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09)
마존현세강림기-2109화(2108/2125)
마존현세강림기 85권 (19화)
4장 풀어놓다 (4)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 른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사색에 사색을 더할수록 결국은 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왜 사람은 서로를 배척하는가?
그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낼 수 없 는 이유는 강진호 역시 적과 아군을 나누고, 적에대해 자비를 베풀지 않 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적이란 쓰러뜨려야 할 대상이고, 죽여야 할 존재였지, 단 한 번도 품어야 할 존재가 아니 었다. 스스로 굴복하는 가치 있는 이라면 모를까, 굳이 타인을 이해하 려 한 적이 없었다.
현대로 돌아온 이후로는 스스로의 삶에 의문을 느껴 스스로를 바꾸려 고 노력했지만…….
‘나는 정말 바뀌었나?’
그 질문에는 쉽사리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죠.”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손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사실 저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이거든요. 누구도 제게 뭔가를 해달라고 하지 않아요.”
“충분히 했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강진호는 그게 전부가 아 니라고 생각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강진호에게 바라는 것은 언젠가 그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게 위에 선 자가 해야 할 역할이 니까.
이현수도, 이사들도……. 아니, 총 회를 넘어서 원탁과 홍왕계. 그리고 그를 아는 모든 무인들이 강진호에 게 그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 모든 걸 해결하라고 가 장 강하게 강진호에게 요구하고 있 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진호 자신이 었다.
하지만 강진호의 방법은 그저 모 호하기만 했다.
“아까 그랬죠.”
“네?”
최연하의 목소리에 강진호가 고개 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사람은 왜 싸우는 거냐고.”
“답이 너무 쉬워서 말하기도 민망 하네요. 이유야 너무 간단하잖아요. 다르니까.”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한다.
“서로 다르니까 다투고, 서로 다 르니까 싸우는 거죠. 세상에 모두 같은 사람만 있다면 싸울 일도, 다 툴 일도 없겠죠.”
“……그렇네요.”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최연하가 먼 바다를 보며 말한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같은 건, 얼마나 지 루하겠어요. 아무 것도 다를 것 없 는 날이 반복되기만 하겠죠.”
“서로 다른 사람이 살아가니까••…. 서로 만나고, 웃고, 마주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그 와중에 조금 다투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진호씨랑 나도. 이렇게 다르니까
지금처럼 여기에 같이 앉아 있는 거 죠. 진호씨가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면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을테 니까.”
“다르니까……
“직쏘 퍼즐 같은 거죠.”
“……퍼즐요?”
“퍼즐 맞추기 있잖아요. 생각해봐 요. 퍼즐을 맞춰야 하는데, 모두 똑 같은 네모모양 퍼즐이면 그걸 뭔 재 미로 하겠어요?”
“하나 하나 모양이 모두 다르니 까. 맞춰가는 재미도 있는 거죠. 물
론 퍼즐이 너무 많으면 힘들기도 하 고, 손 때가 타서 닳기도 하겠지 만……. 그래도 그럴수록 딱 맞는 퍼즐을 찾아냈을 때, 더 즐겁고 기 쁜거잖아요?”
강진호가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본 다.
“지금은 그 퍼즐을 찾는 시간이라 고 생각해요. 처음 퍼즐을 쏟아내고 나면 막연하고, 힘들 거든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요?”
“……글쎄요.”
“하나의 퍼즐 조각을 잡아 드는 거죠.”
“그렇게 시작하면, 하나하나 해나 가다보면 언젠가는 모든 조각이 맞 아 떨어지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럼 지금까지 들였던 모든 시간과 노력 이 한 번에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요. 사람들은 그 기분을 잊지 못해 서 퍼즐을 하죠.”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네?”
“내가 아는 진호씨는 이런 걸 모 를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최연하가 눈을 가늘게 뜨며 강진 호를 바라본다.
“보통은 고민은 해도, 일단은 부 딪혀 보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영 당신답지 않네요. 뭐가 그렇게 겁나 는 건데요?”
“실패할까봐?”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실패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그럼요?”
“……그 실패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많을까봐.”
“그리고 그 시도가 아무런 도움도 안 될까봐. 제 자리 걸음만 할까봐 요. 그러는 동안 상황은 악화될테니 까.”
최연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상에.”
“네?”
“중국에서 대체 뭔 일을 겪고 왔 길래, 내 남자가 이 꼴이 됐나? 추 진력 말고는 볼 것도 없는 사람이었 는데.”
“……아니. 거 말이 좀……
“저기요. 진호씨.”
“네?”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동안 파 도가 몇 번이나 쳤을 것 같아요?”
“……글쎄요?”
그런 걸 세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들이 대화하는 와중에도 파도는 계속 밀려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수도 없었겠죠?”
“그렇죠?”
“저기 보여요? 저기 저 선착장?”
“네?”
강진호가 그 뜬금 없는 소리에 고개를 슬쩍 돌려 최연하가 가리키
는 곳을 바라본다.
“눈이 있으니 보이기는 하는데.”
“여기 말이에요. 원래는 백사장이 저 선착장 앞 쪽까지 펼쳐져 있었데 요.”
“..예?”
강진호가 눈을 끔뻑였다. 최연하 의 말대로라면 백사장이 수십미터는 깎여 나갔다는 소리다.
“그럼 왜?”
“저 파도가 깎아낸 거죠. 물길이 바뀌었는지, 지형이 바뀌어서 그런 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수십 년에 걸쳐서 천천히.”
“그럼 그동안 파도가 대체 몇 번 이나 쳤던 것 같아요?”
강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최연하가 빙긋 웃는다.
