가 붉게 타오르는 실드를 집어삼켜 끌고 들 어간다.
마치 구멍 뚫린 배를 폭풍의 바 다가 집어삼키듯 깊이, 깊이 저 심 연 아래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들이 하나
같이 입을 벌렸다.
총회 쪽은 물론, 아직은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십이비도들조차도 이 가공할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세상에……
이 놀란 음성이 다름 아닌 바토 르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얼 마나 어마어마한지를 증명하고 있었 다.
심지어 강진호조차 헛웃음을 터뜨 렸다.
‘마법이라는 게…… 이렇게 굉장 한 거였나?’
이미 마스터를 상대해 보고, 원탁 의 힘을 대변하는 엘더 나이트들을 몰살시킨 강진호에게도 지금 위긴스 가 보여주는 힘은 확실히 예상 외였 다.
파괴력?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지금 그들을 당황시키는 것은 도 무지 예측이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무학의 상식으로 는 이해할 수 없고, 예상할 수도 없 는. 그렇기에 대처할 수도 없는 공 격.
저 백연흥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저곳에 다 른 이가 있었다 해도 딱히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콰르르르!
백연홍을 감싼 실드를 집어삼킨 회색의 바다가 점점 움직임을 멈춰 간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처럼 격 하게 뒤흔들리던 바닥이 점점 잠잠 해지더니, 이내 휘몰아치던 모습 그 대로 굳어버렸다.
마치 콘크리트로 만든 거대한 조 형물처럼 말이다.
주르륵.
위긴스의 턱 끝을 타고 굵은 땀
방울이 비 오듯 쏟아진다.
턱.
그의 손에서 효용을 다한 전지 하나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후우.”
위긴스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뇌가 찢어질 것 같군.’
마치 머릿속에 수십 개의 미세한 바늘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 고통.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한계까지 뇌 를 가용한 대가였다.
아마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후유 증이 남을지도 모른다. 육체에 남은 후유증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머리에 남은 후유중은 극 복이 불가능할 터.
하지만…….
‘상관없어.’
위긴스가 입가를 뒤틀었다.
상대는 검선 백연홍.
희생 없이 승리할 수 있는 상대 가 아니다.
그리고 후유증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가 언제 다시 이런 상대와 싸워보겠는가.
백연홍을 마주한 순간, 왜 그에 앞서 이곳에 선 이들이 그렇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는지를 어느 정
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직감.
그건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었다.
논리는 그에게 말한다. 어쩌면 세 상에는 백연홍보다 더한 강자가 숨 어 있을지도 모르고, 언젠가는 그 역시 그런 이를 상대해야하는 순간 이 올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의 본능은 반대로 말한 다.
이곳이 종착역이다.
이곳이 그의 마지막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그는 다시는
이런 상대와 목숨을 걸고 싸우지 못 할 것이다. 그가 한 사람의 기사로 서 맞이하는 승부의 정점이 바로 이 곳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를 지 배하는 감정은 단 하나였다.
‘후회 따위는 남기고 싶지 않다.’ 승리도, 패배도 받아들일 수 있 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지 못한다면, 살아남는다 해도 위 긴스는 평생 동안 후회를 안고 살아
가게 될 것이다.
‘후회라……
위긴스가 낮게 웃음을 홀렸다.
‘결국은 나도 그저 인간일 뿐이라 는 거겠지.’
그는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척 구는 백연홍과 초인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그도 마찬가 지다.
스스로 언제나 냉철한 이성과 넓 게 바라보는 안목을 강조하지만, 가 장 극단적인 상황에 선 지금 위긴스 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 이었다.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상념들을 날려 버 렸다.
이제 생각이라는 건 의미가 없다. 상대는 잡념을 품고도 상대할 수 있 는 이가 아니다.
위긴스의 시선이 굳은 점토처럼 변해 버린 바닥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끌려 내려갔을까?’
백 미터?
아니면 이백 미터?
글쎄, 그도 잘 모른다. 그런 것까 지 일일이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여력을 둔 일 수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깊이는 알 수 없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그만 올라 와도 될 것 같은데?”
저자가 겨우 이 정도로 당할 이 는 아니라는 것.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그리고 그 순간, 위긴스의 말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바닥이 뒤집어지 며 위로, 또 위로 솟아올랐다.
위긴스의 두 눈에 강화 콘크리트 를 두부처럼 썰어내며 번져 가는 반 월형의 검기가 똑똑히 들어왔다.
“과격하기는.”
위긴스의 손이 룬검을 꾹 움켜잡 았다.
‘마치 게임 같군.’
위긴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 혔다.
예전에 몇 번 제자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거 대한 보스를 수십 명의 게이머들이 둘러싸고 끊임없이 때리고 또 때리 는 모습을 말이다.
‘굉장히 불합리한 광경이었지.’
이쪽은 지속적으로 상대에게 공격 을 가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단 하 나도 맞아서는 안 된다.
압도적인 체력의 격차, 그리고 압 도적이라는 말로도 모자라는 공격력 의 격차.
그 보스를 쓰러뜨릴
때까지
수천
번의 공격을 적중시키고, 수백
번의
공격을 피해내야 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마치 지금 위긴스가
처한
상황
같지 않은가.
그는 지금부터 상대의 공격을 모 조리 무효화시키는 동시에 그의 공 격은 끊임없이 격중시켜야 한다. 차 이가 있다면, 게임은 리트라이가 가 능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목숨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
“어디♦•••••
위긴스의 시선이 그가 만들어낸 검고 거대한 구멍으로 향했다.
