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86)
마존현세강림기-2086화(2085/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21화)
5장 움켜잡다 (1)
쿵!
얼굴에 무언가 와닿는 느낌이 짙 은 이질감과 함께 다가왔다.
아래로, 또 아래로.
몸이 한없는 아래로 추락하는 기 분이다.
‘아아……
느껴본 적이 있다, 이 감각.
그래, 벌써 몇 번이나.
이지가 존재하는 이라면 결코 알 수 없어야 하는 감각. 하지만 저주 인지 축복인지 강진호는 벌써 이 감 각을 두 번이나 느껴봤다.
육체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감각.
그래, 죽음의 감각이다.
언제나 죽음은 이렇게 찾아온다. 두려움과 편안함, 그 양 극단의 감 각이 공존하는…… 그렇기에 이질적 이고, 그렇기에 또 한없이 평온하게.
감아버리고 싶다.
눈을 감은 채 지금의 감각에 모
든 것을 맡겨 버리고 싶다. 그러면 편안해질 테니까.
반복될까?
이제껏 그런 것처럼 이렇게 죽음 을 맞이하고 나면 그에게 또 한 번 의 삶이 반복될까?
알 수 없지.
그래, 알 수 없다.
그건 강진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언제나 그런 것처럼 강진호는 그저 운명에 휩쓸릴 뿐이 다. 주어진 것을 그저 받아들일 뿐 이다.
그러니…….
죽음 정도는 그냥 받아들여도 되 지 않을까? 자신은 정말 최선을 다 했으니까.
첫 번째 삶과는 달랐다. 또 두 번 째 삶과도 달랐다. 이번 삶은 그의 의지대로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 을 다했다. 그러니 후회 없이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전신에 밀려오는 지옥 같은 고통과, 영혼을 갈가리 찢어내는 듯 한 아픔에 저항할 필요가 없지 않을 까?
놓아버리면 편해질 텐데.
강진호의 의식이 깊고 깊은 곳으
로 침전해 갔다.
차갑게 식은 육체가 점점 따뜻해 지는 기분이다. 어쩌면 그가 간절히 찾아 헤대던 작은 온기는 저 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평온이라는 이름의 온기가 말이다. 저 깊은 곳에…….
우드득.
순간, 강진호의 손이 바닥을 움켜 쥔다.
저기에 있나?
그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정말 저 깊은 곳에 있나?
‘그럴 리가 없지.’
그건 그저 도피일 뿐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제 손으로 움켜잡아야 한다. 피해 달아나고, 힘 겨워 외면한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는 걸 이미 수도 없이 느끼지 않았 던가.
또 한 번의 삶?
개 같은 소리.
‘아직……
강진호가 멀어져 가는 의식을 필 사적으로 다잡았다.
‘아직 아니야……
아직 그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붓 지 못했다. 죽음을 맞이하며 ‘생각’
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을까?
이 짙디짙은 고통을 버텨내며 다시 몸을 일으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때, 강진호의 귓가에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청력마저 거의 상실해 정적에 가 까운 세계. 그렇기에 그 작고 미약 한 소리는 너무도 선명하게 강진호 의 의식으로 파고들었다.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말? 소리?
모르겠다.
제멋대로 뒤섞인 감각은 그를 향 해 쏟아지는 자극의 정체를 제대로 판별해 내지 못했다.
그저 느껴지는 것은…….
‘아■•아’.’
다르다.
저 깊디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평 온함과는 다르다. 그를 잡아끌고 있 는 것은 안식의 평온이 아니라…… 피부에 와닿는 따뜻함이다.
우득.
바닥을 움켜쥔 강진호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힘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몸짓.
“진호야!”
“오빠아아아아아아!”
그제야 누군가가 외치고 있는 소 리가 강진호의 귓가를 파고들기 시 작했다.
퉁퉁 부어버린 그의 입가가 옅은 곡선을 그려낸다.
