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87)
마존현세강림기-2087화(2086/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22화)
5장 움켜잡다 (2)
퍼억!
청마의 주먹이 강진호의 배에 틀 어박혔다.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강진호가 쓰러질 듯 비틀대다가 청마의 턱을 쳐 올렸다.
쿵!
청마의 몸이 뒤로 넘어갈 듯 젖 혀졌다.
입에서 흩뿌려지는 피가 떨어지는 비와 섞여든다.
하지만 청마 역시 끝끝내 휘청이 는 몸을 다잡고 강진호를 노려보았 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내 뻗었다.
이현수의 눈이 갈 곳을 모르고 떨려온다.
“저거……
이제 저건 무학도, 뭣도 아니다.
하늘을 꿰뚫을 듯 솟구치던 마기 도, 세상을 검게 물들일 듯 바닥을 타고 흐르던 마기도 이제 더는 보이 지 않는다. 검은 마기의 편린조차 만들어내지 못할 정도로 지쳐 버린 두 사람이 마치 드잡이를 하듯 주먹 을 날려 대고 있었다.
초라하기까지 한 종막.
세상의 운명을 건 승부의 종착이 라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그의 주위 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바토르도, 장민도, 방진훈도.
누구 하나 저 광경에서 눈을 떼 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피 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움켜 잡은 채 마치 빨려 들어갈 듯 저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느려 터진 주먹.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발.
무학의 극한에 오른 이들이 지켜 보기에는 너무도 수준 낮은 싸움질 에 불과하지만, 저 광경을 그리 폄 하할 수 있는 이들은 이곳에 존재하 지 않았다.
알고 있으니까.
저 둘이 어떻게 저곳까지 도달했 는지를 이들은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그리고 그건 십이비도들 역시 마 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건너편을 바라본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어느새 십이비도와 그들 사이의 거리가 꽤나 좁혀져 있다. 순간, 뒤 를 돌아본 이현수는 자신들이 원래 있던 곳에서 한참이나 앞으로 다가 왔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다가간 것이다.
저 승부의 마지막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서.
퍼억!
주먹이 사람을 후려치는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생생히 들려온다.
이현수의 눈에 강진호가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는 광경이 보였 다.
“회, 회주……
하지만 그도 잠시.
바닥에 처박힌 강진호가 다시 몸 을 일으킨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저 사람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저렇게.
이현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때 그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결 코 범접할 수 없는, 완전한 신앙과 도 같았다. 그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상처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주저 하지 않는, 완벽한 인간이었으니까.
적을 쓰러뜨려 쟁취하는 것만을 생각해 온 이현수에게 있어서 그보 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현수는 강진호를 적으로 맞이하는 순간, 그에게 대항하는 것 을 포기했다. 그리고 강진호가 이현 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그가 옆에서 지켜봐 온 강진호는 정말 그런 인간이었던가?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결코 아니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 같은 건 없 다.
혼들리지 않는 사람 같은 것도 없다.
강하든 약하든 모든 사람은 저 나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강진호는 그저 서투른 인간이었을 뿐이다. 고통을 받아도 비명을 지를
줄 모르고, 흔들려도 누군가에게 소 리 내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홀로 감당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 하게 여기다 보니, 그저 그게 익숙 해져 버린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 지금 저 곳에 서 있다.
‘ 회주님……
강진호가 다시 일어난다.
저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 인 인간 같은 게 아니다. 스스로 삶 을 포기하던 나약한 사람……. 그럼 사람이 스스로 걸어온 길 위에서 마 침내 다시 일어나는 법을 익힌 것뿐
이다.
‘그러니…… 어떻게 존중하지 않 을 수가 있나.’
이현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과거, 그가 믿던 완벽한 강진호는 없다. 그건 허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설사 그런 인간이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 라도 이현수는 지금의 강진호가 훨 씬 더 위대하다고 소리 높여 외칠 수 있으니까.
쓰러지지 않는 인간 같은 건 위 대하고 말고를 논할 가치도 없다.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인간이다.
그래. 그게 바로 인간이니까.
이현수의 눈에 보였다. 강진호가 혹왕의 어깨를 틀어쥐는 모습이 말 이다.
어깨를 잡힌 혹왕이 강진호의 얼 굴을 있는 대로 후려친다.
마치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진호를 밀어내려는 것처럼.
하지만 그 쏟아지는 주먹질에 얻 어맞아 휘청이면서도 강진호는 물러 서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상대를 제압하고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일지 모
르지만, 이현수의 눈에는 그 행위가 그저 필사적으로 멀어지는 상대를 움켜잡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처럼.
이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닮아 있다.
저 둘을 얼마 지켜보지 않은 이 현수도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두 사람은 서로 닮아 있었다.
혹왕 역시 마찬가지다.
‘저 사람도 그저 서툰 인간일 뿐 이야.’
모든 사람이 상처받고, 흔들리고, 또 주저한다면…….
흑왕은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을 고독 속에서 살아온 걸까?
이현수는 기억한다. 강진호를 마 주한 순간에 혹왕이 지은 표정을 말 이다. 서로 적이 될 것이 분명한 상 황에서도 혹왕이 내보인 감정은 분 명 반가움과 즐거움이었다.
