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61)
마존현세강림기-2061화(2060/2125)
마존현세강림기 83권 (21화)
5장 도달하다 (1)
고통은 이미 사라졌다.
뇌를 태우는 것 같은 압력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남은 것은 그저 채워 나가는 것뿐.
채우고 또 채우면 언젠가는 도달 할 것이라 생각하며 끊임없이 마나 를 밀어 넣는 과정뿐이었다.
하지만 위긴스는 깨달았다. 아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닿지 않아.’
그가 원하고 갈구하던 영역에 자 신은 발을 들일 수 없다. 이 행위를 아무리 반복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무한으로 수렴하면 언젠가는 무한 에 도달한다. 0 뒤에 9가 한없이 이 어진다면, 언젠가 그 수는 결국 1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건 관념의 이야기일 뿐.
채우고 또 채운다면 언젠가는 도 달하겠지만, 그가 채워야 할 마나는
무한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그의 육체는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없다.
‘뭔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 여겼는 데.’
그것 역시 인간의 욕심일 뿐.
벽을 넘었을 때 수많은 것이 달 라졌지만,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인간이라는 한계를 초 월하는 것 역시 그저 그의 관념의 문제일 뿐이다.
아쉬움과 허탈함.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파아아앗!
한계에 달한 육체가 쩍쩍 갈라져
피를 흩뿌려 댄다.
‘붕괴로군.’
단순히 터지는 게 아니다. 어쩌면 육체를 지금의 형태로 유지하는 것 조차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지금 그가 하는 행위를 멈 춘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한들 무엇을 후회하겠는가.
‘지켜보고 있는가.’
마스터는 후인들에게 자신의 의지 를 전하기 위해 목숨조차 내던졌다. 마스터를 존경하고 존중하던 위긴스 이지만, 그 행위만은 동조할 수 없 었다.
후인들에게 전할 것이 있다면 살 아서 전하면 될 일이 아닌가.
아무리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 고 한들, 목숨과 바꿀 수는 없는 일 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위긴스 는 마스터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 다.
이 모든 것의 결과가 확정되어 있는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 간, 그도 모르게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 그의 마지막을 지켜봐 주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그가 행한 것의 의미를
알고 이어가 주기를 바라며.
‘ 로드.’
그의 마음이 화면 너머 그를 바 라보고 있을 이들에게로 향했다. 그 가 전하려 하는 것은 그들밖에 이을 수 없으니까. 마스터가 그들에게 신 념을 전했다면, 그는 그들에게 방법 을 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리에서 벌 떡 일어나 핏기 가신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강진호에게로 향해 있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비웃고, 때로는 멍청하다
고개를 내저었다.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강진호는 홀로 완전하다. 혼자만 의 힘으로도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이다. 그런 이가 사람에 집착하고 사람에 억눌려 살아가는 것을 그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시선 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강진호였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하늘에 닿는 무위를 손에 넣어도,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룬다고 해도…….
혼자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좋겠는데.’ 위긴스의 시선이 강진호에게 닿았 다가 다시 백연홍에게로 향한다.
이건 후회라기보다는 미련이겠지. 그도 인간인 이상 모든 것에서 완전 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위긴스의 입가가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어디, 그대도 웃고 있는가?’
그의 손이 앞으로 부드럽게 내밀 어진다.
‘그럼••••••
눈부신 빛 속에 한 사람의 형체 가 보인다.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저 검끝에 어린 곡선이 만들어내는 미학은 여전히 위긴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굳이 이 해할 필요는 없다. 백연홍 역시 그가 닿은 곳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데 굳이 이해는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내보이는 것.
스스로의 모든 것을.
‘어디, 받아보게.’
그 자격은 충분할 테니.
그의 일생을 통틀어 다시는 이룰 수 없을 일격이 손을 통해 발출된다.
몸을 터뜨릴 듯 채운 모든 것이 단숨에 빠져나가는 느낌. 고통과 쾌 감이 동시에 전신을 후려치는 듯 강 렬한 감각 속에서 위긴스의 세상이 아찔하게 일그러졌다.
