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12)
마존현세강림기-212화(212/2125)
마존현세강림기 9권 (13화)
3장 분노하다 (3)
그 목소리는 음산했다.
이현주는 살면서 처음으로 음산하 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히 으스스하다는 뜻이 아니다. 귓가에 악마가 더운 숨을 내뿜 으며 차고 끈적한 혀로 귓가를 간질
일 때나 음산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현주는 지금 그 ‘음산 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뱀의 눈동자를 보아 버린 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도 지근거리라 달아날 상황이 아니 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입을 막고 몸을 숙인 채 포 식자의 눈길이 이쪽으로 향하지 않 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이현주가 딱 그런 처지 였다.
이현주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공포에 짓 눌렸다. 그렇기에 그녀의 육체도 그 녀의 통제를 벗어났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총회 회주의 손녀다. 단순 히 그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도 노력한 결과, 지금은 총회에서도 무시 못할 지위를 얻어낸 사람이다.
그런 만큼 수많은 이들을 보았다. 그녀가 속한 곳이 총회인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무인들도 수도 없이 만 나고 대화했다. 때때로는 그들과 겨
루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존재감에 익 숙한 이현주가 그녀보다 어려 보이는 이 청년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다 고?
있을 수 수 없는 일이다.
자꾸만 움츠러드는 육체와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이성이 서로 싸 웠다. 하지만 그 싸움은 싱겁게 끝 이 났다. 담뱃불을 사이에 두고 붉게 빛나는 강진호의 두 눈을 보는 순간, 그녀의 이성 역시 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달아나야 한다.
눈앞에 있는 이자와 적대해서는 안 된다.
강진호가 천천히 그 입을 열었다.
“대화를 하겠다고 했나?”
단순한 되물음이었다.
하지만 이현주는 그 어투에서 지 금 강진호가 무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강진호의 손이 천천 히 뻗어진다. 칠흑처럼 시커먼 어둠 에 둘러싸인 손이 이현주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이현주는 느릿하게 다가오는 손을 보면서도 저항할 수 없었다.
강진호의 손이 이현주의 머리 바 로 앞에서 멈춰 섰다.
“한번 경고했다.”
“내게 관여하지 말라고.”
이현주의 등이 축축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았던 걸까? 내 말이 말이야.”
멈췄던 손이 다시 천천히 움직여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다. 강진호가 이현주의 목을 잡고 자신 쪽으로 끌 어당겨 눈을 마주 보았다.
“정보를 준다고 하면 내가 좋다고
기뻐할 줄 알았나? 그게 아니면 너 희와 친분이라도 쌓아줄 줄 알았 어?”
“그게 아니라……
“입 떼도 좋다고 말한 적 없어.”
이현주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놈은 미쳤다.
이런 식으로가볍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총회의 모든 역량을 기울여 조심하고 또 조심해 서 접근해도 어찌될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왜 무련이 이자를 노렸고, 왜 영
남회가 그 살인마를 풀어놓으면서까 지 견제하려고 하는지를 먼저 생각 해야 했다.
“매번 말했다, 내게 접근하지 말 라고. 그런데 너희는 내 말을 이해 하지 못한 모양이군. 이게 부탁이나 권고 같은 걸로 들린 모양이지?”
낮은 웃음소리가 지하 주차장을 천천히 울렸다.
귓가로 파고드는 웃음소리를 들으 며 이현주는 입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이대로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남자가 자신의 목을 꺾어버릴 것이 라는 섬뜩한 느낌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미쳤어.’
외도와는 다르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살육과 본능에만 매달리는 마인과는 다르다. 이놈은 멀쩡하게 미쳤다.
“저, 저는……
그 순간, 강진호가 그녀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더니 주차장 기둥 에 그녀를 처박았다.
쿵!
건물이 통째로 울리는 것 같은 커 다란 진동이 일며 먼지들이 일제히 비산했다.
강진호가 고통에 겨워 몸을 뒤트는 이현주에게 바짝 다가가 입을 열 었다.
“내가 입을 열어도 좋다고 했나?”
이현주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강진호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 지도 알 수 없고, 왜 자신이 이곳에 서 이런 꼴을 당하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의 마음에 강진호를 이 용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다. 적당히 정보를 주고 미끼를 풀어놓으면 총회에 호의적인 자세로
나올 것이고,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영남회와는 적대하게 될 것이다.
강하다면 좋은 일이고, 강하지 않 더라도 충분히 이용가치가 있었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강진호가 눈 치챘다면 기분이 나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짓지도 않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걸 어떻게 납득하라는 말인가.
“얽히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도 굳 이 자꾸 사람을 귀찮게 하는군. 그 리고 이제는 이런 일까지 벌어졌지. 그래서 내가 묻고 싶은데 말이야.”
어둠 속에서…….
강진호의 하얀 이가 드러났다.
이현주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 러내렸다. 그 이가 금방이라도 자신의 물어뜯을 것만 같아서 밀려오는 공포를 참아낼 수가 없었다.
“너희는 정말 내가 너희의 세계로 갔으면 좋겠다는 건가? 정말 그걸 원해?”
강진호가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감당할 수 있겠어?”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조규민은 강진호가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한숨을 쉬었다.
