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70)
마존현세강림기-2070화(2069/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5화)
1장 이어지다 (5)
흑왕이 멍하니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그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 겠다는 듯이.
아니, 그 질문이 대체 무엇을 묻 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뭔가 대답을 하려는 듯 살짝 벌 어진 입이 이내 다시 굳게 닫히고 말았다.
흐릿한 감정의 편린이 지나간 곳 에 남은 것은 그저 의문뿐이었다.
“ 행복?”
혀끝이 아리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말을 강제로 혀끝에서 떼어내는 것만 같다.
“무슨 의미입니까?”
강진호가 천천히 내뿜은 담배 연 기가 허무하게 흩어졌다.
“말 그대로야.”
흑왕이 고개를 내저었다.
“예전부터 엉뚱한 사람이란 건 알 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낮은 웃음이 흘러나 왔다.
“그래도 때와 장소는 가릴 줄 안 다고 여겼는데, 그것도 내 착각이었 던 겁니까?”
흑왕이 미소를 짓는다. 당황스럽 고 한심스럽다는 감정을 한껏 담은 미소. 하지만 그 미소는 지금껏 흑 왕이 지은 것과는 다르게 조금은 어 색하게 느껴졌다.
그 웃음을 받으면서도 강진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대답해 봐.”
“ 교주••••••
“ 대답해.”
흑왕이 입을 닫았다.
동시의 그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 그러졌다. 하지만 그가 표출하고 있 는 감정이 명백히 분노는 아니었다.
그건 당혹. 그래, 당혹일지도 모 른다.
혹왕의 두 눈에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진호의 시선이
담겼다. 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짐작할 수 없는 두 눈이 그를 짓누 르는 것만 같다.
잠시 머뭇거린 흑왕이 다시금 강 진호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이토록이나 동요한 적이 있 던가. 더 이상한 것은 흑왕 스스로 도 자신이 왜 이렇게 동요하고 있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었다.
“ 그게••••••
이상하게도 열리지 않는 입을 강
제로 비틀어 열어 나오지 않는 목소 리를 쥐어짰다.
“그게…… 대체 이 상황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관계?”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관계 같은 건 없어.”
“그저 궁금한 것뿐이야. 대답해 봐, 흑왕. 말 돌리지 말고. 이 세상 으로 돌아온 이후 너는 단 한 번이 라도 행복한 적이 있었나?”
혹왕이 얼음처럼 차갑게 굳은 얼 굴로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알 것 같군.”
타닥.
강진호의 담배 끝이 새빨갛게 타 올랐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본 흑왕이 입술을 깨물었다.
행복?
그 따위 것이 그의 인생이 존재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신은 이해 못해.”
“누가 알겠어, 부모가 죽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아야만 하는 어 린 그의 심정을. 그리고 슬퍼할 겨
를도 없이 살아남기 위해 달아나고 또 달아나야 한, 숨어들고 또 좌절 해야 한 내 심정을.”
“내가 말했지? 당신은 운이 좋았 다고. 당신은 당신이 겪은 지옥을 되돌릴 기회를 얻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내가 그 모든 걸 되돌 릴 수 있는 순간으로 돌아왔다면, 나도 그 낯 간지러운 단어를 입에 올릴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 지만……
혹왕이 입술을 짓씹었다.
“내게 그런 기회 같은 건 없었어.”
강진호와 흑왕의 눈이 허공에서 얽혀든다.
“ 행복?”
그 웃음은 과히 비틀려 있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절로 몸을 떨 만 큼.
“내 삶에 그런 건 필요 없어. 내 게 필요한 건 이상이지. 그런 말랑 한 것이 아니라. 그러니……
흑왕의 목소리에 확신이 어린다.
“그러니 바꾸겠다는 것뿐이야. 다 른 이들은 내가 겪은 지옥을 겪지 않도록.”
“그럼••••••
강진호가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 으로 가볍게 집어 던졌다.
“마교는 왜 구하지 않았지?”
흑왕의 눈이 가라앉는다.
