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32)
마존현세강림기-232화(232/2125)
마존현세강림기 10권 (8화)
2장 한가하다 (3)
조규민은 컴퓨터를 보며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화면으로 보이는 각종 자료와 수 치들, 그리고 각종 계획서들을 보며 타이핑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일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직장인의 매력이 절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양 소매를 걷어 올리고 진하게 탄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쉬지 않고 자료를 확인하고 타이핑을 친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시간이 새벽 네 시라는 것을 제외 하면 말이다.
“ 끄으으으응.”
조규민이 아메리카노를 내려놓고는 머리를 감쌌다.
시간이 새벽 네 시건만, 일이 끝 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어찌 보면 서글프고, 어찌 보면 우스웠다.
‘습관이란 건 무서운 거라더니……
조규민은 완벽을 자신했다.
맡지 않았으면 모르되, 일단 한번 일을 맡으면 티 한 점 보이지 않는 완벽한 일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 조규민 아니던가.
완벽한 입지를 선정하고, 배달이 되지 않으면 업소를 내주기 힘들다는 프렌차이즈 본사로 찾아가 설득 하고 조율하고, 거기에 배달 불가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프리미 엄 매장이라는 개념을도입하여 샐 러드 바를 강화하는 것까지 승인을 받았다.
그 외에도 영업시간과 필요한 종
업원의 수, 월 매출 예상치와 순이 익 예상치까지 모두도출하여 자신 만만하게 보고를 하러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조규민은 입사 후 처 음으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보고서를 보고 말았다.
“야, 이 미친놈아! 능력을 보자고가게를 열라니까 왜 회삿돈 처발라 서 돈 벌게 만들어주고 있냐!”
그러게요, 회장님. 제가 왜 그랬을까요?
습관이란게 무섭다고 하던가락
이 있다 보니, 뭐든 좋고 깔끔하며 완벽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이 일은 이런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건데 말이다.
“ 끄으으으응.”
조규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세상이 일부러 일을 못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다니, 살면서 이런 경 험은 해본 적이 없단 말이다.
최소 비용의 최대 효율이 명제인 기업에 들어오기 전부터 무조건 성 적을 잘 받아야 하고, 레포트는 ‘길 지만 쓸데없는 내용이 없어 길지 않게 느껴지며, 그 안의 내용들은 깔
끔하고 함축적이지만 결코 교수님이 보기에 대충한 것처럼 보이지 않도 록 길게’라는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명제에 맞춰 써온 조규민 이 아닌가.
조규민이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다크 서클이 아무래도 코를 뚫고 마의 입술 라인까지 접근한 느낌이 든다.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는 것도 난 해한 일이지만,가장 조규민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은 시일이 촉박하 다는 점이었다. 처음 황정후가 말을 하고 강진호가 허락을 한 이후로 시
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 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이렇게까지 걸릴 줄이야.
거의 이미 완료한 인테리어를 다시 뜯어내고 프렌차이즈와의 계약을 위약금까지 물어주며 되돌렸다.
그런 치욕을 겪고도 아직 보고서 작성이라는 커다란 산이 남아 있었다.
‘아침까지는 끝낸다.’
조규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먹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두고 커피믹스를 종이컵에 타 온 조규민
이 커피를 후루룩거리며 미친 듯이 타이핑을 계속 쳤다.
해가 뜨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새 계획서를 완성한 조규민이 멍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다가 출력을 시작했다.
“아이고…… 허리야.”
밤샘이라는게 한두 번 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특히나 힘든 느낌 이었다. 지금까지 보고서를 냈다가 까이고 다시 써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조규민은 머리를 휘휘 흔들고는
보고서를 챙겨 회장실로 향했다. 이 즈음이면 황정후가 이미 출근을 했을 시간이다. 회장실 앞을 지키고 있는 수행 비서들에게 회장님이 안 에 계신가를 물어보려는 찰나, 회장 실의 문이 열리더니 황정후가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조규민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 사를 하자 황정후가 위아래로 바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다 했어?”
“예. 여기 있습니다, 회장님.”
보고서를 한 손으로 받아 든 황정
후가 혀를 찼다.
“전자 보고 하라고 하지 않았나?”
“웹으로도 올려두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정후가 조규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고는 말했다.
“수고했어. 퇴근해.”
“……예?”
“그 상태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오늘 하루 빼줄 테니까 집에가서 씻고 잠이나 자. 내일은 보고 올린 대로 빠릿하게 일하는 조건이야.”
조규민이 당황한 얼굴로 황정후를
바라보았다.
“뭐해?”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 몰골로 일을 좀 더 하고가겠 다느니, 할일이 남았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하지 말고, 빨리 퇴근해. 알았어?”
“ 예.”
“수고했어.”
황정후가 조규민을 보며 피식 웃 더니 앞으로 걸어갔다. 앞에서 대기 하고 있던 수행 비서들이 엘리베이 터 문을 열자 황정후가 안으로 들어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조규민은 그 광경을 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영화 봐야지!’
퇴근은 하지만 잘 생각은 없는 조규민이었다.
“쯧쯧.”
황정후가 차량 뒷좌석에 앉아서가만히 보고서를 넘겨보았다.
‘잘 정리해 왔군.’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하면 될 일을.
“가끔 사람이란 건 자기 능력과는 상관없이 멍청한 일을 저지른단 말 이야. 어찌 생각해?”
보조석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실수를 통해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 겠죠.”