엑셀을 꽉 밟으면서 조규민은 담 배를 입에 물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그를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 것은 강진호의 주변에 일이 생겼기 때문 이 아니었다.
강진호가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
는 소식을 듣는 순간, 조규민의 머 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어쩌다 그런 일에 휘말렸는가’가 아니라 ‘저질렀 구나’였다.
곧이어 그의심을 풀게 된 생각도 ‘강진호씨는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할 리가 없 지’였다.
강진호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경찰 에 잡혀가도록 혼적을 남기지는 않 았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것이 조규민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강진호는 필요하다면 살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기도 하지.’ 중국에서 그가 본 것이 있으니 부 정하기도 어려웠다.
이번 일은 무의식중으로 그가 강진호에게가지고 있던 인식이 표면으로 튀어나온 것뿐이다.
조규민의 생각에 강진호는 좋은 사람이다.
힘을가지고 있으면서 함부로 그 힘을 휘두르려 하지 않고, 주변인들
에게 권위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자신의 힘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이진 않더라도도우려고 애쓰 고, 타인을 깔아뭉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권력이라는 것을가진 사람이 얼마나 그 권력에 휘둘릴 수 있는지를 몇 번이나 체감한 조규민이 다 보니 강진호가 얼마나 담백한 사람인지는 충분할 만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규민은 한가지를 더 알고 있었다.
강진호의 다른 부분을 말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고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그의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
절대로 나를 물지 않을 것 같은 맹수라고 해도 그 맹수의 주변을 서 성이다 보면 언젠가는 사고가 날 것 같은 심정.
‘사자에 비교하기도 민망하군.’
강진호의 안에 잠재되어 있는 괴 물에 비한다면, 사자는 차라리 고양 이쯤으로 귀엽다. 그것도 아기 고양 이쯤으로.
“별일이 아니어야 하는데……
요즘 들어 자꾸 강진호의 주변에
사건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전역하 기 전까지는 딱히 사고라고 할일이 별로 없었는데, 전역을 하더니 갑자 기 사고가 마구 터진다.
그리고 이 사건들의 원인이 강진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강진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니 까.
지금까지는 학교와 군대라는 한정 되어 있는 장소에 격리되어 있던야 수가 사회에 풀려 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그 파장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 휴우……
카페에 거의 다도착하자 조규민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주차할데가…… 응?”
카페 앞에 주차할 곳을 찾던 조규 민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저 옆쪽에서 일남일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 명은 강진호고, 다른 한 명은 조규민이 본 적 없던 사람이다.
여자의 얼굴을 아름다웠다.
고풍스러워 보이는 개량 한복이 시선을 잡아끌었고, 땋아 올린 머리
는 이 사람이 지금 어디서 코스프레 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의 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모든 어색함을 한번에 다 날려 버릴 정도로 여자의 얼굴은 매력이 넘쳤다.
하지만 지금 조규민의 시선은 그 여자에게 머무르지 않았다. 아니, 머 무를 수가 없었다.
조규민의 시선은 강진호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제길.’
몇 번 보지 못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 표정을 볼 때마다 반드
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일이 터졌다. 강진호와 함께한 세월과 그의 통찰력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누군가 폭탄에 불을 붙인 것이다.
조규민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차를 대고는 차문을 열었다. 주차선을 반쯤 물어 어설프게 주차가 되었지 만, 지금 그는 다시 차에 타 옮길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조심스레 앞으로 다가가자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등골이 서늘하다.
아니, 서늘한게 아니라 척추 아
래쪽부터 전기가 짜르르 하고 올라 오는 기분이다. 짐승 같은 눈을 하 고 있는 강진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온다.
그가 이럴진대, 다른 사람은 어떻 겠는가.
“오셨어요?”
상대가 조규민임을 확인한 강진호가 표정을 푼다. 조규민은 그제야 바짝 들어간 힘을 뺄 수 있었다.
두가지 기분이 공존한다.
이 사내가 얼마나 무서운 자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공포와, 그만큼 분노해 있음에도 미소를 지어줄 만
큼 강진호가 자신을가깝게 생각하 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
강진호가 세상을 향해 그어놓은 선 안쪽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생각 이 들자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쪽 분은?”
심신이 안정되자 옆에 있는 여자도 눈에 들어온다.
“음…..”
강진호는 별말 없이 고개를 돌려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무리겠네.’
귀신이라도 본 듯 바짝 얼어 있는
이현주를 보자 그녀의 입에서 무언가를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처럼 변한 강진호와 독대를 한 모양인데, 그 꼴을 당하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건 힘들 것이다.
“말이 조금 길어질 수도 있는데……
“그럼 저는 좀 기다리겠습니다.” 조규민의 말에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조 실장님에게까지 숨길 만한 일은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조규민은 이때 절대적인 예감 같
은 것을 느꼈다.
이 안에서 하는 대화에 끼는 순간, 이제까지 그가 알아오던 세계가 붕괴될 것 같은 절대적 예감.
어쩌면 지금 발길을 돌리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강진호와 그는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하지만…….
“예. 들어가시죠.”
조규민은 웃으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설사 이제부터 그가 보는 세계가 지옥일지라도 이 남자의 옆에 설 수 있다면 나쁜 거래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