“네 말대로 달아나고 숨어들고 좌 절해야 했던 이들이지. 네가 마음만 먹었다면 그들의 삶 정도는 진즉에 바꿔놓을 수 있었겠지. 그렇지 않 나‘?”
“그런데 왜 그들을 방치했지? 왜 그들의 삶은 돌보지 않았나? 적어도 교가 너에게 적대적이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을 텐데?”
“의미가 없으니까.”
“ 어째서?”
흑왕이 씹어뱉듯 말했다.
“마교를 구한다 해도 세상이 바뀌 지 않으면 같은 걸 반복할 뿐이니 까. 내가 구하려 한 건 교 같은 게 아니야. 무인들의 미래다. 그런 작은 것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어.”
강진호가 쿡쿡대며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입안에서만 감돌던 웃음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이내 흑 왕의 귓가에도 똑똑히 들릴 만큼 선 명해졌다.
“……왜 웃지?”
“쿡쿡쿡쿡.”
“왜 웃냐고 물었어.”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네 논리가 옳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너를 방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 었어. 어쩌면 네가 옳고, 내가 그를 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거슬린다.
그 목소리가.
“하지만…… 허무하군.”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묻겠는데……
그 목소리가 칼날처럼 흑왕을 파 고들었다.
“네 계획이라는 건 대체 누굴 위 한 거지?”
흑왕이 이를 드러냈다.
“이해력이 떨어진 모양이시군, 교 주. 말하지 않았는가. 이건 모든 무 인……
“모든 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 강진호가 쏘아붙이듯 말했다.
“모든 무인이라는 건 하나하나의 무인을 모아둔 것에 지나지 않아. 그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지. 행 복한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행복 한 국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네가 말하는 무인의 미래라는 건……
강진호가 쐐기를 박아대듯 말했다.
“그저 네 삶의 이유를 만들기 위 한, 그럴싸한 자기변명일 뿐이야.”
혹왕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강진호 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천하의 흑왕조차도 이 순 간만큼은 강진호의 말에 쉽사리 반 박을 하지 못했다.
“ 그게♦•••••
한참을 머뭇거린 끝에 흑왕이 다 시 말을 이어갔다.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습니까?”
“그렇다고 치죠. 스스로를 선으로 가장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지만, 내가 한 모든 것이 위선이 라 칩시다.”
혹왕이 입가를 비틀었다.
“그래서 그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겁니까? 의도가 어떻게 되었든 내가 행한 위선으로 다른 이들이 얻을 것 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닙니까? 철저한 위선자는 어설픈 선인보다 나은 법이죠. 당신도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얻을 게 있다고?”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웃기지 마, 머저리 같은 놈아.” 갑자기 일변한 그 기세에 흑왕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가 하는 짓거리는 과거에 무인 들이 한 것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 아. 형태만 바꿔놓았을 뿐, 결국 회
피에 불과해.”
“회피?”
“바깥세상을 더는 감당할 수 없던 무인들은 결국은 사람들의 이면으로 숨어들었지. 그전까지는 평범한 이 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하면서 왕처럼 살아온 주제에 더는 이길 수 없을 때가 되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 는 것처럼 모습을 감췄어.”
“그런데…… 이젠 그것까지 한계 에 몰리니까 기껏 한다는 짓이 벽을 치고 우리끼리 모여 살겠다고?”
강진호가 으르렁대듯 말했다.
“그게 우리가 원래 하던 짓과 뭐 가 다르지? 칼을 겨누고 무인과 평 범한 이들의 경계를 나누던 이들이 이제는 미사일을 겨눠 그 경계를 나 누겠다고 지껄여 대는 것뿐이잖아.”
“그건 발전이 아니야. 멍청하던 과거로의 회귀고, 변화를 받아들이 지 못하는 도태에 불과해. 언제고 어디서고, 고립을 추구하던 이들이 성공한 역사는 단 한 번도 없었어.”
혹왕이 입을 꾹 다물고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가 장 잘 알고 있겠지. 그 강대한 힘을 가진 마교조차도 외부와 자신들을 격리했기에 결국에는 실패하고 몰락 했다. 그런데…… 그때의 마교에 비 해서도 열세에 처한 우리가 저들을 상대로 벽을 치겠다고?”