모든 것이 정지한다.
극한까지 가속한 뇌가 세상을 멈 춘다.
눈부시게 빛나던 빛도 사라진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공허함, 그리고
무 (無).
존재가 사라진 세상 속에서 ‘그 건’ 피어났다.
위긴스가 아닌 누군가가 이 광경 을 볼 수 있었다면, 분명 이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 빛이 있으라.
정적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미약 한 빛이 피어났다.
작은, 너무나도 작은, 인간의 눈 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미약한.
하지만 그 작은 빛은 순식간에
세상을 뒤덮어 나간다.
그건 존재의 출현.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의 존재함으 로의 전환.
작고 미약하던 빛은 이내 어마어 마한 광휘로 뒤바뀌며 그 앞에 선 초라한 한 인간을 덮쳐 갔다.
인식조차 불가능한 속도.
하지만 그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겨우 닿을 수 있는 순간의 영역에서 백연홍은 분명히 새로이 탄생하는 빛의 존재를 목도했다.
그리고 그 광경이 백연홍의 전신 에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희열을
일깨웠다.
‘나는 보았구나.’
존재하지 않는 것.
그것은 곧 무극.
존재하는 것.
그것은 곧 태극.
기이하도다.
그의 선대들이 수없는 세월 동안 그 손으로 잡으려 한 것. 그것은 곧 탄생과 세상의 이치.
무(無)에서 유(有)로.
존재하지 않음에서 존재함으로 변 화하는 세상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눈으로 확
인하지 못한 것.
그저 그렇다 여기며 믿을 수밖에 없던 것.
그 태초의 광경이 지금 백연홍의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것도 그들이 익혀온 무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푸른 눈을 가 진 외인의 손에 의해서.
‘만류귀종 (萬流歸宗),’
모든 것은 결국 끝에 이르러 하 나로 통한다고 했던가.
순천의 극을 추구하던 그의 무학 과 역천의 극을 이룩한 저자의 마도.
그 끝이 서로 닿아 있음을 두 눈
으로 확인했을진대, 어찌 기쁘지 않 겠는가.
‘틀리지 않았다.’
그가 이은 것.
그가 결국에는 돌아온 것.
선대로부터 이어진 가르침이 결국 옳았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백연홍의 가슴속에 차오른 것은 형 용할 수 없는 감동과 희열이었다.
‘태초에 무극이 있나니.’
그리고…….
그 극에 달한 감동은 그의 검끝 에 머물렀다.
확인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보다
더 허무한 것은 없는 법. 확인했다 면 펼쳐야 한다. 알았다면 이뤄야 한다.
그의 검이 천천히 원을 그려낸다. 그건 역설적인 광경이다.
그 검은 그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는 너무도 느렸으나, 그를 둘러싼 세상에서는 너무도 빨랐다.
느림과 빠름.
결코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그 상 반된 이치가 검끝에 동시에 머무른 다.
‘무극은 곧 태극이 되어 세상 만 물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태초의 폭발.
하나였던 것이 둘로 나뉘는 과정.
태어난 것은 빛. 하지만 빛은 곧 필연적으로 어둠을 탄생시키는 법. 모든 것이 하나일 때는 그 어떤 것 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나뉘었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음과 양.’
그것이 곧 태극.
만물의 시작이자, 모든 흐름의 시 작이다.
원을 그린다.
백연홍의 검이 둥근 원을 무수히 그려낸다.
원은 곧 흐름. 그리고 순환.
‘흘러라.’
음은 양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양 은 음을 거부하지 않는다. 둘은 서 로 대비되듯 공존하는 법. 음이 있 어야 양이 존재하고, 양이 있어야 음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저 흐르고 또 흐르리 라. 영원히 세상이 존재하는 한 영 원히.
백연홍의 검이 무한의 원을 그려 낸다.
