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092)
마존현세강림기-2092화(2091/2125)
마존현세강림기 85권 (2화)
1장 돌아오다 (2)
서서히 그쳐 가는 빗속에서 량루 아오[梁汝敬]가 자신도 모르게 담배 를 입에 물었다.
하지만 아직 충분히 비가 멎지 않은 모양인지, 입에 문 담배는 금 세 축축이 젖어들었다. 아무리 라이 터를 켜대도 불이 붙지 않을 정도
로.
불이 붙지 않는 담배는 쓸모가 없다. 포를 쏘아대지 않는 전차처럼 말이다.
량루아오의 두 눈이 낮게 떨린다.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제아무리 이전까지의 전투가 세상 으로 송출되었다고 해도, 아무리 이 곳에서 두 눈으로 저 둘의 싸움을 지켜본 이들이 끊임없이 말을 한다 고 해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 다. 화면 너머로 알 수 있는 게 아
니다.
오직 피부로 느끼고, 감각으로 알 아야만 한다.
‘위험해.’
저 존재들은 세상의 법칙을 부순 다.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 린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세상이 만들어놓은 균형을 뒤흔든다.
공존?
정말 저들과 공존할 수 있는가?
맨손으로 대지를 뒤엎고, 하늘을 부수는 존재들과 정말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무리다.
이뺄을 가진 육식동물과도 공존이 불가능한 게 인간이다. 동물원이라 는 우리에 갇히지 않은 인간의 적들 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착실하게 말살 당하고 있다.
제아무리 보호종이니 뭐니 지껄여 대봐야 인간은 자신을 위협하는 존 재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철저한 무 관심과 냉소로 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설사 그것이 종 자체의 지속과는 관련이 없는, 피상적인 피해에 불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인간이 저들과 공존한다고?
우리에 갇히지 않고, 사육사가 주 는 먹이로 만족할 수 없는 저들이?
량루아오는 최소한 저 흑왕이라 불리는 자보다 강진호라는 자의 주 장이 합리적이라 여겼다. 무인들이 모여 사는 자치구라는 미친 것을 요 구하는 이보다는 대화와 공존을 논 하는 이가 합리적으로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지켜본 그 의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자치구는 우리다.
저 혹왕은 자치구라는 이름하에 송곳니를 가진 진승들을 한 곳으로
몰아넣으려 한 것이다. 넓디넓어 도 무지 우리로 느껴지지 않는 사파리 는 그 안을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도 자유라는 환상을 느끼게 만들어주기 에 충분하니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너무도 합 리적인 주장이다.
반면, 저 강진호란 자는?
저 괴물들과 인간을 뒤섞어놓은 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보겠 다고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저 무인이라고 불리는 족속들에게 는 그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지금까 지 살아오던 자신의 삶을 뒤바꾸지
않고,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 가.
하지만 그들과 뒤섞여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이들은?
저들의 존재와 그 위험성을 알아 버린 이들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보고도?
‘막아야 해.’
그건 스스로가 가진 직위에서 나 온 판단이 아니었다. 그건 한 인간 이 가진 근원적인 공포가 불러일으 킨 결정이다.
량루아오의 흐트러진 초점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의 눈이 포착 한 것은 혹왕을 안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그 끔찍하고도 경악스러 운 전투에서 보여준 모습이 무색하 도록 나약해진 인간의 모습. 량루아 오는 직감적으로 지금이 아니라면 저 강진호를 죽일 순간은 영영 오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후욱.”
량루아오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원칙대로라면 개입은 그에게 있어 서 불가능한 일이다. 이 중차대한 상황에 대한 결정권이 일개 현장 지
휘관에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더 위험하다.
저 멀리에서 결과를 듣는 인간들 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광경을 목 도한 이들이 본 ‘진실’을 전혀 이해 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온건파가 승리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모든 것 이 잘 해결되었다고 느긋하게 잔에 샴페인을 따라 대겠지.
