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68)
마존현세강림기-2068화(2067/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3화)
1장 이어지다 (3)
바라본다.
닿을 듯한 거리에 마주 선 두 사 람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 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빗대어 짐작 하기에 저곳에 있는 두 사람은 너무
도 거대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과거부터 고금제일마라 불리며 수없이 회자되던 강호의 전 설.
그리고 다른 한쪽은 강호의 역사 상 다시없을 집단을 규합해, 역사상 그 어떤 무인도 하지 못한 일을 이 루어가고 있는, 살아 있는 전설.
하지만 이 둘을 그런 말로 다 표 현할 수는 없다.
세상을 뒤흔드는 세력의 주인으로 서, 그 스스로 천하를 위진시키는 무인으로서, 그리고 그저 한 사람으 로서…….
두 사람은 마침내 지금 이 자리 에 마주 섰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둘 중 먼저 움직인 것은 강진호였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강진호 가 담뱃갑을 꺼내 열었다. 그러고는 담배 한 개비를 손끝으로 잡아 흑왕 에게 내밀었다.
“……뭡니까?”
흑왕이 의아하다는 듯이 묻자 강 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필요할 것 같아서.”
흑왕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는 듯 혀를 차댔지만, 의외로 그 담 배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 들었다. 흑왕이 강진호에게서 받은 담배를 입에 물자, 강진호가 손끝을 튕겨 불을 붙여주었다.
그러고는 자신 역시 한 개비 담 배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
강진호와 혹왕의 뿜어낸 담배 연 기가 서로를 지나쳐 이 적막한 공간 에 천천히 퍼져 나간다.
“아무 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데.”
흑왕의 투덜거림을 들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
“그런데……
제 손으로 입을 덮듯 담배를 잡 은 흑왕의 입에서 새하얀 연기가 천 천히 뿜어져 나온다.
“한 번씩은 필요하긴 하군요.”
모순 같은 이야기다.
도움이 되지 않지만 필요하다니. 하지만 강진호는 그 말에 공감한다 는 듯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필요할 것이다.
아무 쓸모 없는 것에 불과하지만,
흑왕 역시 너무 많은 것을 잃었으니 까.
강진호는 모른다.
흑왕에게 얼마나 큰 대의가 있는 지, 그 대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는지.
하지만 강진호는 안다.
그가 어떤 각오를 하든, 얼마나 큰 것을 버릴 수 있든, 그 대가로 주어질 고통을 줄일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몇 번의 삶을 반복해도.
수도 없는 고통을 겪어도.
고통이란 건 눈꼽만큼도 줄어들지
않고,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저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버텨내는 데 능숙 해지는 것일 뿐.
아마 지금 흑왕도 버티고 있는 중일 것이다.
자신이 잃은 것에, 자신이 잃어야 할 것에.
결국…….
마침내 이 자리에 선 것은 세상 을 호령하는 위대한 무인이 아니라 심장에 새겨진 상처에 신음하는 머 저리 같은 두 인간에 불과했다.
“가치가 있나?”
흔들려는 의도는 아니다. 강진호
는 정말 궁금했다.
흑왕은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것 을 가질 수 있다. 그는 강진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사 람이니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과 대적 하는 길을 택했다.
그럴 가치가 있었을까?
그가 추구하는 이상이 정말 자신 의 모든 것을 버려서까지 이루어야 할 만큼 위대한 것이었을까?
그 속에 담긴 뜻을 모조리 이해 시키기에는 짧고 무성의한 질문일지
도 모른다. 하지만 흑왕은 강진호의 그런 질문법에 익숙하다는 듯이 태 연하게 대답했다.
마치 과거의 그가 그런 것처럼.
“교주님.”
“이제는 좀 변하고 성장하셨다고 생각했더니, 여전히 빤한 소리를 하 시네요.”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낸 흑왕 이 입가를 뒤틀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가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이 있을 뿐.”
흑왕이 조소를 머금는다. 그 비틀 린 미소가 강진호의 두 눈을 파고들 었다.
“모두가 합의 가능한 완전한 이상 같은, 그런 속편한 게 세상에 존재 할 리 없죠. 어떤 것의 가치란 모두 에게 서로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 다.”
혹왕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향한 다.
“그리고 그건 교주님께도 마찬가 지 아닙니까?”
“당신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가족이라든가, 친구라든가, 동료니 어쩌니 하는 것들.”
강진호의 눈가가 살짝 꿈틀댔다.
“그건 당신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언가이겠지만, 누군 가에게는 길가에 널려 있는 돌멩이 만도 못한 것에 불과하겠죠.”
“거꾸로 묻겠는데……
흑왕이 강진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당신이 지키려 하는 것들에는 정 말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하나밖
에 남지 않은 목숨을 걸어 나와 싸 워서 쟁취해야 할 만큼?”
강진호가 웃어버렸다.
심지어 그가 지키려 하는 것은 그들의 목숨조차 아니다. 그들의 목 숨은 이미 흑왕이 제 입으로 보장해 주었으니까. 그가 지금 이곳에 선 이유는 그들의 목숨이 아닌 그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정말 그것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가.
흑왕이 말하는 것처럼 그의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강진호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 그 대답은 한없이 멍청하고 생각 없는 대답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은 강진호가 지 키려 하는 가치의 크기에 공감하지 못할 테니까.
“멍청한 말을 했군.”