“악마가 등장하는 광경인가?”
손.
검게 그을린 손이 구멍 끝에서 솟아오른다.
턱!
위로 솟구친 손이 구멍의 끝부분 을 부여잡고는 그 몸을 천천히 끌어 올린다.
위긴스의 등을타고 오싹한 소름이 돋아났다.
구덩이를 기어오른 백연홍의 발이 바닥을 디뎠다.
형편없는 모습.
전신은 그을음으로 검게 물들고, 의복은 처음의 형태를 찾아볼 수도 없다. 실핏줄이 터져 붉게 달아오른 그 두 눈은 그가 도가의 무학을 익 힌 도인이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 들었다.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은 그의 손에 들린 검뿐이다.
위긴스가 살짝 입술을 핥았다. 보나마나 위로 솟구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붉게 물들기는 했 어도, 그를 바라보는 백연홍의 눈은 한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마치 그를 천천히 탐색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고통이 이성을 되찾아주기라도 했 나?”
옅은 비웃음과 비꼼.
하지만 이건 상대에 대한 비하가 아니다. 상대의 심리를 이용해야 하 는 위긴스에게 있어서 상대의 심리 적 상태를 원하는 곳으로 몰고 가는 빌드업은 반드시 필요한 일.
한참 동안 위긴스를 말없이 바라 보던 백연홍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혹되지 마라.”
“••••••응?”
“검이란 그저 스스로에게 있는 것. 세상은 바뀌지만 나는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를 관조하고, 변하는 세상에 스스로를 흘려낼 수만 있다 면 그것이 곧 도(道)인 법.”
읆조리듯 말한 백연홍의 눈이 다 시금 위긴스에게로 향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글쎄? 동양식의 뜬구름 잡기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서.”
“……이건 내가 처음 무당에 입문 했을 때, 당대의 장문인이 내게 해 준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말은 내 모든 무학의 기초가 되는 말이라 고 할 수 있지.”
“우습지 않은가?”
백연홍이 큭큭대며 자조하듯 말한 다.
“세상 모든 것을 발아래 둔 둣이 굴었다. 사문의 무학 따위는 이미 뛰어넘었고, 그들의 가르침 따위는 더는 내게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지.
어느 순간, 나에게 있어서 사문의 모든 것은 그저 지나쳐온 과거에 불 과했으니 말이다.”
위긴스가 말없이 백연홍을 바라보 았다.
이상하게도 저 말을 무시할 수가 없다. 정신착란자의 뇌까림 같은 저 말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지금 다시 떠오르는군. 지금에 와서야 말이야.” 스、O 으
– — — 人、•
백연홍의 손에 들린 검이 유려한 원을 그려낸다.
“검선이라…… 검선(劍仙). 그래,
나도 한때는 그리 불린 적이 있었 지. 뛰어넘었다고 생각했건만……
그을음 가득한 입가가 미소를 그 려 낸다.
“오너라, 외……
콰아아아아아아아j
그 순간, 백연홍의 발밑에서 거대 한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화력보다는 발동 속도에 집중한 일격. 하지만 그 화염이 순간적으로 불타오르고 명멸했을 때, 백연홍은 옆으로 두 걸음 물러난 채 묘한 시 선으로 위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격이 급하군.”
“개소리를 듣고 있어줄 인내심까 지는 없어서 말이지.”
백연홍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검을 가볍게 내려 아래를 가리켰다.
하단세.
전신에 힘 한 점 느껴지는 않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자세. 반 드시 위긴스의 목을 쳐버리겠다는 살기도, 이 승부에게서 이겨내겠다 는 호승심도 사라진다.
보이는 것은 그저 검을 들고 있 는 노인, 그뿐이었다.
위긴스가 순간 멈칫했다.
회색으로 가득한 세상은 거꾸로 비어 있는 것만 같다. 그 비어 있는 세상에 검을 든 노인이 홀로 서 있 다. 그을음으로 검게 물든 노인이 말이다.
그 모습은 마치 때때로 그가 본 동양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했다. 채워지다 만 듯한, 그려내다 만 듯 한. 그로서는 도무지 그 미학을 이 해할 수 없는 동양화의.
‘다를 건 없어.’
비워낸다고 해서 비워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봐야 결국 인간!
우우웅!
그의 룬검이 순간적으로 빛을 내 뿜는다. 그와 동시에 위긴스의 룬검 끝에서 집채만 한 화염구가 수십 발 연속으로 발출된다.
쏘아진 화염구들이 백연홍의 전방 을 뒤덮어갔다.
“그리스!”
그와 동시에 위긴스의 반대손이 캐스팅을 마쳐 낸다.
백연홍의 발끝에 마찰계수가 사라 진다.
‘시작은 발끝이라 했던가?’
몇 번이고 들었다. 저 무학의 모 든 것은 발에서 시작한다는 것. 그
렇다면 제대로 바닥을 딛지 못한다 면, 그 위력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 할 터.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스르륵.
백연홍의 발끝이 유려하게 움직인 다.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부드럽고, 또 부드럽게.
그 발끝이 그려낸 원. 실체가 있 을 리 없는 원이 머릿속에 확연하게 떠오를 만큼 너무도 유려하게.
발끝이 완벽하게 원를 그려내는 순간, 그 발이 원의 중앙을 가볍게
내디뎠다.
“ 그저
백연홍의 조용한 목소리가 기이한 울림을 담고 퍼져 나갔다.
“태극이 리라.”
그의 검이 날아드는 불덩어리들을 향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