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76)
마존현세강림기-2076화(2075/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11화)
3장 대화하다 (1)
콰아아아앙!
강진호의 턱이 비틀어진다.
강철보다 더 단단한, 강기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낼 마갑(魔辨) 으로 전신을 두르고 있는 그조차도 이 한 번의 타격에 의식이 순간 희 미해질 정도다.
콰아아앙
연이어 복부에 꽂히는 주먹에 내 장이 온통 뒤틀린다.
격렬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고통. 그렇기에 전해져 온다, 이 힘이.
혈광으로 물든 강진호의 두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콰앙!
혹왕의 얼굴을 후려친 강진호가 허공을 박차며 뒤로 튕겨 나가는 흑 왕에게 따라붙는다.
덥썩.
그의 발을 움켜잡아 당긴 강진호 가 흑왕의 머리를 양손으로 내려찍
는다.
콰아아아아아앙!
바닥에 처박힌 흑왕이 고무공처럼 위로 튀어 오른다.
“청마아아아아아!”
흑왕의 옆구리를 걷어차 날려 버 린 강진호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 진해 날아가는 흑왕을 따라잡았다.
우득!
흑왕의 얼굴을 움켜잡은 강진호가 바닥으로 짓누르고는 그대로 내달렸 다. 강진호와 흑왕이 내달리는 길을 따라 바닥이 마치 거대한 •용이 지나 간 자리처럼 움푹 파이고 좌우로 솟
아오른다.
쿠르르르르르릉!
그 맹렬한 마기에 바위가 녹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검은 마 기의 불꽃이 강처럼 불타올랐다.
쾅 쾅! 쾅! 쾅!
흑왕의 주먹이 연이어 강진호의 턱을 강타한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주먹을 있는 대로 얻어맞으며 더욱 강하게 흑왕을 짓눌렀다.
한 방, 한 방을 얻어맞을 때마다 머리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만 같은 충격.
혈광을 내뿜으며 그를 후려쳐 오
는 흑왕을 보며 강진호가 입가를 비 틀었다.
콰아아앙!
강진호의 주먹에 얻어맞은 흑왕의 머리가 바닥 아래로 꿰뚫고 들어간 다. 파묻혀 보이지도 않는 흑왕의 머리를 향해 강진호가 다시 일격을 날린다.
콰아아아아앙!
땅거죽을 통째로 뒤집어 버릴 만 한 강렬한 일격.
하지만 그 순간, 흑왕의 발이 여 지없이 강진호의 배에 틀어박힌다.
직선으로 튕겨 나간 강진호가 자
신이 만들어낸 마기의 강 위에 처박 혔다.
지체 없이 몸을 벌떡 일으킨 흑 왕이 순간 휘청이며 발을 옆으로 내 디딘다.
“큭..”
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 다. 살기 어린 그의 눈빛이 향하는 순간, 강진호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 켜 흑왕을 바라보더니 손으로 땅을 짚으며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척이며 일어난 강진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새삼스러운 질문인데……
흑왕이 눈을 가늘게 떴다.
“……대화는 충분히 했다시더니.”
“궁금한 게 생겨서 말이야.”
흑왕이 말없이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이.
“내 기억이 맞다면……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 다.
“너는 조금은 더 스마트한 놈이었 던 것 같은데?”
그가 아는 청마는 이런 식으로 싸우는 이가 아니었다.
강진호가 기억하는 청마는 절정의
쾌검을 다루던 검수. 그 얼음장 같 은 검은 강진호조차 때때로 감탄하 게 만들었다.
더없이 날카롭고, 더없이 섬세한.
말 그대로 검수의 표본이라 할 수 있던 존재.
하지만 지금 흑왕의 무학에서는 과거 그가 알던 청마의 흔적을 조금 도 찾아볼 수 없다.
그가 싸우는 방식은 오히려 강진 호와 닮아 있다.
“빤한 질문을 하시는군요.”
혹왕이 피식 웃었다.
“한 번 한 실패를 반복할 만큼 저
는 멍청하지 않습니다. 마공을 어떻 게 활용하는 게 좀 더 효율적인지 알았으면, 그 방식을 따르는 게 옳 다. 그저 그것뿐이죠.”
