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24)
마존현세강림기-224화(224/2125)
마존현세강림기 9권 (25화)
5장 추적하다 (5)
강진호는 조금 멍한 시선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왔다. 저녁이 되자마자 아버지가 그를 집으로 보낸 것이다.
퇴근해도 할일이 없다고 말해보 았지만, 네가 여기 있어도 할 일은
없다는 말을 납득하고야 말았다.
‘죽었군.’
반쯤은 예상한 일이지만, 조금 아 쉽게도 느껴졌다.
‘그리 쉽게 죽어서는 안 됐는데……
갑갑한 마음이 든다.
수많은 살인마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한 사람이 상상 이상의 죄를 저질렀을 때, 그 죄를 단죄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같은 자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를 어떻게
벌해야 할까?
현대의 사법 체계로는 기껏해야 사형.
하나의 죽음으로 그 많은 죽음을 보상할 수 있을까?
강진호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고통을 주었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었고, 빛과 소리를 빼앗았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온다는 말을 해주었으니, 외도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어둠으로가득 한 세상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1분이 1년처럼 느껴졌겠지.
강진호는 고개를 흔들어 외도에 대한 상념을 털어냈다. 그 단죄가 적절했든 적절하지 않았든 이미 지 난 일이다.
예전의 강진호였다면 이미 지나 버린 일에 대해 이리 생각하지는 않 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자 꾸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약해져서?
살인마를 농락한 것이 마음에 걸 리는 걸까?
아니면…….
뭔가 미진한 느낌이 자꾸 남았다.
‘ 피곤하군.’
강진호가가만히 눈을 감았다.
피로가 몰려오는 느낌이다. 강진호가 육체적인 피로를 느낄 리는 없 으니, 아마도 정신적인 영역일 터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 이런저런 사건이 많았다고는 하나 중원에서 겪은 목숨을 건 격전들에 비한다면 별것 아니라고 해도 좋을 일들이다. 그런데 왜 이 런 피로감을 느끼는 걸까?
그때, 우웅- 하고 전화가 울렸다.
“ 여보세요?”
[진호야. 나야.]“응. 왜?”
[바쁘냐?]강진호는 카페에 앉아서 박유민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박유민이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 어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뭔가 엄청 오랜만인 거 같은데?”
“저번에도 봤잖아.”
“그래도 이상하게 오랜만인 것 같 단 말이야.”
강진호 역시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보자고 했어?”
“ 흐음.”
박유민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 았다.
“……왜?”
“비싼 몸이신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꼭 이유가 있어야 너를 볼 수 있다니…… 참 서글픈 현실이 다 싶어서 말이야.”
“음……”
강진호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박유민의 말이 맞았다. 그냥 심심 하면 불러내서 놀 수 있는 사이였는데, 군대를 전역한 이후로는 그만큼 친밀함을 느끼지 못한 것 역시 사실 이다.
‘반성해야지.’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내버려 두 면 농익는 것이 아니라 썩어 문드러 진다.
가족이 아닌 이상, 아니,가족이 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만나고 대 화하지 않으면 어색해지는게 사람이다.
“표정이 왜 그래? 농담한 거야.”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농담으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박유민이 주문한 음료를가져다 쪽쪽 빨았다.
“요즘 바빠?”
“하는 것 없이 바쁘네.”
“바쁘기도 하겠지. 새로가게 내는 것도 한창 준비하고 있을 것 아 냐?”
찔린다.
사실 그 일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조규민에게 모조리가져다 맡
기고는 카페에서 알바나 하면서 시 간을 죽이고 있었다고 말하면 무슨 대답이 돌아올까?
“그냥 요즘 별일 없나 싶어서. 전 화로 하기에는 좀 애매하고, 시간 괜찮으면 얼굴이나 보자 싶어서 전 화했어.”
“그래, 잘했다.”
“애들도 너 보고 싶어 하는 눈치 고.”
강진호는 박유민의 시선을 피해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는군.’
보육원의 일에 그리 열정적으로 나서서 재단까지 세우려 한게 엊그 제 같은데, 조금 일이 생겼다고 해 서 보육원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성심의 아이들이 얼마나 그를 기 다리고 있을지를 생각하니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다.
‘쉽지 않구나.’
이제는 적응을 많이 했다고 생각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관 계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은 강진호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 주변에 벌어지는 일 하나도 제
대로 감당하지 못해서 버벅거리는데 원장 수녀님이 말씀하신,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나 있을지의문이었다.
강진호는가만히 눈을 감았다.
‘뭘 하고 있던 거지?’
중국을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버지의 일을 돕고, 창업을 준비한다.
뭔가 하는 건 많지만, 그 어느 것도 핵심을 꿰뚫지는 못했다. 지금 그가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이가 되는 것이다.
‘잊고 있었나?’
잊지는 않았다.
다만, 미뤘을 뿐이다.
미뤄서는 안 되는 일을 말이다.
강진호가 헛웃음을 홀려내고는 박 유민을 바라보았다.
“왜?”
“아니, 아니야.”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박유민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유민을 만나지 못하고, 성심을 알지 못하고, 원장 수녀님을 알지 못했다면…… 자신은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차인철이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강진호의가슴속에는 여전히 괴물 이 살고 있고, 그 괴물은 지금도 밖으로 나오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 었으니까.
박유민은 강진호의 반응에 영문을 몰라 했다.
그의 말 한마디가 칼날같이 곤두 서 있던 강진호의 신경을 무디게 풀 어놓았다는 것을 그는 결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갈까?”
“ 응?”
