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84)
마존현세강림기-2084화(2083/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19화)
4장 이해하다 (4)
쿠웅!
강진호의 입에서 붉은 피가 왈칵 쏟아져 나온다.
목으로 넘어오는 피를 억지로 삼 키며 강진호가 주먹을 내뻗는다.
‘얼마나 싸웠지?’
모르겠다.
조금 전의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기분이다. 그저 눈앞에 있는 이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니…….
왜 이겨야 하는 걸까?
쾅
강진호가 바닥에 처박힌다. 그의 몸이 마치 얼어붙은 바다 위를 가르 는 쇄빙선처럼 콘크리트의 바다를 깨부쉈다. 엉망으로 부서진 콘크리 트 위에 기다란 선이 생겨난다.
“쿨럭!”
다시 한번 입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온다.
아직 더 홀릴 피가 있다는 게 신 기할 정도다.
의식은 이미 반쯤은 사라졌다. 이 제는 이게 아픈 건지도 잘 모르겠 다. 고통이라는 감각에 너무 익숙해 져 버린 모양이다.
드러누운 강진호의 눈에 검은 하 늘이 보인다. 하늘이 끝도 없이 비 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 차가운 비 가 얼굴을 때려 대지 않았다면 의식 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 놓아버리고 싶다.
이대로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으
면 편해질 것이다. 더는 이 악몽 같 은 짓거리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얼마나 더 싸워야 할까?
정말 이 싸움이 끝이 나기는 하 는 걸까?
아니…….
이 싸움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정 말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걸까?
끝도 없는 싸움, 끝도 없는 전투. 무엇을 위해서 피를 홀리고, 무엇 을 위해서 주먹을 뻗어야 하는가.
‘그저 보고 싶었을 뿐인데.’ 먹구름에 가린 하늘을 보며 강진 호가 희게 웃었다.
한때, 그는 그저 저 검은 하늘이 보고 싶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머리 위에 존재하던 하늘. 당 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이 겪어야 할 고통을 그는 너무 도 잘 알고 있다.
우드득.
강진호의 손이 바닥을 움켜쥔다.
그러고는 떨리는 팔로 바닥을 밀 어낸다.
억지로 상체를 세워낸 강진호가 덜덜 떨리는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흑왕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강진호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 온다.
혹왕의 몰골도 그리 좋아 보이지 는 않았다. 아마 저 십이비도니 어 쩌니 하는 것들도 지금 꽤 볼 만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무인의 왕이라 불려야 마땅할 이 의 다리가 제 체중 하나 지탱하지 못해서 후들거리고 있는 모습은 우 스꽝스럽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니까.
‘왜 싸우기 시작했더라?’
글쎄, 모르겠다.
왜 굳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승부 같은 건 이미 아무래도 좋 다. 지고 싶지 않다는 것만으로 몸 을 움직이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어 버렸다.
강진호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순간, 참을 수 없는 유혹이 그를 덮쳐 왔다. 이대로 쓰러지면 편해질 수 있다. 더는 이 고통을 참아내지 않아도 되고, 뇌가 모래처럼 바스러 지는 것 같은 탈력감을 버텨내지 않 아도 된다.
하지만 강진호는 끝끝내 발을 뻗 어 휘청이는 제 몸을 다잡아냈다.
‘……알겠군.’
강진호가 떨리는 고개를 들어 혹 왕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가 뒤틀 리며 피에 젖은 이가 드러났다.
“……기다리고 있잖아.”
저기서 그가 오기를.
쾅
강진호가 바닥을 박차고 혹왕에게 날아든다.
세상이 느려진다.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공기의 흐름이 보이는 것만 같다. 세상을
흐르는 기의 흐름조차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하지만 그뿐.
그 모든 것은 강진호의 눈에 들 어오지 않는다. 지금 그에게 보이는 것은 그저 흑왕의 존재뿐이었다.
“나를 만난 건 교주에게 있어서는 행운입니다.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신을 만난 것도 내게 행운일지 모 르죠. 하지만 교주, 이건 똑똑히 기 억해 두십시오. 이 만남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입니다.”
