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12)
마존현세강림기-2112화(2111/2125)
마존현세강림기 85권 (22화)
5장 내어놓다 (2)
브리핑실로 들어선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가 생각 한 것과 조금 다른 광경이었기 때문 이다. 언제 소문을 듣고 온 건지, 아니면 고한봉이 불러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발표를 해야 할
연단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 다.
강진호가 슬쩍 돌아보자, 고한봉 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방송으로 전달되는 워딩은 직접 보고 하는 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습 니다. 정치인들 역시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하면 세상 똑똑한 사람들인 데, 방송으로 말하는 걸 보면 멍청 하기 짝이 없어 보이죠. 제대로 전 달하기 위해서는 말씀 뒤에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간단해 보이지가 않는데요?” “편안하게 하시면 됩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편안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 고 편안하게 하면 된다니. 아무리 정치인들이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 는 게 직업이라지만, 이건 좀 과하 지 않은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대표님.”
고한봉의 목소리 톤이 달라진 것 을 느낀 강진호가 슬쩍 다시 고개를 돌려 고한봉을 바라보았다.
“대표님은 카메라를 보고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니라, 카메라 뒤에 있 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 다.”
“사람도 아닌 카메라에 대고 내 할 말만 한다는 투로 진행하는 연설 이 사람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조금 떨리고 갑갑해도 눈앞에 사람을 두고 직접 전달해야 의지가 전해지는 법입니 다.”
고한봉이 빙그레 웃었다.
“잘 정제된 인스턴트보다는 어설 픈 진심이 훨씬 나은 법이지요. 그
러니 실제로 이 앞에 수십억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하십시 오. 그에 비한다면 한 줌도 안 되는 기자들 따위 신경 쓸 이유도 없잖습 니까.”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확실히 이런 면에 있어서는 고한 봉이라는 사람은 정말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충고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강진호가 고한봉을 향해 살짝 고 개를 숙이고는 연단으로 향한다.
카메라를 보고 말을 하는 게 아
니라,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는 거라는 사실을 다시 되 새기며 말이다.
강진호가 새삼스레 의복을 정제했 다.
익숙하지 않은 정장도, 목을 조이 는 듯한 타이도 조금 더 탄탄하게 당겨 맸다. 이제껏 그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 도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강자로서의 자비로 약자에게 내미는 손이 아니라 더 많 은 이해를 구하는 손길을. 그러니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건 너무 도 당연한 일이다.
“홈.”
마지막으로 목을 가다듬은 강진호 가 연단에 가서 섰다. 자세를 잡기 가 무섭게 카메라 플래쉬가 연이어 터진다.
“잠시 촬영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강진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 지만,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스러 운 일이었는지, 모든 과정이 물 흐 르듯 자연스럽다.
“연설 중에 플래시는 자제해 주십 시오.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뒤쪽에서 피디가 연신 강진호에게 신호를 주었다. 곧 방송이 시작된다 는 의미. 강진호가 작게 숨을 들이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말로 그를 전해야 할까?
평소보다 조금 사무적인 어투? 아니면 좀 더 편안한 어투?
그와 무인들을 얕볼 수 없도록 조금은 위압적이게? 아니면 그들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 도록 조금 더 편안하게?
글쎄, 딱히 의미가 있을 것 같지 는 않다.
‘서툴더라도 있는 그대로.’
무언가를 꾸며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끝날 문제는 아니 니까. 이제 그는 길고 긴 싸움을 시 작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껏 그가 살아오면서 해온 모든 싸움을 합친 것보다 더욱 길고 어려운 싸움을.
그 기간 내내 스스로를 포장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있는 그대 로 다가가는 게 나을 것이다.
“시작합니다!”
그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들에 일 제히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작게는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
다는 의미. 그리고 크게는 지금 그 의 모습이 전 세계로 나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불빛을 보며 강진호가 입을 닫았다.
잠시 기다리던 피디가 당황해서 손짓을 할 때까지, 그리고 방송 사 고를 직감한 피디의 얼굴이 새하얗 게 질릴 때까지 말이다.
침묵을 지켜야 할 기자들이 웅성 거리기 시작하자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간 피디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턱.
뭐라도 하려 드는 피디의 어깨에 고한봉의 손이 올려졌다.
“기다리게.”
“초, 총리님.”
순간적으로 피디의 머리에 온갖 생각이 오고 갔다. 아무리 이 사람 이 대한민국의 총리라고는 하지만, 방송이란 애초에 온전히 그의 책임 이다. 방송 사고가 나면 고한봉은 허허 웃으며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는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즉각 그 손올 떨쳐 내 지 못한 것은 이 사람이 가지고 있 는 신분 때문이었다.
“잠시만.”
피디가 고한봉을 멍하니 바라보다 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 다.
그리고 바로 그때.
“반갑습니다.”
강진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강진호입니다.”
“……엄마.”
“웅?”
소파에 앉아서 과자를 뜯고 있던
강은영이 슬쩍 고개를 돌려 식탁에 앉아 있는 백현정을 불렀다.
“엄마 아들 또 TV 나온다.”
“그걸 아직도 트니? 걔들도 참 지긋지긋하다. 아무리 내 아들내미 얼굴이 잘났다지만, 이젠 나도 질리 겠다, 얘.”
“……아니, 엄마. 생방송인데.”
“웅‘?”
“엄마 아들 지금 생방 나왔다고.”
“그건 또 뭔 소리야?”
