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73)
마존현세강림기-2073화(2072/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8화)
2장 격돌하다 (3)
치이이이이이.
화면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다.
스피커에서 홀러나오는 노이즈 소 리만이 저 화면이 꺼진 것이 아니라 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저 화면이 나오지 않게 된 지 말 이다.
하지만 그녀, 최연하는 소파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시선을 화 면에 고정하고 있었다. 저 화면에 다시 누군가의 모습이 나오는 순간 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적막한 거실.
멀리서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 가 똑똑히 들릴 만큼 지금 이 공간 은 침묵으로 뒤덮여 있었다.
치이이이이이이.
굳은 얼굴.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얼굴
로 화면을 바라보던 최연하가 천천 히 눈올 감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지금 그 녀가 어떤 상태인지를 조금이나마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RRRRRR.
그 순간, 최연하의 고개가 격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꽉 잡고 있던 휴대폰의 액정이 빛을 뿜어내고 있다. 최연하가 재빠 른 동작으로 휴대폰을 들어 올려 액 정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짧은 기대, 그리고 빠른 실망.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가늘지만 긴 한숨이 새어 나온다.
최연하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 대폰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
“그래, 은솔아.”
[누나.]한은솔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온다.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마저 생생하게.
[누나 괜찮아요?]“뭐가?”
[누나…….]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입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왜? 내가 눈물이라도 질질 짜고 있을까 봐 전화했어?”
[아뇨, 누나. 그런 게 아니고…….]“그럴 것 없어, 은솔아.”
최연하의 시선이 다시 화면으로 향했다. 더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화면으로 말이다.
“뭐, 어쩔 거야. 내가 보냈는데.”
[누나…….]“너 앵무새 같다. 기껏 전화해 놓 고 하는 말이 누나밖에 없네.”
[아뇨. 그런 게 아니라…….]최연하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눈물 질질, 콧물 질질 짤 거였으
면 매달렸어야지. 바짓가랑이 붙들 고 울고불고 매달렸어야지.”
[…….]“그것도 못해서 보내놓고 지금에 와서 슬픈 척, 아픈 척 해 댈 만큼 낯짝 안 두꺼워. 내가 정말 간절했 으면 어떻게든 잡지 않았겠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누나. 어차 피 막아도 간다는 거 알았으니까 보 낸 거잖아요.]“글쎄, 정말 그럴까?”
최연하의 시선이 조금 위쪽으로 향했다.
딱히 아무것도 없는 천장. 말없이
그 천장을 바라보던 최연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은 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모르겠다, 은솔아. 정말 그래서 보낸 건지, 아니면 내가 정말 자존 심이고 뭐고 다 버려가며 그 사람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질 용기가 없던 건지.”
[그러지 마세요, 누나. 누나 잘못 이 아니잖아요.] [누나도 몰랐잖아요, 저런 건 줄. 설마…….]최연하가 낮게 웃어버렸다.
몰랐다고?
정말 몰랐을까?
그래, 몰랐지.
어쩌면 그렇게 생각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강 진호만은 무사할 것이다. 전쟁터에 서는 반드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아도 전쟁터에 나가는 내 가족이 죽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 처럼.
하지만 저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세상은, 그녀가 곁눈질로 얼핏 알아 오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다.
“은솔아.”
[네, 누나.]“누나 걱정 할 것 없어.”
[…….]“기쁘네. 우리 은솔이가 이 누나 걱정도 다 해주고.”
[아니…… 그건 당연한 거죠.]“그런데 은솔아, 어쩌지? 이 누나 는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는 이제 지 겹거든? 그런 건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했어. 뭔 일 벌어졌을 때마다 눈물 줄줄 홀리면서 발 동동 구르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다.”
수화기 너머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태연한 척하려고 해도 한은솔에게 는 그녀의 속내가 보이는 모양이었 다. 하기야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같 이 일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 지.
하지만 최연하는 태도를 바꿀 생 각이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연기를 하며 살아 가니까. 굳이 연기를 업으로 살아가 지 않는 이들도 상황에 맞춰 자신이 정한 역할을 연기하며 산다. 속내가 들켰다 하더라도 연기는 마지막까지 이뤄져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혼자 궁 상 떨지는 않을 테니까. 아직 죽은 것도 아니잖아.”
[네, 누나. 또…… 전화할게요.]“••••••그래.”
네 할 일이나 하라는 말을 하려 던 최연하가 결국에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당당한 척도 한계 가 있으니까.
“끊는다.”
[네.]전화를 끊은 최연하가 소파에 등 을 기댔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모르겠네.’
잡을 만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 녀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 한은 솔의 말도 그리 틀리지 않다. 최연 하는 알고 있었다. 결국에는 강진호 를 잡을 수 없을 거라는 걸.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이해한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사람의 행동 을 마음대로 구속할 수는 없으니까. 사람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의 범 주는 다르다. 강진호는 그저 그 범 주가 남과 조금 달랐을 뿐이다.
인정하지 못한다면?
거기까지겠지. 관계란 그런 것이 니까.
“……그래도 이 망할 새끼야.” 알고 있다.