그래, 당장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승리한 저 강진호의 말에 핵미사 일 기지에 대한 통제권이 돌아온다 면, 어쩌면 저자는 영웅으로 칭송받
을지도 모른다. 그 찬란한 위명 아 래 저들이 가진 위험성은 잠시나마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화해 무드가 조성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는가.
대체 얼마나.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았을 때 는 늦다. 움직여야 한다면 지금밖에 없다. 적을 칠 때는 반드시 그 머리 부터 쳐야 하는 법. 저 무인이란 것 들의 수괴가 지금 바로 저기에 있 다.
“•…”부관.”
“예, 사단장님.”
“발포 준비해.”
“••••••예?”
“목표는 저기 있는 강진호다. 화 력을 모조리 쏟아부어서라도 저 한 사람만은 반드시 죽인다.”
“자, 잠시만요, 사단장님. 저희가 받은 명령은……
“이 부대에 대한 지휘권이 누구에 게 있나?”
“……준비하겠습니다.”
부관이 입을 다물었다.
설령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이가 더 높은 곳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그에게 명령을 내
리는 이는 바로 앞에 있는 이다.
설령 그것이 상부의 판단이 배재 된 독단이라고 해도 명령에는 따라 야 한다. 그게 군인이 아닌가.
“조용히, 눈치채지 못하게.”
량루아오의 이마를 타고 굵은 땀 방울이 배어났다. 흘러내리는 비가 아니었다면, 그의 얼굴은 빗물이 아 니라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을 것이 다.
저 커다란 포신을 천천히 움직일 방법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상관없 다. 이미 저들을 겨누고 있는 이들 이 있을 테니까. 그저 발포할 수 있
는 모두가 공격을 한다는 사실을 먼 저 이해하고 있으면 된다.
그럼 첫 발포 이후로 즉각적인 화력 집중이 이어질 것이고, 저들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제대로 주먹도 날리지 못할 정 도로 지친 상태에서는 버텨내지 못 할 테니까.
‘내가 세상을 구해낸다.’
설령 누구도 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이 일의 여파로 세상 이 지옥 불에 휩싸이고 훗날의 모두 가 그에게 침을 뱉고 손가락질을 해 댄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의 결정이 반드시 세상을 구원 할 테니까.
결심을 굳힌 량루아오가 부관을 돌아본다. 무전기를 들고 있던 부관 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욱!”
깊게 숨을 들이켠 량루아오의 입 에서 막 발사라는 말이 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그의 목에서 섬뜩한 고 통이 느껴졌다. 마치 예리한 면도날 이 목을 베고 지나간 것만 같은 고 통이.
차마 말을 다 내뱉지 못한 량루 아오의 귓가에 낮은 음성이 들려왔 다.
“ 해봐.”
••••••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 낮은 목소 리.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량루아 오의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입을 떼는 순간, 그 목이 날아갈 테니까.”
숨도 쉬어지지 않는다. 어느새 그 의 바로 뒤에 나타난 공령이 량루아 오의 목에 건 은사를 슬쩍 잡아당겼
다.
주르륵.
은사가 피부를 파고들며 량루아오 의 목을 타고 붉은 핏물이 홀러내렸 다.
“흑왕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셨다.”
“확인해 보지, 네게도 그럴 용기가 있는지. 그러니 어디 지껄여봐.”
량루아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목숨은 이미 내다 버린 것 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그의 목 숨으로 뒤이어 다가올 세상의 흔란
을 막아낼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것이다.
그러니 말해야 한다. 발포해야 한 다고. 당장!
하지만…….
“어으..”
아무리 다짐을 해봐도 말이 소리 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작살 에 꿰인 물고기처럼 덜덜 떨어 대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한심한 놈”.”
스르륵.
공령이 량루아오의 목을 감고 있 던 은사를 회수했다.
“후욱••••••
제 목을 감고 있던 면도날 같은 은사의 감촉이 사라진 순간, 량루아 오의 입에서 거친 숨이 토해져 나왔 다.
“……저 두 사람께 감사해라.”
그 영문 모를 말에 량루아오의 두 눈이 떨렸다.