“뭘 새삼스럽게.”
혹왕이 큭큭, 웃어댔다.
즐겁다.
우스운 이야기겠지만, 지금 그는 정말로 즐거웠다.
‘오랜만이군.’
과거에는 이런 순간이 있었다.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진호 와 농담 따먹기에 불과한,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던 순간이.
그럴 수 있었다.
과거의 그들은 현대의 그들과는 유리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그가 과 거의 강호를 뒤틀어 현대마저 바꾸 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그 당 시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뿐, 그에게 있어서 강박적인 사명감 을 강요하는 일은 아니었다.
우스운 일이다. 정말 우스운 일이 다.
오히려 그렇기에 과거의 그는 온
전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현대의 양첸과 과거의 청마.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본질에 더 가까운 이는 양첸이 아니라 청마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흑왕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 한 순간에 서 있다. 그의 일생을 바 쳐 이루려 한 것이 오직 이 승부에 달려 있으니까.
하지만…….
‘모르겠군.’
강진호와 마주 선 순간, 그런 것
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진호 와 마주한 순간만큼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의 무게에서 잠 시 벗어나는 기분이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그가 강진호의 존재에 그토록 집 착한 것은.
그는 그를 양첸이 아니라 청마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 니까.
하지만…….
“솔직히 그리 기분이 좋지 않습니 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 만, 나는 당신을 나름 친구라고 생 각했습니다.”
“아뇨. 어쩌면 당신은 내게 있어 서 삼생을 통틀어 존재하는 유일한 친구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때 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믿던 유일한 동료였을지도 모르지요.”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마에게 있어서 자신은 그런 존 재였을지도 모른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지독한 외로움을.
그 살을 저며오는 외로움의 순간 에서 둘은 서로의 유일한 안식처였 다.
혼자서는 바로 설 수 없을 만큼 비틀어진 인간들.
그런 인간들이 서로에게 등을 내 주었기에 겨우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당신을……
혹왕의 얼굴이 비틀렸다.
“내 손으로 죽여야 하다니.”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이를 드 러내며 웃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네 손에 죽는 일은 없을 테니까.”
“오히려 내가 사과해야지. 한 사 람에게 두 번 죽는 경험은 세상 그 누구도 하지 못한 경험일 테니 말이 야.”
혹왕이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강진호도 그런 흑왕을 보며 마주 웃었다.
그들은 세상에 유일한 서로에 대 한 이해자이고, 세상에 유일한 서로 의 대적자다.
서로가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존재, 비틀린 자신을 올곧게 만들어 주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들.
악감정 따위는 없다.
아니, 어쩌면 그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호의만 존재할 뿐인지도 모른 다.
“여전히 그 생각은 동일합니까?”
흑왕이 강진호를 빤히 보며 묻는 다.
“당신도 분명 느끼고 있었을 겁니 다, 이 세상의 모순을.”
“어쩌면 당신의 말이 맞을지도 모 릅니다. 그리고 백연홍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르죠. 제가 지금 과한 걸지 도 모릅니다.”
흑왕이 희게 웃었다.
“하지만 그건 성공한 사람이 쓴 자서전 같은 거죠. ‘나는 노력과 근 성으로 성공을 이뤄냈다’라는 부자 의 자화자찬 같은 것.”
“ 자화자찬?”
“네.”
흑왕이 비웃듯 말했다.
“당신이나 나 같은 실패자가 누군 가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너무도
파렴치한 짓 아닙니까? 우리에게 두 번째의 삶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 린 길가에서 죽어간 쓰레기 그 이상 도, 이하도 아닙니다.”
“첫 번째 삶의 끝에 서 있는 당신 에게 미래는 자신의 손을 쟁취하는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 때의 당신은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 고 노력할 수 있었습니까?”
강진호가 입을 닫았다.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이유 는 누구도 얻지 못한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저 운, 신이라는
망할 작자의 변덕에 불과하죠. 하지 만 당신은 그걸 마치 제 노력으로 얻은 것처럼 굴고 있는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사람을 절벽으로 밀어 넣고 기어 올라와야 한다고 외치는 건 애정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나는 적어도……
흑왕의 목소리가 진득하게 울려 나왔다.
“세상의 흐름이라는 개 같은 이유 로 무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소멸해 가는
꼴만은 막고 싶었을 뿐입니다.”
흑왕이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 낸다.
“당신과……
“내가 동일하게 보았을
“그 개 같은 미래를.”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이미 그는 한 번 흑왕의 말에 반 박했다. 그의 방식이 덧없음을 그의 입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흑왕은 정말 잘못되었는가.
그가 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 무 의미하고 덧없는 짓인가.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 한들, 그가 느끼고 있는 위기감이 정말 그의 망 상에 불과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건 강진호가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다.
“다시 묻습니다.”
흑왕의 눈이 강진호를 쏘아보았다. 그건 청마의 눈도, 혹왕의 눈도 아니었다.
양첸.
세상 모든 무인들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불구덩이에 집어던진 무인 들의 성인, 양첸의 눈이었다.
“당신과 당신 주위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무인들의 미래를 나락에 처 박아대는 지금 당신의 행위를 스스 로 정말 용납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십시오, 교주님. 아니…… 흑왕의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그 어떤 것보다 더한 무게를 담 아서.
“대답해, 강진호.”
꾹 다물린 강진호의 입술 끝이 살짝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