백색의 기운이 밀려오는 빛을 감 싸고, 검은색의 기운이 빛의 존재를
부드럽게 밀어낸다.
‘그 어떤 강함이라 해도 결국은 태극의 이치 아래 존재하는 것.’
막연한 관념이 지금 그의 눈앞에 실존한다.
그건 무한한 환희.
더없는 깨달음.
도(道)를 이루기 위해 평생을 바 쳐 온 이들이 관념의 한 자락만이라 도 잡으려 애쓰던 지고의 이치.
‘아아아.’
모든 것은 태극이리라.
그를 향해 밀려오는 이 미증유의 거 력도.
그 거력에 저항하지 않고 부드럽 게 감싸는 그의 원도.
그 태극을 담은 검.
그리고 그 검을 잡은 백연홍조차 그저 태극일 뿐이다.
음과 양이 합쳐져 휘돈다.
검은 기운과 흰 기운. 서로 결코 조화될 수 없어 보이면서도 결코 서 로를 밀어내지 않는 두 기운이 거대 한 순환의 흐름 속에서 서로의 어깨 를 내준다.
‘고맙구나.’
저자가 아니었다면…….
그에게 무극을 보여준 이가 아니
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
머리로는 알아도 결코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지금 그는 마침내 손에 잡아냈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서로 다르기에 완성될 수 있던 태극처럼.
그와 위긴스 역시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는 것을.
강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루고자 한 것과 위긴스가 이루고자 한 것은 완 전한 대척을 이룬다는 것. 음과 양 처럼 완벽하게 다르기에 그들은 동
시에 이곳에 설 수 있었다.
검이 원을 그린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원을.
그곳에서 피어나는 무학의 정화는 스스로 검을 펼쳐 내고 있는 백연홍 마저도 극한의 환희로 이끌었다.
‘ 아아••••••
알 것 같다.
이것은 곧 둥선 혹은 열반.
더없이 깊은 깨달음을 육체가 버 티지 못하는 경지.
찰나마저도 억겁의 시간으로 느끼 게 만드는 그 시간의 틈새 속에
백연홍과 위긴스만이 서로의 존재 를 느끼고 있었다.
‘웃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알 것 같다. 아니,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저 위긴스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할 수 있다면 영원히 춤추고 싶 다.
할 수 있다면 영원히 이 시간을 이어 나가고 싶다.
그건 백연홍이 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욕 구. 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
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 은 기분이다.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이치.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시작은 곧 끝을 만들어내고, 끝은 다시 시작을 만들어내는 법. 태극이 이끄는 순환의 이치에서는 그 누구 도 벗어날 수 없었다.
‘ 보게나.’
백연홍의 검끝이 천천히 휘돈다.
그의 적은, 아니, 그의 동반자는 그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 니 그 역시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할 터.
원.
황홀하게 휘둘러진 백연홍의 검이 완전한 원을 그려낸다. 그 어디 하 나 흐트러지지 않은 너무도 완벽한 원을.
‘이것이••••••’
단 한순간.
지금 이 순간 동안만 그가 펼쳐 낼 수 있는 검.
도(道)로 시작했으되, 속(俗)에 닿 아 마침내 다시 도(道)로 돌아온 검. 영원한 순환처럼 긴 여정의 종 착점에 도달한 검이 그 끝에 이른
무위를 검끝에 온전히 담아낸다.
스륵.
춤을 추듯 검이 치켜 올라간다.
너무도 완전한 원에 비해 그 검 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군더더기는 넘쳐 나고, 그 선조차 삐뚤빼뚤 제 멋대로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너무도 자연스러 웠다.
세상은 완전하지만 또한 불완전한 것. 그 모든 것을 담아내야 진정으 로 완벽에 이르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닿은 곳일세.’
백연홍의 검이 흐르는 별처럼 아 래로 떨어진다.
그가 만들어낸 완전한 원이 한차 례 휘돌아 곡선을 그려내는 검의 궤 적을 따라 둘로 갈라졌다.
태극.
그 검에, 그 사람에…….
태극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