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27)
마존현세강림기-27화(27/2125)
마존현세강림기 2권 (2화)
1장 _ 계약하다 (2)
조규민은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황정후의 말은 간단하지만 많은 것을의미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노인은 황정후다.
재경 그룹을 바닥에서 지금의 자리 까지 끌어 올린 신화이자 재경 그 룹, 그 자체였다. 재경 그룹은 쌓여
있는 재화와 상품을의미하지 않는다. 재경 그룹이란 이 남자고, 이 남자가 바로 재경 그룹이다.
황정후가 일어난 이상 다른 어떤 것도의미가 없었다.
주주들은 황정후가 깨어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모두 황정후의 편을 들 것이고, 지금 세 파벌로 나뉘어 싸 우고 있는 이사들도 모조리 황정후의 아래로 모여들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황정후가가지고 있는 지분만으로도 경영권을 다시가져올 힘이 있었다.
황정후가 깨어난 이상 이제 모든 것이 끝이었다.
이제 와서 황민재가 황정후가 깨어 났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잆다는의미였다. 조규민은 한숨을 쉬었다.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면 황정후가 사장들을 용서할 리 없었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눈 하나 깜 짝하지 않고 쳐낼 사람이 황정후였다.
그리고 그들의 명을 듣고 황정후를 감시해 온 자신과 김승환도 이제 끝 난 것이었다.
조규민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모자란 자식 놈들의 지시를 따른 너희 같은 잔챙이들을……”
황정후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겠지.”
그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조규민이 암담한 심정으로 눈을 질 끈 감을 때, 그의 귀에 뜻밖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예전의 나라면 말이야.”
조규민의 눈이 번쩍 떠졌다.
황정후의 말이 뒷맛을 남겼다.
조규민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황정후가 여지를 주고 있었다. 그렇 다면 지금 살아남기 위해 그가 해야 할일이 무엇인가.
“하지만 나는 지금 손이 필요하다.” 조규민이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살길을 찾은 것이다.
“회장님!”
김승환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조규민은 김승환에게 설명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이 그의 인생에 찾아온 위기이자 기회 였다. 선명한 갈림길이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제가 그 손발이 되겠습니다.”
황정후의 눈이 무겁게 조규민을 짓 눌렀다.
힘없는 노인.
어제까지만 해도 언제 숨이 끊어질 지 모르던 노인.
그 노인의 눈이 조규민을 압박한다. 조규민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묵묵 히 그 압박을 감내했다.
폭력이 법을 무시하던 시대. 법이 권력 앞에 무릎을 꿇던 시대. 법이 기업을 적대하던 시대까지. 수많은 현대사의 파랑을 헤치고 이 겨온 거인의 눈은 일반인이 감히 상 상도 할 수 없는 무거움을 담고 있 었다.
“ 네가?”
조규민은 침을 삼켰다.
황정후는 병상에서 방금 일어났다.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키리라 믿어온 이사들은 모두 제 살길을 찾아 황정후의 곁올 떠났고, 백영기 이사에게 서 보고를 받았다고 하나 정확히 무
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황정후가 일선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의 수족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 했다. 충심으로 뭉친 옛 동료들이 아니라, 정보를 물어 올 수 있는 충 견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조규민은 거기에도박을 걸었다.
만약 자신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살 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단순 히 살아남는데 그치지 않고 새롭고 튼튼한 동아줄을 움켜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이 거인이 그를 쓸모
있다 판단해 준다면!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말은?
“회장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아내 오겠습니다.”
“끌끌끌.”
황정후는 낮게 혀를 차며 웃었다.
“너무 과했군.”
“……”
조규민의 몸이 굳었다.
“너 정도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조규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는 상황 이었다. 급한 마음에 알아 오겠다고
말은 했지만, 황정후가 얼마나 고급 정보를 원할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 으니까.
‘ 실수인가?’
마지막 희망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판단이 빠른 건 마음에 드는군.”
“그럼?”
조규민이 고개를 들었다. 황정후가 입에 문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황정후는 두 발로 걸어 창가로 향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루아침에 몸이 낫기라도 했단 말 인가?
그렇지 않다면…….
‘연기였나?’
그나마가능성이 있는 것은 황정후가 예전에 회복되었고, 지금까지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을 확 률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병자로 산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움직 일 수 있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하루 종일 지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한 고통이자 괴로움이다.
그걸 어떻게 참고 버텨낸단 말인가. 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무섭다.’
조규민은 눈앞의 작은 노인이 대체 얼마나 지독한지가늠할 수가 없었다.
물론 오해였다. 황정후는 오늘 새벽 겨우 눈을 떴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는 조규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창밖올 바라보던 황정후가 낮게 입을 열었다.
“재떨이.”
“예!”
조규민은 달리듯 재떨이를 낚아채 창가의 황정후에게로 들고 갔다. 그 러고는 다시 담배를 꺼내 조심스레 황정후에게 건네고는 불을 붙여주었다.
환자복을 입은 노인이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이더니 느긋하게 연기를 뿜어냈다.
“삼 일.”
