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63)
마존현세강림기-2063화(2062/2125)
마존현세강림기 83권 (23화)
5장 도달하다 (3)
“그……
그건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거칠었다.
마를 대로 말라 버린 나뭇가지를 쇠못으로 긁어 대는 듯한 음성.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활기라 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말라비
틀어진 음성이었다.
백연홍의 시선이 조금 우측으로 기울어진다. 그의 두 눈이 자신의 하나 남은 팔로 향했다.
말라비틀어 진 것은 음성만은 아 니었다.
그의 팔.
언제나 굳건하게 검을 들고 그의 평생을 지탱해 온 그의 팔이 고목처 럼 말라 비틀어져 있다. 과연 다시 검을 들 수는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 도로.
‘ 대가……인가?’
사람은 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지금 아주 잠시이지 만, 인간의 육신으로 닿을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담갔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리 비싼 대가라고는 할 수 없 겠군.’
그의 시선이 다시 천천히 앞으로 향한다. 그의 두 눈에 들어온 것은 그와 그에 비해서는 훨씬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위긴스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도 그리 멀쩡하지는 않았 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룬검은 형
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 각이 났고, 빈 그의 한 팔을 대신해 주던 의수도 온데간데없다.
부서졌다기보다는 분해되었다는 말이 조금 더 어울릴 정도로 미세하 게 부서진 파편들은 위긴스의 육신 에 바늘처럼 틀어박혀 그의 몸을 좀 먹어 가고 있을 것이다.
“꽤……
말라붙은 성대가 억지로 목소리를 짜낸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지금 그의 심정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은 단편적인 몇 마디뿐이다. 그중 고르고 골라 마침내 백연홍이 내뱉은 말은 그 스 스로마저 어이없게 만들었다.
“꽤……
힘겹게 내뱉은 말.
“괜찮지…… 않았……나?”
비틀어 짜낸 목소리가 위긴스에게 로 향한다. 백연홍 스스로도 과연 위긴스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지 에 대한 확신이 없다.
하지만 위긴스는 분명 그의 말을 들었는지 빛을 잃지 않은 한쪽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의 고개가 천천히 내저어진다.
“동양의 무학은 이해할 수가 없군.”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
“그게 당신이 추구하던 경지입니 까?”
백연홍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긴스의 하나 남은 눈에 이채가 피어난다.
‘ 과연.’
모든 것의 명확성을 추구하는 위
긴스이지만,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심정은 그런 그로서도 명확하게 설 명해 내기 어려웠다.
그는 분명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아니, 할 수 있는 것을 넘 어 할 수 없는 것마저 그 손 안에 잡아냈다.
다시 조금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 도 이 똑같은 힘을 재현할 자신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백연홍은 그 가 이룩한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냈 다.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일격을 말이다.
그걸 눈으로 본 기분은…….
‘표현하기 어렵군.’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리 아쉽거 나 나쁜 기분은 아니라는 사실이었 다.
그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추구 하는 무학. 그가 쏟아낸 힘에 저항 하지 않고, 스스로를 동화시켜 부드 럽게 홀려내던 그 검.
그 검은 경이롭기까지 했으니까.
“뭘 느꼈습니까?”
그저 묻고 싶었다.
그가 느낀 것을 저 백연홍도 똑 같이 느꼈는지 알고 싶었으니까.
그들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인 동시에, 누구도 발을 디디지 못한 곳에 함께 발을 들인 동반자기 도 하니까.
백연홍이 뭔가를 고심하는 듯 입 을 닫는다. 한참 동안 말없이 위긴 스를 바라보던 그의 입술이 힘겹게 열렸다.
“충족감…… 환희…… 갈망, 그리 고……
백연홍이 눈을 감는다.
“……아득함.”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비슷한 것을 느꼈다.
더는 오를 수 없는 곳에 올라 더 는 이룩할 수 없는 것을 이룩했다. 하지만 그 정점이라 생각하는 곳을 확인한 순간, 위긴스가 본 것은 끝 없이 이어져 있는 길이었다.
아득할 정도로 끝없이 이어져 있 는 길.
웃음이 난다.
세상을 정복하고 제멋대로 뒤흔들 고 있는 인간이, 사실은 자신이 살 고 있는 땅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모순을 본 것 같은 느낌.
심해에 닿지 못하고, 땅속에 닿지
못하고, 저 하늘 위에 끝없이 펼쳐 져 있는 우주에 닿지 못한다.
어쩌면 무학을 익히고 있는 무인 들 역시 이제야 그 한없는 길의 초 입에 이른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기뻐해야 할 일이다.
무한히 이어져 있는 길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이 에게 있어서는 그 도전욕을 자극하 는 일이니까.
아쉬운 것은…….
‘나는 이제 그 길을 추구할 수 없 겠지.’
위긴스의 시선이 백연홍에게로 향
한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군요.”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 이 광경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발을 내디딜 용기를 내지 못했을 테니까.
오직 백연홍이 있기에 그는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소모한 대가로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잠시나마 오를 수 있었 다.
후회?
그래, 어쩌면 조금의 후회는 있을
지도 모른다. 그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가 얻어낸 것은 그 모 든 후회를 덮을 만큼 거대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백연홍이 입가를 뒤틀었다.
“……이 감정을 뭐라……해야 할 지 모르겠군.”