저 외침이 그를 잡아준 것은 아 니다. 그를 일으킨 것은 분명 아직 다 살라 버리지 못한 그의 의지였다.
하지만…….
‘이유로는 충분하지.’
길을 걷는 여행자도, 차디찬 눈보 라를 헤치며 살아가는 짐승도. 찾아 헤해는 것은 그저 몸을 녹일 작은 온기일 뿐.
그리고 그건 현대라는, 삭막하기 짝이 없는 세상을 걷고 또 걷는 이 들에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호 씨!”
귓가에 들려오는 최연하의 목소리.
‘그래.’
강진호는 찾아냈다.
삼생이 걸려서야 그의 몸을 녹일
수 있는 작은 온기를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 있다.
여전히 차디찬 세상에 홀로 서 있는 자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길을 걷 고,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말로 걸 어가고 있는, 그저 고독하고 고독한 이다.
‘너는••••••
“쿨럭.”
피 섞인 기침을 토해낸 강진호가 반개한 눈으로 흑왕을 바라보았다.
‘너는 무엇을 찾고 있지?’ 고고하고, 그저 고고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지만 강진호는 알고 있다. 다른 이의 눈에 보이는 그 고고함이 스스 로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한 번도 온기를 느껴보지 못한 이는 그 온기마저 두려워하기 마련. 다가오는 이를 밀어내고, 몸을 녹일 곳을 피해 버린 이에게 남은 것은 그저 차가움. 시릴 둣한 차가움뿐이 다.
어찌해야 할까?
스스로 온기를 찾아내는 법을 잊
어버린 이를, 강진호는 어찌해야 하 는가.
채 몸을 다 펴내지도 못하는 강 진호를 보며 혹왕이 천천히 입을 열 었다.
무표정을 가장한 얼굴이지만, 그 역시 이미 한계에 달해 있는 듯 열 리는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왜 일어났지?”
강진호가 반개한 눈으로 흑왕을 마주 보았다.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면…… 목 숨만은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
나. 그런데…… 왜 일어났나, 병신같 이.”
힐난의 말.
비웃음의 말.
하지만 강진호에게 그 말은 그리 차갑게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원망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굳이 일어나서 마지막까지 가게 만드냐고, 어째서 그의 손으로 강진 호를 죽이게 만드냐고 말이다.
홀로 서 있는 게 익숙한 이다.
혹왕은.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홀로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
다.
“저 목소리들이 네게 힘이 되든
가?”
“삼류 소설도 아니고 말이야……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아니다, 청마. 그런 게.”
혹왕이 말없이 강진호를 바라본다.
“나를 지탱하는 건 과거다.”
혹왕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지금 나를 이곳에 설 수 있게 만 들어 준것은…… 지난 삶이겠지. 너
와 함께 걸은. 그래…… 그때의 삶 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
“너……
“하지만 지금 나를 일으킨 건…… 그게 아니야.”
배웠으니까.
당부받았으니까.
차디찬 곳에서 홀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하는 이에게 어찌해야 하 는지를 강진호는 배웠으니까.
“나를 지탱하는 건 내 과거이지 만, 나를…. 나를 이끄는 건 이 삶 에서 내가 배운 한마디다.”
혹왕이 살짝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진호가 건네는 담담한 말의 무 게가 그를 짓누르기라도 하는 듯이.
“ 나는••••••
강진호가 눈을 완전히 뜨고 혹왕 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게 손을 내미는 것을 멈추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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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왕의 얼굴이 의혹으로 물들었다. 강진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둣이.
“맞잡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 없다. 나는 마지막까지 네게 손을 내밀 거다.”
“대체 무슨 소리를……
“그게 내가 배운 거니까.”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원장 수녀님.’
때때로 가장 소중한 것은 낮은 곳에 머무른다.
세상을 호령하던 적천마존.
지금의 시대를 뒤흔들고 있는 총 회의 회주.
그런 강진호의 삶을 이끌고 있는 것은 그 작은 병실에서 흘러나온, 힘 없는 목소리였다.