“나는 너같은 놈을 살려두지 않아. 한 번 뒤를 노린 이는 언제고 다시 노리기 마련이니까. 쓸데없는 후환을 남겨둘 바에야 깔끔하게 목을 끊어 내는 게 옳지.”
“하지만……
공령의 시선이 혹왕을 안고 있는 강진호에게로 향했다.
“승자의 말은 옳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없는 화합이라는 말도 우 선은 따라야겠지. 그게……
공령이 다음 말을 삼켰다.
그게 혹왕이 그들에게 남긴 의지 니까.
“ 다만……
공령의 손이 량루아오의 목을 가 볍게 움켜쥐었다.
“내가 베푸는 자비는 살려두는 것 까지다.”
“끄윽.”
눈을 까뒤집은 량루아오가 뒤로 넘어간다. 기절한 그의 몸이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쏠 텐가?”
공령의 시선이 부관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부관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 었다.
“명령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자가 없으면 다음 명령권자는 그쪽일 텐데?”
“글쎄요. 저는 그걸 결정할 담량이 없습니다. 게다가……
부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입장은 다르지만, 비슷한 마음입 니다. 저렇게까지 해서 관철해야 할 무언가라면 믿어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겠죠.”
공령이 말없이 부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걸어 강진호에게로 향했다.
많은 것을 잃었다. 너무도 많은 것 을
십이비도 중 이제 남은 것은 겨 우 넷밖에 되지 않는다.
‘사비도는 너무 없어 보이잖아.’ 아니, 이제 더 이상 비도라는 말 은 의미가 없다. 그들을 비도로 쓸
수 있는 흑왕은 더는 없으니까. 그 에게 남은 것은 마지막 의무뿐이다.
저벅저벅.
바로 앞까지 다가간 공령이 고개 를 들어 강진호을 마주 보았다.
할 말이 꽤 많았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강진호의 얼굴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당신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넘어 이곳에 서 있겠 지.’
그러니 그저…….
한 번 눈을 감았다 뜬 공령이 강
진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주십시오.”
강진호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공령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당신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는 것 까지는 그분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르 지만…… 죽고 나서까지 당신에게 동정받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싸늘히 식어버린 청마를 바라본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안아 든 청마를 공령을 향 해 내밀었다.
공령이 그 시신을 받아 들었다.
“다른 이들과 같이 묻어줘.”
“보기와는 다르게 외로움을 타는 놈이니까.”
공령이 쓰게 웃었다.
외로움이라…… 그런 말이 흑왕과 어울리기나 하던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저 긍정이었다. 그들이 함께해 온 세월로도 넘을 수 없는 무언가가 이 둘 사이에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 뭘 할 거지?”
“……글쎄요.”
공령이 고개를 돌려 남은 십이비 도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 겠지만, 저는 일단 당신이 말한 세 상에 끼어들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지켜보죠. 당신이 말한 대 로 정말 혹왕의 생각과 다르게 무언 가를 이뤄 나갈 수 있는지, 당신이 말한 그 모든 것이 정말 허황된 것 이 아니었는지.”
혹왕을 안아 든 공령의 손에 살 짝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당신이 틀렸다는 것 이 확인되는 순간, 나는 다시 비도 가 될 겁니다. 설령 주인 없는 칼이 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이어가야 하 는 사명이니까.”
강진호가 공령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공령이 강진호를 향해 정중히 고 개를 숙였다.
그건 이 세상의 정상에 선 이에 대한 존경이 아니다. 그들이 그토록 존중하던 혹왕을 이긴 자에 대한 존
중이었다.
공령이 몸을 돌려 걸어간다.
그의 좌우로 남은 십이비도들이 다가온다.
“어디로 갈 거지?”
도귀의 물음에 공령이 슬쩍 고개 를 내려 흑왕을 바라본다. 그러고고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높은 곳.”
“높이서 세상을 지켜볼 수 있는 곳으로.”
고개를 끄덕인 십이비도들이 공령 을 호위하듯 주위를 지켰다. 느릿하
게 멀어져 가던 그들이 이내 섬전이 되어 사라진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 로 멀어질 때까지, 강진호는 그저 말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