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89)
마존현세강림기-2089화(2088/2125)
마존현세강림기 84권 (24화)
5장 움켜잡다 (4)
세상이 느려진다.
색을 잃어가는 세상, 흑백으로 점 점 물들어가는 세상 속에서 강진호 는 오직 청마만을 바라보았다. 마지 막 남은 모든 기운을 뽑아내 자신을 향해 주먹을 뻗어오는 청마의 모습 올 말이다.
바래간다.
형체를 잃은 세상이 회색으로 물 들어간다.
그 잿빛의 세상, 모든 것이 흐려 져 가는 세상 속에서도 청마의 모습 만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오직 이 세상에 그만이 존재하는 듯이.
피투성이.
상처투성이.
언제나 반듯하던 그의 모습은 찾 아볼 수도 없다. 처참하다기보다는 처절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다.
‘ 네겐••••••
강진호의 두 눈에 청마의 모습이 화인처럼 새겨졌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군.’ 하긴…….
어울리지 않는 몰골을 하고 있는 것은 청마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자 신 역시 다를 게 없겠지. 어울리지 도 않는 짓을 하고 있으니까.
모든 것이 변했다.
과거의 청마는 어쩌면 더는 존재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청마를 청마라 부르는 것은 그저 미련. 지 금 그의 앞에 선 자는 청마가 아니
라 흑왕이라 불려야 온당한 자다.
그건 강진호 역시 마찬가지다. 그 는 이제 더 이상 적천마존이라 불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래, 모든 것이 변했다.
그들도, 그들을 둘러싼 상황도.
이 빌어먹을 세상과 그들 둘마저 도.
무엇하나 변치 않은 것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지, 청마.’
모든 것이 달라졌음에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으니까.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 에게 가혹하다.
운명은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그들을 헤집어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딱히…… 나쁘지 않아. 그렇지?’
강진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승부가 세상의 운명을 결 정한다는 사실도. 서로가 다른 길을 간다는 것도.
그래,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저 그들이 마주 서 있다는 것, 그리고 마주 보고 있 다는 것뿐이다.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 야만 넘치는 세상에서 누구도 그를 이해해 주지 못할 거라 생각했 다.
하지만…….
웃음이 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온기를 찾아 헤맸다. 언 제나 그의 손끝에 닿을 따뜻함을 그 리워했다. 그 세상 속에는 그가 몸 을 기댈 온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 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저 그리워했지, 그를 안 아주던 따뜻함이 있던 세상을.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된다.
그가 얻고자 한 것은 애초에 거 기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이제 와서야…….
기억한다.
여전히 기억한다.
처음 강진호에게 다가와 환하게 웃던 청마의 모습을, 세상 모든 것 을 밀어내던 강진호에게 먼저 다가 와 손을 내밀던 그의 모습을 말이다.
강진호는 그 손을 밀어냈다.
하지만 청마는 다시 그에게 다가 왔다.
그가 그 손을 마주잡을 때까지
끝없이 손을 내밀고 또 내밀었다.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어쩌면 그 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밀어진 그 손이…….
홀로 버려진 강진호를 구원했을지 도 모른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손을 내밀어주는 이의 존재가 강 진호에게 더없는 위안이 되고 있었 다는 것을.
척박하기 짝이 없는 세상을 그저 홀로 걷는다고 생각했을 때, 그 한 걸음 뒤에 자신을 지켜보던 이가 존 재했음을.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그 온기가, 차마 닿지 못한 곳에서 전해져 오는 그 실낱같은 온기가…….
강진호를 살아 있게 했다는 것을.
O 드 O G 드
– I 9
•1
• —1 •
몸이 으스러질 것만 같다.
하지만 강진호는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마기까지 모조리 짜냈다. 설 사 이 일격을 날린 대가로 그의 모 든 것을 잃어야 한다고 해도 상관없 다.
제 손끝으로 모여드는 마기를 생 생하게 느끼며, 강진호의 두 눈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살아가며 청마의 존재를 이리 가 깝게 느껴본 적은 다시없었을 것이 다. 서로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금처럼 실감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와 청마 둘은 서 로를 죽이기 위해서 모든 것을 짜내 고 있다.
증오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상대의 존재를 더없이 필 요로 함에도 그들은 서로를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 행위가 서로에게 있어서 얼마나 깊은 후회
를 불러일으킬지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삶이란 언제나 이토록 이상한 것.
상대를 인정하기 때문에 죽일 수 밖에 없다. 값싼 동정도, 서로에 대 한 배려도 지금은 그저 상대에 대한 모독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그들은 이런 식으로밖에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
비틀려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비틀려 있기에 서로 기댈 수 있던 이들이다.
‘ 청마.’
강진호가 숨이 닿을 듯 가까워진
곳에 존재하는 청마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영원히 닿지 않는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영 원토록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강진호는 청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 우리는 애초부터 둘이었지.’ 과거에도, 지금에도.
세상은 오직 그들 둘을 둘러싸고 있다.
그래, 닿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 같은 것은.
그럼에도 강진호는 손을 뻗었다.
그를 맞아오는 이에게.
그의 적에게.
그의 친구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을 전하려.
닿지 않을 곳에 닿으려.
뻗어낸 그 손이 청마의 심장으로 향한다.
그의 모든 것을 담은 그 공격이.
세상이 멀어진다. 아니, 다가온다.
청마는 오직 고립되어 가는 자신 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감각이 멀어진다.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
잿빛으로 물든 세상은 마치 그를 거 부하는 듯 밀어낸다.