“성심 말이야. 애들이 보고 싶어 한다며?”
“야,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지금 네가 성심으로가버리면 내가 괜히 잘 놀고 있는 애 끌어내서 억 지로 끌고가는 꼴이 되어버리잖아. 아냐, 아냐. 다음에, 다음에가자.”
“애들이 보고 싶어 한다며?”
“보고 싶다고 다 볼 수야 있나. 그건 됐어.”
“그래?”
강진호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들썩이던 엉덩이를가라앉혔다.
성격이 성격인 탓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해버려야 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지를 못하겠다. 하지만 박유민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지금은 참을 수밖에.
“너 학교도 한번 안 들렀더라?”
“음…..”
강진호가 어색하게 얼굴을 돌리자 박유민이 빙긋 웃었다.
“천하의 강진호가 그런 표정도 다 하네. 사회 적응이 쉽지 않은 모양 이야?”
“ 너는?”
“ 나?”
“그래. 너는 뭐하고 있는데?”
“나야 프로 준비하고 있지.”
“생각보다 잘 안 되냐?”
저번에 이미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리 진척이 없는 것 같 았다.
“음, 무턱대고 시작할 수는 없으니까.”
“왜? 원래 너 처음 프로게이머 할 때도 무턱대고 시작했잖아.”
“그거랑 좀 다른게…… 음.”
박유민이 조금은 민망한 듯 입을 열었다.
“처음 내가 프로게이머를 할 때는
나에게 기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 었거든. 너 빼고는 내가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나는 네 기 대에만 부응하면 됐어. 그리고 내가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네가 나를 비 난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렇지.”
“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좀 달라졌 거든. 내가 그래도 프로게이머 생활 하면서 팬이 좀 많이 생겼잖아. 그런데 내가 다른 종목으로 전향한다 고 하니까 시선이 나뉘는 거지. 거 기서도 예전 갤럭시에서 보여줬던
만큼 해줄 거라는 기대와, 배신하고 갔으니 폭망하라는 원성이랄까.”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닥부터 기어 올라가도 상관없 지만, 그래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 이 있으니 처음부터 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 그래서 연습을 좀 더 하는 거야. ‘박유민은 다른 걸 해도 박유민이구나’ 하는 말을 듣고 싶으니까.”
“..그냥 네가 둘 다 잘하고 싶
은 거 아니냐?”
“예리한데?”
강진호는 나직하게 웃었다.
‘굳건하네.’
강진호가 이리저리 휩쓸리는 것과는 다르게 박유민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알고 거기에 맞춰 나 아가고 있었다. 그 결과가 좋든, 좋 지 않든 삶을 대하는 자세가 강진호 보다는 훨씬 어른스럽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반도 살지 않은 아이에게 그러한 점을 보고 나자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정신 차려야지.’
강진호가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 밥은?”
“밥은 됐어. 어차피 저녁 먹었을 거 아냐?”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밥은 됐고,게임이나 하러가자.”
“게임?”
“그래. 너 요즘 엄청 바쁘게 살더 라. 그런데 스트레스는 풀고 있어?”
“……스트레스?”
“네가 아무리 철인이라도 그렇지, 사람은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않으면
힘든 법이야.”
그래서인가?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동안은 딱히 문제가 없 었는데, 왜 이제 와서 피로를 느낀 단 말인가.
“오늘은 말고, 다음에 보육원에 한번씩 들러. 일하러 오라는게 아니라, 거기가 어쩌면 네게도 편한 장소일 수도 있으니까.”
“……편한 장소?”
“네게 아무것도 바라는게 없는 애들이 그냥 널 좋다고 해주잖아. 그게 사람에게 위안이 될 때가 있
어. 비교하긴 그렇지만, 강아지 같다 고나 할까?”
박유민이 키득대며 웃었다.
강진호는 걸음을 멈추고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였나?’
원장 수녀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의식적으로 보육원으로는 발길을 돌 리지 않았다.
무겁고 막중해서.
그분이 강진호에게 남긴 것이 너 무도 무거운데, 그걸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
어쩌면 그동안의 강진호는 그 작
은 녀석들에게 위안을 받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적과 아군을 떠나, 그저 바라볼 수 있는 이들에게서 말이다.
가족과는 다른, 그 어떤 것.
“박유민.”
“……응?”
“원장 수녀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말이다.”
박유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약한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했거든.”
“응.”
강진호가 말을 멈추고가만히 시 간을 보냈다.
하지만 박유민은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내가 그리될 수 있을까?”
박유민이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 였다.
“될 수 있을 거야.”
“생각 좀 하고 말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에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거지. 왜냐면……
박유민이 오글거린다는 듯이 어깨를 잡고 부르르 떨었다.
“난 벌써 네가 손 내민 걸 본 적 이 있거든. 그때도 했는데, 지금이라 고 못할게 없잖아.”
“내가 손을 내밀었다고?”
“그래.”
“ 언제?”
박유민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한 손을 들어 과장된 동작으로 자신을가리켰다.
“ 나.”
박유민의 썩소가 너무 적나라해서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러니 쓸데없는 고민 하지 말고
오늘게임에서 처 발릴 준비나 하시 지.”
“……많이 컸네, 박유민.”
“오랜만에 갤럭시 한판해? 지는
쪽이 겜비 내고?”
“돈 많이 벌었나 보지?”
“가자.”
앞서 걸어가는 박유민을 보며 강진호는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편해졌네.’
하늘을 올려다보니 원장 수녀님이 그를 향해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 더 노력해 볼게요.’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자.
그럼 언젠가는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스스로 자신을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곳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