‘큭큭.’
강진호의 입가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거 알고 있나, 청마?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어.’
콰앙!
강진호의 주먹이 혹왕의 주먹과 맞부딪쳤다.
우득! 우득!
뼈가 으스러져 나가는 소리가 들 린다. 아니, 뼈는 실제로 으스러졌 다. 그들 전신의 뼈는 이미 모조리 박살이 나고 으스러졌다. 하지만 그
들이 쌓아 올린 무학이 고스란히 머 물러 있는 육체는 고작 그런 부상으 로 멈추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으스러진 뼈는 순식간에 다시 달 라붙고, 갈라진 육체는 눈치챌 사이 도 없이 새살이 차오른다.
더 싸우라는 듯이.
아직 멀었다는 듯이.
언제나 그를 지탱해 주던 강건한 육체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강진호의 팔꿈치가 혹왕의 팔을 후려치고, 연이어 회전한 반대쪽 팔 꿈치가 청마의 관자놀이에 틀어박힌
다.
콰아아앙
사람의 머리에서 절대 나서는 안 될 폭음이 터지는 순간, 청마의 주먹 이 강진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우드드득!
갈비뼈가 모조리 박살 나며 내장 에 틀어박힌다. 입가로 울컥 솟구치 는 피를 삼켜낸 강진호가 바닥에 다 리를 처박는다.
쿠우우웅!
더 강한 타격을 날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금방이라
도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질 것 같은 몸뚱아리를 어떻게든 붙잡 기 위해서였다.
콰앙!
강진호의 주먹이 혹왕의 턱을 후 려 친다.
일격으로 수십 층짜리 건물을 모 조리 부숴 버리고도 남을 힘이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얼굴에 틀어 박힌다.
사람의 얼굴에서 날 수 없는, 괴 이한 소리와 함께 혹왕의 고개가 격 하게 꺾어졌다. 목이 통째로 뽑혀 나가지 않을 것인가 의심이 될 정도
로 과격하게.
우득! 우드드득!
흑왕이 몸을 되돌림과 동시에 강 진호의 복부에 주먹을 틀어박는다. 배가 통째로 꺾이는 듯한 충격과 함 께 강진호의 몸이 새우처럼 굽혀졌 다.
벌어진 입에서 피가 튀어오른다.
쾅! 콰앙! 쾅!
두 사람이 서로 주먹이 닿는 거 리에 서서 연이어 주먹을 날려 댄 다.
이건 이미 무학도, 뭣도 아니다.
그저 내뻗을 뿐.
피해낼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고개 를 돌려 충격을 완화시키는 기본적 인 동작도 이뤄지지 못한다.
무학이 효율적으로 상대를 쓰러뜨 리기 위한 기술이라 했던가. 하지만 이미 이 싸움에 효율은 존재하지 않 았다.
‘뭐가 남았지?’
머리가 하얗게 탈색되는 것만 같다.
‘뭐가 남았을까?’
적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호승심 같은 건 이미 티끝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겠다는 의
지?
우습지도 않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소 진해 버린 껍데기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쓰러지지 못하는가.
쾅
젖혀진 강진호의 고개가 어떻게든 제자리를 되찾는다.
그러고 나서 강진호는 보았다. 더 는 마기의 갑옷을 두를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아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흑왕의 모습을 말이다. 혈기조차 남
아 있지 않은 그 눈은 그에게 너무 도 익숙하고, 또 낯설었다.
‘ 청마.’
그가 저 눈을 얼마나 오랜 기간 봐 왔을까.
우스운 이야기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의 가족도, 지금 그가 함께하는 총회의 사람들 도, 최연하도, 친구들도…… 그 누구 도 그와 청마의 관계에 미치지 못한 다.
그래, 악우(惡友)였지.
그 어느 것 하나 강진호에게 의 미가 되지 못하던 시절에 그를 지탱
해 준 것은 어쩌면 저 눈이었을지도 모른다.
