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05)
마존현세강림기-2105화(2104/2125)
마존현세강림기 85권 (15화)
3장 바라보다 (5)
고한봉이 살짝 허리를 폈다.
그건 억눌린 상황을 벗어나 평소의 제 자신을 되찾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위였다. 상대가 자신의 기분을 눈 치채지 않게 표정을 관리한 고한봉 이 한껏 여유를 담은 목소리를 가장
하여 입을 열었다.
“음, 그건 조금 이상한 말이로군요.”
고한봉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결국 총회의 의지란 회주님의 의 지와 같은 말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나 뵈었을 때, 회 주님은 이 모든 상황에 무척이나 전 향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필요 하다면 자신의 뜻을 굽힐 수도 있을 정도로요. 그사이 회주님의 생각이 바뀐 것인지 궁금하군요.”
이현수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총리님과 회주님이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 에는 회주님의 입장이 그리 바뀌지 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이 실장님의 발언 은…… 그런 회주님의 의견에 반하 는 말이 되지 않을는지요.”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괜찮습니다. 이 협상에 관한 모든 것은 제게 일임이 되어 있으니까요.”
고한봉이 결국은 참지 못하고 눈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애초에 이현수는 강진호의
입장을 전하러 온 메신저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강진호가 직접 이현수 를 메신저로 선택한 만큼 개인적인 사견이 적당히 섞이는 것까지는 이 해해야 하겠지만, 강진호의 생각에 완전히 반하는 일은 벌일 수 없어야 마땅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월권이다. 그 것도 상황을 전체적으로 뒤틀어 버 릴 수 있을 만큼의 치명적인 월권.
하지만 고한봉은 그 사실을 지적하 지 못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런 걸 모를 사람이 아니라는 거
지.’
이현수 정도 되는 사람이 그 사실 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럼 이건 실수 같은 게 아니라 철저히 의도된 행위라는 의미였다.
그럼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해석 해야 할까.
그 순간, 이현수가 제 넥타이를 잡 아 살짝 끌어당겼다.
“지금까지는 총회의 실장으로서 총 회의 입장을 전달드렸습니다, 총리 님. 그럼 지금부터는 이현수라는 개 인으로 고한봉 총리님께 저희의 입 장을 전달드려도 되겠습니까?”
고한봉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 했다. 저 말에 담겨 있는 의미가 생 각보다 무겁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 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빤히 바라보 는 이현수의 시선에 고한봉의 고개 가 결국 끄덕여지고 말았다.
“그러시지요.”
“분명 회주님께서는 어떤 식으로든 협의를 깰 생각이 없으실 겁니다. 하지만…… 그쪽은 다르겠죠.”
“그건 오해입니다.”
고한봉이 고개를 내저었다.
“각국은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실장님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말 이지요.”
“네. 물론 그럴 겁니다.”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당장 타고 있는 불을 꺼야 할 테 니까요. 제 몸에 불이 옮겨붙기 전 에.”
“그런데…… 그 급한 불이 꺼진 뒤 에는 어떨까요? 그때도 무인들의 독 점적인 지위를 인정해 주려 할까요?”
고한봉이 입을 다문다. 한참을 망
설인 끝에 고한봉이 힘겹게 입을 열 었다.
“한번 체결된 조약은……
“네. 언제든 깨질 수 있죠? 그게 국제 관계 아닙니까?”
차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게 고한봉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물론 총리님의 진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총리님이 총회를 위 해 많은 것을 해주셨고, 지금도 총 회의 파트너로서 노력하고자 하신다 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만••••••
이현수의 시선이 고한봉에게 가닿 았다.
“총리님의 발언력이라는 게 총리님 뒤에 서 있는 이들에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생각을 해볼 문제 겠죠.”
고한봉이 눈을 딱 감았다.
조금 전, 그는 이현수에게 그에게 과연 강진호에게 반하는 의견을 제 시할 권한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질문을 지금 고한봉이 그대로 돌려 받고 있었다.
그가 과연 그의 뒤에 서 있는 이
들을 대변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이현수는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고 한봉은 차마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저들에 비한다면 고한봉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 니까.
“세상은 호의로 돌아가지 않습니 다. 그 사실을 저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총리님.”
이현수가 서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언젠가는 여러분께 회주님의 존재 역시 사냥이 끝난 사냥개의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 니다.”
“실장님, 그건……
고한봉이 말을 잇지 못하자, 이현 수는 웃음기 띤 얼굴로 고한봉을 바 라보았다.
“그러니 회주님은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회주님께서 바라는 것은 모든 무 인들이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 는 겁니다. 그분께서 스스로 얻지 못한 것을, 그렇기에 간절히 바라던 것을 다른 이들이라도 누리게 하는 거죠.”
이현수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회주님은 그 목표를 위해 많은 것 을 감내할 수 있을 겁니다. 양보하 고 또 양보하고, 스스로 모욕을 받 는 것마저 참아낼지도 모르죠.”
이현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글쎄요. 스스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일지도 모르고, 흑왕에게서 넘겨받은 것들에 대한 부채 의식일 수도 있습니다. 네. 그 원인이 무엇이든 회주님은 지금 자 신의 안위보다는 무인계 전체를 생 각하실 겁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 죠.”
“그럼 왜……
“하지만……
이현수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뒤틀 렸다.