백연홍 역시 위긴스 덕분에 삼생 에 걸쳐 추구하던 것을 이룰 수 있 었다. 그리고 위긴스 덕분에 잠시 잠깐 얻은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럼에도 미움이나 증오는 느껴지 지 않는다.
차라리 오랜 친구를 보는 것 같
은 기분이었다.
“감사했습니다.”
“고마웠다.”
짧은 침묵.
뭔가 할 말이 남은 듯 서로를 마 주 보던 두 사람이 이내 빙긋 미소 를 짓는다. 할 말은 많지만, 말이란 둘에게 있어서 더는 무의미하다. 이 미 전해야 할 것은 모두 전했으니 까.
굳이 말을 주고받는 것은 이미 서로 알고 있는 것을 되새기는 과정 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위긴스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린다. 백연홍 역시 그리 늦 지 않게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자 신들이 있어야 할 곳을 향해 걸어가 기 시작했다.
의식이 있는 모두가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벅저벅.
위긴스가 천천히 걸어와 강진호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너무도 그다운 미소를 입가에 담았다.
“다녀왔습니다, 로드.”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았다.”
위긴스가 환하게 웃었다.
딱히 대단할 게 없는 말이지만, 이 말이 어쩐지 그가 쏟아부은 모든 것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었다.
“돌아온다는 약속은 지켰습니다 만……
위긴스의 시선이 슬쩍 뒤로 돈다. 흑왕에게 향하는 백연홍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본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 했다.
“승리하겠다는 약속은 지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걸 이겼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졌다고 해야 할지.”
“……그럼 이긴 거겠지.”
“그럴까요?”
“그래. 그게 이긴 거지. 누가 이 기고 지느냐라는 유치한 싸움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니까.”
위긴스가 쿡쿡대며 웃었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군요. 이 중에서 유일하게 저만 어른이 된 모 양입니다.”
“그럴지도.”
그때, 이현수가 참지 못하고 위긴 스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사부님?”
“……그럼 죽기라도 바랐나?”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이현수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위긴 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안다.
위긴스가 단 한순간을 위해서 무 엇을 걸었는지. 하지만 그가 보기에 위긴스는 그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 지 않은 것 같았다. 이처럼 걷고 말 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럼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응?”
“잠시나마 신 같은 힘을 손에 넣 은 것이요. 전에 말했듯이.”
“……잘도 그런 부끄러운 말을 지
껄이는군.”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 그냥.”
“이 현수.”
“ 예?”
위긴스가 따뜻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너는 그걸로 좋아.”
“다만, 스스로를 속이며 안주하는 버릇은 버리는 게 좋아. 마음만 먹 었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도사가 될 수 있었겠지. 똑똑한 이는 벽을 만나면 뛰어넘을 생각을
하지 않고 돌아가는 법만 연구하니 까. 그 버릇만 고친다면 나보다 뛰 어난 사람이 될 거야.”
“사, 사부님.”
이현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위긴스가 하는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상 황 자체가 이현수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위긴스가 고개를 돌려 바토르와 장민, 그리고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 있는 혈마와 이명환마저 그 눈에 담은 위긴스의 시선이 이내 구
석에 놓여 있는 마스터의 시신까지 모조리 그 두 눈에 담았다.
“여러분께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 군요.”
방진훈의 입술이 실룩였다.
“……어차피 져도 되는 승부였는 데, 뭔 영광을 누리겠다고.”
“져도 되는 승부라……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자네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재미 있군.”
“••••••제길.”
방진훈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차마 위긴스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위긴스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과연 그 모든 말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하지만 막상 이들의 앞에 서니 그 모든 말 이 무의미해진다.
‘내가 조언을 할 사람들이 아니 지.’
그저 그가 조금 먼저 닿았을 뿐.
이들 역시 언젠가는 그가 본 것 을 보고, 그가 닿지 못한 곳에 오를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러니 조금의 불안과 조금의 걱 정 같은 것은 묻어두자. 그게 그가 이들에게 보낼 수 있는 신뢰일 테니 까.
“아••••••
그 순간, 이현수의 두 눈이 격하 게 떨렸다.
손끝.
하나 남은 위긴스의 손끝이 천천 히 흩날린다. 사람의 손에 흩날린다 는 표현을 쓰는 것은 너무도 어색한 일이지만, 위긴스의 손은 분명 흩날 리고 있었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것과 비슷 하지만, 그것과도 결이 다르다. 마치 그 손 자체가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 는 것만 같았다.
위긴스가 담담한 시선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을.”
“사, 사부님!”
이현수가 격하게 위긴스에게 달려 들려다 멈춰 섰다.
손을 댈 수가 없다.
손을 대면 위긴스의 몸이 한순간 홑어져 버릴 것 같아서.
“세상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는 법이지. 내가 선택한 일이니 그런 얼굴 할 것 없다.”
“하, 하지만……
이현수가 입술을 꽉 깨문다.
그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 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이현수에게서 시선을 뗀 위긴스가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버린 방진훈, 죽일 듯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 바 토르, 그리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
장민.
‘그래도 나쁘지는 않군.’
적어도 그의 죽음을 슬퍼해 줄 이들이 있으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지금 그는 정말 그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모두를 그 두 눈에 확실히 담은 위긴스가 마지막으로 강진호를 바라 보았다.
“로드께서도……
위긴스가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냈다.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아시는군
요.”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 라본다.
그의 주먹이 부러질 듯 움켜쥐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