“삶이란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지 만, 홀러 들어오기도 하지. 그래, 흘 러 들어온단다. 나를 찾아온 아이들 처럼, 나를 만나러 온 아이들처럼. 내가 손을 내민 게 아니라 그 아이 들이 나에게 손을 내민 거란다. 나 는 그저 거부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니 진호도 너무 서둘러서 손을 뻗으려 하지 않아도 돼. 그저 살아 가다 보면 다들 손을 뻗어올 거야.”
“혹시라도 조금의 여유가 생기거 든…… 먼저 손을 뻗지 못하는 사람 들에게 네가 먼저 손올 뻗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겠니?”
짧은 대화. 강진호의 삶을 바꾸어 놓은 그 대화는 어쩌면…… 이 순간 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원장 수녀님은 항상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사람이란 건 말이다, 때로는 다 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운 법이란다.”
“외롭지. 사람은 외로워.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단다.
반대로 말하면, 어떤 사람도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 주지는 않아. 그래 서 나는 손을 잡는단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함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따뜻하니?”
그때, 강진호는 그 손이 차갑다고 여겼다.
병자의 손. 싸늘하게 식어버린 손.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손은 그 어떤 사람의 손보다 따뜻했다는 것을.
“나는 진호가 다른 사람의 약함마 저도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구나.”
그 당부를.
강진호는 지켜냈던가.
강진호가 눈을 뜨고 혹왕을 바라 보았다.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웠
지.”
“함께 있으면서도 누군가 나를 이 해해 줄 리 없다고 지레 짐작하고 그저 고개를 돌려 버렸지. 그저 누 구라도 먼저 한 번만 손을 내밀었다 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 야.”
“ 교주••••••
“그러니까……
강진호가 환하게 웃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로.
“손은 내가 내밀지, 청마. 설사 네가 그 손을 잡지 않는다고 해도,
몸이 부서지고 찢겨 나가는 한이 있 더라도 손을 내밀 거야.”
“내가 있다.”
혹왕의 어깨가 떨려온다.
“여기에 내가 있다, 네 바로 앞에.”
“나를 봐.”
강진호와 흑왕의 눈’。] 허공에서 마주쳤다.
수도 없이 마주 보아온 시선.
수도 없이 읽어온 눈빛.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둘은 서로를 온전히 바라 보았다.
“이루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했 나?”
“ 나는••••••
“천만에.”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 있다, 청마. 혹왕이 아니라 청마를 보고 있는 이가. 네 목표와 이상이 아니라 너라는 인간을 바라 보고 있는 이가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는 바 로 이곳에서, 오직 세상에 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 교주••••••
흑왕.
아니, 청마가 헛웃음을 지었다.
“……낯간지러운 소리를 잘도 하 시게 되셨군요.”
고개를 내저어버린 청마가 주먹을 움켜쥔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도 더는 적의 가 어려 있지 않았다. 청마의 눈빛 은 과거 강진호와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던 시절로 되돌아가 있었다.
청마가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 보았다.
비를 쏟아내는 하늘은 그저 검고 또 검다. 마치 그가 걸어온 길처럼.
‘차갑군.’
몸에 닿는 비가 그저 차기만 하 다.
새삼스럽다.
세상은 그에게 언제나 차가웠다. 그에게 있어서 살아감이란 혹한의 대지를 홀로 걷는 것과 다르지 않았 다. 발을 멈추면, 그 자리에 안주하 면 쓰러져 얼어붙어 버리는 가혹한 대지를 끊임없이 걸어왔다.
그런데 왜…… 새삼 이 비가 차 게 느껴지는 걸까?
청마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향한 다.
알 듯 말 듯하다는 얼굴을 한 채.
“이제••••••
청마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홀 러나온다.
더는 차가워지지 못하는 목소리가.
“이제 끝냅시다, 교주. 아니……
청마가 하얀 미소를 지었다.
과거의 그처럼.
“강진호.”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한 발 더 다가갔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
그 거리를 좁히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