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17)
마존현세강림기-2117화(2116/2125)
마존현세강림기 86권 (2화)
1장 돌아오다 (2)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단 상에서 내려온 강진호가 그를 기다 리고 있는 이들에게로 다가갔다. 장 민과 바토르, 방진훈, 그리고 이현수 가 입을 꾹 다물고 그런 강진호를 바라본다.
강진호가 네 사람을 보며 제 머리 를 긁적였다.
“조금 과했나?”
네 사람은 모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각각 달랐다.
누군가는 할 말을 잃어서, 누군가 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
하지만 이현수가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단상에서 내려오는 강진호의 표정이 너무도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 치 오랫동안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 은 사람처럼.
“아니요.”
이현수가 고개를 가볍게 저어 주었 다.
“잘하셨습니다.”
«으 하
강진호가 그런 이현수를 슬쩍 바라 보고는 씨익 웃었다.
“내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는 모르 겠지만…… 이 실장이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은 편해지는군.”
“그럼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강진호가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에게 쏟아지던 플래시 세례가 조 금 더 격해진다.
“……그럼 된 거겠지.”
강진호의 목소리에는 망설임도, 후 회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상에 서기 전까지 머뭇대던 모습과는 달리 말 이다.
‘그랬지.’
생각해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강진호는 언제나 무언가를 결정하 기 전에는 숙고하고 또 숙고하지만, 막상 한 번 결정을 내린 일은 주저 없이 실행하던 사람이니까.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면, 더는 망설일 이유 가 없다는 거겠지.
“가시죠.”
“그래.”
강진호가 대기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 주위를 총회의 이사들이 호위하 듯 따른다. 다급하게 강진호의 뒤를 쫓으려 하던 기자들은 바토르가 살 짝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는 순
간, 모두 발을 멈췄다.
“쯧.”
바토르가 혀를 차고는 강진호에게 따라붙었다.
저벅저벅.
대기실로 향하는 내내 그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복도 를 지나 대기실로 들어간 강진호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커피를 집어 들었다.
“목이 타더라고.”
“……그럴 만하죠.”
“두 번은 못하겠어.”
강진호가 고개를 한 번 내젓고는 커피를 단번에 마셨다.
“ 조금••••••
“ 음?”
“……말이라도 미리 해주셨으면 좋 을 뻰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피식 웃었 다.
“그러고 싶었지.”
“그런데 왜……
“못할 것 같았거든.”
“……말을요?”
“아니. 결심을.”
강진호가 이현수와 그 뒤에 있는 이사들을 바라보았다.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건 이해했는 데,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어.”
“먼저 말을 꺼내서 하면 안 되는 이유 같은 걸 들어버리면 정말 못할 것 같더라고.”
강진호가 겸연쩍은 얼굴로 제 머리 를 긁었다.
“그래서 그랬어. 따지고 보면 도망 친 거지. 설득할 자신이 없었거든.”
이현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도망이라……. 이런 걸 도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맨몸으로 전 쟁터로 뛰어들었다는 말과 같은 소 리 아닌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으셨습 니다, 마존이시여.”
그때, 장민이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교도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마존 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그저 명하 시고, 그저 이끄시면 될 일입니다.”
“고맙긴 한데……
강진호가 말을 하려는 순간, 장민 이 그 말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 었다. 좀처럼 없는 일, 그렇기에 더 그 말에 집중하게 된다.
“알고 있습니다, 마존이시여. 세상 모든 무인들이 교도 같지 않다는 것 을. 그들은 여전히 마존을 의심하고, 마존께서 하시려는 일을 불만에 찬 눈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사실을 말
입니다.”
“그렇기에 교도는 광신합니다. 교 도는 묻지 않습니다. 마존께서 그런
교도들의 성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 만 마존이시여, 교도들은 자신의 삶 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동시에 마 존께 힘이 될 수 있는 삶을 원합니 다.”
장민이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보았 다.
“때로는 옳기 때문에 따르는 이들 보다 그저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들 의 존재가 힘이 될 때가 있는 법입 니다. 저희는 세상 모두가 마존을 외면하는 순간, 마존께 힘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입니다. 그 사실 을 잊지 가시옵소서.”
“마존께서 가시밭길을 걷고자 하신 다면 앞에서 그 가시를 치우는 이들 은 당연히 교도들이 될 것이고, 그 가장 앞에 선 이는 제가 될 것입니 다.”
강진호가 입을 꾹 닫았다.
아마 평소의 강진호였다면, 그 말 에 한숨을 내쉬었을지도 모른다. 그 가 교도들에게, 그리고 장민에게 바 라는 것은 이런 맹목적인 충성이 아 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래, 지금만은 조금 다른 기분이다.
“……고맙다.”
많은 말을 생각했지만, 결국 입 밖 으로 나온 것은 이 한마디였다. 장 민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는 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 모두가 적으 로 돌아선다고 해도 저들만은 그의 곁에 남을 것이라는 말이 그저 고마 웠다.
“거.”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방진훈이 어 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 하지도 않은 일로 생색내지 마십쇼, 장로님. 누구는 죽어라고 만
든 무공 고스란히 다 빼앗기게 생겼 는데.”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뭐요?”
방진훈이 눈을 부라리자 장민이 혀 를 찼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마존을 모셨 다는 말이더냐! 교는 마존께서 원하 신다면, 교의 마공을 남김없이 모조 리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
“마공 같은 거 줘도 안 익히니까 그런 거겠지!”
“이놈이 뭐라고?”
강진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미안하게 됐어, 방 이사. 먼저 상의했어야 하는 건데.”
