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67)
마존현세강림기-2067화(2066/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2화)
1장 이어지다 (2)
딱히 그 질문이 강진호의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새삼스러운 질문이었기 때문 이다.
‘그게 굳이 각오까지 필요한 일인 가.’
다른 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
왔다면 그저 웃어버렸을 것이다.
그는 적천마존.
수많은 이의 피를 그 손에 적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혈향을 새긴 존재. 그 깊고 깊은 죄 위에 하나의 목숨을 더 추가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강진호가 이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에게 이 질문을 한 이가 다름 아닌 장민이기 때문이다. 장민은 그 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다. 어떤 면에서는 이현수나 최연하, 심지어는 그의 가족들보다 더.
그런 이가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 다.
그리 생각하니 쉽사리 대답이 나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본 장민이 깊 은 숨을 토해냈다.
“마존이시여……
입술을 깨문 장민이 마치 애원하 듯, 또한 충고하듯 말했다.
“각오를 굳히셔야 합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방향 모를 간절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새삼스러운 소린지 모르겠
군.”
강진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겠지.”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이길 자신이 있느냐도 아니고, 죽 일 자신이 있느냐니.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내 가 그만두자고 한다고 그만둘 놈도 아니잖아? 저놈의 손에 죽어줄 의리 따위는 없어.”
충분한 대답이 되고도 남을 말이
지만, 장민은 그 말에 만족할 수 없 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장민이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 은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죽여야 할 순간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죽인다. 그런 각오로는 패하실 겁니다.”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장민, 걱정이 되는 건 알겠는데…… 나는 장민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다, 마존이시여.”
“음?”
“이 세상에서 마존에 대해 가장 모르는 이가 하나 있다면, 그건 다 름 아닌 바로 마존 자신이십니다.”
강진호의 눈이 찌푸려졌다.
해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을 본 장민이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대답 을 시작했다. 그가 왜 지금 이런 말 을 늘어놓고 있는지.
“마존께서 지금까지 싸워온 이들은 모두가 마존의 적이었습니다.”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 지요. 마존께 있어서 적이란 그 목 숨을 빼앗음에 있어서 망설임이 필 요하지 않은 이를 의미하니까요.”
강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적에게는 무자비할 것, 일체의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 그게 마존 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장민이 흔들리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 명확한 적이 아닌 이들, 그 경계에 있는 이들에게 마존께서는 언제나 관용을 베푸셨지요. 저 홍왕 이 그렇고, 마스터의 경우도 마찬가
지였습니다. 마존께서는 한 번이라 도 마존께 고개를 숙인 이의 목숨은 취한 적이 없으십니다.”
그 말에 움찔한 것은 강진호가 아니라 이현수였다.
장민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당황 해하던 이현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현수가 안 일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애초에 강진호는 살인에 거리낌이 없는 사 람이 아니었던가. 그가 일본의 무인
일천의 목숨을 그 손으로 모조리 끊 어놓은 것을 이현수의 눈으로 똑똑 히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장로님의 말도 분명히 맞 다.’
적에게는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 는다. 하지만 확실한 적이 아닌 이 에게는?
예를 들자면 마스터.
그가 마스터에게 내린 형벌은 어 쩌면 죽음보다 더 잔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현 수는 이해했다.
‘그 일을 저지른 이가 마스터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다면?’
강진호가 친분을 느끼지 않는 누 군가였다면, 그가 살아서 이 승부에 나오는 일이 정말 가능했을까?
그제야 이현수는 장민이 저토록 강진호를 걱정하는 이유를 알 것 같 았다. 그리고 위긴스가 왜 마지막 순간에 강진호에게 당부를 했는지도 이해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이현수도 알고 있지 않았던 가.
강진호는 의외로 마음 약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이현수나 장민
도 강진호가 흑왕에게 패배할 마음 으로 승부에 나설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는다. 그건 강진호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필사의 일격으로 흑왕을 죽이고 승리를 얻어낼 수 있는 그 순간이 왔을 때, 강진호는 정말 일말의 망 설임도 없이 흑왕의 목을 벨 수 있 을까?
어쩌면 망설일지도 모른다.
정말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만이 라도.
그리고…….
아마 지금부터 벌어질 강진호와 흑왕의 승부는 분명 그 찰나의 망설 임만으로도 결과가 뒤바뀌는, 치열 하기 짝이 없는 전투가 될 게 분명 하지 않은가.
“회주님.”
불안이 치솟은 이현수가 저도 모 르게 강진호를 불렀다.
하지만 강진호의 반웅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찰칵.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는 불을 붙인다. 그러고는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피식 웃어버린 강진호가 웃는 낯 으로 말을 이어간다.
“그럴 일은 없어.”
“……마존이시여.”
“잊은 모양이군, 장민.”
강진호의 고개가 흑왕 쪽으로 살 짝 돌아간다. 중앙으로 걸어 나오는 그를 두 눈에 담은 강진호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미 저놈을 한 번 죽였어.”
“한 번 한 일을 두 번 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강진호가 손을 뻗어 장민의 어깨 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할 것 없어. 나도 뭐가 더 중요한지 이해 못할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니까. 그리고……
강진호가 옅게 웃었다.