“죄송하지만, 제게는 그런 부채 의 식 같은 게 없습니다. 아니, 저뿐 아니라 총회, 홍왕계, 원탁의 모든 무인들은 바깥세상의 평범한 이들에 게 죄송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 고, 먼저 죽은 흑왕에게 부채 의식 을 느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실장님……
“그러니 똑똑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고한봉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 켜잡았다.
“회주님이 존재하시는 한, 우리는 그분의 의지에 따를 것입니다. 그분 께서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여 러분이 원하는 세상을 이룰 수 있도 록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다만……
이현수의 두 눈이 차가운 빛을 내 뿜었다.
“당신들의 뜻이 변질되든, 아니면 숨겨둔 발톱을 드러내든, 회주님에 게 작은 위해라도 가하는 일이 벌어 질 시에는……
으르렁대는 듯한 이현수의 목소리 가 고한봉의 귀를 파고들었다.
“총회 휘하 모든 무인들은 당신들
의 목줄기를 물어뜯기 위해 제 목숨 을 버리는 걸 마다하지 않을 겁니 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세상을 부술 힘은 없지만, 당신들 몇 정도 는 언제든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있 다는 걸.”
“전쟁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대신 당신들이 얻어야 할 것은 당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 상의 승리가 될 겁니다. 이건……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경고입니다.”
“물론 뭐,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아 주 개인적인. 총회의 공식적인 입장 과는 무관하니, 너무 신경 쓰지 않 으셔도 될 겁니다.”
고한봉이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배 어난 땀을 닦아내었다. 그러고는 깊 디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개인적인 의견이란 말씀이시지 요?”
“그럼요.”
“……결국은 그 개인적인 의견들이 모여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겠죠. 다른 분들의 생각 역시 이 실장님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구요?”
“아니요. 저는 굳이 따지면 온건파에 속합니다.”
고한봉이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저는 당신들이 회주님께 위해를 가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 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니까요. 이미 저희 내부에서는 미리 선제적 으로 당신들을 제거하고 무인들에게 우호적인 이들이 정권을 잡도록 움 직이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고한봉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말씀하신 바는 확실히 이해했습니
다.”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예.”
“한 가지 여쭈고 싶은 게 있습니 다.”
“그러시죠.”
고한봉이 내려간 안경을 치켜올렸 다.
“그…… 말하자면 이현수 씨 개인 으로서는 무인계 전체의 안위보 다…… 강진호라는 한 사람의 안위 가 더 중요하다, 이런 말씀이신지?”
“정확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저는 선뜻 이해가 잘……
아무리 이현수가 강진호에게 충성 을 다하는 이라고 한들, 수십, 수백 만의 목숨과 강진호를 비교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지만 이현수는 조금의 고민도 없 이 대답했다.
“총리님, 저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이현수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무인계 같 은 건 당장 내일 모조리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들 이 생각하는 만큼 무인들은 서로를 동료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얼 마 전까지만 해도 협력은커녕 서로 죽여 없애야 할 적에 불과했죠.”
“그런데 제가 왜 무인계의 미래와 안위 같은, 피부에 와닿지도 않는 거창한 목표를 위해 움직여야 합니 까? 그건 제게는 귀찮은 일, 그 이 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럼 왜……
“회주님이 원하시니까.”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유는 그거면 됩니다.”
이현수가 잠깐 눈을 감았다. 생각 을 정리하는 듯하던 그가 천천히 눈 을 뜨고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여전히 회주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그분 은 언제나 제 상상을 뛰어넘는 분이 시니까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인간 강진호의 희생 을 담보로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제 입장은 간단합니다. 회 주님께서는 무인계를 지키실 겁니 다. 무인들을 지키시겠죠. 그러니 저 는 그런 복잡한 건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제 모든 역량은 오로지 회 주님 한 분을 보호하는 데 쓰일 겁 니다.”
“이 실장님……
“그걸 위해서라면……
이현수가 이를 드러냈다.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고한봉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 모습을 본 이현수가 멋쩍은 둣 머리를 긁어 댔다.
“이거, 이야기가 조금 심각해졌군 요. 각설하고……
짝!
이현수가 가볍게 박수를 쳐 분위기 를 환기했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지부는 곧 정 리가 끝날 겁니다. 그 뒤에는 총회 에서 공식적으로 무인들에 대한 통 제를 시작할 겁니다. 총리님, 한 달 이 지나기 전에 이 혼란스러운 상황 을 안정시켜 드리겠습니다.”
“••••••예.”
“그러니 말씀 잘 전해주십시오.” 고한봉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떤 말을 전해야 한단 말인가.
대외적인? 아니면 개인적인?
“그럼.”
이현수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는 이현수 를 향해 고한봉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던졌다.
“회주님께선 좋으시겠습니다.”
“이 실장님 같은 심복이 계셔서 말 입니다.”
이현수가 고개만 돌려 고한봉을 보 고 빙긋 웃었다.
“거꾸로죠. 회주님을 만난 제가 행 운아인 겁니다.
“그 행운이 총리님께도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이현수가 방 문을 열고 나갔다.
홀로 남은 고한봉이 자리에서 일어 나 책상으로 걸어간다. 그가 책상 서랍을 열어 담배를 꺼내 들었다. 당장 보고를 해야 할 만한 일이지 만, 지금은 조금 쉬고 싶은 마음이 었다.
‘화합이라……
고한봉이 눈을 가만히 감았다.
‘언제나 가장 어려운 일이지.’
너무도 멀고 험난한.
그래, 그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