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91)
마존현세강림기-2091화(2090/2125)
마존현세강림기 85권 (1화)
1장 돌아오다 ⑴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이현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길고 긴 승부,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승부가 지금 그들의 앞에서 마침내 종착에 다다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승부의 결 과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 어 제 눈가를 훔쳤다. 그 눈가를 타 고 흘러내리는 물이 눈물인지, 아니 면 빗물인지 이현수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자꾸만 시야가 흐려지는 것 을 느낄 뿐이다.
‘회주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지켜보는 이들조차 한계를 느끼는, 이 전투의 끝에 선 저 두 사람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저곳에 누워 있 을까?
차갑다.
몸에 닿아 흘러내리는 빗물이 더 없이 싸늘했다.
꾸욱.
그 순간, 그의 팔에서 강한 힘이 느껴진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이현수의 시선에 최연하의 얼굴이 들어왔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
차가운 비를 맞으며 버티느라 하 얗게 질려 버린 얼굴을 한 최연하의 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
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지만, 최연하는 그저 입술을 악문 채 버텨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정신이 퍼뜩 들었다.
“회주님……
이현수가 홀린 듯이 한 걸음 앞 으로 나아갔다.
이미 승부는 끝났다.
그 승부의 결과가 어찌 되었든 저 둘은 더는 저 전투를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명확하 지 않은가.
저 차가운 빗속에 쓰러져 있는, 자신들의 회주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현수의 발은 더 나아가 지 못했다. 단 한 걸음. 그게 지금 다가갈 수 있는 거리의 한계였다.
이현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알고 있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다. 무인의 자존심이니, 승부의 신성함 이니 하는 것은 적어도 이현수에게 있어서는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만 한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현수가 선뜻 다가가지 못한 이유는 이 승부에 대한 경의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강진호 때문에.
그가 지금 다가가는 것을 강진호 가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을 때는 다른 이들의 반응을 확인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누구보다 먼저 저곳으로 달려가야 했을 장민도, 이 승부에 대한 감상 을 늘어놓아야 했을 바토르도, 이
승부가 총회에 줄 영향을 걱정해야 했을 방진훈마저도.
그저 넋을 놓은 채 쓰러진 두 사 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 다.
긴 침묵.
빗소리만이 세상을 채운다. 침묵 이되 침묵이 아닌, 고요하되 고요하 지 않은 시간의 끝에…….
“아
이현수는 보았다.
쓰러져 있던 강진호가 천천히 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말이다.
이현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
계속 입을 열고 있으면 오열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이미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 없지만, 꼴 사납게 울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세 상에서 비척이며 몸을 일으킨 강진 호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세상. 지평선까지 그저 뻗어 있기만 한 세상 속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강진 호의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울 컥함을 불러일으켰다.
“……회주님.”
뭐라 말해야 할까?
살아줘서 고맙다?
아니면 승리해서 다행이다?
글쎄, 아니겠지.
그들이 할 수 있는 말 같은 건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일뿐이니까.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던 강 진호가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는다. 그러고는 쓰러져 있는 흑왕을 안아 든다.
축 늘어진 혹왕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곳의 모두는 이 승부의 결 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흐}지만 그 누구도 기쁨이나 아쉬 움은 내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고 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누군가 는 고개를 숙여 검은 대지를 바라본 다.
건너편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십이비도들마저도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강진호는 한동안 자신이 안아 든 혹왕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자신들을 향해 다가 오는 강진호를 본 이현수의 손끝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서글프다.
이상하게 서글펐다.
강진호가 작아 보인다.
그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언제다 커다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강진호가 자신보다 더 작 아 보였다.
천천히 그의 앞까지 다가온 강진 호를 이현수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엉망이 된 얼굴.
하지만 부어오른 두 눈 사이로 보이는 강진호의 눈빛만큼은 그 어 느 때보다 더 깊이 가라앉아 있었 다.
“회……
이현수가 입을 닫아버렸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말을 꺼내는 것은 그 가 아니라 강진호여야 한다.
그때.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강진호의 입이 열렸다. 쉬어버린 듯한, 아니, 바래 버린 듯한 강진호의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와 이현수에게 전해져 왔다.
“……이현수.”
이현수의 어깨가 짧게 떨린다. 하 지만 그도 잠시. 이현수가 크게 고 개를 끄덕였다.
“예…… 회주님. 여기 있습니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빤히 바라보다 가 제가 안고 있는 흑왕에게로 시선 을 돌렸다. 이내 그 시선은 먹구름 이 가득 껴 있는 하늘로 향했다.
“그럴싸하게 대답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현수는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 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고개는 격하게 끄덕여졌다. 그래야 만 하니까, 지금 그는 당연히 그래 야만 하니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
러니까…… 네게 묻고 싶다.”