“그럼 이 일을 실수 정도라 생각 하면 될까?”
“조 실장의 강진호에 대한 애정은 알아줘야 할 정도니까요. 정확하게 능력을 측정할 수 있게 판을 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장님의 눈
에 강진호의 능력이 돋보일 수 있게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입니다.”
“흐음,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 나?”
“저 말씀이십니까?”
보조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묻어났다.
“저라면 대충했을 겁니다.”
“ 대충?”
“예. 사실 능력의 측정이라는 것은 그럴 만한 사람에게 해야 하는 겁니다. 이미 능력이 증명되어 있는 사람에게 굳이 능력을 증명하라고
할 필요는 없죠. 제가 보기에 이번 일은 잡스에게 휴대폰 매장을 하나 주고는 휴대폰을 팔아보라고 하는 것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황정후가 얼굴에 웃음기를 띠고는 보조석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시트 덕분에 보조석에 앉아 있는 이의 모 습이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는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기는 했다.
“강진호를 매우 높게 평가하는 군.”
“객관적인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
다.”
“그래? 그럼 강진호가 이번 일을 잘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응?”
황정후가의아한 눈으로 앞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잡스에게 휴대폰 매장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하다가 이제는 모르겠다니, 말이 앞뒤가 맞 지 않았다.
“설명.”
“잡스에게 휴대폰 매장을 맡기면 잘하겠습니까?”
“진상 고객이라도 만나면 휴대폰을 집어 던지며 ‘너 같은 놈은 내 폰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고 길길이 날뛸지도 모르죠. 수익률을 조작해 동업자를 엿 먹일지도 모르고, 싸구 려로 떼온 액세서리를 멋들어지게 포장해 팔아 제낄 수도 있구요.”
“확실히 그렇군.”
“사람에게는 맞는 자리라는게 있 다고 생각합니다. 잡스의 능력을 검 증하려면 회사를 줘야지, 매장을 줘 서는 안 됩니다. 건방진 말이지만, 저는 지금 회장님께서 하고 있는 일
이 잡스에게 매장을 주는 것과 다르 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껄껄껄걸 ”
황정후는 유쾌하게 웃었다.
이 앞에 앉아 있는 건방진 애송이는 지금 벌어진 일의 원인이 조규민 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강진호라는 사람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히고 있는 황정후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 었다.
백영기도 차마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을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고 하고 있었다.
“대충한다고 했지만, 사실 해보고
싶지 않나? 대놓고 강진호에게 엿을 먹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일텐데?”
“이 정도로 엿을 먹이는 건 그냥 골탕 먹이는 수준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다면 파멸로 몰아넣 어야지, 어설프게 장난을 치고 싶지 않습니다.”
“네가 강진호를 파멸시킬 수 있을까?”
“힘든 일인가 아닌가,가능한가 아닌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애초에 제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황정후가가라앉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베트남에 진출을 했어.”
“……”
“그런데 그쪽이 영 잘 풀리지가 않는 모양인가 보더라고. 투입된 애 들이 줄줄이 죽는소리를 하고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더군. 새로 지 원자를 받았는데,가겠다는 놈이 없 네.”
“회장님의 말씀인데도 말입니까?”
“먼저 자기가 살아야지. 그리고 그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겠 지.”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래서 생각을 한 건데, 어차피 버려도 별 손해가 나지 않는 루트이 긴 하지만 버리기는 아깝고,가겠다는 사람도 없어. 어때?”
“……무슨 말씀이신지?”
황정후가 창문을 열더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적당히가림막이 되어줄 윗대가 리 하나 붙여주지.가서 한번 해볼 생각이 있어?”
“음……”
“내 옆에 찰싹 붙어 있으면 나름 안정적이기는 하겠지만, 내가 죽는
순간 끈 떨어진 연이 되지. 슬슬 너도 영업부로 넘어가야 할 시점인데, 경력 하나 들고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다만, 이번 일이 흐지부지 정리 된다면, 제 능력은 굳이 볼 필요도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말해 뭐해.”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은 간사하게 들리는 목소리.
황정후는 보조석에 앉아 있는 놈 이 독사 같다고 생각했다. 만약 과 거에 태어났다면, 저놈은 틀림없이 간신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는 간신도 필요한 법이지.’
독사가 되었든 간신이 되었는 능 력만 있다면, 그래서 회사에 보탬이 될 수만 있다면 쓴다. 그것이 황정후의 지론이었다.
“언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일주일. 인수인계 끝내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황정후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쓰게 웃었다.
그의 집안을 파멸시킨 것은 강진호지만, 실질적으로 손을 쓴 것은
황정후다. 풀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자신의 집안을 무너뜨린 이에게 진 심으로 고마움을 담아 인사를 한다?
‘재미있는 놈이야.’
강진호와는 다른 타입으로 황정후의 마음에 드는 인재였다. 어디, 용 이 될지, 미꾸라지로 끝날지 이제 슬슬 던져 놓아볼 시간이다.
“건투를 빌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강진호에게 안부 전해줄까?”
잠시의 침묵. 그러나 곧 전과 다 름없는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아닙니다. 적어도 멋진 선물 하나 정도는가져가 인사를 해야은혜에 보답하는 거죠.”
황정후는 그의 대답에 다시 한번 껄껄대며 웃었다.
황정후의 웃음을 들으며 보조석에 앉아 있던 최영수는가만히 시선을가라앉혔다.
‘곧 볼게 될 거야.’
그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