“그래서……. 한 번 밀려갔다가 돌아오는 게 겁이 나요?”
“내가 아는 강진호라는 사람은 그 렇게 겁 많은 사람이 아닐텐데?”
강진호가 헛웃음을 홀렸다.
그제야 최연하가 목소리를 살짝 바꾼다.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죠.”
“괜히 힘만 빼고, 진호씨가 말하 는 대로 피해만 입을 수도 있죠. 상 황이 더 악화 될 수도 있고요.”
최연하가 담담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손놓고 그냥 지켜보고 있 을 거예요? 천천히 죽기? 느리게 나빠지기?”
“ 아니
“진호씨.”
최연하가 빙긋 웃었다.
“내가 당신 처음 꼬실 때도 진짜 힘들었거든요?”
“……아, 아니 갑자기 그게 뭔.”
“맞는 말이지 뭐. 나는 살다 살다 세상에 뭔 이런 인간이 다 있나 했 다니까. 쑥맥 같지는 않은데, 사람한 테 관심은 안 보이고, 말은 안 통하 고. 귀찮은 티 역력하고.”
“그래도 지금은 결국엔 같이 있잖 아요.”
강진호가 가만히 최연하를 바라본다.
“그렇게 될 거예요. 언젠가는. 모 두가.”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왜 웃어요?”
“아니.”
강진호가 새삼스런 얼굴로 말한다.
“당신이 여기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어서.”
“……사람이 뻔뻔해졌네. 그런 말 을 면전에서 하고.”
핀잔을 준 최연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살짝 달아올라 붉어진 최연 하의 옆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강진호가 시선을 밀려오는 파도에게 로 돌렸다.
‘다르기 때문이라……
최연하의 말이 맞다. 사람은 다르 기 때문에 서로 다툰다. 다르기 때
문에 화를 내고, 다르기 때문에 서 로 이해하지 못하다.
“……실패해도, 뼈저리게 후회를 해도.”
읊조림 같은 강진호의 목소리를 들은 최연하가 무심결에 강진호를 바라본다. 강진호의 시선이 허공의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이 아니다.”
“다시 해 볼 가치는 있다.”
그건 최연하에게 하는 말이 아니 었다. 강진호 홀로 중얼거리는 말이 었다. 최연하는 그런 강진호의 생각
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만히 입을 닫았다.
“그럼 언젠가는……
강진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실패를 극복하고 서로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다..
거기까지 말한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홀리고 말았다.
그 말이 그저 황당무계한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져서가 아니다.
‘내 이야기구나.’
그건 강진호가 지금까지 해온 것 이었으니까.
그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자신이
해온 실패를 되잡아 왔다. 다시 시 도하고, 틀렸던 선택을 바로 잡으면 서 노력하고 노력해 마침내 여기까 지 왔다.
그러니 어쩌면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의 삶이나 이 세상의 흐름이나.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그 모든 이야기가 가르키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작은 것. 한 번 실패했던 것. 그 래서 뼈저린 후회를 했던 것. 하지 만……. 결국은 서로 다른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어 줄 것.
그건 이미 강진호에게 있는 것이 다.
“ 알겠네요.”
“••••••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강진호는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최연하의 말대로 어쩌면 그의 결 정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지도 모른 다. 적당히 덮어놓고 넘어가면 곧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살 아갈 세상을 크게 뒤흔들어 놓을지 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훗날 벌어질 일을 뺀히 알면서 눈을 돌리는 건 강진호의 방식이 아 니었다.
“왜 마음에 걸렸는지 알겠어요.”
“네?”
“제가 청마 놈에게 그랬었죠. 무 인과 그렇지 않은 이의 경계를 나누 고 그 안에 무인들을 살아가게 만드 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낙원을 만들 고 무인들을 고사 시키는 것이다. 그건 무인들을 위한 길이 아니다. 결국은 그 안에서 무인들은 자신만 의 세상을 살다가 도태되어 갈거다.”
“그런데 지금 제가 지켜보고 있던 게 그것과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네요. 경계선을 긋지 않았을 뿐 이에요.”
“진호씨‘?”
“바꿔야죠.”
강진호가 하얗게 웃었다.
“벽을 허무는 방법은 하나 뿐이라 는 걸 잊었어요. 서로 더 알아야 이 해할 수 있다는 것도요.”
강진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는 더 이상 바다를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 가죠.”
“……벌써?”
“네. 이제는 괜찮아요.”
“네. 뭐 그럼.”
최연하가 군말 없이 강진호가 내 민 손을 마주 잡았다.
물론 그녀는 괜찮지 않았다. 저녁 에 먹을 식당도 알아뒀고, 아침까지 보낼 숙소도 미리 예약을 해둔 상태 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강진호가 다시 웃고 있으니까.
강진호가 기운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다른 건 다 상관없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가도, 그녀 가 알고 있는 세상이 언제부턴가 더 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해도. 이 손을 잡고 있을수만 있다면 아무 래도 상관없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낸 최연하가 강진호와 함께 걸어간다.
두 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백사장 에 길게 이어졌다.
조금은 삐뚤빼뚤하지만 그래도 보 기 좋은 발자국이.
“그런데.”
“네?”
“……뭐 하려고 하는 건데요?”
“사고 치려는 건 아니죠?”
“진호씨‘?”
••••••
“아니, 대답을 해보라고 이 양반 아. 뭘 하려는 건지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잖……. 진호씨? 진호씨? 야! 강진호! 너 어디가 인마!”
말없이 차로 달려가는 강진호의 뒤를 최연하가 뒤쫓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너머로 천천 히 해가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