혼들림 없이 그를 바라보는, 자신 만만한 눈.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흐를 것이라고 믿는 저 눈.
표류하는 배에는 이정표가 필요한 법.
중원이라는 드넓은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서 표류하던 강진호에게는 저 눈이 이정표였다.
그 눈이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그의 앞에 있다.
콰앙!
강진호가 날린 주먹이 흑왕의 목 에 틀어박힌다. 혹왕이 무언가 끊어 진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허물어진 다.
턱.
혹왕의 손이 바닥을 짚는다.
‘쓰러져……
더는 일어나지 마라.
제발 더는…… 더는 일어나지 마 라.
하지만 혹왕은 끝끝내 다시 일어 난다. 풀려 버린 동공이 다시 제 빛 을 되찾는 모습을 본 강진호가 전투 중임에도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한계에 몰린 것은 그나 혹왕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놓아버리기만 하면 편해질 수 있다. 어쩌면 그들 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의 관용일지 도 모른다.
서로의 길이 잘못되었다는 건 알 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이 온전히 잘 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저 상대가 너무 뒤틀린 길 로 걸어가지 않도록 또 다른 이정표 가 되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그들은 이토록 힘겹게
싸우고 있는가.
“고……슴……
흑왕의 입술이 비틀린다.
“……도……치……
강진호가 말없이 혹왕을 바라보았 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
그래, 우리는 고슴도치다.
먼저 다가갈 수 없는, 먼저 인정 할 수 없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세상에 혼자 떨어졌기에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
는, 하지만 누구보다 온기를 그리워 해 완전히 혼자일 수는 없는.
그렇기에 그저 서로의 가시가 닿 지 않는 거리에서 미약하게 느껴지 는 한 줌의 온기를 서글프게 갈구해 야 하는.
과거에도 그들은 그저 그런 관계 였다.
수십 년의 세월.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럼에도 그도, 청마도 그 안에 가장 깊이 숨겨놓은 비밀을 서로에 게 털어놓지 못했다.
그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저 가시가 나를 찌를 것을 겁내 지 않고 조금 더 다가갔다면, 그 안 에 숨기고 숨긴 모든 것을 내놓고 서로가 서로를 친구라 인정했다 면….
정말 뭔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니. 그럴 수 없었겠지.
지금도 마찬가지이니까.
강진호도, 청마도 조금도 달라지 지 않았다. 지금도 그들은 그저 고 슴도치일 뿐이다.
대화를 거부하고, 서로가 틀렸다 논하고, 자신이 옳다 믿고, 안에 숨
겨놓은 것은 하나도 꺼내지 못한다.
우습지도 않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두 사람이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서툰 두 사람 이라는 게.
후회하냐고?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청마.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강진호가 울부짖으며 주먹을 날렸 다.
콰앙!
그의 주먹이 흑왕의 턱에 틀어박 히며 모든 것이 생생하게 보인다.
뒤틀리는 흑왕의 얼굴과 허공에 흩뿌려지는 땀방울, 그리고 순간적 으로 휘청이는 그의 무릎까지.
콰앙!
그리고 그 순간, 혹왕의 주먹이 강진호의 광대를 부수어놓는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강진호는 보았다.
아주 먼 예전, 그 시간 속에…….
그를 향해 웃고 있던 청마의 모 습을 말이다.
‘늦었을까?’
글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강진호가 바닥에 박힌 발을 뽑아 낸다. 그러고는 앞으로 한 발을 더 내디뎠다.
쿵!
바닥에 단단히 발을 꽂아 넣은 강진호가 혹왕을 향해 한 발 더 성 큼 다가섰다.
그리고 그 순간, 혹왕도 마치 강 진호의 말에 동조하는 것처럼 앞으 로 다가온다.
머리가 서로 맞닿을 만한 거리, 상대가 뿜어내는 거친 숨이 생생하
게 느껴지는 그 거리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본다.
순간.
아이처럼 마주 웃어버린 두 사람 이 마치 약속한 것처럼 서로를 향해 동시에 주먹을 날렸다.
마치 서로를 끌어안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