어쩌면 지금 그의 미소는 다른 이들에게는 조금 섬뜩하게 느껴질지 도 모른다.
‘모르고 있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와 청마의 관계는 이들이 생각
하는 것처럼 말랑말랑한 게 아니다.
그때, 지금껏 잠자코 모두의 대화 를 듣고 있던 방진훈이 입을 열었 다.
“회주님.”
“음?”
“총회에는 아직 당신이 필요합니 다.”
방진훈이 눈가를 실룩였다.
“다른 양반들은 회주님이 이 전쟁 이 끝나고 나면 은퇴라도 할 것처럼 구는데, 솔직히 저는 그게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총회는 누가 운영합니까?”
“그야♦•••••
“전 못합니다.”
방진훈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 다.
“남의 인생을 그렇게 쉽게 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럴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습니다. 평소에도 감당 못 했는데, 이런 세상에서 제가 무슨 수로 총회를 이끕니까?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총회의 회주가 무인계 의 왕이 될 텐데.”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방진훈이
진저리를 쳤다.
“그러니까 적당히 던져 버릴 생각 하지 마시고, 확실하게 이기고 오십 시오. 거기까지는 무조건 회주님의 책임입니다. 발을 잡고 늘어지든, 이 로 물어뜯든, 어떻게든 반드시 이기 고 오십시오.”
강진호가 낮게 웃었다.
이렇게 힘이 안 나는 웅원이 또 있겠냐마는, 방진훈에게 있어서는 이게 최선이겠지.
“조금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데.” 강진호가 조금 거칠게 담배 연기 를 내뿜었다.
“내가 언제 진 적이 있던가?”
“ 그야
“다를 건 없어.”
강진호가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 으로 던졌다.
“이번에도 말이야.”
설득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굳 이 주장할 필요도 없다.
강진호는 자신의 삶으로 이미 자 신을 증명했으니까. 적어도 전투라 는 측면에 있어서만큼은 그를 의심 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없다.
“애초에 저놈과 나 사이에 뭔 정 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설사
그런 게 있다고 한들 내가 저놈을 죽이는 걸 망설일 이유는 없어. 나 는 저놈이 만들려고 하는 세상이 마 음에 들지 않거든.”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이 싸움을 시작한 이유다. 돌고 돌아 결국은 다시 거기에서 시 작이다.
“그런 세상에 내 사람들을 살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어.”
장민이 입술을 깨문다.
그러고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 덕였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마존이시여.”
“그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앞에 선 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본 강진호가 천천히 몸을 돌렸 다.
그때.
“회, 회주님!”
이현수의 입에서 다급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강진호가 고개만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꼭..”
이현수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 물었다.
“꼭 이기고 돌아오십시오.”
이현수를 빤히 바라보던 강진호의 입가가 살짝 비틀렸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은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 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현수가 주먹을 움켜쥐고는 그런 강진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율배반적인 심정이다.
그는 강진호를 세상 누구보다 신 뢰한다. 강진호의 패배 같은 건 머 릿속에 그려지지도 않는다. 반드시 그가 이기고 돌아오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안을 가득 채운 것은 지금껏 없던 수준의 불안함이 었다.
‘부디••••••
함께 싸울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발 뒤에 서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 제발.’
이현수가 더없이 간절한 눈으로 강진호의 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강진호는 자신의 등에 꽂히는 그 시 선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앞으로 걸 어 나갔다.
‘이상한 기분이군.’
등 뒤에서 감정이 밀려와 소용돌 이치는 것만 같다.
아니, 아니다.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건 저들이 아니라 바로 강진호다. 흑왕 을 향해 나아가는 강진호의 가슴속 에서 온갖 감정이 제멋대로 뒤섞여 휘몰아친다.
증오, 기쁨, 서글픔, 반가움, 아쉬 움, 연민.
겨우 그 정도가 아니겠지.
스스로의 안에 이토록 다양한 감 정이 살아남아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흑왕을 바 라보며 강진호가 입가를 뒤틀었다.
‘너도 나와 같은 기분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청마는 자신과는 비 교도 되지 않을 감정의 요동을 느끼 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죽었다 생각한 이를 다시 만난 것에 불과하 지만, 청마는 무려 백 년의 시간 동 안 그를 기다려 왔으니까.
그 모든 것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
는지도 모른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두 사람이 천천히 서로를 향해 걸어 나간다.
3미터.
그 기운으로 사람을 죽이기에 충 분한 거리. 하지만 두 사람의 걸음 은 멈추지 않았다.
1 미터.
평범한 이들에게도 가까운 거리.
하지만 그곳에 이르고도 강진호와 혹왕은 서로를 향해 한 발을 더 내 디뎠다.
탁.
이윽고 그들의 발이 멈춰 섰을 때. 두 사람은 서로 손이 닿을 거리 에 마주 서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헤어졌다 만난 다시없을 친구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던 강진호와 흑왕의 입가에 동시에 미 소가 피어난다.
놀랍도록 서로 닮아 있는 미소가.
세 번의 삶과 지독히도 긴 시간 을 넘어.
바로 지금.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