느껴지지 않아도 차갑고, 들리지 않아도 서글프다.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그를 향해 손을 뻗어오는 강진호 뿐.
한쪽 눈을 잃고 엉망이 된 몰골 의 강진호를 보고 있으니, 어쩐지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어울리지 않군, 교주.’
저 사람에게는 고고함이 어울린다. 세상 무엇과도 어울리지 않고, 그저 홀로 높은 곳에 군림하는 것이 어울
린다.
하지만…….
그건 조금 슬픈 이야기일지도 모 른다.
저 사람에 대한 그의 감정을 대 체 뭐라 표현해야 할까?
어쩌면 증오.
어쩌면 분노.
그게 아니라면 그저 안타까움.
글쎄…… 모르겠다.
강진호에 대한 그의 감정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 이니까.
‘ 교주.’
청마는 기억한다.
그가 강진호를 처음 본 그때를 말이다.
교에 홀러 들어온 흔하디흔한 이 방인.
스스로 전장에 몸을 던져 피투성 이가 될 때까지 홀로 싸우고 또 싸 우던 정신 나간 광인의 모습.
그래, 청마는 잊지 못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시체로 가득한 전장 한가운데서 말없이 하늘을 올 려다보던 강진호의 뒷모습을. 어쩌 면 화인처럼 두 눈에 박혀든 그 모 습이 지금 이 모든 순간을 만들어냈
을지도 모른다.
겹쳐 보였으니까.
누군가에게는 그저 잔인하게 보일 그 뒷모습에서 청마는 울고 있는 아 이를 보았다.
언젠가 아비를 잃고 홀로 울음 짓던 자신을, 그 차디찬 겨울의 바 람에 그저 상처받던 자신을.
‘그래, 교주.’
알 필요는 없었지.
이해할 필요도 없었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같은 건 중 요하지 않았어.
청마가 강진호에게서 본 것은 자
신이니까. 세상 어디에도 기대지 못 하고, 그저 홀로 그 모든 것을 감당 해야 하는 누군가의 뒷모습이었으니 까.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강진호에게 다가간 것은.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와 함께 웃고 떠들며 술잔을 기울이려 한 이유는.
그건 위로. 어쩌면 위안.
쓸쓸함 외에는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던 강진호의 얼굴에 조금의 느 슨함이라도 깃드는 것을 볼 때, 청 마는 홀로는 얻을 수 없는 작은 평
온을 얻고는 했다.
청마는 자신이 강진호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위태로운, 강철같이 강인해 보이 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를 나약한 존재. 그런 이를 청마가 지탱해 주 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지.’
청마가 강진호를 지탱해 준 것이 아니다. 무너지는 청마를 강진호가 지탱해 준 것이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청마는 자신이 잃 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직 그들이 어느 것 하나 손에 넣지 못하던 시절.
마주 앉아 싸구려 술로 잔을 기 울이던 날을.
그의 코끝을 스치던 술의 향이, 건너편에 앉은 강진호의 입가에 흐 릿하게 머문 작은 미소가, 창밖에서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와 창밖 하늘 위에 떠 있던, 밝디밝은 그 달이.
때로는 별것 아닌 작은 기억 하 나가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청마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그날의 작은 기억이었을지도 모르지.
‘교주.’
아니…….
그런 것은 다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좋았다.
그의 등을 보고 달려 나가는 것 이, 자신을 앞에서 이끌어 주는 누 군가가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 도 차갑던 세상의 바람을 막아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돌이켜 보면 교주……
그는 너무도 나약했다.
원대하기 짝이 없던 이상, 드높기 만 했던 바람, 이루지 않고서는 눈 을 감을 수 없을 만큼 처절하기까지 한 꿈.
그 모든 것을 제 손으로 이루어 내기에 청마는 너무도 작고 약한 존 재였다.
그렇기에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그와는 다르게 그 모든 것을 헤 쳐 나가는 인간의 등을, 상처입고 고통받으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던 사람의 모습을.
‘아버지,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청마 자신이다. 그렇기에 후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 저는……
청마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후회합니다.’
전신의 마기가,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이 손끝으로 밀려 들어간다.
혼신의 일격, 그 말로도 부족한.
강진호와 청마의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맞닿았다.
그 순간, 청마는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강진호의 눈빛이 그날의 강진호와
겹쳐진다.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달 아래서 그를 바라보는.
코끝에 옅은 술 냄새가 스쳐 지 나가는 것만 같다.
멍하니 강진호를 바라보던 청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난다.
‘어떨까 교주.’
나도 지금…… 그날의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때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을까?
……상관없지. 그래 딱히 중요하 지 않겠지.
하지만…… 그저 그러면…… 그
래, 그러면 좋을 것 같군.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마주 앉은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 로 충분했으니까. 꼭 자신을 바라보 지 않는다고 해도 고개를 돌려 달을 바라보고 있는 그 무심한 눈빛에 위 안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즐거웠지, 교주?’
그래, 그때는…….
그저 즐거웠지.
콰드드드득!
강진호의 손이 청마의 심장에 파
고든다.
청마의 손이 강진호의 심장으로 파고든다.
세상이 멈춰 선다.
고요하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세상 속에 서 내리는 비만이 그저 무심한 빗소 리를 전할 뿐이었다.
차디찬 비가 두 사람의 몸을 타 고 흘러내린다.
무심하게.
또 무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