황정후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조규민 이의문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조규민에게 닿 아 있지 않았다.
창밖 먼 곳 어딘가.
황정후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은 조규민이 볼 수 없는, 그 어딘가였다.
“삼 일 내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 린다.”
삼 일.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황정후가 마음먹는다면 결코 불가능한 시간은 아니었다. 지금 조규민도 그랬으니까.
황정후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황민재의 오른팔을 자처하던 그도 황정후
의 이름 앞에서 그저 굴복할 뿐이었다.
재경을 알고 재경에서 살아온 이들 에게 있어 황정후라는 이름 세 글자는 그 정도로 경외였다.
황정후가 결코 빠르지 않은 동작으로 채 얼마 타지도 않은 장초를 재 떨이에 비벼 끄고는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조규민을 똑바로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조규민으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수해야 할 첫 번째 명령을 말이다.
“백영기를 불러라.”
지금 이 병실에서부터 폭풍이 시작 되려 하고 있었다.
* * *
“으으……”
동명 재단의 이사장 최명길은 일그 러진 얼굴로 손자 최영수를 바라보 았다.
“ 영수야!”
“할아버지……”
“영수야, 너 대체 왜 이러는 거냐! 이놈아!”
“그, 그놈이 와요.”
최명길은 치를 떨었다.
“대체 누가 온다는 말이더냐! 이놈 아!”
최영수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주 위를 몇 번이고 두리번대며 살폈다. 그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나 나오는 마약 중독자 같은 모습이라 최명길의 속을 타들게 만들었다.
총기 넘치던 그의 손자는 대체 어디 로가버렸다는 말인가.
“영수야! 이놈아!”
답답한 마음에 자꾸 최영수를 부르 고 마는 최명길이었다.
“……호, 강진호, 그 자식이 와요!”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놈이 여길 왜 온다고!” 최명길은가슴을 쥐어뜯었다. 하나밖에 없는 손자였다.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한 이후 혹여 어린놈이 상처라도 받았을까 애지중 지한 손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엇나가지 않고 착실하게 자라준, 기 특한 손자였다.
그 손자가 지금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 처참한 몰골로 말이다.
“영수야! 누가 온다는 말이냐! 대체 누가 온다고 그러는 거냐! 여긴 네
집이다! 네 집에 누가 온다고!” 최명길의 말에도 최영수는 진정되지 않았다. 그는 두려운 눈으로 연신 주위를 기웃거렸다.
“와, 와요!”
“ 영수야!”
최영수가 핏발이 선 눈으로 최명길을 노려보았다.
“어차피 안 믿올 거잖아!”
“영수야, 제발!”
“흐흐, 다 필요 없어! 어차피 안 믿을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허어……”
최명길은 다리가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사장님!”
상황을 지켜보던 비서가 달려들어 최명길을 부축했다.
최명길은 분노와 안타까움이 뒤섞인 얼굴로 최영수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얼 마 전 최영수가 강진호라는 놈과 싸 우면서부터였다. 처음 입원을 시키 고 강진호에게 정학을 내린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갑 자기 최영수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놀러 나갔다가 강진호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최 명길은 분노했다.
강진호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들이밀 었을 때도 밝혀내지 못한 것뿐이지 최영수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조금도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최영수는 방 안 에서 강진호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최명길에게 달려왔다.
혹시나 해서 CCTV를 확인해 보았 지만, 외부에서 침입한 혼적은 없었다. 기가 약해져 헛것을 보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최영수는 사흘이 멀다 하 고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강진호가 찾아온다느니, 이러다 자기가 죽는다느니 하는 이 상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최영수는 되레 최명길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발악하기 시작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최영수가 이상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최명길은 결국 최잉수를 신경정신과 로 끌고 갔다. 하지만 정신과에서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중 상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의 일 종 같다는 말을 할 뿐, 정확한 치료 법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안 믿을 거잖아! 나만! 나 만…… 나만 이렇게 당하는 거야. 나만……”
최영수가 발작적으로 소리치다가 서 서히 흐느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최명길의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 영수야……”
“흐, 강진호…… 미안해, 미안! 다신 안 그럴게. 내가……”
최명길의 눈이 차갑게 굳어졌다. 하나뿐인 손자가 저렇게 비굴한 모 습으로 눈앞에도 없는 이에게 빌고 있었다.
“강진호!”
그가 딱히 무슨 잘못을 했다고 생각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손자를 건드 렸다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다. 하지만 처음 최영수와 얽힌 사 건에 대한 처벌은 이미 충분했다. 원칙대로라면 이미 끝낸 사건을 다시 끌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명길은 분노를 풀 곳이 필요 했다.
최명길은 고개를 돌려 비서에게 소 리 쳤다.
“교장 연결해!”
“어느 교장 말씀이십니까?”
“이 멍청한 놈아! 동명고지, 어디긴 어디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최명길을 보며 비서는 ‘앗, 뜨거라’ 하는 심정으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급히 전화를 꺼내 번호를 누르는 비 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최명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가만두지 않겠다, 강진호.”