백현정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 앞으로 걸어온다. TV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강진호의 상반신을 본
백현정의 눈이 커졌다.
“……쟤 왜 저기 있니?”
“몰라.”
“또 뭔 소리를 하려고?”
“저분의 생각을 누가 감히 짐작이 나 하겠어요, 어머니.”
백현정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투로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쟤는 왜 항상 일을 못 벌여 서 안달일까, 왜.”
그녀의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만 한 일이었다.
강진호가 하는 일은 반드시 이유
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 에도 백현정은 이 상황을 쉽게 받아 들이기가 어려웠다. 강진호가 나서 면 나설수록 상처받는 것은 그 자신 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강진호입니다.] 백현정이 가만히 강은영의 옆에 앉았다.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이 무인이라 부르는 이들의 입장을 대 변하기 위해 나왔습니다.]담담한 듯한 강진호의 목소리에
백현정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 진호야.’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모 아 맞잡았다.
“저 미친 새끼…… 또 지랄이네, 저거.”
주영기가 황당하다는 둣 TV를 바 라본다. TV에 너무 익숙한 놈의 얼 굴이 나오고 있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말쑥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말 이다.
“야, 야. 니 친구 봐라. 때 빼고 광냈다, 저거.”
“……니 친구이기도 하잖아.”
“언제부터 저 또라이가 내 친구였 냐?”
주영기가 욕설을 내뱉었다.
“저 씨발, 인터넷이고 뭐고 아무 것도 모르는 원시인 같은 새끼. 기 름에 불을 질러도 유분수지.”
주영기는 안다.
무인이라는 존재들이 세상에 얼마 나 큰 반감을 주었는지. 그나마 서 로 얼굴을 맞대는 세상에서는 조금 나은 편이지만, 익명으로 만나는 넷 상에서는 말 그대로 지옥도가 펼쳐 졌다.
그 지독하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 겨우 좀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그새 를 못 참고 다 꺼져 가는 불씨에다 기름통을 들고 돌진하고 있지 않은 가.
“화끈하다, 화끈하다 했더니, 선 넘고 자빠졌네. 저러다 지도 불 타 죽는 거 몰라서 그러나?”
“……진호가 생각이 있겠지.”
“대체 언제부터 니 친구가 생각이 있었냐?”
주영기가 대노해 소리쳤다.
“그리고 이 새끼야, 너도 저 새끼 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지금 당
장 전화해서 욕이라도 받아야지. 네 가 만날 오냐오냐하니까 저 새끼가 생각 없이 저 지랄을 하는 거 아 냐.”
“내, 내가 뭐라고 진호한테 뭐라 고 해.”
박유민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돌아 보자, 주영기가 다시 소리쳤다.
“뭐긴 뭐야, 이 새끼야! 친구지! 저 새끼가 그래도 네 말은 듣는 척 이라도 하잖아!”
“아니……
박유민이 고개를 돌려 화면에 나 온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사사롭게는 한 사람의 무인으로 서, 그리고 공적으로는 앞으로는 세 상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무인들에 대한 관리를 맡은 입장 으로서, 저는 이제 더는 스스로를 숨기지 않고 세상의 전면에 나서려 합니다.]“ 진호야……
가슴이 시큰하는 기분이다.
박유민이기에 저 말이 어떤 의미 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강진호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했는지 가장 잘 하는 박유민이기에.
지금 강진호는 자신이 추구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고 해.’
이해할 것 같지만, 또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진호야.”
박유민의 뇌까림이 하릴 없이 번 져 나갔다.
“우선……
강진호가 살짝 숨을 들이쉬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지만, 막상 말을 시작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저는, 아니, 저희는 여러분의 안 전은 최대한 보장하려 합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진행 요 원들이 어떻게든 막으려 들었지만, 한 번 터지기 시작한 플래시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눈부시게 번쩍이는 플래시를 맞으 며 강진호가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의 존재 때문에 여러분이 가 지는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
니다. 이에 저희가 먼저 약속드립니 다. 여러분께서 우려하는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 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무인들로 말 미암아 벌어질 좋지 않은 사태를 막 아내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할 것입 니다.”
강진호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 았다.
저건 카메라가 아니다. 그를 지켜 보고 있을 사람들의 눈이었다.
“이를 위하여 무인들이 존재하는 국가마다 기구를 설치하여 무인들의 문제에 즉각 대응하겠습니다. 관련
한 신고와 제보 역시 각 국의 치안 기구와 다른 라인을 신설할 예정입 니다.”
잠시 숨을 고른 강진호가 말을 이어갔다.
“다만, 한 가지를 이해해 주셨으 면 합니다. 무인들의 존재가 드러난 다고 해서 새로운 범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하늘에서 떨 어진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여러분 과 다를 바 없는 사람입니다. 때로 는 실수를 하고, 때로는 죄도 짓습 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이미 알 고 계신 범죄율의 통계에는 무인들
이 저지른 범죄 역시 포함되어 있습 니다.”
다시 한번 플래시 세례가 터졌지 만, 강진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 고 말을 이어갔다.
“무인들의 범죄를 단속하고 그들 을 통제하는 기구가 생겨날 경우에 는 오히려 각국의 전체적인 범죄율 감소를 기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 니다. 음지의 양지화가 여러분의 삶 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강진호의 모습과 강진호의 목소리
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변해가는 세상에 저마다 각각의 불안을 안고 있던 이들이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 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