그때, 이현수는 혹왕이 그저 강진 호를 농락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와는 다르다. 나는 과거와 완 전히 달라져, 이제 당신을 능가했다. 그러니 당신 앞에서도 얼마든지 여 유를 보일 수 있다.
그런 농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야.’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참을 수가 없던 거다.
그 길고 긴 고독의 시간을 넘어 마침내 자신을 이해해 줄 이를 만났 다는 게, 세상을 통틀어 유일하게 자신과 대등할 수 있는 이를 마주한 다는 게.
혹왕은 그저 즐겁고 반가웠던 것 일지도 모른다.
서로 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주체할 수 없고, 감출 수 없을 만큼.
그래…….
거꾸로 말하자면, 혹왕이 느낀 고 독의 시간이 그만큼이나 길었다는 거겠지. 너무도 선명해 태양처럼 솟 아 있는 자신의 목적마저도 잠시나 마 일그러뜨릴 정도로.
“그런데도……
얼마나 서툰 인간들인 걸까?
서로를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리 워했음에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서로 속에 쌓인 것을 풀어 내기 위해서는 서로를 공격하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저 둘은 서로에게 서로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
스스로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기로 한 강진호.
그리고 과거 강진호가 관철하던 삶의 방식을 옳다 여기고 재현한 흑 왕
‘아니야.’
이현수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런 게 아니다. 누가 옳고 그르 고의 싸움이 아니다. 이미 저 승부 는 그런 단계에서 벗어났다.
“ 회주님……
그저 바랄 수밖에 없다.
이 길고 긴 승부.
어쩌면 이 순간이 아니라 과거부 터 이어져 온, 이 기나긴 승부의 끝 이…….
저들이 원한 방식으로 맺어지기를.
알고 있다.
누구 하나 상처받지 않고 끝나는 마무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승부 는 그런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현수는 그저 바랄 수밖에 없었다.
쾅
체중도 채 싣지 못하고 날린 주 먹이 청마의 얼굴을 후려친다.
청마가 뒤로 쓰러지는 순간, 주먹 을 날린 강진호도 청마와 함께 앞으 로 엎어졌다.
콰당!
고인 빗물 위로 엎어진 두 사람 이 바닥을 움켜잡는다.
강진호가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 굴을 바라본다.
엉망이다.
이런 얼굴을 한 자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속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망 가져 있었다.
힘겹다.
전투를 치르면서 힘겹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던가.
‘이제 그런 건 의미가 없지.’
이건 전투가 아니니까.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입안이 갈 라진다. 하지만 갈라진 곳에서 피조 차 배어나오지 않았다. 전신의 모든 수분이 말라 버린 것만 같다.
그럼에도 강진호는 바닥을 디뎠다. 뼈가 사라진 듯이 휘청이는 몸을
억지로 부여잡고 몸을 바닥에서 밀 어낸다.
콰당.
발이 미끄러져 반대쪽으로 엎어진
강진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토록 노력해 왔다.
강함이란…….
그가 원하던 강함이란 대체 무엇 이었을까?
강해지고 싶었다.
세상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 을 만큼.
하지만 지금 그는 제 몸뚱이 하 나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철갑처럼
두른 가식과 껍데기들을 벗겨내고 나면, 남는 것은 고작 이것뿐이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강진호처럼 바닥에서 몸 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청마가 있 었다.
‘너도 마찬가지야. 그렇지?’
그토록 거창했음에도…….
마지막 순간 남은 것은 아이처럼 바닥을 기는 두 사람뿐이다.
청마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과 강진호의 눈이 마주쳤 다.
더없이 드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
려다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곳은 그 어디보다 낮은 곳, 세상의 밑바닥이었다.
“쿡, 쿡쿡쿡.”
“크흐••••••
청마와 강진호가 동시에 웃고 말 았다.
왜 웃음이 터졌는지는 서로 이해 하지 못했다. 그저 이 몰골로 서로 를 마주 본 순간, 주체할 수 없이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배가 들썩이며 칼로 난자하는 듯 한 고통이 밀려오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모르겠어, 교주.”
그 순간, 청마가 입을 열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 그래, 이게 옳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어.”
담담한 소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 진심 이 지금 청마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어디 로 가야 하지?”
청마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가 쏟아지는 검은 하늘을.
“멈추기에는 너무 늦었어. 멈추고
나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나 는…… 이제 너무 멀리 왔어, 교주.” 청마의 손에 제 얼굴을 덮었다.
쏟아지는 비를 막아내려는 것처 럼, 제 얼굴이 짓고 있는 표정을 감 추려는 것처럼.
“알아……. 이래 봐야 내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하지만…… 알잖아, 교주. 애초부 터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어.”
강진호가 웃어버렸다.
청마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 라보았다. 왜 웃냐는 듯이.
“그런 놈치고는 꽤 많은 놈들
이…… 지켜봐 주고 있군.”
청마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간절하기 짝이 없는 얼굴 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십이비도들 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금방이라 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그들이.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청마가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 대단한 놈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데,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다고?”
강진호가 쿡쿡대며 말한다.
“마찬가지야, 청마. 마찬가지.”
“누구나 마찬가지야……. 나도, 너 도. 사람은 누구나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지. 살아간다는 건 그 빈 곳 을 채워 나가는 거야.”
“정말 네게 아무것도 없나?” 청마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