혼자가 아닌 둘이 되는 순간부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최선의 길 같은 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 을. 결국은 양보라는 이름으로 누군 가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아마 이 일은 강진호에게 있어서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 다.
하지만…….
무릎을 끌어 올린 최연하가 제 무릎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 다.
‘그래도……
말•려볼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걸 내버리고 매달려서라도 말려야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강진호를 보내고 만 것도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모두 내려 놓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아무래도 좋으니까……
물기 젖은 그녀의 목소리가 느릿
하게 흘러나온다.
“제발♦•••••
화내고 욕할 수 있게.
짜증내고 투정부리고 물어뜯을 수 있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럴 수 없게 되니까. 평생을 그저 슬퍼하거나 애 써 밝은 얼굴인 척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되니까.
최연하가 제 무릎을 움켜쥐었다.
“기다리라고?”
고개를 든 그녀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웃기지 마, 망할 새끼야.”
최연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화면.
저 화면이 다시 켜지기만 멍하니 기다렸다. 하지만 깨달았다. 이건 그 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서 가만히 강진호가 살아 돌아오길 기다린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기다리는 건 그녀의 역할이 아니 다.
최연하가 손을 뻗어 휴대폰과 지 갑을 움켜잡았다. 방법 같은 건 잘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명하 게 이해할 만큼 머리가 맑지도 않 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여기에서 이렇게 기다리면 나는 평생 후회해.’
강진호가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 든,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
지갑과 차 키를 챙긴 최연하가 현관으로 뛰어갔다.
‘멍청이.’
왜 이제야 알았을까. 저 방송이 나오자마자 움직였다면 지금 상황이
많이 달랐을 텐데.
‘안 늦었어. 아니, 안 늦었어야 해!’ 최연하가 신발을 발에 걸치듯 신 고 격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 엇!”
“뭐, 뭐야!”
최연하가 화들짝 놀라 문고리를 움켜잡았다.
현관 앞에 누군가 서 있다가 그 녀가 문을 열면서 문과 부딪쳤다.
“누, 누구세요!”
“아, 이런.”
중년의 사내.
웬지 낯이 익은 듯한 얼굴의 사
내가 어색한 얼굴로 최연하를 바라 보았다.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나 오실 줄은 몰라서.”
“누구냐고 물었어요.”
사내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 였다.
“저는 고한봉이라고 합니다.”
“고……한봉?”
최연하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어••••••
고한봉이라는 이름과 이 얼굴.
“설마…… 총리님?”
“안녕하십니까, 최연하 씨.”
최연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 의 그녀라면 문을 격하게 열어 나이 든 노인을 상하게 한 것을 사과했을 것이다. 아니면 총리에게 예의바른 인사를 건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 었다.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나 중에 다시 오셔야겠네요. 지금 바빠 서요.”
“마침 잘됐습니다. 저도 시간이 없거든요.”
“아뇨. 지금……
설명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최연
하가 고한봉의 옆을 지나 차로 향하 려 할 때였다.
“그런 식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그 주변은 접근이 차단되어 있으니 까요.”
최연하가 고개를 돌려 고한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리 빠른 항공기 를 잡아탄다고 해도 늦을 겁니다.”
“대체••••••
“강진호 씨에게 가시려는 거죠?”
최연하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어떻••••••
하지만 고한봉은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말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맡긴 한 사람의 정치가 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뭔지를 생 각했습니다.”
“원래는 그분의 생각에 따라주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 조금 전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때로는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누군 가를 위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
죠.”
고한봉이 여전히 확신이 없다는 둣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국민을 보호한다는 제 평생 의 신념에도 위배되는 일입니다. 위 험할 겁니다. 아니, 정말 위험합니 다. 만일의 사태가 터질 경우, 누군 가가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그 주변 을 날려 상황을 해결하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거리를 확보한다 고 해도 죽는다는 것도 모르고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고한봉이 고개를 들어 최연하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래도…… 그래도 가시겠습니까?” 그제야 고한봉이 무엇을 말하는지 를 완전하게 이해한 최연하가 피식 웃고 말았다.
“데려다 줄 수는 있어요?”
“있습니다.”
고한봉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 다.
“최연하 씨는 이미 총회의 게이트 를 이용하신 적이 있으시죠?”
최연하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과 이어져 있는 게이트가 있 습니다. 강진호 씨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요. 상시 게이
트라 지금 당장도 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연하 씨가 필요합니 다. 총회의 이사진이 모두 부재중인 지금, 그곳을 사용하겠다는 부탁을 할수있는 사람은……
“갈게요.”
최연하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뭔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무섭 죠! 당연히 무섭죠! 다리가 덜덜 떨 릴 정도예요!”
고한봉이 입을 닫고 최연하의 다
음 말을 기다렸다. 이 말은 결코 여 기서 끝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에 이러고 있는 게 백배는 더 무서워요. 까짓것 죽기밖 에 더하겠어요?”
“가요!”
고한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가시죠. 우선 차에 타십시오. 가 까운 학교 운동장에서 헬기를 타고 이동할 겁니다.”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간다, 이 망할 인간아!’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절대 죽지 마.
죽어도 내 앞에서 죽어야 돼.
최연하가 집 앞에 대기하고 있는 차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