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88)
마존현세강림기-2088화(2087/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23화)
5장 움켜잡다 (3)
“아첸 (亞켮t)!”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들 린다.
그를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하지만…… 청마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것은 결코 천
형이나 저주 같은 게 아니었다는 것 을
“아첸, 내 말 똑똑히 듣거라. 절 대 복수는 꿈도 꾸지 말아라!”
“배운 것을 모두 잊고, 성도 이름 도 모두 버리고 그저 양인으로 살아 가라! 이제 이 세상에는 더는 무인 들이 설 자리가 없다.”
“기억해라,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를. 너는 나와 같은 끝을 겪지 마 라. 그 손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가 라. 그게…… 그게 옳은 길이다. 명 심해라!”
아버지가 말한 것은 강진호가 말 한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는 청마, 양첸이 이 저주받은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 그가 그린 것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청마의 모습이었을지도 모 른다.
그 모든 것을 거부한 것은 바로 청마다.
그 누구도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 길을 가라 명하지 않았다.
그저 청마가 선택했을 뿐.
“쿡쿡쿡.”
청마의 웃음에 자조가 배어난다.
‘정말 아무것도 없냐고?’
그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있지.”
청마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있고말고…… 교주.”
강진호에게 있어서 중원의 삶은 고 통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 마에게 있어서 과거의 중원은 기회 의 땅이었다.
모든 것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때. 무인과 평범한 인간들이 서로의
영역에 선을 긋고 서로를 겨누기 시 작하지 않은 때.
그때라면 훗날 닥칠 비극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 시절은 아직 청마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적어도 그때의 청마에게는 되돌릴 가능성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니까. 노 력해야 할 이유라는 것이 있었으니 까. 설사 그 결과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그 시절은 아직 내게 분명히 남 아 있지.”
전신을 속박하고 있던 사슬을 풀 어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빛 한 점 들지 않는 감옥 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길을 함께 걸어줄 이도 있었 으니까.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끝났다.
그가 되찾아야 했던 모든 것은 이미 저 지나간 시간 속에 함몰되었 다.
아니. 설령 그 모든 것이 아직 끝
나지 않았다고 해도, 청마는 굳이 과거를 부여잡으려 들지 않았다.
강진호가 몸을 일으킨다.
힘겹게 몸을 세운 두 사람이 서 로를 마주 보았다.
“ 교주.”
청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옅은 미소를, 어쩌면 이 승부가 시작된 이후로 처음으로 진심이 담 긴 미소를 지은 채로.
“당신 말대로…… 내게도 뭔가가 있을지 모르지.”
청마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설령 아직은 없다 해도……
이제부터 채워 나갈 수 있을지도 모 르지.”
강진호가 말없이 그런 청마를 바 라보았다.
알 것 같아서.
그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 아서 말이다.
“하지만 말이야, 교주.”
청마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아.” 강진호가 주먹을 움켜잡았다.
“놓아버리면…… 그래, 어쩌면 나 는 행복해질지도 모르지.”
“청마……
청마가 아이처럼 웃었다.
“당신 말대로야. 비어 있으니까. 채워 나가는 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지. 마음 맞는 사람들과 실없는 이야기도 나누고, 소파에 늘어져 관 심도 없는 TV를 멍하니 보고.”
“……게임도 나쁘지 않지.”
“뭐, 그것도 좋겠지. 게임이라면 내가 당신보다는 나을 테니까. 당신 기계치잖아.”
쿡쿡대며 웃은 청마가 고개를 내
저었다.
“그래…… 아버지의 말대로 땅을
일구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음 맞는 사 람을 만나고 자식이라도 낳아 기른 다면, 지금 내가 알지 못하는 것도 알 수 있을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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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먼 훗날에는 지금 의 내가 어리석었다고 웃을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저 조금만 물러서면 이런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방 법을 몰라서 그렇게까지 해버렸다고 말이야.”
청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그 엉망이 된 얼굴에 평온함이 머무른다. 그에게는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던…… 깊은 평온함이.
“어렵지 않은 일이야, 교주. 정 말…… 어려우면서도 어렵지 않은 일이지. 고작 한 걸음만 물러나면 되는 일이니까.”
청마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 다.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은 악의 화 산은…… 그렇게 더없이 쓸쓸한 듯 내리는 비를 맞을 뿐이었다.
“하지만 교주……
담담한 얼굴.
그렇기에 강진호는 그 얼굴이 서 글펐다.
“나는 그럴 수 없어.”
“나는 내 행복을 찾아 도망칠 수 있겠지.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내가 태어날 거야.”
강진호가 눈을 감아버렸다.
“보여?”
청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 다. 마치 강진호에게 감은 눈을 뜨 고 현실을 보라 소리치는 듯한 목소 리가.
“이게 우릴 둘러싼 세상이야.”
서 있다.
이 드넓은 대지에, 그들 두 사람 이.
그리고 그들의 주위를 무인들이 둘러싸고, 그 무인들을 차가운 포신 과 총구들이 겨누고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선 무인들, 그리 고 그 무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 의 칼날들.
알고 있다.
강진호 역시 알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설 땅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저 총이 불을 뿜지 않는 이유는
하나뿐이야. 내가 있으니까. 그리고
당신이 있으니까.”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곳 은 이미 피로 가득했겠지. 그게 지 금의 세상이야, 교주. 저들은…… 더 는 우리를 용납해 주지 않을 거야.” 강진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있다고…… 뭐가 달라지 지?”