찰칵.
강진호가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흑왕에게는 그 모습이 더없이 인 상적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는 손 가락을 튕겨 불을 붙이는 편리한 방
법을 사용하던 강진호가 굳이 문명 의 이기를 사용해 담배에 불을 붙이 고 있다.
그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불편한 과정을 굳이 감수하며 말이다.
“그건 진보;가 아니야. 퇴보지.”
“그래. 처음에는 안온할 수 있겠 지. 목구멍에 들이밀어진 총구를 뽑 아내는 기분일 테니까. 하지만 거긴 달콤한 꿀이 발라진 커다란 덫에 불 과해. 그 안온함이 곧 그 안에 든 이들의 목을 조이기 시작할 거야. 과거의 우리가 겪은 그대로.”
“당신은……
“잘 들어, 청마.”
강진호가 이를 으득 갈며 말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 같은 것은 없 어.”
혹왕의 눈이 짧게 혼들렸다.
“네가 만들려고 하는 곳은 위협이 거세된 가짜 낙원일 뿐이야. 거기에 는 아무것도 없어. 눈을 감는다고 해서 내게 겨누어진 총부리가 사라 지지는 않아.”
“그 안온함이 결국에는 우리 모두 를 무너뜨릴 거다. 정말 네가 미래
를 원한다면, 그런 식으로 달아나서 는 안 돼. 맞서야지.”
“빤한 소리를!”
흑왕이 이를 갈아붙였다.
“그러다 패하면?”
그러고는 다시 이를 드러냈다.
“그러다 패하고 무너지면? 그러다 피를 흘리고 죽으면? 그러다 무인이 사라지면?”
“그걸 당신이 책임질 수 있습니 까‘?”
혹왕에게서 무시무시한 감정의 소 용돌이가 밀려온다.
“일반론 따위는 누구나 늘어놓을 수 있지. 하지만 실패의 대가는 누 가 감당하지? 무책임하게 지껄인다 고 끝이 아니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인가!”
감정이 격하게 터져 나온다.
흑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 만큼 격한 감정. 하지만 그 감정을 정면에서 받은 강진호는 오히려 웃 어 버렸다.
“잊어버렸군, 청마.”
그 웃음은 익숙했다.
수도 없이 보아온 미소니까.
강진호의 얼굴에 떠오르기에는 낯
설지만, 적어도 흑왕의 눈에는 지금 이자의 모습보다 훨씬 익숙한 누군 가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무인이란 원래 그런 승부의 세계 에 사는 놈들인 거야.”
“패배가 두려워서 내디뎌야 할 발 을 내딛지 못하는 건 더는 무인이 아니지. 수도 없이 말했지만, 너는 여전히 모르는군.”
혹왕이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 을 벌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젓고 말았 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이자와 그의 관계는 언제나 이랬 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깝지만, 결코 합쳐지지는 않는다. 세상 끝까지 향해 뻗어 있는, 평행 한 레일처럼 그들은 언제나 맞닿지 못한다.
“결국은…… 좁혀지지 못하는군.” 강진호가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 들였다.
“알고 있었잖아?”
“네. 알고 있었죠. 하지만……
혹왕이 빙긋 웃었다.
“미련을 한 번 가져 봤습니다. 나
름 열심히 살아 왔으니 그 정도 사 치 정도는 부려도 될 테니까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릅니다, 교주.”
혹왕이 천천히 주먹을 말아 쥐었 다.
“언젠가는 당신과 승부를 내야 했 을 테니까. 서로 무를 겨룬다는 미 적지근한 이유가 아니라…… 모든 것을 걸고.”
혹왕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순간만을
지금까지 기다려 온 건지도 모릅니 다.”
강진호가 뒤틀린 미소를 지어냈다.
“마찬가지야.”
그들에게 있어서.
아니, 무인에게 있어서.
좁혀지지 않는 이견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두 사람에게서 홀러나온 기세가 공동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너무도 음울하고, 조금은 서글픈 기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