“……예, 회주님.”
강진호가 잠시 머뭇거린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강진호의 갈 라진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의미가 있었을까?”
이현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있던 죽음이, 우리가 한 모든 것들이…… 정말 의미가 있었 을까?”
이현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말에 실린 것들이 너무도 무 거워서.
이건 그저 논리만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무엇을 얻었을까?
이 하룻밤의 기나긴 승부로 그들 은 대체 무엇을 얻어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저 솔직할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지어내 면피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으니까. 그건 사선을 넘어 지금 그의 앞에 선 이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가.”
강진호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죴
다.
마치 이현수가 그런 대답을 할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지만 그러면 서도 한 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이 조금은 어색하게.
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 그건••••••
이현수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이제부터 찾아가야 하는 거 겠죠.”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이현수 를 바라보았다. 그저 담담하게만 보 이는 그의 눈빛이 이현수의 눈에는
그저 서글프게만 보였다.
“……그래, 그렇겠지.”
강진호가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딱히 다르지 않았어.”
강진호가 눈을 감는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청마는 제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강진 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진심으 로 서로를 이기기 위해, 서로를 죽 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서로의 입장을 알면서도, 서로에 게 가진 애증에 함몰되면서도 그들 의 손끝만은 결코 혼들리지 않았다.
모독할 수는 없으니까.
스스로를 관철하는 승부. 그 승부 에 있어 양보는 있을 수 없다. 그건 승리한 이가 걸어가야 할 길조차 망 치는 일이니까.
“어쩌면 지금 이곳에 쓰러져 있는 건 나였을 수도 있겠지.”
“……회주님.”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쏟아붓던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승부를 가른 건…… 딱히 별게 아니야.”
먹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던 강진
호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살아 돌아오고 싶었다.”
“청마에게 있어서 삶이란 나아가 야 하는 것이지만, 내게 있어서 삶 이란 돌아오고 싶은 것이었다. 그 저…… 그래, 그저 그 차이로 갈린 것뿐이야.”
그 작은 의지가 그의 심장을 파 고들던 청마의 손을 막아냈다.
실낱같은 승부를 가른 것은 그저 그것뿐이었다.
“내게는 있지만, 청마에게는 없었 을 뿐이야. 돌아갈 곳이라는 게……
“회주님……
담담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누구도 그 목소리에 어린 감정마저 담담하 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강진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 힌다.
“이 말은 해야 할 것 같네.”
조금은 처연하지만, 그저 밝은 미 소. 조용하다는 말이 어울릴 듯한 미소를 지은 강진호가 그 웃음 가득 한 얼굴로 말했다.
“돌아왔어.”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가 쉴 새 없이 떨렸다. 차마 강진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 을 수가 없다. 조금만 더 그의 얼굴 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먼저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아서.
하지만 이현수는 입술을 질끈 깨 물고 굽힌 허리를 폈다.
그에게는 해야 할 말이 있으니까.
조용히 웃고 있는 강진호를 마주 본 이현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잘……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잔기침을 뱉어낸 이현수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웃음을 지었다.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웃 음을.
“잘…… 돌아오셨습니다, 회주님.”
“정말…… 정말 잘……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수를 바라본 다.
딱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전투는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모 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이해하는 건 지금 그에게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등 뒤에서 그의 목을 감싸 안는다.
“••••••어.”
덜덜 떨리는 팔.
뒷목에 닿은 뜨거운 숨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기에는 말이다.
“이……
강진호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 었다.
“이 망할…… 망할 인간아……
최연하가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 는다.
“……잘 돌아왔어.”
“정말 잘……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에 눈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먹구 름이 가득한 하늘이다. 이기고 돌아 온 이에게 비춰야 할 광명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해졌을까?’
등 뒤에서 그를 끌어안은 최연하 에게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어 느새 한 발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이현수에게서 전해지는
체온도 그저 따뜻했다.
‘ 청마.’
전해졌을까?
그가 마지막 순간에 청마에게 전 하려 한 것은…… 정말 그에게 전해 졌을까?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청 마를 바라본다.
핏기 없이 새하얀 얼굴.
싸늘하게 식어버린 몸.
하지만 강진호는 볼 수 있었다. 끝을 맞이한 청마의 입가에 옅게 어 려 있는 작은 미소를.
그 언젠가 그들 둘이 서로 술잔
을 마주하던 그날, 그가 지은 것 같 은 그저 따뜻한 미소를 말이다.
‘……편히 쉬어라.’
강진호의 손이 청마의 어깨를 감 싸 안는다.
그가 이들에게 느낀 따뜻함이 청 마에게도 전해지길 그저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