“알아, 세상이라는 게 그리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당신 이 말하는 것처럼 저들과 손을 잡고 천천히 바꿔 나가는 것이 옳은 길이
라는 걸 말이야. 하지만 교주……
청마가 빙긋 웃었다.
“그건 내 역할이 아니야. 내가 해 야 할 일은 하나, 저들에게 알려주 는 거야.”
••••••
“굴하지 않고……
강하지 않은 어조.
그저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한 작 은 목소리. 그렇기에 그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진호를 파고들 었다.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싸우는 이가 있다는 걸. 우리에게 겨눠진
총구를 두려워하지 않고, 저들의 목 에 이를 박아 넣을 짐승이 한 마리 정도는 있다는 걸 말이야.”
“청마……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야, 교주. 나는 저들에게 두려움의 상징 이 될 거야. 저들이 우리를 적대하 는 순간, 언제든 세상에 다시 내가 태어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줘야 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야. 그 렇지?”
청마가 타이르듯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멈춰 버리 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일을 해야 하겠지.”
“그럼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억지 부리지 마, 교주.”
청마가 고개를 내저었다. 곤란하다는 둣이.
“알잖아. 내가 아닌 누군가 이걸 해야 한다면…… 나보다 더 고통스 러워야 할 거야.”
“그러니까……
청마가 빙긋 웃었다.
“알아, 당신이 옳다는 것. 하지
만…… 교주. 세상에 길이란 건 하 나만 있는 건 아니야. 당신이 옳다 고 해서 내가 틀린 건 아니지.”
강진호가 말없이 청마를 바라보았 다.
“그렇지 않아?”
그 말을 끝으로 청마는 말을 멈 췄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이. 그렇기에 강진호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 나버릴 것만 같아서.
그 무엇도 되돌릴 수 없게 될 것 만 같아서.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순간이 있다.
원치 않아도, 바라지 않아도, 해 야만 하는……. 할 수밖에 없는 순 간이.
“그래, 청마.”
강진호가 청마와 마주 웃었다.
과거, 그들이 술잔을 두고 마주 앉았을 때처럼.
“너도. 그래, 너도……
입술을 떼어내는 듯한 옅은 통증 과 함께 강진호의 말이 흘러나왔다.
“너도 틀리지 않았구나.”
그 말을 들은 청마가 빙긋 웃었 다.
어쩐지 알 것 같다.
‘난 어쩌면 이 말을 듣기 위해 지 금까지 기다렸던 건지도 모르겠군.’
다른 사람의 인정 같은 건 의미 가 없다.
그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한 사람뿐이다.
“그걸로 됐잖아, 교주.”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돌고 돌아 원점이로군.”
“하지만 다르지.”
“그래…… 다르네.”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제 강진호는 청마를 이해한다. 아마 청마도 강진호를 이해하고 있 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저 인정하는 것이다. 서로가 걷는 길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하지만 그뿐.
강진호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 고 청마 역시 물러설 생각은 없을 터.
“어쩌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글쎄.”
청마가 고개를 내저었다.
“알고 있잖아, 교주. 당신이니까,
그리고 나니까 알고 있지.”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미련을 가 지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지.”
그 말이 강진호를 아프게 만든다.
‘어쩌면 반대였을지도 모르지.’
청마가 자신의 삶을 고쳐 쓸 수 있는 시간으로 돌아가고, 강진호가 자신의 삶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으 로 돌아왔다면……. 어쩌면 지금 청 마의 자리에 강진호가 서 있었을지 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그 작은 차이가 지금의 둘을 만들어냈다.
적마와 청마, 강진호와 양첸.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두 사 람이 마지막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교주.”
“••••••말해.”
“이제 와 말하는 거지만……
청마가 환하게 웃었다.
“배신을 당했다고 투정은 부려 댔 어도, 난 한 번도 당신이 싫은 적은 없었어.”
강진호가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마찬가지다, 빌어먹을 놈아.”
그게 마지막이었다.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 다.
알고 있으니까.
이제 어차피 서로 남은 힘은 없 다. 이제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걸 로 모든 것이 끝난다.
서 있는 이는 아마 한 사람뿐이 겠지.
그렇기에 둘 모두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그 길고 긴 인연의 종착에 도달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처럼.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이제는…… 그래, 이제는 모든 것
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빗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해진 대지에 내리는 빗소리만 이 두 사람 사이를 가만히 채워 나 갔다.
‘청마.’
그 순간, 강진호의 우수에 검은 마기가 피어오른다.
겨우 주먹 하나를 뒤덮을 정도의 마기, 짜내고 짜낸 그의 마지막 힘 이 모두 그의 주먹에 머무른다.
청마 역시 마찬가지.
펼쳐 낸 손에 남은 마기를 모조 리 밀어 넣은 청마가 담담한 눈으로
강진호를 마주했다.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발 을 뗀다.
‘어쩌면……
강진호의 뇌리에 처음 그의 앞에 섰던 청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지.’
마주하는 눈.
닿을 듯 맞부딪친 발끝.
서로의 심장을 향해.
어쩌면 사람의 마음이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을 향해, 두 사람의 손이 내뻗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