강진호가 낮게 웃었다.
“그 목숨으로 배운 교훈이라는 건 가?”
“뭐,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분명 도발이 섞인 말이지만, 흑왕 은 조금도 흥분하지 않은 듯했다.
“조금 의외이긴 하군.”
“••••••의외?”
강진호가 입가를 비틀었다.
“너는 조금 더 프라이드가 있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실망시켜 드려 죄송하군요.”
흑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뭐, 그건 교주의 오해에 서 비롯된 겁니다. 제 프라이드라는 건 방식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죠.”
싸늘한 흑왕의 웃음이 강진호를 꿰뚫었다.
“방식에 자존심을 내세울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내세울 자존심은 어 떤 방식을 사용하든 목표하는 바를 이룬다. 그저 그것뿐입니다.”
“흠.”
강진호가 알 듯 말 듯한 얼굴로
흑왕을 바라보았다.
“너무 억울해 마시길.”
흑왕이 느릿하게 강진호를 향해 다가온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 는 마기가 중첩되고 중첩되며 점점 더 검게 변해간다.
보는 것만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밀도 높은 어둠. 세상에 존재 할 수 없는 깊은 어둠이다.
“그 덕분에 내가 당신에게 보여 드릴 수 있잖습니까, 당신이 닿을 수 없는 마공의 경지를.”
“지껄여 대기는.”
“큭큭큭큭.”
흑왕의 얼굴에 환희 가득한 미소 가 피어난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그 역 시 지금 꽤 벅찬 상태다.
그래. 그의 삶은 온전히 그 목적 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 외에는 어 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내게도 아직 끓어오를 피가 남아 있었나?’
그의 피 같은 건 이미 차갑게 식 어버렸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 진호와 주먹을 주고받는 순간, 더는 끓지 않을 거라 생각한 그의 피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내 생각 이상으로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르겠군.’
흑왕이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 다.
그래.
그에게 있어서 저 사람은 단순한 ‘변수’일 수 없다.
“ 교주.”
“음?”
혹왕이 강진호를 가만히 바라보다 가 입을 열었다.
“내게 행복한 적이 있냐고 물었
죠.
“……그래.”
“거꾸로 하나 묻지요.”
강진호가 말없이 그를 응시하자, 흑왕이 가만히 그 입술을 비집어 열 었다.
“당신은 중원에서 즐거웠던 적이 있습니까?”
강진호가 입을 닫았다.
한참 동안 말없이 흑왕을 바라보 던 강진호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너 덜너덜해진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 비를 꺼내 물었다.
찰칵.
부서진 라이터 대신 손가락을 튕 겨 불을 붙인 강진호가 가만히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그런 적 없다.”
“……역시나.”
“그렇게 생각했지.”
이어진 뒷말에 흑왕이 의아하다는 듯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지독하게 이곳이 그리웠으니까.”
“웃기지 않나?”
“뭐가 말입니까?”
“좋은 기억 같은 건 없었어, 이
세상에.”
흑왕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 덕였다. 좋은 기억 같은 게 있을 리 가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당연하 지 않았지. 이곳이 그리 좋았다면 자살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테니까. 내게 있어서 이 세상은 끔찍하기만 했다.”
“귀환자라면 다 마찬가지겠죠.”
“그래, 그렇겠지.”
담배 연기를 흘려내며 강진호가 피식 웃어버렸다.
가족을 잃고 운신의 자유를 잃은 그는 이 세상의 밑바닥에서 허덕였
다. 누군가가 간간이 보내주는 동정 의 시선을 양분 삼아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도 차가웠다.
뭐가 그리 그리웠을까?
이 세상에서 그가 받은 것은 차 가움뿐이다. 그의 모든 것은 오히려 중원에서 왔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허무하고, 뭐 가 그렇게 허탈했을까?
“돌이켜 보면……
새하얀 담배연기가 하늘로 천천히 번져 나간다.
“……그래. 나름 즐거운 때도 있었
지.”
흑왕이 조금은 멍한 눈으로 강진 호를 바라보았다.
“후회한 적도 있다.”
“후회?”
“나란 놈은 항상 그렇지. 지나고 나서야 내가 뭘 해야 했는지를 뒤늦 게 깨닫는다.”