방진훈이 뭔가 말을 하려는 듯 강 진호를 바라보다가 킁, 콧김을 내뿜 었다.
“됐습니다. 이미 이리된 건데요, 뭐.”
“어차피 만든 무공 하나라도 더 많 은 사람이 익히면 좋은 거지. 거꾸 로 생각하면 내 제자가 늘어나는 것 아닙니까?”
“꿈보다 해몽인 것 같은데.”
“이 실장, 너는 조용히 해라. 너, 요새 부쩍 기어오른다?”
“예입.”
이현수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방 진훈이 이를 빠득 갈며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만, 애들이 반발하는 건 감안해 주셔야 합니다. 제가 막아보긴 하겠 지만, 원래 제 손에 들어온 걸 남 주는 게 제일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 까?”
“알고 있어.”
“그래도 뭐……
방진훈이 장민을 슬쩍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마교만은 못해도 총회 놈들도 회 주님을 따르는 놈들이니까. 다 이해 할 겁니다. 이게 뭐, 회주님만 잘되 자고 하는 일도 아니고.”
팔짱을 끼고 있던 바토르가 시큰둥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는 눈에서 불 뿜을 것 같더니.”
“아니, 뭐,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인 데……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듣고 있다 보니까, 회주님 말도 틀린 말이 아니더라고요. 우리도 내 놓을 건 내놔야 하는데, 우리가 내 놓을 게 이것밖에는 없잖습니까. 어 설픈 거 대충 포장해서 내놓으면 생 색낸다는 말만 들을 거고.”
“그렇긴 하지.”
“그렇다고 장로님 말처럼 마공을 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쓸 만한 거라고는 총회 것밖에 없다는 걸 저 도 아니까.”
방진훈이 못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회주님이 아닌 다른 놈이 이런 짓
을 했으면 누구 하나는 죽었을 테지 만……. 사실 이건 원래 총회 것도 아니고, 제 것도 아니죠. 회주님이 주신 건데, 그걸 회주님이 쓰겠다는 걸 뭐라고 하겠습니까?”
“……내 건 아냐.”
“뭐,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이고.”
말을 하며 마음을 정리한 듯 방진 훈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다.
“여하튼 불만은 안 가지겠습니다. 대신 하나는 약속해 주십시오, 회주 님.”
강진호가 담담한 시선으로 방진훈 을 마주 보았다.
“저야 뭐 생색낼 것 하나 사라진 거지만, 애들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는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렇 게 느껴질 겁니다. 무학이란 그런 거잖습니까.”
“……그렇지.”
“놈들은 무인으로 살기 위해서, 그 리고 총회의 소속으로 남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았습니다. 그 렇게 얻은 무학인데, 그걸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들과 나눠야 한다는 걸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방진훈이 잠시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놈들이 이걸 내놓는 대신 더 많 은 것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 다.”
방진훈의 간절한 눈을 본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될 거야.”
“그렇게 되어야 하고.”
방진훈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 다. 그 역시 하고 싶은 말은 많다. 하지만 이 이상은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건 강진호가 무인들을 위해 하 는 일이니까. 딴지를 걸어 댈 사람은 그 말고도 넘쳐 난다. 그러니…….
‘적어도 나라도 도와야지.’
“애들은 제가 다독이겠습니다. 그 러니까,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하 고픈 대로 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방진훈이 슬쩍 뒤 로 한 발 물러났다. 자기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말이다. 그러자 여전 히 불만이 큰 듯 팔짱을 끼고 있던 바토르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솔직히 이게 뭐 하는 짓거린
지 모르겠다, 주인.”
“이해라는 것은 의지가 있는 이들 에게나 의미가 있는 거지. 저들이 무학을 안다고 해서 우릴 이해하려 들겠나?”
“ 그건••••••
“하지만.”
바토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겠지.”
바토르가 커다란 어깨를 으쓱했다.
“말했다시피 나는 주인을 믿는다.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주 장을 믿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 를 믿는 거지.”
“내 생각과 다르다 해도 상관없다. 결국 나는 주인이 옳은 길로 갈 것 이라 믿는다. 그러니…… 나도 최선 을 다해 돕겠다. 언젠가는 내 생각 이 틀렸다는 걸 주인이 증명해 줬으 면 좋겠군.”
강진호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웬만큼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시 작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의
독단을 탓하지 않고 있었다. 분명 내심으로는 불만이 넘쳐 날 텐데도 말이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회주 님.”
이현수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 다.
“우리는 지금까지 회주님이 걸어온 길을 함께 봐온 사람들입니다. 그리 고 그 길을 같이 걸은 사람들이죠. 항상 저희가 어렵다고 말하는 일들 은 회주님은 결국 증명해 왔습니다.”
“……이번만큼은 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 더 의미가 있겠죠.”
이현수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 다.
“지금까지는 회주님이 모두에게 힘 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회주 님이 지금껏 지켜온 이들이 회주님 을 도울 겁니다.”
그 말에 강진호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가 그 모두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함께해 온 사람들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맙다.”
더없이 힘겨울 싸움을 앞에 두고도 마음이 무겁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그리고 이 눈빛이 있기 때문일 것이 다. 그리고 이곳에는 없어도 세상 곳곳에서 그를 믿어주는 이들이 있 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가자, 총회로.”
“예, 회주님.”
문은 강진호가 열었다.
하지만 그 열린 문을 나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이들은 강진호 가 아니라 바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 가야 할 무인 모두일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걷는다면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발을 내디디는 강진호의 입가에 작 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흑왕의 죽음 이후로 처음 지어보 는, 편안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