“그 세상에 있을 때는 이곳을 그 리워했고, 이곳에 익숙해질 때 즈음 엔 그때의 꿈을 꾸게 되더군.”
“……뭡니까, 그게?”
“머저리 같지.”
강진호가 낮게 웃어 댔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면서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는 잃어 버리기 전에는 소중한 걸 알지 못하 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번 삶에서 는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서 악을 써왔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과할 정도 로 모든 것을 끌어안았다.
모르니까.
잃고 후회할 것이 뭔지 알지 못 하는 멍청이니까.
“그때, 내가……
강진호가 혹왕을 바라보았다. 이 상하게도 그 시선에는 적의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때 내가 그 삶에 가치를 느꼈 다면, 어쩌면 너와 나의 관계도 지 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르지.”
흑왕이 피식 웃었다.
“아니요. 다를 건 아무것도 없었 을 겁니다. 결국 내게는 해야 할 일 이 있었고, 당신은 절대로 내가 할 일에 동조해 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강진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만약…….
그와 청마가 조금 더 자신을 터
놓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현대라는 시간에서 과거로 날아가 두 번째의 삶을 살아가는 이가 자신 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박유민을 만나지 않고, 최연하를 만나지 않고, 이현수를 만나지 않고, 다른 모두를 만나지 않게 되었을지 도 모른다. 그 세상의 강진호는 분 명 지금의 강진호와는 다를 것이다.
어쩌면 흑왕보다 더 과격하게 세 상에 이를 드러내고 무인의 세상을 만들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그럴 수 없다.
이제는 아니까.
‘사람은 홀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야.’
그의 안에 있다, 그가 이 세상에 서 만나온 사람들이.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관계 를 맺고 살아가며…… 배우고 익혔 으니까.
그는 박유민에게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배웠다. 이현수에게 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관철하는
법을 배웠고, 최연하에게서 먼저 다 가가는 법을 배웠다.
이 세 번째 삶을 살며 그가 아껴 온 모든 이들의 부분들이 지금 강진 호의 안에 녹아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흑왕이 그가 할 말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교주.”
“그래.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 지겠지.”
강진호가 하얀 웃음을 머금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뭘 말입니까?”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떠들어 댔 지만…… 사실 난 잘 모른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 네 말이 맞는지 아 닌지도.”
흑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 를 차댔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단 하나 뿐이야.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내가 중원에서 허무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이유는 하나지. 이미 지나 버린 과거를 추억으로 묻어두 고 살아가지 못했다는 것.”
“••••••교주.”
“너는 내 남은 마지막 과거다.”
강진호가 천천히 주먹을 말아 쥐 었다.
“나는 너를 이긴다, 청마. 세상 같은 건 잘 모른다. 아는 건 하나뿐 이지. 너를 넘지 못한다면 과거와 같아질 뿐이라는 것.”
흑왕이 말없이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그러니 여기서 끝내자. 기나긴 인연도 말이야.”
흑왕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제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어렸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과거에서 온 망령은 당신입니다, 교주. 나는 나름 백 년 동안 착실하게 준비해 왔단 말입니다. 막판에 당신이 나타나 다 뒤집어놓기 전까지는.”
“뭐, 어쩔 수 없지.”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그게 너와 내 관계니까.”
“빌어먹을 악연 같으니.”
두 사람이 헛헛하게 웃어 대다가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악의는 없다.
묘한 일이지만, 사실 둘에게는 서
로를 중오할 이유 같은 건 딱히 없 었다. 방해가 된다고 해서, 생각이 다르다 해서 중오할 이유는 없었으 니까.
그저 알 뿐이다.
그들은 결국 이리될 운명이었다는 것을, 서로를 넘지 않고서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건 그저 지독하게 꼬여 있는 운명. 풀어낼 수 없기에 끊어낼 수 밖에 없는 운명일 뿐이다.
“각오하십시오, 교주.”
흑왕의 눈이 낮게 가라앉는다.
“이제 나는 정말 당신을 죽일 겁 니다.”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할 수 있으면 해봐.”
마기를 휘감는 두 사람 위로 별 하나 없는 어두운 밤하늘이 보인다.
짙고 탁한, 그렇기에 어쩌면 더욱 아름다운 하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